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남용과 외래어 오용 관련, 두 번째.
일상 언어생활에서 꼬부랑말을 애용하는 사람치고
우리말을 제대로 하는/아는 이들, 드물다.
은근히 유식을 자랑하려 들지만, 실제로는 무식을 광고하는 일.
외국어든 우리말이든 제대로 알려는(공부하려는) 노력부터 먼저 해야 한다.
자신이 사용하는 말들을 돌아보지 않는 '대충 대충파(派)'들의 삶의 안쪽을 들여다 보면
삶의 내용 역시 '대충 대충'이다.
언어는 그 사람이다. [溫草]
○ 외국어 토막말을 잘못 밝히다간 무식을 광고하는 꼴도 난다
(1) ‘TFT’와 ‘태스크 포스 팀’
어느 날 뉴스 보도를 보고 있을 때입니다. 문제화된 사건의 주무부서 사무실을 찾아가는 티브이 카메라가 문에 매달린 사무실 표지판들을 훑고 가는데 달랑 영문 표기만 되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TFT.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하지만, 그곳은 다른 곳도 아닌 정부 청사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참석한 대책 보고회의 같은 곳에서 무대 위에 세워져 있는 발표 자료를 훑는 카메라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어가 이 TFT입니다.
‘TFT’란 ‘Task Force Team(태스크 포스 팀)’의 약자 표기인데, 영문으로 적긴 했지만 정작 영어에는 이런 말이 없습니다. 대충 짐작에 의지한 무지한(?) 조어법이 탄생시킨 콩글리시*(한국식으로 잘못 발음하거나 비문법적으로 사용하는 영어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영어로는 ‘Task Force’라 해야 합니다. 무의식적인 외국어 남용(濫用. abuse. 일정한 기준/한도를 넘어서 함부로 씀) 버릇으로 인한 대표적 오용(誤用. misuse. 잘못 사용함) 사례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태스크 포스’도 아직은 외래어 지위*를 얻지 못한 외국어의 한글 표기일 뿐이긴 하지만요. ☞[참고] 이러한 콩글리시들을 모아놓은 재미있는 사전으로는 ‘가짜영어사전’(안정효, 현암사)이 있다.
[참고] ‘외국어’와 ‘외래어’, 그리고 ‘우리말’ : 이쯤 오면 앞서 읽은 부분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수도 있어서 덧댄다. ‘외국어’는 ‘다른 나라의 말’이다. 그리고, 외래어란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버스/컴퓨터/피아노와 같이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다. 즉, 뿌리는 외국어지만, 외래어로 인정되면 우리말(‘우리나라 사람의 말’)이 되어 국어(‘우리나라의 언어’)의 일부를 이룬다. 당연히 표준어로서의 지위도 누린다. 다시 말하자면, 외래어는 표준어이고 우리말이다. ‘우리말’이라는 말을 고유어만을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우리말 중에서 고유어만을 이를 때는 ‘순우리말’ 또는 ‘토박이말’이라 하고, 그 상대어는 외래어, 한자어 따위가 된다.
외국 말이 자동적으로 외래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심의를 거쳐 외래어 지위를 얻어야 한다. 외래어로 인정되려면 대체로 ‘쓰임의 조건’과 ‘동화의 조건’이라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쓰임의 조건’이란 우리말 문맥 속에서 널리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동화의 조건’은 외국어가 원래 언어에서 지니고 있던 특징(음운, 문법, 의미)을 잃어버리고 우리말의 특징을 지니게 되어야 함을 뜻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외래어 표기법에서 좀 더 상세하게 다룬다.
태스크 포스(task force)란 영문 표기 ‘force’에서도 드러나듯 본래 군대의 기동 부대나 경찰의 특수기동대와 같이 상황에 따라 재빠르게 움직이거나 대처하는 능력을 지닌 부대를 말합니다. 즉, 태스크 포스에 들어있는 ‘force’라는 말 자체가 팀/집단을 포괄하는 부대라는 뜻이지요.
그러던 것이 민간 기관에서도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기존 조직구조가 지니지 못한 신축성과 기동성을 발휘하여 창조적이며 쇄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기 위한 조직이 필요해지자, 이러한 목적으로 탄생시킨 조직 형태가 바로 이 태스크 포스입니다. 프로젝트 팀(project team)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태스크 포스’는 그 명칭만으로도 ‘팀/집단’이라는 완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거기에 ‘팀’이라는 말을 덧붙여 ‘태스크 포스 팀*’이라고 작명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무지로 인한 과잉 친절이라고 해야 합니다. 사족으로서 꼴사나운 옥상가옥(屋上架屋. 물건이나 일을 부질없이 거듭함)이 되어 그 순간 영어에서 밀려나 콩글리시에 편입되게 됩니다. 그냥 태스크 포스(Task Force)라고만 적어야 하고, 약자 표기는 TF로 족하답니다. (다행히도 외교부에 걸린 사무실 표지판에는 TF로만 표기되어 있더군요.)
이러한 ‘TFT/TF’와 같은 문제의 근저(根底/根柢. 사물의 뿌리/밑바탕이 되는 기초)에는 외국어 남용 버릇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걸핏하면 외국어를 들이대려는 버릇이 은근히 널리 번져 있는데, 특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알려는 노력을 거른 채), 우선 외국어에 기대고 보는 외국어 남용 습관이 문제입니다. 이 외국어 남용 버릇은 식자연(識者然. 학식/견식/상식이 있는 사람인 체)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심각합니다.
