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로 이상한 거!
최 종 희
우리 집에는 이상한 것투성이이다. 다른 집에서는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에 속한다 싶은데 우리 집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꽤 된다. 신용카드 같은 것 한 가지만 해도 그렇다. 나는 나만의 내 신용카드가 없다. 멋모르던 예전에는 서너 개 정도 가지고 다니다가 요새는 아예 딱 하나만 갖고 다닌다. 그런데, 그 카드는 아내에게 딸려있는 카드다. 즉, 가족카드다. 아내가 주 가입자인 대표 가족이고 나는 거기에 매달린 부속 가족이다. 쉽게 말해서, 아내가 왕초고 나는 똘마니다.
그렇게 된 이유? 간단하다. 아내는 죽어라 하고 한 은행만 몇 십 년 거래해왔고, 나는 이곳저곳(월급 입금은행에 따라)으로 은행을 옮겨 다녀서다. 게다가, 나는 카드대금 입금일을 챙기는 일조차 젬병일 정도로 지급날짜들에는 까막눈이다. 신용카드 하나 때문에 새삼스레 입금일 챙기고 하는 게 귀찮기만 한 판에, 아내가 거래은행 단일화 얘기를 꺼낼 때 나는 얼씨구나 했다. 암튼 아내는 요즘 뜨는 선전문구대로 내 <하이카>다. 대금 지급은 물론 집에서 나갈 돈은 아내가 알아서 다 해준다. 내 것까지 죄다 챙겨준다.
그러다 보니 신용카드 대금 청구서는 당연히 집으로 날아온다. 그걸 조금만 들여다보면 어디서 뭘 얼마나 써대고 다녔는지 죄다 나온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내가 먹고 쓰고 다닌 걸 가지고 황후마마에게 책잡힌 적은 없다. 문제(?)될 건 미리 현금으로 거래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현금에 관한 한, 언제나 거의 거지 수준이다. 내 지갑 속에 현금으로 여지껏 4-5만원 넘겨서 가지고 다녀본 역사가, 내 평생 단 한 번도 없다. 마마님께오서 그리 주시는 적이 절대로 없었으므로. 그 대신 언제나 4만 원 이내의 돈은 늘 들어있다 (심야 택시값 내지는 대리운전용 비상금 명목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내 지갑은 아내가 손보는 3-4만 원짜리 화수분이다. 덕분에 나는 밥값이 만 원만 넘어가도, 이순신 장군의 보검처럼 신용카드를 빼어들고 카운터 앞으로 가서 서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상갓집 같은 데서 만약 고스톱 판이라도 벌어지면 얼른 내 지갑을 까보이며 처음부터 꽁무니를 뺀다. (돈 잃는 것도 그렇지만 따도 못 가져오는데다가, 잠 못 자고 힘 빼는 게 내게는 제일 못 견딜 고역 중의 고역이다)
하여간 나는 내 맘대로(?) 카드를 쓴다. 하지만, 카드 사용 문제로 공격받을 짓은 별로 안 했다. 딱 두 번, 1987년과 1995년에 각각 한 번씩, 회사의 아랫것들에 등 떠밀려 술집에 가서 바가지를 쓴 게 있는데, 그 뒤로는 이를 악물고 나쁜 상사가 되기로 작심했는지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이를 악문 이유? 그 뒤로 걸핏하면 아내가 용돈을 줄 때마다 나에게 그 얘기로 창피를 주곤 해서다.) 나는 지방의 모텔 같은 데서도 왜 카드를 안 받는지 되게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두어 해 전 포항이든가 울산이든가에서 어느 날 새벽 잠 좀 자려고 들어갔는데, 모텔에서 삼백 미터나 떨어진 편의점에 가서 현금을 찾아서 갖고 오라고 등 떠밀렸다. 그럴 때면,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헌데, 이 카드 대금 청구서를 받는 주소지들을 보면 참 희한하다. 내 오랜 직장 생활 도중 저절로 관찰된 바에 의하면, 봉급쟁이들의 90% 이상은 그걸 직장에서 받는다. 청구서를 집으로 보내면 절대 안 된다고 펄펄 뛰는 녀석들부터 은근히 고개를 가로 젓는 패거리들까지 그 반응들도 구구각색이다. 나는 정말이지 그 진짜배기 이유들을 잘 모르겠다. 카드를 쓰는 데 그렇게들 비밀이 많은 건가? 아니면, 아내의 잔소리가 싫어서? 혹은 지급능력에 관한 한 아내를 불신해서? 궁금한 게 또 있다. 그 비밀이란 게 액수일까, 아니면 용도일까도 궁금하다. 어쩌다 심심해지면 그런 생각도 난다.
