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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울리는 한자 녀석

[내 글] 고시랑 구시렁

by 지구촌사람 2012. 6. 7.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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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기고 울리는 한자 녀석


                                                                                      최  종  희


  회사에서 입사 지원서를 훑어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는 녀석이었다. 부모 형제를 소개하는 칸에 쓰인 한자가 가관이었다. 부모까지는 제대로였는데, 매(妹)와 제(弟)에서는 각각 '每, 第'라 되어 있는 게 아닌가. 

  나이 37세. 최종 학력은 영국의 모 대학 박사과정 1년 수료. 그런 녀석의 작품이 그랬다. 차라리 자신이 없으면 여동생, 남동생이라고 적든가 하지...... 직원들과 함께 웃다가 씁쓸해졌다. 남의 일만도 아니어서다. (그런 녀석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 더욱 가관이다. 이태백이 양산되는 이유가 여러 가지겠지만, 정말 젊은 녀석들 글쓰기 하나만 두고 봐도 문제들 많다. 오죽 하면 자기소개서 대필업까지 생겨나고 있을까.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연구 과제다.)


  군대까지 마친 두 아들과 함께 동사무소에 갔을 때다. 회사와 시 험준비 때문에 주민등록을 달리 하고 있는 녀석들이 무슨 신고서엔가 직접 제 이름들을 한자로 써넣어야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니 가관이었다.

  두 녀석 다 제 이름 한자들을 그리다시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조각 맞추기를 한다고 하는 게 더 맞을 정도로, 획순이나 모양이 모두 엉망이었다. 글자를 쓰는 게 아니라 무슨 암호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웃음이 나왔다. 기가  막혔지만 어떡하랴. 그 또한 어찌 보면 내 탓인 것을.


  녀석들은 어린 시절 태권도 학원에 몇 달 보내달라고 조른 것과, 중학생 시절 방학 때 수학 단과 하나만 시켜 달라고 읍소하다시피 해서 학원 맛을 보여준 게 우리 집 사교육의 전부다.

  하기야 큰놈이 중3이던 때까지만 들춰봤던 게 녀석들의 마지막 통지표이긴 하다. 처음에는 그 통지표란 걸 보기만 하면 하도 신경질이 나서 자식들 욕을 해댈 것만 같아서 안 보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그럴 듯한 핑계까지 붙이고 배짱까지 부렸다.

  그래. 공부도 팔자다. 늬들이 공부 안 하면 늬들 손해지. 어디 내 손해냐.  


  그런데도 녀석들은 그런 무심한 아비의 방관적 교육 방식에 큰 피해를 보진 않았다. 스스로 안 하면 자기들 손해라는 걸 실물로 확인하게 되면서다.

  (하기야, 그런 게 공부만은 아니었다. 녀석들이 아침에 제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시험 날에도 해가 중천에 뜨도록 깨우지 않았다. 시험보다도 더 중요한 건 제 스스로 일어날 줄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일이므로. 까짓 시험이야 다시 보면 되는 일이고, 하루 시험 망쳤다고 인생이 어찌 되는 건 아니잖는가. 그리고 시험을 망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못된 아비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도 나는 두  눈 질끈 감고 그렇게 했다.

  ㅎㅎ흐. 그 뒤로?  우리 집에서는 그 전날 특별히 부탁하지 않으면 누구를 깨우거나 깨워주는 일은 아예 없다. 지각을 하든, 비행기를 놓치든... )


                                 *

  얼른 제 집 마련을 해야겠다며 회사 근처에 방을 얻어 지내며 독립 세대주를 부르짖는 큰놈에게서 불시에, 그것도 대낮에 전화가 올 때가 있다. 안부 전화가 아니다.  

  아빠. 저 이거 뭐라고 표현해야 좋나요? 이런 이런 것들이 나왔는데, 다 제대로 딱 들어맞는 게 아닌 거 같아서요. 세 글자 이내로요.


  녀석이 원하는 건 적확한 표현이다. 어떤 상황을 축약하거나 요약할 수 있는 어떤 말이 필요한데 그게 잘 떠오르지 않거나, 제시된 낱말들이 제가 보기에도 그게 아닌 듯할 때, 내게 SOS를 친다. 전지전능도 아닌 내게.

