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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2) : 마이산 등산 동행기 (2011. 4. 9)

[차 한잔]

by 지구촌사람 2011. 4. 18.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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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2) : 마이산 등산 동행기 (2011. 4. 9)

 

  한글 아이디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그 함의(含意)의 스펙트럼이 넓고 길다는 점이다. 광대역(廣大域)이다. 당사자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짐작만으로 대충 새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정도로, 일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예컨대, 글 중에서 아주 짧게 언급된 ‘나리꽃’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댓글에 간단히 적었지만, 최소한 서너 가지 이상의 의미로 해석된다.

 

  가장 초보적인 접근으로 읽혀지는 것은 우리말 애용의 태도다. 백합이나 장미 대신에 굳이 릴리나 로즈로 표기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거부를 거쳐 품어 안은 표기. 그런 이들의 경우에는 릴리나 로즈로 표기하려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가방끈 콤플렉스’*를 유쾌하게 극복한 상위(上位)의 정서 (약간 고급한 우리말 애용 태도)가 있다.

  또한, 생활 독서량**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릴리/로즈파(派)를 앞지른다.

  [* 註 : 자신의 탓과 무관하게, 좋은 학교나 상위의 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데서 받는 스트레스가 몸에 밴 경우에 붙여본 이름이다]

  [** 註 : 생활 독서란 일반 서적 이외에 신문/잡지는 물론, 글씨가 많은 생활 관련

             정보지(광고지, 알림 문서 등) 등을 읽어내는 것을 말하는데, 생활 독서량

             이 적은 이들은 유용한 생활 관련 정보 내역조차도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

             로 문자를 읽는 행위 자체를 기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한 가지의 짐작은 나리꽃에 대한 관심 내지는 애착의 표출이다. 즉, 이 나라에서 불리는 백합이란 것들이 나리꽃에 대한 대체 외래어로서 그 정체가 아주 모호한 것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나서, 우리의 나리꽃에 관심하면서 그 실체를 파악한 뒤에 한층 더 애착하게 된 경우다.

  즉, 오리엔탈백합이니 뭐니 하는 호칭들은 일종의 장사꾼적(的) 명명일 뿐 정식 명칭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러면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나리꽃들을 자신의 품속으로 더 깊이 끌어안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오리엔탈백합은 꽃꽂이용 절화로서 이제는 거의 필수품이 되다시피 한데다 적합한 대체 명칭이 없는 터라, 머지않아 정식 이름으로 오르게 될 듯하다.)

 

  거기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 보태지면 더욱 각별한 의미가 된다. 고향이나 첫사랑, 잊히지 않는 친구, 혹은 부모님의 무덤가라든가 하는 개인사(個人史)적 기억들과 엉켜진 경우가 대표적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자생 나리꽃*들을 실물로 대했거나 개인적으로 관심하게 된 경우, 개인사적 추억과 보태질 때 가슴속에 더욱 확실한 똬리를 틀게 된다. 나리꽃은 자신이 꼭 껴안아줘야 할 소중한 기억이자 아련한 아픔이 된다.

  [* 주 : 서비스 삼아, 우리나라의 자생 나리꽃 9종의 사진을 아래에 싣는다.

            참 이쁘다. 자세히 뜯어보면. 모든 꽃들은 낱개로 뜯어보면 죄다 그렇긴

            하다. 여인들도 그렇고...]

 

 하늘말나리  (우리 집의 애장품)                            땅나리

 

말나리                                               뻐꾹나리

 

     솔나리                                            참나리

 

칠갑나리 (칠갑산에서 이창복 박사 발견)              털중나리

 

 <사진 출처 : 마리 님>

하늘나리

 

    이처럼, 한글 아이디의 경우는 당사자의 해명으로 명확히 그 실물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 정체(?) 파악 -실체적 해석-이 어렵다.

  그럼에도, 저 위에 언급한 공통적인 면모 몇 가지는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오랜 동안의 관찰과 자가발전 해명, 그리고 백여 명을 넘기는 상담 사례들에 의하면.

 

  한글 아이디 애용자들의 주량은 개별적으로 천차만별이다. 개인차가 아주 크다.

