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자어 관련, 네 번째 시간.
우리가 널리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들 중, 흔히 실수하기 쉬운 말들 가운데서도
한자어인 줄은 알지만 정확한 의미 파악/구분을 하지 않고 얼결에 쓰다 보니
실수도 하게 되는 말들을 골라 보았다. [溫草]
[사례 4] 남들도 쓰기에 따라서 써봤어요 : 한자어이기는 하나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예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중년 여인을 두고 ‘묘령의 중년 여인’이라고 묘사한 소설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묘령’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나이가 얼마인지 모른다는 뜻으로 작가가 함부로 추측하여 남발한 망발이라 해야 합니다.
‘묘령(妙齡)’은 ‘방년(芳年)’과 마찬가지로 20살 전후의 나이를 뜻하는 말입니다. ‘묘령의 중년 여인’은 나이 지긋한 중년 여인이 졸지에 젊은이로 둔갑하게 되는 일이므로, 나이 짐작이 어려운 중년이 아니라 신출귀몰한 재주꾼에 대한 묘사가 되고 말지요.
‘씨는 출감하자마자 000 총재의 자택을 찾았다.’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총재의 집이 그의 집으로 바뀔 수도 있는 문제적 표현입니다. ‘자택’이란 ‘자기 집, 내 집’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남의 집을 높여서 이르려면 ‘댁(宅)’ 정도가 적절합니다. 물론 총재의 사무실이나 다른 곳을 찾아가지 않고 그의 집으로 갔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택’이라 적었겠지만, 그럴 경우에도 ‘댁’ 정도면 족합니다.
[실전 훈련]
◈그는 000 총재의 자택을 방문하여 넙죽 인사를 올렸다 : 댁의 잘못.
[설명] ‘자택’은 ‘자기 집, 내 집’을 뜻하는 말로, ‘집’을 뜻하는 높임말이 아님. 위의 문맥대로라면 자칫하면 000 총재의 집이 졸지에 ‘그’의 집으로 둔갑할 수도 있음. 남의 집/가정을 높여 이르는 말을 쓰고자 한다면, ‘댁’ 정도가 적절함. [주의] 접미사로 쓰이는 ‘-댁’도 있으므로, 띄어쓰기에 유의!
댁(宅)? ①남의 집/가정의 높임말. ¶선생님 댁; 총장님 댁. ②남의 아내를 대접하여 이름. 주로 대등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아랫사람의 아내를 이름. [유]부인. ? 듣는 이가 대등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아랫사람인 경우,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댁은 뉘시오?
-댁(宅)? ①‘아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오라버니댁/처남댁/철수댁/참봉댁. ②‘그 지역에서 시집온 여자’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평양댁/광주댁/김천댁.
◈묘령의 중년 여인 : ‘묘령’이 잘못 쓰였음.
[설명] ‘묘령(妙齡)’은 ‘방년(芳年)’과 마찬가지로 ‘스무 살 안팎의 여자 나이’를 뜻하므로, 중년 여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음.
방년[芳年]? 이십 세 전후의 한창 젊은 꽃다운 나이.
중년[中年]? ①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도 포함. ②사람의 일생에서 중기, 곧 장년․중년의 시절.
[참고] ‘재원(才媛)’은 ‘재주가 뛰어난 젊은 여자’를 뜻하므로 남자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말. <예> 김 군은 장래가 촉망되는 재원이야(x). 한편, ‘규수(閨秀)’에는 ‘남의 집 처녀/학문과 재주가 뛰어난 여자’의 두 가지 뜻이 있어서, 꼭 처녀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말은 아님. 후자의 뜻으로는 여류(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와 비슷함.
◈까보면 흠결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 흠이 적절함. 설명 참조.
[참고] 법에도 모자람이 있지. 법의흠결(法-欠缺)이랄 수 있지 : 맞음. 법적 용어.
[설명] ‘흠결’을 흔히 ‘단점/결점/잘못/흠’의 뜻으로 쓰지만, ‘흠결’은 구체적으로 양이 축나서 모자라거나 부족할 때 쓰는 말이기 때문에 비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지만, 예문에서와 같이 일반적인 의미로 충분할 경우는 ‘흠’이 더 적절함.
흠결[欠缺]≒흠축[欠縮]? 일정한 수효에서 부족함이 생김.
흠[欠]? ①어떤 물건의 이지러지거나 깨어지거나 상한 자국. ②어떤 사물의 모자라거나 잘못된 부분. ③사람의 성격/언행에 나타나는 부족한 점.
법의흠결[法-欠缺]? <법> 법에 모자람이 있음을 이르는 말.
의사흠결[意思欠缺]? <법> 의사 표시에서 외부에 나타나는 표시 행위는 있으나 그에 대응하는 내적 의사가 없거나 일치하지 않는 일.
◈짓다 만 건물이 도시의 흉물이 되었다 : ‘흉물’은 사람/동물에게만 쓸 수 있는 말.