  하지만, 지금까지 아들의 그러한 부탁은 대체로 무난히 해결되어 왔다. 아들의 부탁은 굳은 아비 머리도 잘 돌아가게 한다.


  그럴 때 문제의 요체는 대체로 어휘력으로 귀착된다. 순수한 우리말로 대체하지 못해서 고민할 때도 적지 않지만, 그보다는 한자어의 활용이 문제될 때가 많다. 웬만큼 한자어를 통용시킬 능력이 있으면 쉽게 압축될 수 있거나 딱 들어맞게 변용시켜 쓸 수 있음에도, 그걸 찾지 못해서 우리 아들은 애를 먹는다.

  아들의 어휘력 부족은 한자 실력의 부족과 직결되어 있다. 시간이 되면 거의 빼놓지 않고 보는 골든벨인가 하는 고교생 퀴즈 프로그램에서, 한자 문제만 나오면 아이들이 기겁을 해대면서 벌렁 나자빠지곤 하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 아들 세대에는 지금처럼 한자를 부수 과목으로 부추기는 일이 전혀 없었다. 무지몽매해서 무지막지했던 한글 전용 주창자들의 온전한 희생물이 되었던 불쌍한 세대가 우리 아들 세대, 곧 30대 전후 세대인 듯하다.


  한자 얘기만 나오면 헷갈려 하는 분들이 있다. 곧 한글 전용과의 충돌 문제다. 어떤 이들은 한자어 자체를 공박하다 못해, 핍박까지 해댄다. 그러나 한자어도 우리말이다. 한글 전용과 한자어 사용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여기는 그런 전문적 논란을 다룰 자리가 아니어서 그 문제를 건너뛰자면, 우리말의 6할 이상이 한자어다. 한자에 뿌리를 두고 만들어진 말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어휘를 담고 있다는 큰 사전들일수록 그 비율은 높아진다.


  때문에 한자 지식의 결여는 곧장 어휘력 부족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곧 사고의 결핍 내지는 부자유로 이어진다. 생각의 확장과 축약이 자유롭지 못하다. 언어가 사고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 그대로다.

  하기야, 어휘는 달리 개발해서 쓸 수도 있다. 사고의 수단이므로. 언젠가 정통부에서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각각 '굳은 모'와 '무른 모'로 용어를 만든 일이 있고, 오래전 비행기를 '날틀'로 부른 분도 계시니까.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런 말들을  생각해내기 전 각각 쓸 '모'가 있다든지, '틀'이 꼴과 기능을 두루  갖춘 말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생각해낸 뒤다. 그런 말들의 의미를  모르고서는 그런 용어를 생각해 내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어떠한  형태로든 구체적인 언어의 지식이 없고서는 체계적인 사고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

  한자어 얘기가 좀 다른 데로 빠졌다. 한자어 문화권으로 돌아가자. (한자문화권이란 한자로 문장을 쓰는 한문 문화권 얘기가 아니다. 자신들의 언어에 한자어가 주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화권을 뜻한다.) 드러내어 한자를 쓰고 있는 나라는 알다시피 중국, 한국, 일본 세 나라다. (물론 그 발음이나 표기에서는 부분적으로 다른 면들을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표기 수단에서 드러내어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나라들에서는 어떨까.   


  홍콩이나 중국에 가면 아직도 관광객을 위해 사람이 끄는 수레가 있다. 과거 우리의 인력거와 비슷하지만 요새는 수레 앞에 자전거 페달을 매달아 발로 그걸 돌려서 몰고 다니거나 어떤 건 오토바이 엔진까지 달아놓은 것도 있다.