  예컨대, 요즘 다시 ‘뜨고’ 있는 작가인 고등어 표 공지영 같은 경우는 소주가 2~3병이다. 배우 명계남이가 주축이 된 ‘빨간 진로’ 주당 모임 (지금도 병뚜껑이 빨간 색으로 생산되는 고전적인 소주만 먹어대는 주당 모임)의 순수한글 닉네임 여인은 그 모임을 이끌다시피 할 정도의 무한대 주량이지만 취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럼에도, 한글파들의 공통분모를 추출하자면 그 주량은 보통 이하에 가깝다. 주당은 드물다. 술을 하는 이들이 있어도 대용량의 호주가(豪酒家)들이 드물어, 차라리 애주가라고 귀엽게 불러주는 게 어울린다.

  주종 역시 30-40도 이상의 증류주 계통이 아니라, 15도 이하의 발효주들이다. 6도짜리 막걸리에서부터 8도의 맥주, 13-15도에 걸치는 포도주가 그들이 애호하는 주종이다.

 

  이들의 사랑 방정식은 3차 연립방정식이다. 미지수 이것저것을 늘어놓고 그 풀이과정과 답 모두가 어느 정도 자신의 입맛에 맞아야 한다. 그 나름의 출제문제를 미리 갖추고 있는 경우가 흔하고, 출제문제가 준비가 안 된 경우에는 뒤늦게 문제출제에 아주 고심한다. 문제 수준은 높지 않고 대체로 부드럽지만, 다루기 쉽지 않은 식물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상대평가 방식일 때가 많다. 흔쾌히 접수되는 사람에게는 에이뿔(A⁺)을 남발하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상대방이 고차원의 고등수학 문제를 들고 접근하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로 대응한다. 그런 문제를 들고 오는 것 자체에 경탄하고 감동하여 일편단심 고정 팬이 되거나, 고급문제 자체에 눈을 감아버리고 외면한다. 섣불리 ‘떵폼’ 잡고 접근했다가 단박에 퇴짜 맞는 일도 그래서 생긴다. 눈높이가 상대방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반면, 저 위에서 언급했던 외국어 애용자들의 경우는 문제가 단일하다. 하지만, 흔하지 않은 고급의 고등수학이다. 단칼에 그런 고급 문제를 풀어내는 상대에게는 그 자리에서 항복한다. 하지만, 아주 오래 낑낑거려서 풀어내는 사람은 문제를 풀고 나서도 감점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문제 내용은 강하거나 질긴 동물성이다. (마이클 월쩌식의 두꺼운 문화, 얇은 문화 [Thick-Thin Culture] 구분법으로 구분하자면 두꺼운 문화형이다.) 과시형, 즉효형(卽效形)이고 절대평가인데, 점수는 두 가지밖에 없다. 백 점 아니면 빵점. 자신의 눈높이를 고집하는 편으로, 거의 고정되어 있다시피 한다.

반면에, 우리말 아이디 그룹은 빵점짜리에다가 반 점까지 줘서라도 빵점은 주려 하지 않는다. C학점, 그 중에서도 ‘C⁺’ 점수를 제일 흔하게 준다. 뻔히 잘라야 할 사람에게조차도.

 

                                                       *

  한자어를 사용한 사람의 경우는 그 속내를 며느리도 모른다. 당사자가 입을 열어 밝혀주어야만 한다. 특히, 한자어인 듯한데 어떤 한자를 썼는지 모르는 경우는, 제 아무리 짐작으로 갈무리해봤자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식이다.

  한자어인지 한글인지 구분이 어려운 경우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예컨대, ‘연수’. 한글로는 그런 낱말이 없으므로 100% 한자어인 듯싶지만, 그런 경우도 쉽진 않다. 워낙 그 의미의 폭이 너른 까닭이다. 우리말 사전을 빌어, 뜻풀이는 생략하고 해당되는 단어들의 한자만 늘어놔 보겠다. 여러분도 재미 삼아, 낱말 뜻*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길.

[硏修] [年收] [年首] [延壽] [娟秀] [淵邃] [淵藪] [硯水]

[煙水] [煙樹] [練修] [戀愁] [緣修] [延髓] [年數] [年壽]

 

   [*사족 : 위의 것들 중, 아래 단어들의 뜻은 알아두면 괜찮은 것들이다.

       [延壽]=연년익수 (수명을 더욱더 오래 늘여 나감).

       [娟秀] :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움.