[설명] ‘흉물(凶物/兇物)’은 ‘성질이 음흉한 사람’이나 ‘모양이 흉하게 생긴 사람/동물’이라는 뜻으로 사람/동물에게만 쓸 수 있는 말. 따라서 ‘흉물’은 의인화 문장이 아닌 한은 위와 같이 사용해서는 안 됨. 꼭 ‘흉물’의 뜻을 살리고자 한다면 ‘흉물스러운 것’ 등으로 바꿔 쓰는 것이 좋음. <예>짓다 만 채 세월의 때가 낀 그 건물은 그 도시의 흉물스러운 풍광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천방지축마골피’는 희귀성들을 모은 거야 : 희성의 잘못.
그 아이 병은 희귀 질병이라고나 할까 : 희소병(혹은 드문 병)의 잘못.
[설명] ‘희귀(稀貴)’는 ‘희귀하다’의 어근으로서, ‘희귀하다’는 ‘드물어서 매우 진귀하다’는 뜻. (예) 희귀본(稀貴本); 희귀종(稀貴種). 드문 성이라고 할 때는 ‘희성’이어야 하고, 아주 드문 병일 때도 그에 알맞은 말로 바꾸어 표현하는 게 옳음.
희성[稀姓]? 매우 드문 성(姓). 우리나라에서는 정(程), 석(昔), 태(太) 등이 있음.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 우레의 잘못.
[설명] 예전에는 ‘우뢰(雨雷)’로 쓰기도 했는데 이는 고유어 ‘우레’를 한자어로 잘못 인식하여 그리된 것. ‘우레’는 ‘울(다)+에(접사 기능)’ 꼴의 우리말로 15세기 이전부터 쓰여 왔으며(금강경/송강가사 등에서), ‘천둥’과 동의어. 즉, ‘우레≒천둥’.
◈이번의 비리 사건은 회사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 : 유례의 잘못.
[설명] 예문에서 ‘유래’를 ‘전례(前例)(이전부터 있었던 사례)’로 바꿔 보면 뜻이 통하는데, ‘전례’는 ‘유례’와 같은 말. ‘유래’는 어떤 일/사물이 생긴 연유를 뜻함.
유래[由來]? 사물/일이 생겨남. 또는 그 사물/일이 생겨난 바. [유]까닭, 연유, 유서
유례[類例]? ①같거나 비슷한 예. ②≒전례(前例)(이전부터 있었던 사례).
◈농민들의 항의 시위로 시내 진입로 일대가 봉쇄되었다. : 일부 지역의 잘못.
태풍으로 남해안 일대에 주의보가 발효되었다 : 맞음.
시행사 측은 북한산 일대 1만 평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 (일부) 지역의 잘못.
[설명] ‘일대(一帶)’는 ‘일정한 범위의 어느 지역 전부’를 뜻하는 말. 그러므로, ‘시내 진입로 일대’는 시내 진입로 전부를 뜻하고 ‘북한산 일대’는 북한산 지역 전체를 뜻하므로 잘못 쓰인 경우임.
◈놀이시설 이용 시 노약자와 임산부는 유의하세요 : 임신부(혹은 임부)의 잘못.
[설명] ‘임산부’는 ‘임부’와 ‘산부’를 아우르는 말. ‘산부’는 아기를 갓 낳은 여자이므로 놀이시설에 올 수도 없는 처지. 따라서 위의 문맥과는 어울리지 않음.
임산부[妊産婦]? 임부와 산부를 아울러 이름.
임부[妊婦]≒임신부[妊娠婦]? 아이를 밴 여자.
산부[産婦]≒산모[産母]? 아기를 갓 낳은 여자.
◈서행하면서 2차선으로 달리면 사고나기 십상이지 : 2차로로, 사고 나기의 잘못.
[설명] ①‘2차선’은 ‘2차로를 표시한 차선(금)’이므로 그 선 위를 달릴 수는 없음. 즉, ‘2차선’ 대신 ‘2차로’로 표기하는 것이 올바름. 그러나, 아래의 뜻풀이에서 보듯, ≪표준≫에서도 ‘차로폭’으로 표기해야 할 말을 (굳어진 전문용어로 인정해서인지, 아니면 차선 간의 폭을 뜻하는 것인지) ‘차선폭’으로 인용(認容)하고 있어 헷갈림. ②‘사고나다’는 없는 말. ‘사고 나다’로 띄어 적음.
차선[車線]? ①자동차 도로에 주행 방향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그어 놓은 선. ②도로에 그어 놓은 선을 세는 단위.
차로[車路]≒찻길? 사람이 다니는 길 따위와 구분하여 자동차만 다니게 한 길.
차선폭[車線幅]? 도로에 표시한, 한 대의 차량이 지나가는 데에 필요한 만큼의 너비. ☜‘차로폭(車路幅)’이 올바른 표기이며 바로 잡혀야 할 말.
◈앞뒤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따따부따 하기는 : 가타부타(혹은 왈가왈부하기는)의 잘못. ←논리적 오류. 왈가왈부하다?
