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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클로버를 따면서(3) : 노인과 토끼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2. 7. 5.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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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잎클로버를 따면서(3) : 노인과 토끼

 

  아침 산책길. 운동 삼아 하는 것이라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가까운 주변은 대충만 훑으면서.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노인네 한 분이 토끼풀을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 들여 뜯고 있었다. 다가가 물었다. 혹시나, 나처럼 네잎클로버를 찾는가 싶어서.

- 아니, 그냥 토끼풀 모양이 이뻐서요.

 

  그 분의 대답 끝이 얼버무려졌다. 세 잎 클로버 잎이 이쁘다?

  흔하고 이름 없는 것들이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뻐 보이기 마련인, 그런 데에 착목하고 있는 기특한(?) 분으로 여기고, 나는 그냥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길가의 토끼풀들에서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그걸 뜯으면서 잎들만 모아갔는지, 줄기 부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희한한 일이었다. 토끼풀의 잎들만 가져다 무엇엘 쓰려고??

  더욱 이상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이번에는 잎들만 버려지고 줄기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토끼풀 줄기만을 어디에 쓰는 것일까?

 

  내 궁금증은 오늘 아침 풀렸다. 예의 그 노인을 토끼풀 무더기 앞에서 대하게 된 것. 이번에는 토끼풀을 잎이 달린 채로 줄기째 뜯어서 왼손에 가득히 잡고 있었다.

  나는 인사도 거른 채 불쑥 물었다. 토끼풀을 그처럼 뜯어서 무엇에 쓰시려고 하느냐, 특별한 약재로라도 쓰시느냐고, 연달아 물었다. 노인의 대답이 나왔다.

-이 앞에 학교 있잖우?

-예, 있지요. 00중학교.

-거기엘 가면 토끼장이 있다우.

-예, 그렇죠. 아이들 생태 학습장 삼아서 기르는 모양이던데 한 해 사이에 식구가 엄청   불었더군요.

-그 녀석들이 내가 가면 어찌나 반가워하면서 몰려오는지, 빈손으로 가기가 뭐해서 토끼풀이라도 좀 뜯어다 주려고...

-저도 가끔 주는데, 녀석들이 워낙 식성이 좋아서 잘 먹죠. 전 고들빼기 종류들을 주로 뜯어다 줍니다만... 그런데, 혹시 토끼풀에서 잎들을 다 떼고 줄기만 갖다 주신 적도 계시나요? 잎들이 흩어져 있고, 줄기가 안 보일 때도 있어서요.

-그랬었다우. 녀석들이 잎과 줄기 중에서 어느 걸 더 좋아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왕이면 더 좋아하는 걸로 갖다 주고 싶어서... 나를 그처럼 반겨하는 녀석들에게, 그런 것으로라도 보답해야지......

 

  나는 노인장과의 대화를 더 잇지 못했다. 노인장의 말소리 사이사이로 느리게 흘러가는 공기들에 안개가 서리는 듯도 하고, 목소리 사이에도 자꾸만 빈틈이 드러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분에게 할머니를 여의고 혼자 사시느냐고 묻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한참 후에 그 학교 앞을 지날 때에야 들었다. [1 June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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