  사람의 힘으로만 가니까 과거에 우리는 그걸  인력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릭샤' 또는 '릭쇼'라고들 한다. 인력거(人力車)의 준말인 역차(力車, 릭샤)에서 온 말이니, 한자어의 뿌리는 같다. 발음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호칭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거쳐 방글라데시에서도 쓰인다. 조금씩 발음에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자기네들의 언어 표기에 한자어를 전혀 쓰지 않는 나라들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베트남 호치민에 가면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들이 있다. 수도의 간선도로다. 그 도로의 이름 앞에는 모두 '따이로'라는 말이 붙는다. '따이(大)+로(路)'로 구성된 말로, 우리나라에서 영동대로라든가 하는 곳에 붙여진 '대로(大路, boulevard')와 같은 의미다.

  호치민에서 동북쪽 방향으로 조금 가면 '롱하이'라는 조그만 바닷가가 나온다. 깨끗한 백사장을 갖추고 있는 곳인데, 우리나라 이동 외과병원이 활약했던 붕타우 쪽이다. 그곳에 갔을 때, 혹시 그 지명의 의미가 '용해(龍海'), 곧 sea of dragon이 아니냐고 묻자 현지인이 놀란다. 베트남 말을 알고 있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용해(龍海)'의 중국어 발음(롱하이)을 떠올리며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을 뿐이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중국의 한자 문화권에 속했다. 때문에 베트남어의 상당수는 한자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걸 표기하기 위한 문자를 만든 이가 프랑스 신부이다 보니 알파벳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베트남 말의 진피라고 할 수 있는 표의(表意)성을 상실한 채 말소리만 표기되는 일이 그 뒤로 그렇게 해서 벌어졌다. (이러한 현상이 오래 지속되고 나면 인문학의 퇴보로 이어질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호치민 시내를 벗어나 동나이성 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길가에 묘지들이 보이는데 그 앞에는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차를 세우고 살펴보니 비석의 글씨는 모두 한자였다. 통역에게 그 비석에 써진 글자들의 의미를 물으니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내가 그 의미를 말해주자 그가 되레 통역비를 내야겠다고 농담해왔다.

  호치민 시내에는 몇 개의 절이 남아 있고, 그 입구에는 절 이름을 담은 낡은 현판들이 있다. 당연히 한자로 적혀 있다. 함께 있던 통역은 그 절 이름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그러던 터라 비석 앞에서 내가 그에게 부리게 된 객기이기도 했다.

 

 

 

<호치민 시내에 있는 절 중의 하나인 海國寺. 옥황전이라는 한자가 선명하지만 저 의

미를 제대로 해득해 내는 베트남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 글자라서다.> 

 

  (이처럼 한자어와 관련된 사례가 나 같은 베트남어 비전공자 눈에도 띄는 일들은 부지기수다. 하노이의 대표적 명소 중의 하나로 'Hoan Kiem'이라는 호수가 있다. 왕이 된 장군이 용에게 보검을 돌려주었다는 곳인데, 가만히 발음해보면 '환검(還劍)'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호치민의 대표적 민간기업 1호라고 할 수 있는 'Huy Hoang(휘황)'회사는 발음이나 뜻 모두가 한자어 우리말인 '휘황(輝煌)'과 똑같다.)  


                                              *

  요컨대 한글 전용이라고 해서 한자어를 무조건 짓밟아서는 안 된다. (한자어를 한글로만 쓰든, 한자를 병용하든 간에). 한자 공부도 마찬 가지다.

  아이들 유학 바람이 한창 불 때, 그 대열에 제 아이도 끼워 넣으려는 후배가 있었다. 나야 코웃음 칠 일이지만 그 극성 앞에 맞설 수 없는 터라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어왔을 때, 녀석을 내보내기 전 몇 달 정도 한자공부를 시키라고 했다. 영어 학원에 보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고교 진학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그녀의 아이는 요즘 싱글벙글이다. 영어 연수도 무난히 통과했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본어 과목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서다. 담당 선생이 한자를 예쁘게 쓰는 걸 녀석에게 배운다나 하면서.

  한국어 실력이 있어야 외국어도 제대로 배우고, 빨리 배운다. 전혀 뿌리가 다른 영어만 해도 어근의 대부분은 우리 식의 한자 체계와 비슷하다. 예컨대, phil- 이면 '애(愛)'로 압축되니 philosophy는 공부 좋아하기가 되어 철학이 되고  philharmonic은 소리의 조화를 좋아하니 교향악이 되는 식이다. 더 늘어놓자면 한이 없겠지만.