[설명] ①‘가타부타[可-否-]≒왈가왈부’는 명사로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고, ‘따따부따’는 따지는 내용이 아니라 말씨/태도를 뜻하는 부사. 위의 문맥에서는 정작 ‘따따부따’ 해야 할 내용은 생략되고 태도만 드러나서 논리적으로 어울리지 않음. ②‘왈가왈부하다’?는 한 낱말. 단, ‘가타부타 하다’.
가타부타[可-否-]? 어떤 일에 대하여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함.
왈가왈부? 어떤 일에 대하여 옳거니 옳지 아니하거니 하고 말함.
따따부따? 딱딱한 말씨로 따지고 다투는 소리. 그 모양.
따따부따하다? 딱딱한 말씨로 따지고 다투입니다.
◈00비엔날레가 개막식을 시작으로 그 대단원의 막이 올랐다 : 서막의 잘못.
[설명] ‘대단원’은 어떤 일의 맨 마지막을 뜻하는 말이므로 대단원의 막은 내리는 것이지 올리는 것이 아님. 대단원의 막이 내리면 일이 끝난 것이며 시작되는 것이 아님. 시작의 의미로는 ‘서막’을 써야 함.
대단원[大團圓]? ①≒대미[大尾](어떤 일의 맨 마지막). ②연극/소설 따위에서,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끝을 내는 마지막 장면.
◈이 아이가 장차 우리 집안을 일으킬 장본인이야 : 맞음. 쓸 수 있음.
[참고]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는 관여하지 마 : 맞음.
[설명] ‘장본인(張本人)’은 ‘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 자체에 긍정/부정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중립적인 말이며, ‘당사자’와는 의미가 다름. 따라서 위와 같이 긍정의 의미로 쓸 수도 있고, 나아가 부정의 의미로도 쓸 수 있음. <예>그녀의 재기 성공의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이 모든 사달의 장본인이 바로 그 녀석이었다니까요.
당사자(當事者)? 어떤 일/사건에 직접 관계가 있거나 관계한 사람.
◈금슬(琴瑟) 좋은 부부는 금실로 엮인다 : 맞음. ‘금실’도 가능함.
[설명] ‘금슬’은 ‘금실’의 원말로 복수표준어. 그러나 관련어의 경우에는 ‘금실’로 적음. <예>‘금실지락[琴瑟▽之樂]≒금실(琴瑟)’(부부간의 사랑). 단, 거문고와 비파의 의미로는 여전히 ‘금슬’.
[유사] 초승달(o)/초생달(x); 이승/저승(o); 금승말(o)
금슬(琴瑟)? ①거문고와 비파를 아우르는 말. ②‘금실(부부간의 사랑)’의 원말.
금실(琴瑟▽)? 부부간의 사랑. [유]금실지락, 부부애, 정분.
[덤] ♣ 괴상한 한자어 애용 : 피로회복제, 희귀병
널리 쓰여 온 말 중에 ‘피로회복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 뜻을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옵니다. 왜냐고요? 회복(回復/恢復)이란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음’이라는 뜻이니까, 그걸 마시게 되면 피로가 회복되어 다시 피로해지기 때문이죠. 흔히 쓰는 ‘원상회복(原狀回復. 본디의 형편이나 상태로 돌아감. 또는 그렇게 함)’의 상태라고나 할까요. 피로를 복원(復元/復原. 원래대로 회복함)시키는 셈이죠.
피로는 ‘해소’되어야 하며, 회복되어야 할 것은 원기죠. 따라서, ‘피로회복제’란 명칭 대신에 ‘원기 회복제’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울러 ‘피로 축적’이란 말도 가끔 보이는데, 이 말도 ‘피로 누적’으로 쓰여야 적절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축적(蓄積)’은 의도적으로 모아서 쌓은 것을 뜻하고, ‘누적(累積)’은 덜 의도적인 중립적 낱말이어서 수동적으로 쌓인 상태를 뜻하기 때문이죠. 피로를 일부러 쌓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흔히 쓰이는 말 중에 ‘희귀병’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이 역시 문제적 용어랄 수 있습니다. ‘희귀하다(稀貴-)’는 ‘골동품(骨董品, 오래되었거나 희귀한 옛 물품)’이나 ‘진약(珍藥, 희귀한 약)’ 등에서 보듯, ‘드물어서 매우 진귀하다’를 뜻하는 말로 ‘귀하다, 드물다, 진기하다’와 비슷한 말이거든요. 따라서, ‘희귀병’이란 명칭은 지극히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매우 드물다는 뜻으로는 ‘희귀’ 대신 ‘희소(稀少)’가 어울리지만, ‘희소가치’ 등으로 쓰이고 있어서 ‘희소(질)병’이라는 명칭과는 의미 충돌의 우려가 있긴 합니다. 어울리는 말로는 ‘희성[稀姓. 매우 드문 성(姓)]’에서처럼 ‘희병(稀病)’이라는 말이 적합하지만, 언중의 수용에 문제가 있으므로 ‘드문 병 →드문병’ 정도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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