* 그런 청구서가 집으로 배달되고 아내가 뜯어보거나 해서 작은 난리가 나는 집들도 꽤나 있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 집은 정반대다. 신용카드나 청구서 등은 내가 뜯는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건 우리 황후마마님의 고유 업무다. 아, 가계 경제를 책임지고 계시지 않는가. ㅎㅎ하.
이런 우편물 개봉에 관해서 다른 집과는 무지 다른 게 한 가지 있다. 그건 받는 이가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건 어떠한 경우든, 아내가 개봉해서는 안 되는 룰이 그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청구서 종류를 빼고는. 어느 정도로 지켜지느냐가 궁금할 게다. 결론부터 말해서 105% 준수된다. 청첩장 종류 같은 것이나 동창회 참석 편지, 출판기념회 관련 모임 등과 같이, 봉투를 보면 보낸 이와 내용까지도 대강 짐작할 수 있는 것, 바꿔 말해서, 아내가 뜯어봐도 될 그런 공지사항 성격의 편지라 하더라도 아내가 뜯어보는 일은 절대로 없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내가 그런 말을 하자 못 믿겠다면서 보낸 이의 주소란에 “멀리서 그대를 사모하는 희”라고 적은 편지를 보내서 우리를 시험해본 친구도 있다. 그때, 아내는 그 편지를 ---나중에 요모조모 살펴봤지만 상처 하나 없이 고스란히였다--- 내어주며 내게 말했다. - 와. 당신 내가 다시 봐야겠다...요. 사모하는 여인까지 있을 정도로 대단한 남자인 걸 우째 나만 모르고 지냈을까나아???
이렇게 부부간의 편지에 관한 한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를 인정하고 존중하기로 한 것은 호혜적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나 역시 퇴근길 대문간 우체통에서 편지를 꺼내들면서, 아내의 편지가 보이면 두 말 없이 공손히(?) 아내에게 갖다 바친다. 그리고 그런 게 몸에 배고 나면, 암 것도 아니다. 설령, 그 편지 겉봉이 요즘 보기 드물게 손 글씨로 쓰여 있고, 보낸 이의 이름이 남정네 비스무리 하더라도 까짓 편지 하나 때문에 세상이 뒤바뀌는 건 절대로 아니다. 괜히 마음 쓸 필요도 없고, 사실 쓸 일도 전혀 아니다. 나중에라도 우연히 진실을 알게 되면 더더욱 그렇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부부간 발신인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 이 편지도 사실 요즘은 별 게 아니다. 요새 어디 딴 짓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편지질로 하던가. ㅎㅎㅎ. 죄다 이메일 아니면 그 핸폰인지 뭔지로 사건들 저지르는 세상 아닌가? 그 바람에 발신자 추적이니, 메시지 검사니 하는 따위의 전문적(?) 추적업무가 집안에서도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것 같다.