  위에서, 우리말의 6할 이상이 한자어라고 했다. 그리고 한자는 표의문자다. 한자를 모르고서는 우리말 한자어 활용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한자 공부를 해야 한다. 알고 나서 그걸 한글로만 적든, 알아보기 힘들 경우에 한자로 병용하든 간에 말이다.

  앞서 베트남 얘기를 했다. 그들이 한자어에서 온 말뜻을 외국인인 나보다도 더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문자가 표음문자여서다. 뜻과 무관하게 소리만 적어서 옮기는 그런 언어생활에 익숙해져  있어서. 알다시피 언어는 소리와 표기 두 가지의 결합이고, 온존(溫存)한 언어생활은 그 두 가지 모두 온전(穩全)해야 한다. 글을 모르고 소리로만 뜻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언어생활이 한계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글 전용과 관련해서 한자어까지 배척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니, 엄청 많다. 심지어 조동일 교수 같은 분은 한자 공부 대신 한문 교육을 부활하거나 강화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고 있다. 참, 이상한 분이다. 프랑스7대학을 포함해서 일본 동경대, 중국 산동대 등에서 직접 가르쳐보기도 하신 분께서, 그런 말을 하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처럼, 한자와 한문을  혼동하는 분들이 일반인은 물론 식자층에도 적지 않다. 답답한 일이다.

  한자 공부는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이다. 즉, 우리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빨리 응용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으로 우리말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기 위하여, 표음문자에다 표의문자를 보태는 가상한 일이다.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렇게 한자 공부를 해서 한자로 쓰인 문장, 곧  한문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런 금상첨화는 없겠지만.


  한자어와 한문의 문제는 구분되어야 한다. 이 글은 한문강화(漢文講話)가 아니므로 쉬운 예를 한 가지만 들고 가자. 

  '산에 꽃이 있다'를 한문으로 표기하면 두 가지가 된다. 곧, '山有花'와 '花在山'이다. '有' 자에서는 주어인 '꽃(花)'이 뒤에 오고 (도치), '在' 자에서는 앞에 온다. 그게 한문이다. 한문은  한자를 사용해서 한문의 어법에 맞게 쓴 문장을 말한다. 그러니, 한문이 쉽지 않다. 그러나, 한자 지식을 조금만  가지고 있으면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안다. 정확한 해석이나 어법상의 해설은 할 수 없다손 쳐도. 그리고 그런 건 기본 한자 공부만으로도 너끈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한자 공부가 중요한  것인가, 아님 그  한문 공부가 중요한 것인가?

  

                                                    *             

  내가 글쓰기를 목적으로 우리말 공부를 좀 해보려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한결같이 권해온 저자들이 있다. 바로, 피천득, 이희승, 이어령, 정진홍, 김태길, 김화영, 유홍준, 그리고 김진애와 한젬마가 그들이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두 이 나라의 글쓰기 분야에서  또렷한 족적을 남겼거나 남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전공 분야와 관계없이 특히 권하고 싶은 건 김화영 교수와 유홍준 관장의 글이고, 인문학 분야에서는 이어령, 정진홍, 김태길 교수를 권하고 싶다. 미안하지만, 이 나라 작가 중에는 거의 없다. 굳이 뽑으라면 이문열, 박상륭, 최영희, 박완서와 이윤기의 번역서 정도가 있을까.)


  그리고 시간이 있으면,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구의 '관촌수필', 박경리의 '토지', 최영희의 '혼불', 조정래의 '한강', 김주영의 '난장'을 읽으며 어학사전 하나를 꾸며보는 일은 문화사적인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 나라에는 아직도 작가들이 믿고 의지할 만한 작가용 국어사전 하나 없기 때문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순위가 부끄러울 정도로 '무지 후진' 것  중의 하나가 이 나라 사전 분야이기도 하다.


