절절한 사랑은 절실한 욕망을 낳는다/최종희
-하데스의 욕망은 정열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하데스(Hades)*. 그는 죽음을 관장하고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신이다. 크로노스의 세 아들 중 하나로, 형제인 제우스와 포세이돈과 함께 티탄신족을 물리치고 우주를 나누어 가졌다. 그 전쟁에서 수훈 갑인 막내 제우스가 하늘을,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각각 바다와 지하 세계를 가졌다.
이 하데스의 이야기에 덤으로 따라 붙는 게 세 가지 있다. 지옥의 수문장 격인 케르베로스(Kerberos)와 영혼의 뱃사공 카론(Charon), 그리고 그의 여인 페르세포네(Persephone)다.
저승문의 입구를 지키는 괴물 수문장 케르베로스(Kerberos)는 3개의 머리와 뱀의 꼬리를 가지고 각각의 머리에서 치명적인 화기와 냉기, 맹독을 뿜어내는 괴물로 집약된다. 인간이 죽으면 영혼을 인도하는 헤르메스(Hermes Psychopompos)를 따라 지하 세계의 경계 지점까지 내려가고, 거기서 아케론 강에서 스틱스 강까지 건네주는 뱃사공의 신세를 져야 하는데, 바로 그 뱃사공이 카론이다. 지금도 카론에게 지불할 뱃삯으로 죽은 이의 입 안에 동전과 같은 것을 넣어주는 풍습이 남아 있을 정도.
세 번째이자 하데스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 페르세포네(Persephone). 그녀는 동생 제우스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사이에서 태어난 조카딸이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반해 납치한 뒤, 지하 세계로 데리고 가버린다. 딸의 실종을 알게 된 수확과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는 여신의 임무를 작파하고 딸을 찾아 나선 끝에 하데스가 딸을 납치한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한다. 대지는 끝없이 황폐해지고 세상에는 큰 기근이 닥친다. 이를 두고 볼 수 없는 제우스는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돌려보내라고 명하지만,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돌려보내지 않기 위해 미리 손을 써 둔 상태.
지하 세계에서 뭔가를 먹은 사람은 결코 지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걸 모르는 페르세포네는 하데스가 준 석류 몇 알을 이미 먹은 뒤. 제우스는 먹은 석류 알 개수만큼 달로 환산하여 1년의 3분의 2는 지상에서 지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지하 세계에 머무르도록 중재한다. 그리하여 페르세포네가 지상에서 어머니 데메테르와 함께 지내는 동안은 대지에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 등 풍요롭지만, 하데스에게로 돌아가 머무는 동안은 춥고 삭막한 대지가 된다. 그것이 이 땅에 석 달의 겨울이 오게 된 사연이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건 이런 자초지종이 아니다. 조각품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건축가로서 수많은 현존 걸작을 남기고 있는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의 작품 <페르세포네의 납치>*. 바로 아래 사진 속의 모습이 그것이다.
위 두 장의 사진 속에는 하데스의 얼굴을 밀쳐내며 그에게 저항하는 페르세포네의 모습이 부각된다. 하지만 아래 사진들을 보라. 그런 그녀를 더욱 꽉 붙들기 위해 살 속으로 파고들 듯한 손길이 있다. 섬세하고 역동적인 표현은 말할 것도 없고 작가와 하데스가 혼연일체다. 한 몸이다. 하데스의 열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차가운 돌덩어리인 대리석을 가공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이 작품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하데스에게 몰입된다. 그의 열정이 내게로도 퍼진다. 내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고 두 손에 힘이 간다.
한참 뒤, 내게서는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참고 있었던 긴 숨이 터진다. 글로는 몇 페이지에도 담아내기 힘든 하데스의 정열을 입상 하나에 간종그려 감탄할 솜씨로 잘 요약해낸 조각가를 향했던 선망의 시선이 하데스에게로 옮겨진다. 그의 절절한 사랑이 그처럼 절실한 욕망으로 이어지게 하는 동력, 바로 그의 뜨거운 정열이 나를 그에게로 이끈다.
문득 나는 하데스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베낄 수만 있다면 그의 정열을 베끼고 싶다. 그런 뜨거운 정열로 살아내고 싶다. 그러고 싶다. 다만 방향만은 그와 달리해서... 하데스는 납치까지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사람, 그래서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 편이라는 걸, 청년 시절을 지나 오면서 나도 알게 되었으니까.
[주1] 하데스 : 그리스인들은 감히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그를 두려워했다. 대신 부른 이름이 ‘플루토(pluto)’. 땅속의 지하자원 광물을 뜻하는 것이었는데, 오늘날의 원소 이름 ‘플루토늄’은 여기서 온 말.
[주2] 베르니니 : 우리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데,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루이 14세를 포함한 많은 저명인사들의 흉상 외에 <성 테레사의 환희>, <아폴로와 다프네>와 같은 걸작들을 남겼다. 죽은 뒤 바실리카 성당에 묻힐 정도의 저명한 조각가 겸 건축가. 현존 작품들도 아주 많은 편이다.
[주3] <페르세포네의 납치> : 영어 표기의 원제는 <페르세포네의 강간>이다. 번역 과정에서 좀 심하게 변형된 느낌이 든다. 입상 형태를 봐도, ‘납치’ 쪽이 설득력이 있다. 베르니니의 작품 중에는 사람이 누워 있는 와상 조각도 있다. 위의 조각 작품 기단 쪽에 앉아 있는 게 지옥의 수문장
케르베로스(Kerberos).
[Mar. 2015] -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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