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대한국민, 그리고 축구와 야구

[내 글] 고시랑 구시렁

by 지구촌사람 2016. 5. 21. 04:55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대한국민, 그리고 축구와 야구

 

좋아하는 스포츠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단순히 구분하자면, 크게 축구파와 야구파가 있다.

 

축구는 운동장(국제 규격 105m x 68)과 골대, 그리고 공 하나만 있으면 된다. 주어진 시간 내내 모든 선수가 다 같이 뛴다. 골키퍼조차도 골대 근처에서 계속 움직인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판들까지도 내내 뛰거나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축구파는 행동파로서 강건하고 근육질이며 뚝심이 있다. 대체로 단색을 좋아하고 단합심과 의리를 내세운다. 뛰면서 몸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선수들의 기록도 단순하다. 어시스트나 골의 두 가지다.

 

야구는 모든 면에서 축구와 다르다. 운동장 크기는 최소 규격만 있고 최대 제한은 없다. 좌우 펜스는 홈플레이트로부터 91(98)m 이상, 중앙 펜스는 105(122)m 이상이면 된다. [괄호 안은 국제 규격]. 1~3루 간의 대각선 길이가 38.795m여야 해서 전체적으로 부채꼴 모양이 되는데 대략 축구장의 절반보다 약간 더 크다.

 

야구는 필요 장비가 구기 종목 중 제일 많다. 수비수들의 위치와 역할마다 끼는 글러브도 다르고, 헬멧을 포함하여 한 사람당 두 개씩 갖춰야 하는 모자에서부터 유니폼도 아주 복잡하다. 위 아래 달랑 한 장씩이면 되는 축구와는 천양지차다. 프로 야구 한 게임에서 쓰고 버리는 공만도 대체로 30~40개 정도가 된다. 한 게임 내내 공 하나로 때우는 축구와는 엄청 비경제적이다. 야구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지 못하는 데에는, 형편이 어려운 국가에서 이 장비와 소모품들을 죄다 구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다.

 

야구는 축구와 달리, 경기 도중 함부로 자리를 옮기거나 수시로 움직이면 큰일 난다. 자리를 제대로 지키는 일 하나만도 엄청 까다롭다. 뻥뻥 시원하게 내질러도 되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공 하나 던질 때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야구는 두뇌파 운동이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해서 뚝심보다는 아기자기하게 지적이며, 맡은 일에 따라 기능도 달라서 분열적이다. 그리고 무엇 하나 단순한 게 없다. 아주 복잡하다. 축구는 룰 공부를 하지 않은 이들조차도 웬만큼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 정도지만, 야구에서는 룰을 다 알면 심판 자격증을 받을 정도다. 축구는 룰을 대충만 알아도 관람에는 지장이 없지만, 야구는 룰을 웬만큼 알지 못하면 경기 자체를 즐길 수도 없다. 경기 중 역할 등에서도 편차가 크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곳에서는 투수가 배트를 잡을 일은 없다. 야구는 방망이로 하는 것임에도 투수는 방망이에 손도 대지 못한다.

 

기록이 복잡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타자 기준으로도 타율에서부터 출루율, 장타율, 삼진율, 득점률, 타점률, 누적 안타수, (누적) 홈런 수, 병살 수, 출장률... 등 온갖 기록으로 선수의 가치를 평가한다. 객관적인 숫자로 표시되는 개인 기록이 가치 지향적 평가에서 주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숫자는 대체로 엄중한 결과로 돌아온다. 연봉 계약 등에서.

 

축구는 선수들의 평가 기준도 비교적 단순하다. 수비든 공격이든 그 활동력과 기여도, 실책/성공의 두 가지 중 하나가 주된 잣대가 된다. 물론 공격수나 골키퍼 등의 경우에는 역할에 따른 세부 평가 항목들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선수의 가치 전체가 평가되지는 않는다. 그가 소속되어 뛰었던 팀의 지명도, 곧 팀원 전체가 이뤄낸 성과도 크게 한몫한다. 개인 기록 중심인 야구에서는 우승 반지를 여러 개 끼고 있다고 해서, 그 선수의 몸값이 덩달아 올라가는 일은 없다.