     [淵藪] : 못에 물고기가 모여들고 숲에 새와 짐승이 모여드는 것처럼

                     여러 사물이나 사람이 모이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延髓]=숨뇌=숨골 (척수 위, 다리뇌 아래, 소뇌 뒤쪽 사이에 있는

                                     원뿔 모양의 뇌 부분). ]

 

  ‘보암’의 경우는 앞서 얘기했다. ‘보암보암’의 줄임이라면 한글에 속하지만, ‘보암’이라는 우리말은 없으므로 (새로 만들기 전에는) 우리말이 되지 못한다. ‘우암’의 경우도, 거기에 사용된 한자어가 드러나기 전에는 그 의미해독이 어렵다.

  ‘상상’의 경우는 자백(?)이 있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상상(上想), 즉 윗길의 생각 내지는 한 번 더 생각하는 고급의 사고라는 뜻으로 자작한 명칭이다. 물론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앞서 외국어 그룹에 편성되어 잠깐 언급한 ‘우시’의 경우, 일본어 표기의 훈독음이긴 하지만 의미상으로는 한자어 그룹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당사자는 그 이름을 택하면서 어쩌면 두 가지 생각을 소등의 길마처럼 얹었을지도 모르겠다. 즉, 일본어에서 소(牛)의 의미로는 牛肉을 ‘규우니꾸’로 발음하는 것처럼 ‘규우’라고 읽는 음독이 더 흔한 편인데, 훈독음인 ‘우시’를 택하는 것으로, 소의 의미를 더 깊이 끌어안으려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말에서도 우직하지만 꾸준한 태도를 ‘황소걸음’이라고 하는데, 일본어에서도 소걸음을 ‘우시노아야미’라고 한다. [이 말에 쓰이는 牛와 步 모두를 훈독으로 읽는다. 특히 步를 ‘아루’로 읽지 않고 ‘아야’로 읽는 특이한 경우다.] 닉네임을 우시로 택하는 순간, 그러한 자신의 삶의 태도 -내공(內攻)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를 담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는 일본어 관련 업무를 하거나, 일본어를 전공했거나, 일본인과 관련된 어떤 소중한 내력이 있을 경우다. 그럴 때는 낱개의 삶들에 그어지는 밑줄로 일본어가 늘 따라붙는다. 직장 생활 내내 영어를 상용해온 내게 있어서 영어가 그렇듯이.

 

  이 한자어 애용파들의 경우는 대체로 말수가 적다. 웃음도 헤프지 않고 아끼는 편이라서 표정들이 경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표정에 가깝다. 거기에다 선 굵은 근육들이 얼굴에 자리 잡으면 소도둑놈(?)같다는 오해 어린 애칭도 덧대진다.

  더구나 체구들도 대체로 중대형일 때가 흔하다. 거기에 무뚝뚝함까지 보태지는 일이 흔해서, 경상도식의 남성다움(?)에는 한몫한다. 하지만, 자상함과 통하는 곰살궂음과는 거리가 멀어서 이른바 즉석 미팅과 같은 데서는 잘 안 팔린다.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도 다음에 언급할 비밀무기(?)가 있다.

 

  이들에게서 보이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다. 술과 성애(性愛) 분야에서다. 음주에서 청탁불문(淸濁不問) 두주불사형(斗酒不辭型)이 많다. 대호가들이지만 소화력이 강해서, 주사(酒肆)는 드물다. 뒤끝이 지저분한 경우도 많지 않다. 건강이 따라줄 때까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대체로 조용하게 많이 먹는다. 술이 거나해져야 웃음소리도 높아지고 호탕해진다. 한 마디로 대용량의 호주가(豪酒家)들일 때가 많다.

  성애(性愛)에서는 엄청 엉큼(?)하다. 세거나 질기고, 밝힌다. 이따금 흉악한(凶惡漢)처럼 생긴 거구의 거친 사내 옆에 비교도 안 되게 작고 귀여운 여인이 졸래졸래 붙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이들처럼 속궁합이 잘 맞거나 밝히는 경우에 그 효용을 발휘한다. 괴상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 된다. 하지만, 다른 경우에서는, 특히 곰살궂을 정도로 챙겨주기를 바라거나 뭐든 잽싼 몸놀림을 바라는 사람의 경우에는, 상대에 대해 늘 기본적인 짜증을 매달게 살게 만들기도 한다.