  (다른 얘기지만, 이  글을 읽으며  여러분이 가진 사전을  빼들고 '엉치뼈'라는 단어를 한번 찾아보라. '엉치등뼈'라는 말로라도 나와 있으면 그건 괜찮은 사전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아주 흔히 쓰이는 말인데도, 웬만해서는 우리말 사전에 나와 있지 않다. 요추, 척추, 골반, 미추골 등과 같은 것들은 죄다 이 엉치(등)뼈와 연결되고 있는 뼈들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죄다 한자어들이다. '엉치(등)뼈' 한 가지만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런데도 그걸 실어놓은 사전은 귀한 편이다.

  그리고 내친 김에 '강턱'이라는 말도 찾아보라.  나와 있는 건, 내가 알기로 어느 개인이 부분적으로 편찬한 사전 외에는 없다. 이 나라에서 제일 큰 사전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게 한강의 고수부지 대신 쓰이기 시작한 한강 둔치라는 말보다 더 정확한 우리말이다. 한강 둔치는 물이 불어나면 잠기는 강턱이기  때문이다. 둔치는 물에 잠기지 않는 곳으로 고정된 땅에 붙이는 이름이다.)


  위에서 내가 좋은 글의 예로 든 분들의 저서를 오래 대해온 분들은 대뜸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 그분들 대부분이 한자어를 참으로 요긴하게 쓴 분들 아니냐고? 부분적으로는 맞는 얘기다.

  적확한 요약과 축약의 대표적 인물인 이어령 교수가 그렇고, '사랑의 이름으로 저주를 하고 (사랑을 외친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 간다며), 자비의 이름으로 경멸을 한다'며 이 나라 종교 현실을 적확하게 꼬집어낸 정진홍 교수 같은 분들이 그렇다. 간결 정확한 어법의 대가인  김태길 교수도 비교적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는 분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말의 묘미와 품격을 단숨에 여러 단계 높였다고 칭송되기도 하는 김화영 교수. 그리고 박완서와 같은 저명 작가조차도 그를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고백하게 한 유홍준 교수의 글들은 한자어와 순수한 토박이말들이 신기하리만치 멋지게 동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진짜배기 우리말의 모습이다. 한글로 쓰여졌으되, 한자어와 토박이말을 가르지 않고 껴안은 그 모습 말이다.


  그토록 자유롭고 멋지게 한자어를 구사하려면 한자 지식이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자 공부가 필요하다. 실제의 글에서 그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한글로만 쓰든 어쨌든.

  그런데 그걸 한문으로 써보자. 그처럼 아름다운 한문을 써낼 재간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되겠으며, 또 그렇게 할 수나 있겠는가? 함축은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교착어의 특징이기도 한 온갖 조사의 활용이 무시되고 있는 한문에서는.


                                                   *

  나는 중국어 공부를 겨우 한 달 했다. 그것도 회사에서 다급한 용도로. 하지만, 중국 현지에서의 공용 업무 대부분이 영어로 이뤄지기 때문에 불편함은 없었다.

  그리고 영어가 소통되지 않는 뜻하지 않은 개인적인 상황에서도 크게 낙담하지 않았던 것은 중국어의 상당수가 일본어 발음과 비슷한 것도 덕을 봤다. 중국어로 '띠엥화'인 전화(電話)를 일본어의 '뎅와'로 발음해서 소통할 정도였으니, 어떻게 보자면 엉터리에 가까운 잡종 중국어이긴 하지만 그래도 요긴하게 써먹었다. 한자 문화권의 덕을 본 것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내  분야와 관련해서 중국에서 발간되는 온갖 서적들이 우리나라보다도 더욱 풍부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는 필요한 자료들을 한 짐씩 사들고 오곤 했다. 호텔 방에서 읽기도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참고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사이에 비행기 안에서 나눠주는 중국어 신문을 받아들고  그것들을 꼼꼼하게 챙겨서 읽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중국어 공부를 겨우 한 달 정도 한 사람에게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가능한 일이다. 한자어 지식이 조금 있고, 중국어의 약자체 글자에 익숙해지면 그 뜻의 절반 이상은 이해할 수가 있다. 정말이다. 그 또한 한자 문화권의 덕분이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용기를 내어 한번 도전들 해보시기 바란다. 골 때리는 한자들의 나열이라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전체를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좀 장황한 감이 있지만 여러분의 공감을 위해 아래에 어떤 회사의 중국어 홈페이지 일부분을 예로 들어보겠다.      