내가 아끼는 후배 하나가 남편의 바람피우기 현장 추적 문제로, 전화기의 수/발신 상황 체크와 메시지 훔쳐보기 등으로 마음고생깨나 한 적이 있다. 1인 4-5역을 해내는 사람인데, 그 남푠이라는 녀석의 차안에서 여인의 립스틱이 발견되지 않나, 새벽까지도 울리는 메시지 표지란에는 누가 봐도 절절한 애모의 정을 담은 글씨가 뜨질 않나...... 게다가 집안에서 핸폰을 받으면 꼭 다른 자리로 피해가서 문 닫고 받는 식이고. 결론부터 들이대자면, 그녀는 요새 아주 평온하다. 처음에는 남편이 잠든 사이에 수/발신 전화번호도 노트에 베껴놓고, 메시지 발신자 번호와 내용 역시 따로 메모해두면서, 흥신소에다 의뢰하는 방법과 비용까지도 알아보던 그녀가 요새는 두 손 놓고 평안상태다.
남편의 변화와 충성 맹세 덕분이냐고? (하기야, 시퍼런 마눌 있는 집으로 새벽에 메시지를 보내는 그런 반쪽짜리 여자하고 오래 갈 턱도 없지만) 그건 아니다. 그저 그녀가 마음을 바꿨을 뿐이다. 늘어가는 불신의 심증으로만 마음을 닦달이면서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다른 일들, 우선 처리해야 할 진짜배기 일들이 있다는 것에 눈을 돌려서다. 더구나, 이혼할 것도 아닌데...... 그녀는 이미 결론이 나 있는 일을 가지고 무에 그리 속상해하고 동동거려야 할까 보냐로 선회했다.
그 뒤로는 절대로 남편의 핸폰을 열어보거나 하는 일로 마음고생 자처하는 일도 없어졌고, 시간 낭비하는 일도 없어졌다. 더 바빠해야 할 자신의 일들이 산적해 있으므로. 사실, 그렇게 단순한(?) 결론을 내리도록 꼬드긴 것은 나다. 전화번호 추적하고 상대방 알아내서 그 다음 뭘 할 것인가. 머리끄덩이 잡고 흔든 다음 뒈지게 패줘? 그리고는? 그 증거를 가지고 남편을 작살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혼?
그녀는 아이들 다 클 때까지는 죽어도 이혼할 생각이 없다. 이혼하자고 사정해도 그때까지는 죽어도 안 할 판이다. 그런데, 뭐 하러 먼저 불구덩이에 뛰어들까? 기분 나빠서? 그렇게 하고 어떻게 사나, 그리 사는 게 사람이 할 짓인가 하는 소리를 들을까봐? 사실 그런 거 알고 보면 모두 ‘웃기는’ 얘기들이다. 나중에 삶의 진실을 뒤늦게 대하고 나면, 정말 ‘웃기는 얘기들‘이 되고 만다. 기분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급격하고도 경솔하게 상한 감정의 충돌을 이혼으로 연결시키는 어린애들 같은 부부들, 웃기는 껍데기들이 꽤 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성질나서 그 바람에 참지 못한 게 그게 이혼으로 연결됐다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약 3할쯤 된다. 2003년도 이혼신고 서류 접수 시 시행했던 설문조사에 의한 법원통계 결과다. 그리고, 이런 웃기는 경솔파에는 이른바 이 나라에서 제일 잘 났다는,‘사(士/師/事)’자 붙은 녀석들이 생각보다도 많이 들어 있으니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다. )
그리고 더 웃기는 건 그 발단이 바로 핸폰 떠들어보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거나, 애당초 핸폰 메시지 따위에 관심을 닫아두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었다. 알면 병 되는 거, 그건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어떤 일로 서로 못 사는 그런 부부관계라면 까짓 핸폰 따위가 아니라도 진작 갈라서게 마련이고, 그게 또 서로간의 낭비를 얼른 줄이는 길도 된다. 그렇지 아니한가.