 

  여인들의 경우에는 이 한자어 애용의 경우가 좀 드물다. 사용하는 이들은 대체로 가방끈이 길거나, 독서량이 많다. 특정 단어에 대한 의미 애착이 강하고, 그 새김질은 견고하며 끈질기고 깊다. 한글 애호파 중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흔치 않은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도 통한다. 의미 변환이 가능할 정도로.

  예컨대, 내가 즉흥적으로 만들어 쓰고 있는 ‘풀꽃사랑’도 그런 경우다. 내 낙관*에 쓰고 있는 건 ‘온초(溫草)’인데, 溫草而愛世의 준말. 풀/나무를 껴안고 사랑해서 세상도 보듬자는 의미다. 줄여서 <풀꽃사랑, 세상사랑>으로 블로그에 표시한 게 그 풀이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내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 터에 어디서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 온초를 대뜸 쓰면, 누구도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다. ‘풀꽃사랑’으로 풀어 쓴 건 그 때문이다.

  [*주 : 낙관(落款)은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 중국에서 나온 말로 도장/

            비석 등을 새길 때 음각자(陰刻字)를 '관(款)', 양각자(陽刻 字)를  '지(識)'

           라고 한다. 그래서, 낙관 도장은 일반 인감과는 반대로 글자들이 음각되어

           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내 경우는 아호의 경우에,  반대로 양각했다.

           일부러... ]

 

 

    이제 아이디 이야기를 접고, 다른 얘기로 넘어가자. 끝없이 이어져도 모자랄 부분이긴 하지만, 그러다가는 며칠을 넘겨도 이 웃기는 산행 동참기 잡문을 끝내기 어렵게 된다. ㅎㅎ하.

  아참. 깜박 ‘세잎 클로버’를 잊을 뻔했다. 저 위에서 약속했던.

 

  ‘세잎 클로버’는 관찰자를 긴장시키는 이름 짓기다. 복잡다단하고 세심해서다. 우선, 띄어쓰기가 눈에 띈다. 자신의 이름(代名)을 띄어 쓰는 일은 드물다. 그 만큼 꼼꼼하거나, 자신의 이름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존심이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다.

  이 띄어쓰기로 보아, 출신학교는 문과라 해도 비문학 계열인 상경계이거나 아니면 이과 계통일 가능성이 높다. ‘세잎’의 경우는 ‘세 잎’으로 띄어 써야 옳고, 붙여 쓰는 경우는 ‘세잎꽃’이나 ‘네잎꽃’처럼 전문용어일 때뿐이므로. 하기야, 이 띄어쓰기는 문학 계열의 학과를 졸업해도 개별적으로 부단히 노력하기 전에는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고지이긴 하다. 늘 국어사전을 들춰봐야 할 정도로 어렵다.

 

  이 세 잎 클로버는 당사자의 발언처럼, 보통의 클로버이다. 무턱대고 행운을 찾아 헤매는 네 잎 클로버의 태도를 첫 마디에 거부하는 단호함. 그 만큼 행운이니 뭐니 하는 걸 믿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쟁취하려는 노력파이자 내실파임을 숨기지 않는다. 부단한 노력과 성실한 삶을 지향하는 태도가 안팎으로 깔려 있다.

  하지만, 그 단호함은 내향성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진중해서 저절로 말수가 줄어들거나 사람들과의 섞임에서 무거움을 덜어내지 못하게 될 때도 있다. (진중鎭重이란 말 자체에 무거움이 들어가 있다.) 유심히 관찰한 사람이라면, 그날 산행을 한 사람들 중에서 이 분처럼 적은 쪽수의 사진을 찍거나 찍힌 사람이 한둘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으리라. 그 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게 몸에 배게 된다.

 

  클로버는 은근히 복잡한(?) 풀이다. 우리말로는 토끼풀이라고 해서 토끼가 잘 먹고, 토끼처럼 귀여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것을 토끼풀이라고 부를 때와 클로버로 부를 때는 그 어감이 조금 다르다.

  “꽃반지 끼고~~”의 가사에 애용되었듯이, 토끼풀은 어린 시절 그 꽃대를 매단 줄기를 뽑아서 서로의 손에 시계나 반지로 매달아주고 매달던 추억과 더 많이 연결된다. 축약하자면, 토끼풀은 어린애용이고 시골/들판 냄새가 더 나는, 풀꽃의 하나다.

