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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커피와 아줌마

[내 글] 수담(穗談)

by 지구촌사람 2012. 4. 28.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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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나커피와 아줌마

 

 

  “비엔나에 가 보니 비엔나커피라는 게 없대?!”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해대는 말이다. 마치, 강촌* 사람이 벼르고 벼른 끝에 서울 다녀오고 나서 한다는 말이, “한양 땅 남대문도 별 거 아니더만. 우리 동네 김좌수네 별채보다도 작더만.........” 하면서 실망을 전파하던 것과도 비슷하다.

 

  오스트리아의 비인(Wien). 우리에겐 영어식 이름인 비엔나라는 게 더 근사한 거 같기만 해서 그렇게 더 자주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한양 땅이다. (헝가리말로는 베치-becs-라고 한다는데 내 개인적인 기호로는 비엔나보다도 더 근사한 거 같다. 베치. 마치 이쁜 아가씨 이름만 같지 않은가? ㅎㅎㅎ.)

  그 비엔나라는 이름이 주는 감칠 맛 때문인가? 암튼, 비엔나커피라는 말에다 우리들은 대체로 절반의 호기심과 3할의 선망, 그리고 20%의 주눅들을 매달아왔다. 특히나, 외방물(外邦物)이라면 무조건 경도성(傾倒性) 프리,미엄을 얹기 마련인 이 나라 식자층이거나 그들의 영향권 언저리에서 놀기 좋아하던 젊은이들일수록, 비엔나커피라면 일단 기를 죽이고 힐끔거려왔다. 거기엔 남녀의 가름이 없었고, 그런 젊은이들이 이젠 중장년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른바 맛보기 원두커피 세대들로 반짝거렸던 처녀총각들도 이제는 중장년층으로 변색되어간다.

 

                                                                *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 맞는 말이다. 우선 그곳의 커피점에서 비엔나커피를 시키면 그들이 못 알아듣는다. 그런 이름의 커피가 없기 때문이다. 독일어를 주로 사용하는 그곳에서는 그걸 ‘아인쉬패너(einspanner)’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처럼 진짜로 멋있는 휘핑크림을 얹고 멋있게 나올 정도가 되면 (게다가 계피가루를 뿌려주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웬만한 싸구려 음식 한 끼니 값과 맞먹는다. 하여, 비용을 아껴야 하는 관광객들이 보통 먹는 이른바 비엔나커피에는 그보다 훨씬 값이 싼 크림이 들어간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곳에서는 유리컵으로 된 커피잔에 크림을 넣은 블랙커피가 우리들이 비엔나커피라고 부르는 걸로 통용된다.

 

  그러니, 비엔나커피라고 우아하게 이름까지 붙여 주문했는데도 그런 싸구려 크림커피 한잔이 되고 보면 수월찮게 입맛이 쓰다. 에게? 바로 요게 그 커피야? 소리를 감추기 위해, 커피를 입에 물고 괜히 우물거린다.

  하여, 비엔나를 다녀온 사람들은 비엔나커피 소리에 이제는 널브러지지 않는다. 쓴웃음을 포함해서, 싱긋이 웃는 이들도 적지 않다.

 

                                                           *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난다. 이 나라에서 그런 대우를 받아온 비엔나커피와 <아줌마>들의 운명이 비슷하지 않나 싶은, 그런 웃기는 생각 말이다.

 

  오래 전 처음으로 비엔나커피를 앞에 둔 처녀총각들은 그 커피의 존재와 맛을 향해 호기심과 선망을 잔뜩 곧추세우고, 어떻게든 그걸 한잔이라도 시음해보기 위해 기를 썼다. 향토장학금 봉투를 흔들기도 했고, 아르바이트 월급 나오는 날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처럼 비엔나커피 한 모금 맛보기를 소원했다.

  그렇게 해서 비엔나커피를 걸고 당긴 줄에 넘어간 아가씨들. 그들은 사내들에게 정말 비엔나커피와 같은 존재였다. 도대체 여자들의 안쪽이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이냐에서부터 그 맛은 또 어떤 거냐며, 그 호기심만으로도 자지러질 듯한 사내들은 아가씨 속살을 한번 안아보기만 해도 세상을 정복한 듯이 의기양양, 득의만만했다.

 

  사내들끼리 남녀관계의 진척도(進陟度)를 톡 까놓고 물어볼 때, “그래 먹어봤냐”는 무지막지한 소리들이 예사로 나오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비엔나커피의 맛보기만큼이나 오금 저리게 선망하던 어떤 걸 실제로 음미해봤느냐는 직설법 사례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사내들의 무식한 어법을 미화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처럼 가슴 졸이게 맛보았던 아가씨가 여인으로 연모되고, 드디어 그녀의 온몸에 내 여자 도장을 콱 찍어서 집안으로 맞아들이고 나면 그게 어떻게 되더라????

