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숟가락과 혀는 똑같이 입안을 드나들어도 맛을 아는 건 혀뿐이다

유치원으로 간 꼰대의 돌직구

by 지구촌사람 2016. 3. 12. 06:46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숟가락과 혀는 똑같이 입안을 드나들어도 맛을 아는 건 혀뿐이다

(Among the spoon and tongue which frequently come in

and out of mouth, it is tongue only that gets a taste for food) 

  -엉터리 출판꾼에게 

 

얼마 전 출판업자 하나를 만났다.

반가운 지인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불쑥 나타난 합석자로.

 

이야기 중,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저자로 접촉한 교수가 3000명이 넘는데

죄다 도둑놈들이라고 열을 냈다. 게거품을 물었다.

자기 것만 챙기고, 돈 돈 한다면서.

 

그런 그에게 그렇지 않은 교수들이 수도 없이 많다고 대꾸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접지 않았다. 끝까지.

그러다가 설전으로 이어졌고, 끝막음은 아주 더럽게 끝났다.

 

돌아와 명함 속의 출판사를 검색해 봤다.

돈이 될 만한 것들, 실용서와 수험서에 주로 매달려 온 소형 출판사.

명저 한 권 없었다. 20년 동안이나 출판을 했다면서.

돈 돈 돈 소리를 할 만했다.

교수들에게가 아니라 그 자신에게 해오던 말을 꺼내든 것이었다.

 

키 작은 나무에게는 낮은 세상만 보인다.

굽은 나무에게는 세상이 굽어 보인다.

 

                                 *

존경하는 출판업자 중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J 회장님이 있다.

해방 후 군수 자리까지도 나갈 수 있었음에도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일제 관료 생활도 그런데

미 군정청 관료까지 하려느냐'는 부친의 만류로, 출판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회사임에도 그는 부사장이 되어 편집 등의 실무를 맡았다.

 

그분의 공적은 이루 다 말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고본을 만들었고, 일제하 육법전서의 이름을 법전으로 바꿨다.

그 법전은 그분이 돋보기안경을 쓰고 직접 한 자 한 자 편집/교정/교열을 해서

탄생한 것들. 지금도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분이 펴낸 책들 중에는 명저 반열에 오른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동업자끼리 모인 출판인협회에서 큰 출판인상을 줄 정도로.

 

그분은 출판사가 잘 나가던 시절임에도

일찍이 자식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법전 편찬 실무를 맡아 했다.

돌아가신 뒤에는 평소 유언대로, 벽제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가 되고

그 재는 강화도 앞바다에 뿌려졌다.

좁은 땅덩이 위에 자신의 묘지 하나도 낭비라던 분이었다.

(10여 년 전 작성한 나의 유언에, 수의 입히지 않기와 화장하기를 적어 넣은 것은

이분의 영향도 크다.)

 

그분이 생전에 들려주신 말씀 중의 하나가 생각난다.

출판쟁이들은 복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좋은 책을 내다 보면 그걸 죄다 읽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현인(賢人)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출판쟁이들은 저절로 죄다 한가락 하는 철학가들이 되게 된다면서.

 

지금은 그분이 계시지 않은 그 출판사는 15년 전 개축을 하면서

사옥 이름을 세상으로 열린 집으로 했다.

부친의 뜻을 잇고 살리기 위해서

연건평 300평도 안 되는 3층짜리 집의 1층을 북카페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북카페일 게다.

 

50년대에 서울로 올라온 그분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크고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음에도

내내 3층짜리 건물에 머물렀다.

대신 법학교수들의 저작상을 만들고 재산을 쾌척했다.

 

0냄새가 날 정도로 더러운 아주 뭣 같은 출판꾼 하나와의 조우 덕분에

멋진 분 생각을 떠올리는 복을 누린다.

그런 친구에게 보답(?)을 하지 않을 수 있나.

무엇으로 선물할까 하다가 아래의 말을 지었다.

  -숟가락과 혀는 똑같이 입안을 드나들어도 그중 맛을 아는 건 혀뿐이다.

 

홀수는 외로우니, 짝을 채워줘야지.

아래 글귀는 법구경의 말이다.

  -사람의 오점(汚點) 중에 가장 큰 오점은 진리에 대한 무지다.

                                                                                               [Mar. 2016]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