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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기와 철(鐵)들기, 그리고 느려지기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6. 9. 26.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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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기와 철()들기, 그리고 느려지기

 

5년 전, 캐치볼(야구)을 했다.

처음엔 얌전히 하다가, 결국은 못 참고 투수를 했다.

구속을 높인답시고 있는 힘껏 던졌다.

 

그로부터 두어 달 뒤, 오른팔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회전근개파열. 재활치료에 2년이 걸렸다.

 

6년 전, 파주로 이사 오면서 아침 운동으로 속보를 했다.

시속 7Km의 속도로 한 시간씩.

그 버릇이 몸에 배어, 어디에서고 빨리 걷다가

해마다 한 번씩 발목을 삐었다. 눈길에서 미끄러져서.

 

걷기 운동을 모래흙이 깔린 학교 운동장 안으로 바꾸었는데

끝판에는 좀 답답해져서, 마무리는 뛰는 걸로 했다.

그러다, 같은 부위의 발목을 또 삐었다.

아침 운동을 자전거 타기로 바꿨다.



<사진은 그동안 타 오던 MTB를 버리고, 새로 바꾼 논네용(?) 자전거>

 

                                   *

군대 시절 익힌 국군도수체조(‘徒手체조란 맨손체조의 일본어 투 표기)

거의 평생 해왔다.

절도 있어 씩씩한데다, 온몸 풀기로는 최적이어서.

 

그러다 보니 모든 운동/움직임에도 그 버릇이 그대로 나와서

빠르고 용감해서 영감 티를 내지 않는 것은 좋은데

나잇값을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를테면 대추나 과일을 따러 나무에 올라가서 내려올 때

1미터 남짓한 곳에서는 뛰어내리는 게 예사.

그러다가 엉덩방아를 호되게 찧는 일도 있었다.

올 추석 때도 되풀이한 행사.

(아이고 허리야, 엉덩이야~~)

 

요즘은 자전거 타기 후 집 앞 운동장으로 돌아와

몸 풀기와 체력 운동을 하는데

크게 바뀐 게 있다.

국군도수체조 대신 태극권 흉내를 낸다.

 

씩씩하고 빠른 움직임 대신, 느리게 서서히 움직인다.

힘을 빼는 일부터 시작하고, 힘주기를 더디게 한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빠른 움직임보다도 더디게 조절된 움직임이 더 힘들다는 걸.

 

이제 내게 나이 들기는 철()들기다. 무거워지는 일이다.

섣불리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가는 일을 배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려진 이들과 함께 가는 일이다.

노인네들의 답답한 걸음걸이를 외면해 오는 사이에

혼자서 두 계단씩 오르던 그 잘난 버릇을 버리는 일이다.

(난 지금까지 동행하는 이들보다 늘 앞서 걸었다.

그들의 느려터진 걸음을 속으로 답답해하면서)

 

느려지기. 스스로 속도 조절을 해내는 일.

모든 일에서 서두르지 않기, 욕심에 가속도를 붙이지 않기.

그게 내가 늙어가면서 거두는 소득 중의 하나다.

이제야 뒤늦게.

       

딱 한 가지. 나이 들면서 빠를수록, 서두를수록 좋은 게 있다.

이승을 떠날 준비를 해두는 일이다.

그러면 삶이 단출해지고 가벼워진다. 가지런해진다.

놀라울 정도로.

 

유언장을 써보는 것도 그중 한 가지 좋은 방편이다.

일찍 쓸수록 자주 고치게 되는 득도 있다.

 

내 삶에서 가장 보람찬(?) 일이라면

내가 어느 결에 그 준비를 50대부터 시작해서

작년 어느 날엔가 확실하게 마쳤다는 점일 듯하다.

이제는 언제든 홀가분하게 떠날 채비를 마쳤다.     -溫草

[Sep.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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