 

  신혼 아내의 꽃 같던 모습이 아이들 두엇의 출산과 횟수 미상의 유산을 거치는 사이 얼굴과 뱃살이 몇 번 줄었다 늘었다 하고, 그러고 나면 어느 틈에 속살 여인의 의미가 완전히 퇴색하고 겉살 여자의 의미만 덕지덕지한 “아줌마”의 반열에 오르게 되지 않던가. 밀어내기든, 자원 퇴출이든.

  그런 <아줌마> 남편에게 비엔나커피를 사달라고 해보라. 아내가 아직도 비엔나커피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낼 <남푠>의 숫자도 미심쩍지만, 설사 그게 긍정적인 쪽이라 하더라도 어떤 이는 “아. 그거 이름만 근사할 뿐 맛은 그지 같은 거야. 값도 비싸기만 하고 말이야. 그런 걸 뭐 하러 먹어. 그냥 우리 먹던 커피나 마시자” 하면서, 비용과 실속 모두를 끌어대어 아내의 의도를 초전박살 내려들지도 모르겠다. 혹은 아예 그런 요청 자체가 귀찮아서 그런 대답으로 뭉개려 들지도 모르고.

 

  그런 남자들에게 아내가 그거 대신 다른 커피, 예컨대 중년들에게 어울리는 아이리쉬커피 같은 걸 주워섬겨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왜냐. 무슨 아줌마가 그런 고상한 커피를 찾느냐, 아직도 그대는 이십 대 아가씨 시절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느냐, 주제 파악 좀 해라......... 어쩌고 하는 숨겨진 야유가 잘난 남자들의 곰팡내 나는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시금털털한 의식 속에서 아줌마에 확실하게 편성된 아내는 이미 여자도, 여인도 아니다.

 

                                                               *

  비엔나커피와 아줌마 팔자. 어쩌면 말도 안 되는 비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은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기왕지사 버린 몸 아줌마 팔자로 몰리거나 그리 될 게 뻔하다면, 이제는 자신의 남자에게서 아줌마로 몰리기 전에 그 비엔나커피 앞에서 망설이거나 서성이는 것으로 청춘을 허송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남편으로 대표되는 가족을 위해 그 비싼 커피값 한잔 아끼려고 창밖에서 힐끔거리기만 하던 비엔나커피. 이제는 그걸 먹고 싶거나 먹을 수 있을 때는, 우선 먹고 보자는 거다. 바로 그거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그까짓 비엔나커피라고 해봤자 먹고 보니 별 거 아니라는 걸 남편들이 알아채기 전에, 아줌마로 몰리기 전에, 여인들도 <체험,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보는 거다. 그러고 나서, 그걸 사달라고 했을 때 남편 입에서 비엔나커피 맛이 어떻고 소리가 나오거든 이렇게 말하자. 아주 다부지고 단호한 어조로 말이다.

  "됐슈. 나두 먹어봤슈. 무슨 소리가 어떻게 나오나 싶어서 한번 해봤슈. 뻔한 소리겠지만 혹시나 싶어서요......... 에구 내가 그 놈의 ‘혹시나’ 땜시 여태껏 요 모양 요 꼴로 살아오긴 했지만두.........“

 

  그날 그대의 남편은 속으로 엄청 찔끔할 거다. 그리고는 기대 이상의 접대로 그대의 겉토라짐을 서둘러 다독이려 들지도 모를 일이고...... 그대 역시 그 뻔한 뒷마무리를 이미 다 셈해본 터. 마지못해 그런 제안을 접수한다는 듯이 그대의 남자를 앞세우시라. 그게 그나마 비엔나커피의 앞뒤좌우를 이미 꿰뚫고 지나온 우리들의 옆걸음질 쉼터가 아니겠는가?

  황소 뒷걸음질에 쥐라도 잡히면 그것 역시 중년의 나이엔 쏠쏠한 재미다. 그렇지 아니한가. 하하하. [Nov. 2004]

 

[주] 강촌 : 흔히 일컫는 ‘깡소주’의 올바른 표기가 ‘강소주’인 것처럼, 이 ‘강촌’의 ‘촌’ 앞에 붙은 ‘강’-도 접두어다. ‘깡촌’으로 발음하는 것의 올바른 표기법이 ‘강촌’이다. 특정 지역명인 ‘강촌(江村)’을 거론하는 것으로 오해할까봐 덧붙인다.

 

  *  내가 커피를 엄청 좋아하는 걸 아는 어느 분이 커피 머신을 대하자, 기특하게도(!)

     내 생각이 나더라는 말을 해왔다. 내가 커피 관련 잡문을 몇 편 썼는데, 그걸

     기억하시는 분. 특히 '커피 앞에서 알몸 되기'라는 제목의 글이 생각난다면서...

     그걸 찾으러 글 창고에 들어갔는데, 이 글이 먼저 눈에 띄였다.

     제목부터 소개한 글은 다음에 올리고자 한다. 좀 긴 편이라서...    [Ap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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