그런 이들의 의식에는 한글에 비해 영어는 고급언어이자 상류언어로서 신지식과 신기술, 새로운 동향을 멋지게 표현하는 언어라는 생각이 박혀 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한국어를 하류어로 끌어내리는 거지요. 정작 끌어내려야 하는 것은 잘못 부풀어 오른 그릇된 외국어 선호 의식과, 자신들은 우리말 활용 능력 정도야 기본적으로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믿는 착각인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래의 것들은 2013년에 정부 각 부처에서 배포한 보도 자료에 쓰인 말들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중앙부처의 중견 이상 간부들이 작성에 참여한 것들인데, 기가 찰 정도로 외국어를(외래어도 아닌) 사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법에 명시된 공문서의 한글 표기 원칙(한자와 외국 글자는 필요 시 괄호 안에 병기)조차도 용감하게 무시하고, 아예 영문 표기를 그냥 들이대고 있기도 합니다. 명백한 국어기본법 위반이지요. ☜[참고] 한글문화연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4월 ~ 6월간 17개 정부 부처와 국회, 대법원에서 낸 보도자료 3,068건 중 국어기본법을 위반한 사례는 8,842회로 건당 평균 2.88회. 그 만치, 현재 법규 위반 상태는 심각할 정도를 넘어 위험할 지경에 이르렀다.
- “산업융합은 우리 경제가 Fast Follower에서 First Mover로 도약할 수 있는 핵심 경제의 전략으로, 주력 산업의 성장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DNA임을 강조함” (산업자원부 2013. 5. 14.)
- “중대사건은 긴급사건과 마찬가지로 Fast Track으로 처리할 계획임” (법무부 2013. 4. 18.)
- “철도시장 특성을 감안하여 Killer Item 개발부터 시험·검증, 상용화까지 패키지 지원전략도 마련합니다.” (국토교통부 2013. 4. 7.)
-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고자 ‘어린T를 벗자’는 기부행사를 마련해” (여성가족부 2013. 5. 16.)
[덤] ♣ 페널티 킥(PK, Penalty Kick, 혹은 PK전)과 ‘승부차기’는 다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연장전까지 치르고도 무승부라서 페널티 킥으로 승부를 내는 일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그럴 때 중계를 하는 이들은 ‘승부차기’라는 말도 썼지만, ‘PK전(戰)’이라는 말도 썼습니다. 당시에 시청자들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당연히(?) ‘승부차기’와 ‘PK전(戰)’은 같은 것이라고 여겼을 듯합니다.
‘승부차기’에 대한 우리말 사전의 뜻풀이부터 보기로 하지요. ‘축구에서, 골로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일정한 횟수의 페널티 킥을 차서 승부를 내는 일’이라 풀이하고 동의어로 ‘피케이전(PK戰)’을 들고 있습니다. 즉, 이처럼 ≪표준≫에서조차 승부차기와 ‘피케이전(PK戰)’을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승부차기’와 ‘피케이전(PK戰)’은 결과로만 보자면 비슷할지 몰라도 그 뜻은 엄연히 확실하게 다른 말입니다. 영어로 ‘승부차기’는 ‘페널티 슛아웃(penalty shoot-out)’이라 하고, 그 표기는 물론 뜻도 ‘페널티 킥’과는 엄격히 구분하고 있을 정도이거든요. 알다시피 ‘페널티 킥’은 페널티 지역에서 수비진이 반칙을 했을 때 주어지는 킥이고, 승부차기에서의 킥은 반칙과 무관하잖습니까.
승부차기(penalty shoot-out)에 쓰인 shoot-out은 본래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이 쓰러질 때까지 총을 쏘는 것을 뜻합니다. 승부차기에 페널티란 말이 붙은 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 으뜸 의미는 shoot-out 방식으로 하되(즉 어느 한 쪽이 실수할 때까지 겨루되) 그 킥을 페널티 킥 방식으로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뜻은 전후반 및 연장 시간까지 줬는데도 승부를 내지 못했으니 그 벌칙으로 그처럼 피를 말리는 방식으로 겨뤄서라도 어떻게든 승부를 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승부차기’의 올바른 영문 약자 표기는 ‘PS(Penalty Shoot-out)전’이 되어야 하고, ‘PK전’*은 잘못입니다.
[참고] ‘PK전(戰)’ : ‘PK전’은 정상적인 골로 승부가 나지 않고 페널티 킥에 의해서만 점수가 벌어져 승부가 결정된 게임에 대해서는 쓸 수 있는 말이다. 즉 쌍방이 골에 의한 득점이 전혀 없었거나, 혹은 골에 의한 득점은 동점이었지만, 시합 중 페널티 킥으로 얻은 점수로 승패가 갈렸을 때도 ‘그 시합은 실력이 아니라 상대방의 실수에 의지한 PK전인 셈이었다.’라고 적을 수 있다.
* 이 글은 오는 7월 발간 예정인 졸저 <한국어 실력이 능력이다 - 업무 능력(NCS) 시대에서의 우리말의 힘>에 수록될 내용의 일부다. 출판사와의 협약에 따라, 이 글의 부분/전부의 복사/전재 및 일체의 상업적 활용을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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