      鞍山鋼鐵集團公司我國特大型國有企業, 座落遼寧省鞍山市, 

      東千山山脈, 西遼河平原, 氣候人 [...] 鞍山地區有得天獨 

      厚的自然資源. 鐵鑛石資源豊富, 現已採明鐵鑛石量93?旽,  約 

      全國儲量的四分之一 [...] 遼寧省內的煤炭和油田 爲鞍鋼提供 

      充足的能源. [...] 1995年以來, 鞍鋼?落實黨中央, 國務院的  

      要求,  以建立現代企業制度爲方向. 不斷深化企業改革,  不斷  

      公有制多種實現形式...


나의 엉터리 중국어 실력으로 번역을 해보자면 이런 뜻이 되지 싶다.


    ...안산강철그룹회사는 우리나라의  초대형 국유기업이다. 멀찍  

     이 요녕성 안산시에 위치하여, 동으로는 천산산맥을 끼고 서쪽 

     으로는 요하평원에 잇대어 있으며 기후는 사람들이 살기에 좋 

     다. 안산지역은 하늘이 특별히  베풀어준 자연자원이 있다. 철 

     광석자원이 풍부한 것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으로도 매장 

     량이 93억 톤으로 전국 매장량의 4분의 1정도가  된다. 요녕성 

     에서 나오는 유연탄과 유전은 안산철강을 위해서 에너지원으로

     충분한 몫을 해냈다. 1995 년 이래 안산철강은 현대적 기업제도

     와 방향을 세워나감으로써 당 중앙과 국무원의 요구를 충실히

     관철하였는 바, 쉬지  않고 기업개혁을  심화시켰고, 공유제를 

     실현해내는 갖가지 방식을 끊임없이 모색하였다...


  물론 이미 말한 것처럼 위의 중국어문을 100% 정확하게 번역해낼 재간이 내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회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의 대강 의미는 그냥저냥 짚어내는 편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중국어를 전공한 사람도, 그걸 따로 열심히 공부한 사람도 아니다. 한문이라면 '논어' 한 권을 제대로 '주자집주'를 참고하면서 읽은 정도다. 그런 정도의 지극히 기초적인 한문 지식, 곧 주어와 동사를 (위에서 진하게 표시한 것이 술어부분들...) 구분하는 정도의 실력과 한자지식, 그리고 약어체 중국어 문자를 어렵게 않게 읽어내는 정도의 기본 실력뿐이다. 이 나라의 식자층 대부분과 비슷하다. 그런데도 현대 중국어 문장의 어림짐작에 큰 불편이 없다.

  (위의 한자들 중 90% 이상은  중국어 약어체 문자로 바뀌어 쓰이고 있어서 공부를 조금 해야 하지만, 그것 역시 어느 정도의 한자 지식이 있으면 쉽게 저절로 된다.)


                                          *

  한자 문제. 그건 엄청 중요한 문제다. 그 표의문자에 의지해서 이뤄진 한자어를 우리말에서 소거하면 우리말은 거의 반쪽이 된다. 그리고 그 순수한 토박이말의 껴안기와 보듬기, 그리고 퍼뜨리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그런 한자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알맹이를 맛보기 위해서는 한자 공부가 필수다. 한자 교육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화되어야 한다. 제 이름 한자를 그리는 일이 없도록.


  그것이 한자 문화권에서 더욱 쉽고 편리하게, 그리고 이해의 폭을 넓히며 살아갈 수 있게도 한다. 전 세계가 문화 공영권에 들고 있는 지금, 영어만으로는 모자란다. 더구나 영어는 갈수록 제2외국어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 공용어로 자리잡을 추세다.

