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키 170에다 날씬하기까지 하면 행복해야 하는데/최종희
내 주변에 알음알음으로 연결되는 늘씬하고 날씬한 여인들이 좀 있다. 그들 모두 키가 170대 근방이거나 넘기고 있는데, 모두들 군살 하나 없다. 겉으로만 보면 옷 속에 자리 잡은 뱃살도 없을 듯하다.
여인들의 삶에서 실제로는 몸매에 신경 쓰는 일이 화장에 공들이는 시간보다도 많다는 사회조사 결과가 있다. 굳이 그걸 들이댈 필요도 없이, 요즘 세상에서 그런 이들은 선망의 대상이 된다. 사실 부러움을 엄청 사도 너끈할 그런 이들이기도 하다.
여인 A : 전에는 매일 아침 5시 전에 대하곤 했다. 담배 한 대 피우러 내려가면, 엘리베이터 출구로 연결되기도 하는 아파트 문 밖에서. 요새는 7시 무렵에 본다. 왜냐니까 물량이 줄어서 배달 시간을 늦춰도 되기 때문이란다. 그녀는 ‘야쿠르트 아줌마’다. 아주 늘씬 날씬한. 카트를 끄는 걸음이 여전히 반듯하고 씩씩하다. 지난 5년 동안 내내 그랬듯이.
네 해 동안 처음엔 눈인사와 목례를 겸한 고개인사를 섞어 하다가, 작년부터 짧은 아침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미소파인데, 요즘은 싱글벙글 한다. 배달 시간을 늦출 정도이면 고객이 확 줄었다는 얘긴데도...
무슨 좋은 일 있느냐니까, 딸아이가 4년 전액 장학금으로 진학했단다. 그것도 이른바 SKY 대 중의 하나에. 여인의 딸은 고교도 나라에서 학비/교복/기숙사비까지 해결해 주는 곳을 나왔고, 둘째도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
여인 B :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지방공무원.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지독하게 공부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몹시 심심해하는 괴상한 학구파다. 그녀의 기억력은 놀랍다. 무엇이든 잘 준비된 상태에서 착착 꺼내오는 듯하다. 비결을 물으니, 자신도 모르겠단다.
내 관찰에 의하면 그 비결은 단순하게 사는 데에 있는 듯하다. 생각과 행동이 무겁지 않다. 군더더기가 없어 경쾌하다. 그 경쾌함 주변엔 여유로움까지 떠돈다.
그녀에게도 최근에 아주 좋은 일이 생겼다. 온 세상 사람들이 은근히 부러워해도 좋은 아주 아주 좋은 일이. 그녀의 노력으로 따낸 열매다. 가볍게 단순하게, 그렇지만 열심히 군더더기 없이 살아온 보람이랄까.
그 좋은 일을 맞이하는 데에 한 달쯤 걸렸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동안 엄숙한 쪽이라 해야 맞던 그녀의 얼굴이 점점 환해지기 시작했다. 내겐 ‘좋은 일’보다도 그게 더 좋은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인 C : 명문 여대의 메이퀸 후보로까지 올랐던 이다. 드물게 미모와 머리를 겸비했던 재원. 문헌정보학과를 나와 석사 과정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할 정도였다.
대학 시절 만났던 사내와의 결혼으로 박사 과정을 접었다. 아내 자리에 머물기 위해서. 30대 후반 들어 그 자리가 흔들릴 때, 여인은 박사 과정 진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까짓(?) 일로 뭘 그리 고민하느냐는 내 꼬드김도 조금은 작용했고, 학구적이면서도 과감한 여인의 생리(?)에도 맞았다. 선택한 전공 분야도 내가 권했던 쪽. 여성학.
여인은 여러 해 뒤, 그다지 늦게 않게 학위를 따냈고, 그 사이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다. 두 아이가 딸린 이혼녀가 되었고, 시간 강사로 새 삶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새 남자를 만났다. 가방끈 길이가 절반밖에 안 되는 사람과. 그게 서너 해 전의 일이던가. 두 해 전에 우연히 만난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왕창 늘어난 기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인 D : 20여 년 전만 해도 서울의 한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공부할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도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여고 시절 이미 170센티에 육박하는 늘씬한 몸매까지도 그런 갖춰짐에 속했고. 대학 졸업장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대학도 나왔다.