내가 열을 너무 냈나? 하여간, 쓸데없는 일로 부부간에 사서 흠집을 들춰낼 필요는 없다. 카드 사용내역서 뒤돌려 빼기와 같은 비겁한 짓을 뭐 하러 사서 하는가. 내역을 알고 보면 암 것도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던데. 그리고 아내의 편지든, 남편의 편지든, 그거 열어봐서 뭐 하는가. 뭘 어쩌려는 것인가. 배우자의 핸폰 통화 상대방을 알아서 뭐 어쩌겠다는 것인가. 쓸데없이 속 썩고, 시간 낭비하고 정력 허비하는 짓 아닌가. 갈라서거나 혹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게 되거나, 그리 되어야 할 부부라면 그런 거 아니라도 벌써 다른 데서 사달이 나고도 남는다. 그래야 하고, 또 그렇게 된다.
그런데도, 정작 중요한 데서는 되레 또 눈 감고 귀 막는다. 죄다 정면 돌파를 기피하고, 엉뚱한 데서 속 썩히면서 서로를 허비한다. 참, 이상한 노릇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내는 주부다. 그리고 이런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여인들이건 남자들이건. 하지만, 이것은 결혼한 여인들의 1인2역을 뜻하는 말이다. 남편과 가장이라는 말도 똑같다. 1인2역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 고개들을 갸웃거린다. 아내와 남편. 그것은 직위이거나 신분표시 명칭이다. 하지만, 주부나 가장은 직업상의 표지다. 아내와 주부는 엄연히 다르다. 주부는 이 나라 직업구분표에도 올라 있는 직업용어다. 그 의미는 죄다들 안다. 하지만, 아내에 대해서는 주부라는 직업군에 저절로 편입되는 무슨 부속물 정도로들 여긴다. 절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아내는 여인이다. 집안에서 한 남편에 대칭되는 상대방으로서의 인격체를 뜻한다. 사랑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면서, 하나의 여인으로서 성장해가는 배우자의 자격증에 새겨져 있는 신분 표기다. 이 나라 법률에서는 그걸 “처”라는 말과 “배우자”라는 말, 두 가지로 한정하여 규정하고 있다. 그 만큼 법으로 보장된 신분이라는 말도 된다. (그런 점에서는 남편도 마찬가지다. 법에서는“부” 또는 “배우자”로 표기한다.) 따라서, 아내/남편은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에 대하여 독자적인 인격체다. 가정에서의 상호 의존적 관계는 평등한 협력관계, 즉 선의의 공조(共助)관계가 그 바탕이 되고, 반드시 그리 되어야 한다. 여기서 벗어나는 건,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 침탈행위가 된다. 물론 그 정도에 따라, 판단의 가감은 있을 수 있겠지만.
얘기가 엉뚱한 가지를 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위의 모든 행위들, 예를 들면 신용카드 대금청구서 우송지 문제든, 핸폰 뚜껑 열어서 몰래 들여다보는 일이든, 그건 배우자에 대한 인격침해 행위라는 사실이다. 불신을 넘어서. 남편의 바람기가 의심스럽더라도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그 전에 사랑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이혼하고 말리라는 독한 결심을 했는지부터 챙겨볼 필요가 있다. 그런 채비를 갖춘 다음에는 구체적 증거확보의 목적으로 핸폰을 열어봐도 좋다. 그것이 아내로서의 자신에 대한 인격적 침해행위가 확실한 선을 넘어섰는지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내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막말로 백 번 바람을 피우더라도 아내를 진정한 인격적인 존재로 제대로 대우해주는 그런 멋진 남자가 있다면 나는 녀석을 꼭 붙들고 놓지 말라고 하고 싶다. 세상에는 그렇게 제대로 된 녀석들이 없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참, 여기서 백 번 바람피우는 ‘나뻔’ 넘을 어떻게 용서하겠느냐고 게거품부터 물 사람이 많을 텐데, 사실 술집 여자를 이백 명 가까이 접하고도 집에 가서 정말 잘 하는 사내들이 이 세상엔 있다는 걸 나는 믿는다. 그리고, 술집 여자들하고 몇 시간짜리 외입한 걸로 사네 못 사네 하는 바보 여자들도 요즘 세상엔 사실 거의 없다. 남편의 사랑만 확실하다면. 그리고, 돈 주고 사는 건 몸뚱이지 결코 사랑이 아니라는 걸 여인들이 먼저 잘 알고, 안도해오지 않았는가.