 

  하지만, 클로버는 조금 달라진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풀냄새가 아닌 다른 냄새가 더 난다. 성인용 용어로 격상되면서 실물 풀꽃의 의미보다는 ‘네 잎 클로버’로 직행하기도 한다. 클로버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네 잎 클로버’를 떠올릴 정도로 단순화된 경우도 있을 정도로.

  ‘세 잎 클로버’로 특화하여 작명하는 순간, 경계하려 든 것도 바로 그러한 의식의 직행을 거부하거나 막으려는 것이었지 않았나 싶다. 대뜸 행운의 직행열차 무임승차를 바라는 네 잎 클로버를 떠올리지 말고, 그냥 평범한 보통의 삶들에 충실하라, 나는 그처럼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고, 여러분도 그러기를 바란다...는 메시지. 그걸 세심하고도 단호하게 담아내려는 고집 같은 게 느껴진다.

 

  그리고, 당사자가 거기까지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잎 클로버의 위에 있는 것도 있다. 바로 다섯 잎 클로버. 네 잎짜리는 행운이지만 다섯 잎이 되면 그건 악운으로 풀이된다. 복이 지나친 경우를 경계하려 함일까.

  여기에 한 마디 더 보태자면, 네 잎이든 다섯 잎이든 알고 보면 모두다 비정상이다. 네 잎짜리나 다서 잎짜리 모두 개체 돌연변이에 속한다.

 

  나는 클로버라면 도사급(?)에 든다. 토끼풀이 무더기로 나 있는 데에 한번 멈추면 대체로 2~3분 이내에 네다섯 개의 ‘네 잎 클로버’를 손에 든다. 간혹 다섯 잎짜리도 한두 개 함께 뜯어 들게 되기도 하고.

  별다른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토끼풀 전체를 빠뜨림 없이 빠르게 좌우로 훑으면서도 놓치지 않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소득이 꽝인 사람들은 대충 살피거나 건너뛰어 살피는 탓이고, 내가 빈손이 되지 않는 건 빠르되 빠뜨림 없이 살피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그뿐이다.

 

  위에 적었듯, 네 잎 클로버는 개체 돌연변이다. 뿌리로 번식하는 토끼풀인지라 돌연변이는 뿌리를 연결고리로 해서 이뤄진다. 그 때문에 네 잎 클로버가 발견되면, 그 뿌리에 연결된 녀석들은 모두 같은 네 잎짜리들이 된다.

  그 때문에 한번 발견되면 최소한 세 개 정도가 한꺼번에 나오고, 무성할 경우는 대여섯 개 정도가 된다. 모두 그 한 뿌리에 연결되어 있어서다.

 

  어쨌거나, 세 잎 클로버를 대명(代名) 삼아 살아가는 삶은 참으로 바람직하다. 이쁘다. 나 역시 그런 쪽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이러한 삶의 태도에 동참하려는 이들에게 필수품이 있다는 걸 꼭 얘기하고 싶다. 뭐든 손발의 수고로 그 실물을 붙안거나 확인하려는 마무리 과정을 꼭 거치라는 것이 그것이다. 머릿속이나 가슴으로 느끼고 껴안은 것들은 꼭 두 손발로도 껴안아야만 진정으로 자신의 일부가 된다.

  토끼풀 이야기 하나를 하기 위해서도, 나는 내 두 발로 토끼풀밭을 수도 없이 찾아가서 직접 따고 그걸 그 자리에서 보관용 휴지 같은 것으로 싸서 제대로 잘 말린 뒤 코팅하거나 했다. 그걸, 내가 아는 이들이거나 나를 찾아온 이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에게도 행운이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그들의 노력에 기쁨이 있기를 바라곤 했다. 요즘은 아예 문방구에서 팔기도 하는 네 잎 클로버지만, 그걸 받는 이들은 내가 직접 따서 코팅한 것들이라는 것쯤은 말 안 해도 안다.

 

   아이디 관련 이야기가 한없이 길어졌다. 하기야, 이 세상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장 길다.

  서비스 삼아, 내가 땄던 네/다섯 잎 클로버들의 실물 사진 몇 장을 올린다. 다음 이야기들은 짤막짤막하게 압축하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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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잎 클로버는 이처럼 한꺼번에 많이 나온다.   다섯 잎 클로버(우)

 

이태리 출장 중에...그 버릇이 어딜 가나. 클로버는 전세계(온대지역) 공통.

다섯 잎 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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