남편의 키가 그녀보다도 작았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키 큰 남자를 조건의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여자들은 대개 자신의 키가 165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그런 이들은 키 큰 남자와 함께 다니면 도리어 상대적으로 여인의 키가 작게 보인다는 걸 모르는 이들이라며, 호쾌하게 넘겼다.
여인의 삶은 어느 날 급전직하했다. 남편의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 친정아버지는 물론 친정 식구들의 보증까지 강요・애걸한 다음이었다. 무리한 확장세를 남편의 사업은 외면했고, 전 가족은 낯선 이국땅으로 도피했다. 아는 이들이 없을 곳으로 골라서.
미국 생활 10여 년 동안 여인은 기계처럼 일해서 집까지 마련했다. 남편의 일상이 기름칠 안 한 기계처럼 돌다 멈추다를 되풀이했고, 그 꼴을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였다.
둘의 관계는 한 지붕 아래 동거인 꼴일 뿐이라는 말이 풍문으로 들려온 지도 꽤 오래 되었다. 끔찍하게 여기며 친구처럼 의지처로 삼았던 딸아이조차도 남자가 생긴 뒤로는 엄마 집을 무료 숙박처로, 엄마를 통장 주인 정도로만 여기는 바람에 낙망을 거쳐 절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과 함께다.
*
흔히 여인은 뒤웅박 팔자라고도 한다. 뒤웅박은 박을 쪼개지 않은 채 꼭지 부분에 조그만 구멍을 뚫고 박속을 전부 긁어내어 말린 뒤 마른 그릇으로 쓰는 것을 이르는 이름. 속이 텅 비어 물 위에 놓으면 둥둥 뜬다. 물결 따라 흔들린다. 속이 빌수록 엎어질 가능성도 높지만, 안이 차고 바닥 쪽이 넓으면 안정된 자세가 된다.
마른 그릇으로 쓸 때는 그럴 일이 없다. 물 위에 띄워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씨앗 따위를 담아 보관할 때는 고달이를 만들어 매달거나 시렁 따위에 얹어 놓기도 한다. 매우 안정된 자세.
오늘 아침, ‘야쿠르트 아줌마’를 대하자, 뒤웅박 얘기가 떠올랐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아심과 함께. 나는 시중의 말을 곧이곧대로 그 자리에서 믿어대진 않는다. 뒤집어서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고서야 내 생각을 확정하는, ‘돈 안 되는’ 놈이다.
문득 네 여인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떠오른다. 예전 그녀들의 삶을 행복순으로 매긴다면 여인 D에서 시작하여 C →B →A의 순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도리어 여인 A →B →C →D의 순서다.
여인들의 행복 역시 타인들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진 않는다. 남편조차도 여인의 행복에 관한 한은 타인이다. 스스로 뒤웅박이 되어 자신의 삶을 통째로 타인에게 맡기거나 의존하는 이를 빼고는. 여인의 행복 또한 자신의 손으로, 몸수고로, 엮어가는 날실과 올실의 교직 위에 새겨지는 무늬다. 여느 행복들과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
여전한 미소로 인사하면서 요거트 카트를 씩씩하게 끌고 돌아서던 ‘야쿠르트 아줌마’. 그녀가 오늘 아침에 만난 내 인생 스승이었다. 인생이라는 괴물의 옆구리를 잠시 쓰다듬어 보게 하는. 혹은 간질이게 하는. [Mar. 2015]
- 溫草
역사 교과서에서 꼭 고쳐져야 할 것 : 일제 ‘36년’이 아니라 ‘35년’이다 (0) | 2016.08.20 |
---|---|
[고정관념 뒤집어 보기] 그들만의 영웅부터 돼라! : '작은 영웅' 이야기 (0) | 2016.08.09 |
유난히 벚꽃 앞에서 설레는 여심의 진실 (0) | 2015.04.11 |
커피는 각성과는 거리가 먼, 각성제다 (0) | 2015.03.22 |
절절한 사랑은 절실한 욕망을 낳는다 - 하데스의 욕망은 정열이다 (0) | 2015.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