  그리고 한자 문화권의 종주국인 중국의 기세가 욱일승천이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의 숫자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경제적으로만 보자면 동남아권  전체가 그 안에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자를 알아두면 사고의 폭 확대가 쉽다. 문화의 장벽도 낮아진다. 불어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이태리 어 신문을 어렵지 않게 보는 것처럼, 웬만한 한자 지식이 있으면 중국어 표기 문서를 읽어낼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리고 한자 문화권의 문화들을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나라 밖 활동에서뿐만 아니라, 나라 안에서도 크게 도움이 된다. 인터넷 하나로 일본 재무성 게시판에서 여직원의 시시콜콜한 일상사까지 읽어낼 수 있는 세상 아닌가.


  한자 공부. 그것은 단순한  지식의 확대가 아니다. 의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고 그것은 곧 살이의 확대와 공유로 이어져 베풀기와 도움받기가 되기도 한다. 모르고서는 행할 수 없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 문화와 문화 사이에서도 똑같이 겪는 일이다.

  한자 공부 역시 크게 보면 서로 다른 문화 속의 사람 껴안기에 도움이 되는 아주 유익한 일이다. 제대로 된 꼴에 깊이를 더하려는 보람된 짓이다. 한자 공부를 크게 북돋아야 될 진정한 까닭이다.     [Dec. 2003]



 

* 위와 관련,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해야 할 현직 국어교육과장이 일갈해댄 글을 최근 대했다.

  참으로 후련한 글이면서, 여럿이 나누어야 마땅할 글이기에, 다시 한 번 그 부분만 전재한다.

  원문 그대로이다. 즉, 한글과 한자 병기 형태가 아니라, 한자를 그대로 써댔다. 그만큼 글쓴 이가

  뿔이(!) 나 있었다는 말도 된다. ㅎㅎㅎ.

 

                                           온고(溫故)와 냉고(冷故)

                                                                     민현식 (서울사대 국어교육과 학과장)

[전략]

    英語 구사도 못하고 여권 만들어 외국 나간 적이 없어도 자력으로 이론을 세우고 노벨상 받게 된

 일본 학자의 匠人精神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國語敎育조차 서구 수입 학문에 의존한다. 국학 고전을 모르니 溫故而知新이 안 되어

자체이론이 나오지 않고 수입 학문에 안주한다. 植民史觀을 비판하지만 植民言語觀, 植民言語敎育觀도

문제이다.

   溫故而知新은 國學 古典 교육의 강화와 漢字 漢文 敎育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글 전용을 하더라도

한자 한문 교육은 해야 하고 그리 할 수 있는데 한글 전용만 하고, 한자.한문교육은 선택과로 전락한

漢文科에 미루어 국어교육에서 퇴출시켰다. 현재 초등 교장 재량으로 이루어지는 한자 재량 학습을

하는 학생은 60%가 안 된다. 40%는 한자 구경도 못하고 중학교에 온다. 이런 아이들에게 각종 漢字

槪念語들은 暗號에 불과하다. 암호를 제시하고 국어, 역사, 과학, 사회 교육을 하니 學習 不振과 言語

混亂이 극심하다. 국어과에서 한자를 도구로 활용한 어휘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글 文盲은 최저라지만 漢字 文盲은 동아시아 최고이다. 일본의 노벨상 배출은 한자의 개념화 능력을

최대로 활용하여 서구 과학을 한자어로 압축, 수용, 재창조한 결과이다.

  우리가  한자.한문교육을 국어교육 안에서 퇴출시키고 溫故는커녕 冷故만 한다면 우리는 冷故而自滅할

수밖에 없다.  [후략]

                          

* [참고] 조동일 교수는 불문학사 출신으로 다시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어문학을 전공한 특이한 분이다.

             현재 66권의 단독 저서가 있을 정로로, 정력적이신 학자. 우리나라 문학은 물론, 구비문학,

             언어문학교육 등, 다방면에서 빛나는 업적을 쌓은 분인데, 망발에 가까운 얘기를 했기에

             실명을 언급했다. 현재 계명대 석좌교수.

 

             학위심사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석 중, 장덕순 교수(서울대 국문과)가 입장하자 모두들 일어섰는데

             그만 일어서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나는 그의 제자가 아니므로... 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서울대 불문과-국문과 양과 출신인데, 오랜 동안 본교 교수를 하지 못하고 외지로 돌다가,

              말년에 약 4년 정도 모교의 부교수-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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