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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3편] 벼랑의 나무(들) : 안상학, 도종환 외

[차 한잔]

by 지구촌사람 2017. 12. 2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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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배꼽으로 나오면 원본은 이곳에 : http://blog.naver.com/jonychoi/221167896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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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벼랑의 나무/안상학(1962~  )
 


 


숱한 봄
꽃잎 떨궈
깊이도 쟀다
 
하 많은 가을
마른 잎 날려
가는 곳도 알았다  
     
머리도 풀어헤쳤고
그 어느 손도 다 뿌리쳤으니
사뿐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이제 신발만 벗으면 홀가분할 것이다


 

2. 벼랑의 나무

 

어쩌다가 이 한생 너의 가슴 깊숙이

위태로운 숨결을 오금처럼 박고 살며

시시로 부서지는 맘 무심인 듯 쏟아낸다.


수수억겁 얽힌 인연 맨몸으로 보듬는 너

깎아 내는 연필처럼 닳아지는 살들에도

옹골찬 결기 벼리어 새벽빛에 깨어있다.

[출처] 벼랑의 나무|작성자 달마

 


3. 벼랑의 나무들/도종환(1955~ )

어둠이 온다 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잠들지 않습니다

깨어 기다려라 그 말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눈발이 살갗을 찢어도 우리는 무서워 떨지 않습니다

바람에 가지를 잃어도 뿌리까지 빼앗기진 않습니다

빗줄기 속에서도 우리는 새 몇 마리를 쉬게 합니다

 

새벽이 온다 해도 우리는 들떠 소리치지 않습니다

아침 햇살이 온몸을 축복하며 내려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우리가 지켜야 할 자리에 오늘도

이렇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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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의 나무를 제재로 삼은 작품 3편을 함께 올려 봅니다.


안 시인의 작품을 대하면 곧 끝장을 볼 듯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뛰어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 벼랑의 깊이도, 가는 곳도 이미 숱하게 반복한 앎의 경계 안에 들어 있기에...

앎이 되풀이되면 저절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게 되지 않나요.


어쩌면 안 시인은 삶이야말로 죽음보다도 더 질긴 것이라는 걸

마지막 연에 등장시킨 신발(삶에 붙들어두는 끈과 같은 것)을 통해

우리에게 더욱 확호하게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앞서 전개된 3연이 나무와 또 다른 객체로서의 세상을 대비시키는 눈길이었다면

마지막 연에 이르러서는 세상이 아닌 나무의 뿌리(신발)로 그 시선을 끌어 박고 있거든요. 


달마선원의 블로그 담당 관리자라는 분이 올린

또 하나의 벼랑 위 나무.

옹골짐의 연속입니다.   

'옹골찬 결기 벼리어 새벽빛에 깨어있다'

참으로 압권입니다.


그러한 의연함은 도 시인의 시로 이어집니다.

벼랑 위의 나무들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우리가 지켜야 할 자리'들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위태로워 보이는 삶, 빼앗기고 시달리는 아픈 삶이 이어지더라도

우리는 빗줄기를 피해 날아온 새들에게 쉴 곳을 내줄 줄도 압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하고 지켜야 할 자리에서 여전히

잘 버텨내고 견뎌갈 수 있는 것이죠.

                      *

연예인처럼 이름 석 자에 민감한 이들이

이따금 제 손으로 벼랑 위에서 신발 끈을 풀고 뛰어내리곤 합니다.

며칠 전에는 나이 30도 넘기지 못한, 종현이라는 새파란 젊은이 하나가 또

그 길로 들어섰습니다.

벼랑 위에 올라가 하루만이라도 서서

바람, 하늘, 새, 나무, 눈 앞의 풍광, 벼랑 아래... 등에

마음의 눈길을 주었더라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으리란 생각도 해봅니다.

높은 곳에 오르면 저절로 큰 생각, 넓은 시야를 지니게 됩니다.

방 안에서만 바라보는 닫힌 세상은 넓고 큰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죠.

벼랑 위의 나무가 진정 큰 스승인 것은

그 앞에 가로막힌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서서

넓고 넓은 세상 공부를 혼자서 해낸 존재라는 것 때문이 아닐까요.  

                                    *


20여 년도 훨씬 더 된, 제법 오래 전에 받았던 그림 카드인데요.

플로리다에서 20여 개국에서 온 사람들과 두어 주일 동안

새로 도입될 마음 서비스 관련 신경영 기법 연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수료를 앞두고 두 팀으로 나누어 교육 평가전을 벌일 때인데,

우리 팀원들이 저를 팀장으로 뽑더군요.

교육 중에 제가 자주 나서거나 말을 많이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 반대. 저는  내내 가만히 있다가  결론이 안 나거나

민감한 사안일 때 중재안이나 결론을 제시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중론은 제가 말한 쪽으로 쏠렸구요.

교육이 끝나자 팀원들이 제게 휴화산 같은 존재라면서 선물한 것이 바로 저것.

제 모습을 어쩌면 그리 정확하게 읽어냈는지, 제가 놀랐습니다.

홀로 벼랑 위에 올라가 머물러 보면,

자신도 놀랄 만큼 배우고 깨닫게 마련입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데도요...                                    -溫草 [Dec.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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