달리 말해서, 아내로서의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진정한 분노를 제대로 표출해야 한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주부 역할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조차도 무조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사내들 중의 일부는 제 모자란 가장 역할에 좀처럼 수긍하려 들지 않고, 그 잘난 남편 신분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하는 사람들 적지 않다. 그리고 심하게 말하자면, 내 편지 함부로 뜯어보고, 내 핸폰 뚜껑 열어보는 사람은 마찬가지 이유로 인격적인 대우를 덜 해줘도 된다. 지켜야 할 것은 인격적 존재로서의 낱개 가치이고, 그게 더 소중하게 받들려야 옳다. 그런데도 세상구경을 해보면 그게 거꾸로 뒤집어지거나 진흙탕처럼 뒤엉키는 사람들 적지 않다.
이런 소리를 해대는 나는 아내의 핸폰에 대해서 어떠냐고? 부재중일 때 메시지 도착벨이 울려도 여직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느냐고? 무엇이든 안 보기로 작정하고 나면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는 법이다.
이제 이 지루한 잡문을 마무리하자. 내가 참으로 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례 한 가지만 더 들고 나서.
그건 요즘 세상에서 슬슬 피어나고 있는 홈페이지와 관련된 얘기다. 거기서도 나는 참 괴상망측한 꼴들을 많이 대하는데, 그건 부부들 사진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자들 홈피라는 데에 가보면 남편 사진은 코빼기도 볼 수 없고, 머스마들 홈피에 가면 제대로 된 마눌 사진들 하나가 없다. 기껏해야 아이들 사진뿐이다. 참, 이상해도 한참이나 이상한 일들이다. 명색이 집이라면 ('홈’페이지) 아 그 집구석의 주인공 둘은 모습을 비춰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어느 곳을 갔을 때 부부사진이 보이면 나는 대뜸 그 페이지의 주인공들에 뽀뽀부터 해댄다. 여태껏 딱 한 번 해봤지만도.)
숨기고 가리기 위해서라면 홈피라고 하지 말고, 차라리 일기장이라고 하든지... 하기야, 그래도 말은 안 된다. 어느 누가 제 일기장을 손쉽게 만천하에 까발리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기를 쓰는가 말이다. 익명의 세계에 더 안온하게 머물기 위해서? 웃기는 말이다. <나는 나!> 소리부터 앞세우는 어쭙잖은 떵고집파들일 때가 더 많고, 그 진실은 다소 못나 보이는 듯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라고 해야 맞는 말이 될 때가 더 흔하다.
냉정히 돌아보라. 좀 못나면 어떤가. 얼굴 팔아먹고 사는 직업도 아니지 않은가. 하기야, 몸매 팔아먹고 살지도 않는 이들이 사진속의 몸매에는 더 신경 쓰는 듯하다. 생각해 보라. 몸매가 좀 잘 생겼다고 해서 몸매 팔아먹고 사는 직업으로 전환할 것인가? 그건 아니지 않은가. 잘나면 어떻고, 좀 못나면 어떤가. 제 생김 가지고 이제껏 살아와놓고서, 새삼스레 딴 짓, 딴 생각 할 필요 무에 있을꼬? 자신에게 당당한 사람이 세상살이에서도 당당한 법이다. 외모 따위에 자신을 가둬놓는 일처럼 불쌍하고 좁은 세상도 없다. 익명의 세계 치고 밝고 따뜻한 곳은 거의 없다. 보기 드물다.
익명의 세계에서 익사하기 직전에라도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그것이 비정상인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길 아닌가 싶다. 그리고, 비정상인은 어디 한 군데가 단단히 탈이 난 사람들을 정상인과 구별해서 부를 때 쓰이는 말이다. [Feb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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