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동사다 : 어머니의 사랑*/최종희
전화기를 든 어머니, 자식에게 묻기에 바쁘다.
- 그래 요즘 밥은 잘 챙겨 먹니?
잠은 잘 자고? 아픈 덴 없고?
회사 일로 피곤하진 않니?
늦게 와서 빨래하느라 애쓰지 말고, 주말까지 기다려라.
엄마가 가서 해줄게.
집으로 돌아오거든 바깥 일 다 잊고 그냥 맘 편하게 푹 쉬렴...
어머니의 대화 내용을 보면
죄다 먹고 자고 빨래하고 쉬고... 등을 하라는 것뿐이다.
참으로 저급하다. 고급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어머니,
자식이 입술을 깨물고 눈에 이슬이 비치는 일이라도 생기면
다가가서 껴안는다.
그냥 안아주며 등만 다독인다.
자식의 이슬방울을 가슴으로 읽는다.
자식이 뭐라도 하나 해내면 대뜸 말한다.
- 아이고, 내 새끼! 암만, 내 새끼가 최고여...
고마운 일이여... 멋져부러야!
자식이 뭐라도 내밀거나 건네면 어머니는 말한다.
- 뭘 이런 걸 다... 늬들이나 써......
고맙구나 야. 참말로 고마워 늬들.
어머니의 사랑엔 고급한 추상명사 따위가 없다.
죄다 동사다.
행동도 말도 모두 동사에 속한다.
입 밖에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 건, 동사가 아니다.
사랑이 아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뭐든 고맙다고 수시로 말하지만
자식은 제대로 그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아주 매우 드물다.
말이 그 사람이다.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전체 모습이,
진면목이 읽힌다. 아주 쉽게.
그가 제아무리 부모를 어쩌고 한다고 해대더라도
실제의 언어 행위를 들여다보면 딴판일 때가 많다.
언어에는 체감온도로 측정되는 급수가 있다.
마음의 급수가 언어로 드러난다. 저절로...
사랑이 낳은 언어는 형태와 무관하게 최고 급수에 속한다.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의 가장 흔한 공통점은
‘고맙습니다’란 말을 최소한으로 해왔거나
아예 할 줄 모르는 게 몸에 밴 이들이라는 점이다.
그걸 그 자신들만 모른다.
‘고맙습니다’란 그 간단한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인정과 배려를 위한 출발이자,
상호 존중과 상호 존경으로 이어지는 첫 단추라는 걸 알지 못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같은 아픔을 홀로 되씹을 때까지는.
사랑은 동사다.
자꾸만 연습하고 몸에 익혀야만 하는
급수 낮은 동사들이 사랑의 핵심 일꾼들이다.
그것들이 사랑을 일궈내고 키워준다.
사랑은 하늘에 있지 않고 땅에 있다.
사랑은 높이 떠 있지 않으며, 낮은 바닥에 더 많이 머문다.
손과 입이 사랑의 주민등록상 주소다. [April 2015]
*28주기 기제를 앞두고, 어머니의 사랑 가르침을 뒤늦게 떠올리며...
-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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