 

야구가 이처럼 까다롭고 복잡한 것임에도 야구장에는 관중이 많다. 대체로 비어 있는 관중석이 더 많아서 썰렁해 보이는 축구장과는 달리, 야구는 평일 경기에도 비어 있는 자리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야구장 관중석에 여자들이 거의 절반쯤 되고, 그런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야구장에서는 외야 쪽으로 잔디밭까지 만들어 거기서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음식을 먹으며 경기 관람을 즐기게도 해 놨다. 여자들이 가장 질색하는 것 중 하나가 남자가 군대 가서 축구한 얘기를 하는 것이란다. 그것과 야구장의 여자들 모습을 겹쳐 놓고 보면 야구와 축구의 대조가 더욱 극명해진다.

 

그럼에도, 온 국민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축구다. 야구의 월드컵이라는 세계 대회가 몇 개 있지만, 결승전이라 할지라도 온 국민을 티브이 앞에 모이게 하거나 거리 응원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축구는 다르다. 평소엔 축구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이들까지도 월드컵 시즌이 되면 티브이 앞으로 무릎걸음을 하거나, 좀 더 적극적인 이들은 떼를 지어 응원하러 나선다. 한 집으로 모여서 하거나, 가게나 거리 등에서. 공 하나를 놓고 열심히 뛰고 달리는 매우 단순한 축구가, 그 공 하나에 온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야구파들의 공통적인 속성으로는 대체로 개인(주의)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며 논리를 중시하는 숙고형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습성 탓에 덜 단순하다. 축구파는 대체로 집단적이고 행동 지향적이며 즉응적이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잘라내어 깔끔한 속효성을 추구한다. 결단력과 행동력에서 야구파는 축구파에 뒤지고, 축구파는 논리와 룰(규칙)에서조차도 단순함부터 내세우며 밀어붙이려 할 때가 많다

 

어떠한 집단에서(사회든 국가든)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원동력과 추동력이 필요하다. 목적하는 변화가 크면 클수록 당연히 큰 힘이 필요하다. 힘은 행동에서 나온다. 단합/단결은 그 행동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단순히 느슨한 결합 형태의 단합/단결이 곧장 힘이 되는 건 아니다.

 

커다란 변화를 이끄는 진정한 큰 힘은 집단적 행동이 생산해 낸다. 집단적 행동만으로 그 힘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목적적 의미의 생산이라는 말을 끌어다 썼다. 집단적 행동이 변화를 이끌고 추동하는 힘을 합목적적으로 생산해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앞서 여러 번 언급했던 집단 지성이다. 그 지성의 뿌리는 개인적 사고(창의력)에서 발원된다. 개인주의적 사고 도구들이 집단 지성의 틀을 체결하고 그 안에서 집단의 가치를 숙성.발효시킨다. 결국 야구파적관점과 노력이 축구파적집단 행동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바탕이 된다.

 

이 야구파와 축구파의 접점은 도처에 있다. 눈에 보이는 관중만으로는 야구파가 축구파를 압도하고 남는다. 하지만, 야구장만 찾는 사람은 축구장을 아예 찾지 않는다고 미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대로 월드컵 응원전이 그 예다. 도리어 야구장에서 익힌 다양한 응원 솜씨가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야구장의 응원 도구가 그대로 축구 응원에서 쓰이기도 한다. 축구장에 꼭 가야만 축구를 응원하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 정치를 바꾸는 데에도 그와 똑같다. 정치 혐오증에 감염되었다 할 만치 일상의 정치 현상에 대해서 도리질을 치는 사람도 선거 날에 날 선 한 표를 행사하는 것만으로도 정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는 일, 올바른 정치를 응원하는 길, 그것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끈을 놓지 않는 집단행동으로서의 결의다. 결의에 찬 집단지성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벼르는 일, 그것은 그런 의식만으로도 이미 성공적인 집단행동이라 할 수 있다. 민주 사회에서, 선거 혁명처럼 확실하고 멋진 무혈 정치 혁명은 없다. [May 2016]

 

[참고] 운동장 규격

축구장[국제 규격] : 105m x 68

야구장(괄호 안은 국제 규격) : 좌우 펜스 91(98)m 이상, 중앙 105(122)m 이상.

                                         베이스 간 30야드(27.432미터). 1~3루간 38.795m (39미터)

                                         즉, 105m x 39의 부채꼴. 운동장의 크기만으로는 축구장의 절반 규모.

 

[추기] 이 글은 근간 예정의 단행본 내용 중 일부임.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