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모과를 바라보며 : 향수는 더러운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6. 11. 27. 09:39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모과를 바라보며 : 향수는 더러운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

 

욕조 문화가 일반인들에게도 번진 것은 짐작과는 달리 매우 늦다. 놀랍게도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다. 1852년 미국에서 호텔이 지어지고 현대식 수세식 변기가 최초로 설치되면서 욕조*도 함께 배치됐는데, 그 광고 문구가 이랬다 : “목욕 포함, 호텔비 5”. 그 소문을 듣고 목욕을 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넌 유럽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 호텔은 당연 대박. 미국인들조차 잠보다도 목욕을 위해 그 호텔에 들기도 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1924년 평양에 최초로 부()에서 직영하는 공중목욕장이 섰고, 다음해에 서울에도 등장했다].

    [* : 현대식 욕조를 최초로 만들어 낸 곳은 켄터키주의 루이즈빌. 켄터키 사람들이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

 

로마 시대의 귀족들이 즐기던 목욕 문화가 단절된 것은 중세 교회의 개입 탓이다. 목욕을 위해 몸을 드러내는 것은 죄악이라면서, 거기에 목욕은 건강을 해친다는 잘못된 의학적 이유까지 덧대어졌다. 실은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에 유입된 터어키식 목욕탕(증기식목욕탕)이 런던과 파리 등에 퍼지면서 많은 사람이 함께 목욕하는 습관이 부활되었지만, 이 공중탕에 매춘부가 드나들기 시작하자 그걸 막기 위함이 으뜸 목적이었다. 16세기에 들어서서는 그동안 겨우 명맥을 잇던 목욕탕들이 죄 사라졌고, 목욕 문화 자체가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그 탓에 사람들이 거의 목욕을 하지 않아 몸에서 악취를 풍겼다. 전쟁터에 나간 나폴레옹이 황후 조세핀을 그리워할 때마다 그녀의 그곳에서 나는 치즈 냄새를 떠올렸다고 할 정도다. 그 바람에 향수가 개발되고 발전했다. 더러운 사람들에게서 나는 악취를 가리기 위해.

 

그 당시는 화장실도 만들지 않아, 야외에서 용변을 보고 실내에서는 요강을 사용했다. 루브르 궁전에 초대받은 여인들은 풀밭에 나와 앉아 용변을 해야 했는데, 풀에 찔리지 않기 위해서 굽이 높은 신을 신게 된 것이 하이힐의 시초였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넓은 루브르박물관 안에는 화장실이 단 한 군데도 없어서, 입장 전에 용변을 꼭 처리해 두라는 말은 가이드들의 필수 안내 사항이었다. 그 말을 귓가로 흘려들은 이들은 중간에 고생들을 잔뜩 했다. 하기야, 파리의 지하 전철역에는 화장실이 없다. 으슥한 구석으로 가면 지린내 때문에 코를 막아야 한다. 그처럼 코를 감싸는 건 런던 지하철역도 마찬가지다. 지하철과 화장실에 관한 한은 대한민국 만만세. 만세 한 번으로는 한참 모자란다.

 

*

씻지 않아 더러워진 사람들에게서 나는 악취를 가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향수는 처음엔 그 원료를 주로 식물에서 나는 것을 썼다.

 

장미, 재스민, 라일락, 라벤더, 카네이션, 바이올렛, 오렌지, 레몬, 라임에다 시더우드나 파인과 같은 나무들도 썼다. 이른바 요즘의 향수의 계통 분류에서 플로럴/우디/그린/시트러스/푸제아/앰버 등으로 나뉘는 것들이다. 사향과 같은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기도 했다. 샤넬 향수의 주원료 중 하나인 목서류(금목서/은목서)는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고, 오늘날 알데히드 계통으로 분류되는 인공 향료는 당연히 만들 수가 없었다.

 

이처럼 향수의 시조가 식물들이라는 것. 그것은 달리 말해서 식물들에서는 향내가 난다는 말도 된다. 그렇다. 식물에서는 향내가 난다. 예외 없이. 억울하게도 과일전 망신의 대표 선수로 잘못 몰리고 있는 모과. 그 모과를 몇 개만 갖다 놔도 온 집 안에 착한 향내가 가득해진다. 약제로서의 효능도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모과는 울퉁불퉁하게 못생긴 것일수록 향내가 더 난다. 향을 발산하는 체표 면적이 늘어나서다. 번지르르한 얼굴 생김에만 관심하는 얄팍한 인간들에게 모과는 더없이 좋은 스승이다. 성형에까지 매달려 얼굴에만 집착하는 천박한 인공 미인들의 한참 위에 모과님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고 해야 하려나.




    

(사진 : 해마다 늦가을이면 우리 집 거실에 놓이는 모과. 집 근처에서 따왔다

 

 

시인 하나가 나무는 상처에서도 향기가 난다고 읊었다. 베어 넘어진 나무들에게 코를 대보라. 나무들마다 그 베인 상처에서도 저마다 다른 향내가 난다. 반면에 인간의 상처에서는 악취가 난다.

 

인간의 몸에서 나는 악취. 그걸 향수로 가릴 수 있을까. 향수는 종류 별로 지속 시간이 다르긴 하지만, 어느 땐가는 그 향기가 휘발한다. 사라진다. 더구나 더러운 사람이 씻지 않은 채로 향수만 뿌린다고 해서, 그 더러움까지 사라질까? 그리고, 만약 그 더러움이 몸 안 깊숙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면? 오물 수준의 탐욕에서 풍기는 악취라면?

 

씻지 않으면, 닦아서 털어내지 않으면,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몸이나 마음 모두 마찬가지다. 몸의 때를 밀어낼 때마다 마음의 때도 들여다 볼 일이다. 마음의 때를 벗기는 일, 간단하다. 터무니없는 욕심, 탐욕을 덜어내거나 지워내면 된다. 돈도 안 들고, 시간도 안 든다. 그저 마음 하나 바꿔 먹고, 비워내기만 하면 된다. 채우기는 힘들어도 비워내기는 아주 쉽다. 거꾸로 쏟아 붓기만 하면 되니까.

 

마음이 더러워진 사람에게 향수는 개 발의 편자요, 돼지 목의 진주다. 어울리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스꽝스럽고 꼴사나운 짓이다. 그렇다는 걸 당사자만 모른 채 놀아나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희비극이기도 하고.   -溫草

                                                   [Nov. 2016]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