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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재활용] 빈손으로 안 돌아오기

[내 글]고정관념 분해 조립

by 지구촌사람 2018. 2. 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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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재활용] 빈손으로 안 돌아오기

 

저는 엉터리 교인입니다. 아니, 교회 쪽에서 보면 교인 축에 끼지도 못합니다. 설교의 중간까지는 솔깃해서 듣다 가도, 설교가 성경의 어구 내용을 벗어나고 타종교 비난이나 무조건 믿기, 전도 충성 등의 이야기로 이어지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성경에 쓰인 건 그런 뜻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요.

 

설교 내용에서 부분적인 윤색이나 의도적인 감추기 등도 많이 못마땅합니다. 야곱 얘기를 하면서 나중에 이스라엘로 개명하고 자식들이 12지파의 창설자들이 된 것은 엄청 크게 강조하고 받드는데, 그런 얘기를 할 때면 야곱이 장자인 형 에서에게 내려질 축복을 팥죽 한 그릇으로 가로챈 뒤, 그 때문에 외가 동네로 가서 20년간이나 도피생활을 해야 했던 일들은 슬그머니 빠집니다. 그 죄로 장녀가 강간도 당하고 둘째 처(외삼촌의 둘째 딸)인 라헬도 일찍 죽게 되지요만... 차라리 그 모든 걸 드러낸 뒤 야곱이 진정으로 회개한 덕분에 그처럼 창성하게 되었으니, 회개가 그처럼 중요하다는 쪽으로 선회하는 게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싶거든요. 우리는 실수하게 마련인 인간일 뿐이니까요.

 

그런 일들을 되풀이해서 대하다 보니, 교계의 어둔 면들, 고약한 그림들이 더 크게 들어오면서, 철이 덜 들었을 때는 은근히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교회나 목사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라등의 말도 잠시만 유효하곤 했죠.

 

요즘은 짬이 되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끔 교회를 갑니다. 이곳 파주에서 서울 교회까지의 거리가 녹록지 않은데다, 집사람은 그 교회의 붙박이 피아노 반주자 겸 성가대 반주자이고, 딸내미 역시 중고등부 예배의 반주자여서 점심만 먹고 돌아와도 오후 3시가 됩니다. 집에서는 늦어도 810분 전에 나서야 하고요. 그래서 오전에 마쳐야 할 일이 있는 날은 혼자 집에 머뭅니다.

 

가끔 교회에 얼굴을 비치는 것은 제 자신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제가 마음 편해지려고요. 제가 교회에 나가면 기뻐하는 사람들이 여럿입니다. 집의 두 여자들부터, 일산에 머무시면서 격주로 서울 교회에 나오시는 원로 장로인 장인어른(다른 한 주는 노인학교가 있는 일산의 교회로), 목사님 내외, 부목사 내외, 네 분의 장로들, 이제는 몇 분 남아있지 않은 장모님 친구분들, 집사람과 친한 권사들... 그분들의 얼굴에 반가움과 미소가 어립니다.

 

교회 점심도 참 맛있습니다. 서울 변두리 교회답게 교인들 역시 시골스러운 분들이어서 그분들의 음식 솜씨는 여전히 시골스럽거든요. 그런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제가 은근히 행복해집니다. 아니, 있으나 마나 한 나의 출현이 그분들에게 반가움이 된다는 게 무척 기쁩니다.

 

더구나 어제는 얼마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일어난 박 목사님을 퇴원 후 2주일이나 지나서야 보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은 내겐 손아랫사람인데, 참으로 열심인, 그래서 이따금은 조금 과하다 할 정도로 모든 일에 참례하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늘 설교 시간이 10분 이상 더 걸리는 바람에 예배가 끝나면 1215분쯤 되게 하는 분입니다. 우리 교회에서의 사역이 15년을 넘기지만, 우리는 그분보다도 훨씬 더 고참(?)입니다. 내 결혼식도 그 교회에서 치러졌고, 집사람의 피아노 반주가 30년을 넘기고 있으니까요.

 

                                                        **

어제도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목사님 설교에서 성경과 다른 내용이 나오기 전에, 늘 하던 것처럼 교독문과 성경 봉독 부분의 영문들을 훑은 덕분에요.

 

저는 이따금 성경의 우리말 번역이 되레 더 어렵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엉터리 신자인지라 쉽게 요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40년도 훨씬 넘게 성경을 대해 왔으면서도요. 그럴 때면 영문을 보는데, 한때는 아예 우리말 성경은 빼고 영문 성경만 들고 다닌 때도 있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였지만, NIV라서 KJV와는 또 다른 맛도 있었고요.


[NIV 큰 글씨 성경. 돋보기 없이도 볼 수 있도록 글씨들이 커서 좋습니다]

 

어제 교독문은 7. 시편 13편의 일부인데, 제 눈엔 다음 구절이 들어왔습니다.

...I wrestle with my thoughts and every day have sorrow in my heart...

(나는 온종일 내 생각과 씨름하고, 그 바람에 늘 슬픔에 빠져 지낸다.)

 

제 못된 버릇 중의 하나는 일점 일구도 손대서는 안 된다는 우리말 번역은 젖혀 두고 그냥 영어 표기가 전해주는 의미로만 제멋대로 받아들이는 것인데요. 위의 표현을 대하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요새 흔히 말하는 쓸데없는 생각 집어치우기, 내 생각에서 빠져 나오기에 관한 얘기가 이미 2~3천 년 전에도 있었다는 거죠. ‘제 생각만 붙들고 씨름하다 보면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그분들도 이미 체득하고 있었던 거죠.

 

성경 봉독 시간. 히브리서 1113절을 대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더 크게 무릎을 쳤습니다. ‘죽어서도 신념으로 살아 있는 이들... 그들이 지구상에 머물 때는 스스로 자신들이 외계인이거나 이방인임을 자인했다.’ (...still living by faith when they died... they admitted that they were aliens and strangers on earth.) 제 성경을 보니 ‘aliens and strangers’의 부분에 이미 빨간색 밑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그 표현에만 슬쩍 관심했던 모양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영문 표기 'faith'가 대부분 믿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명역입니다. 우리말 번역 중에는 찬탄할 정도로 멋지게 번역돼 있는 것들이 적지 않은데, 이 말 또한 그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인간적(?) 차원에서, 세속적 차원에서 더 요긴하게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니 뭐니 하는 또 다른 복잡한 줄 따위는 잠시 잊고, 그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실물로 붙잡고 의지할 수 있는 요긴한 동아줄로 삼고 싶어집니다. , ‘굳은 신념이 있는 사람은 죽어서도 죽지 않는다로 말입니다. 제멋대로 그런 의미로 그 말들을 대하면 제 맘이 편안해지고, 힘이 솟습니다. 생각이 자유로울 수 있는 비신자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런 신념이 있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머물 때, 다른 사람들과는 뭔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은 외계인이거나 이방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그 신념을 지켜나가게 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그래야 다른 이들과는 많이 다른 삶을 굳건히 이어나갈 수 있게 하니까요. 아예 맘 편하게, ‘그래 난 그런 이들과는 애당초 다른 사람이니까, 그냥 내 방식대로 계속 이렇게 살아갈래...’ 하는 게 그 신념을 지켜내고, 목표를 이뤄내게 합니다. 그 신념의 내용이 무엇이냐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거야 각자의 몫이니 뭐라 할 수가 없지요.

 

어제도 교회에서 돌아오면서, 제 주머니에 긁적인 종잇조각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설교 시간에 메모해 둔, 바로 위의 구절들이 적힌 메모지를요. 아마 그걸 적고 있을 시간에는 목사님이 엉뚱한 얘길 했더라도 제 귀에 거슬리거나 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제의 교회행은 제게 득이 되면 됐지, 손해날 일이 없게 하기도 한 거죠. 빈손이 아닌 덕분에, 돌아오는 길 역시 평안한 덕분에 넉넉해진 마음으로 채워졌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평안하고 행복할 때만 타인의 평안과 행복에 관심하고 배려하게 되죠.

 

시시콜콜 세부를 따져야 하는 변호사답게(?) 교회에 다녀오면 뒷말이 아주 많은 가장에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니 차라리 교회에 안 나가도 된다면서, 잠시 물러섰다는 의처제에 대한 얘기도 편한 마음으로 집사람과 나눴습니다. 조금은 후유증을 꼭 남기게 마련인 뇌졸중을 겪고서도 외견상으로는 흠이 안 보이는 목사님의 빠른 쾌유를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성경 재활용 덕분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방식이야 어떻든, 어떤 선택을 하든, 저 하나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 하거나 하는 일만은 없어야 좋은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은 합니다. 늦긴 했지만, 그래도 늦철이 조금씩 들어가나 봅니다.                                                -溫草 [Feb.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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