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 택배 서비스]작가들의 흔한 실수 : ‘-하다’의 띄어쓰기 [미안해 하다(x)/미안해하다(o); 어처구니없어 하다(x)/어처구니없어하다(o)]
작가들의 흔한 실수 : ‘-하다’의 띄어쓰기 [미안해 하다(x)/미안해하다(o); 어처구니없어 하다(x)/어처구니없어하다(o)]
어느 소설가의 글을 대하다가 ‘미안해 해야 하는 일인데도 도리어; 그는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어이없어 하는 표정부터 지었다.’ 등이 계속 눈에 들어왔습니다. 읽다 말고 책을 덮었습니다.
그의 잘못된(또는 기본적인 어법 공부를 건너뛴) 버릇 하나가 되풀이되고 있어서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출판사 교정 직원들이 나서서 바른 표기로 고쳐 주었으련만, 요즘에는 그런 행운을 대하는 일도 갈수록 줄어듭니다.
요즘 작가들에게서 흔히 대하는 아주 잘못된 태도의 하나는 그저 반짝이는 표현들에만 눈을 반짝이는 버릇들입니다. 짧게 심하게 비유하자면, 브레이크가 고장 나고 엔진이 시원찮은 차에 도색만 신경 쓰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그 결과는 이상문학상을 제정/시행하던 출판사가 쇠퇴일로를 걷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계속 시행될지도 의문인 것이 상금 마련도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의 단행본 출판 시장이 라면이나 속옷 시장 규모보다도 적은데, 그나마 인문학 쪽이나 자기계발서(내용이 무엇이든, 최소한 굵은 뼈대들은 들어 있습니다) 쪽이 그걸 지탱해 주는 걸 다행이라 위로하는 게 참으로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잘못된 버릇으로 기본을 건너뛴 무성의한 글은 글의 진정성이 이미 훼손된 글, 작가의 영혼이 깃들지 않은 글입니다. 위험한 습작이기도 한 것이, 저자의 기본적 책무인 자기 검열을 생략한 채 출산한 무책임한 아이이므로 태어날 때부터 정신적 사생아로 숙명 지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버린 어미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매섭고 차갑죠. 작가의 언어는 그 작가의 정신적 지문이라면서 다가오는 죽음의 문턱에서까지도 토씨 하나까지 조탁한 최명희 님의 <혼불>이 꺼지지 않는 영혼의 불빛으로 받들리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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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말들에 쓰인 ‘-하다’는 형용사의 활용형에 붙어 동사로 만드는 접미사입니다. 예를 들면 형용사 '슬프다/기쁘다/아프다'의 동사형은 '슬퍼하다/기뻐하다/아파하다'인 것처럼요. 형용사 '-아/-어' 꼴의 활용형('슬퍼-/기뻐-/아파-)에 접미사 '-하다'를 붙여 동사로 만듭니다. 당연히 한 낱말의 동사가 되는데, 이처럼 품사가 바뀌는 것을 ‘전성(轉成)’이라 합니다. 동사로 만드는 접미사 ‘-하다’가 붙어 만들어진 것들은 그래서 전성동사라 합니다.
위에서 문제가 된 말들을 살펴볼까요. 형용사 기본형으로 돌아가 보면, 각각 ‘미안하다/어처구니없다/어이없다’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어처구니없다’가 ‘어처구니 없다’라는 두 낱말이 아니라, 한 낱말의 형용사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말들의 동사는 형용사의 ‘-아/-어’ 활용형에 접미사 ‘-하다’를 붙이므로, 각각 ‘미안해하다/어처구니없어하다/어이없어하다’가 되는 겁니다. 위의 소설가처럼 띄어 적으면 잘못인 거죠. 띄어 적을 수 없는 한 낱말의 동사니까요.
전성동사들은 그 수가 엄청 많습니다. 그것들 모두를 사전에 올릴 수가 없습니다. 사전에 오르는 것들은 많이 사용되거나(사용 빈도), 글자 그대로의 뜻 외에 다른 뜻도 지닌 복합어들입니다(의미 특정). 그래서 사전 검색을 해보면 올바른 꼴인데도 표제어에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사전에 표제어(독립 단어)로 오르지 않았으니 한 낱말이 아니라고 여겨서 임의로 띄어 적으면 안 됩니다!
[주의] 접미사 '-하다'를 붙여 동사를 만드는 것은 형용사에 해당합니다. 동사에는 이미 '하다'의 의미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꺼리다'에는 '싫어하다'의 의미가 들어 있으므로, '꺼려하다'는 잘못입니다. 따라서 '꺼려하는 사람에게 굳이' 등의 표현은 '꺼리는 사람에게 굳이'로 써야 올바른데요. 일부 작가들은 이런 잘못된 표현들도 용감하게 남용하고 있습니다.
'돌리다'라는 동사의 경우에도 '돌려하는'이라는 괴상한 말을 만들어 쓰는 사람도 보이는데, 이 또한 잘못입니다. (예) '풍물놀이에서 상모는 돌려하는(x)/돌리는(o) 것'. 그러나 '말을 돌려(서) 하는 사람'과 같은 경우는 다릅니다. ‘-하다’가 접미사로 쓰인 것이 아니라, '돌리다'와 '하다'가 별개의 본동사로 쓰인 경우입니다. [주의 : 그러나 이때도 '돌려하는'으로 붙여 적으면 잘못입니다. 아래 설명 참조.]
이처럼 ‘하다’가 동격으로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럴 때 동격 여부를 알아보는 손쉬운 방법은 예문에서처럼 앞말의 활용형에 ‘돌려(서)’와 같이, ‘-서’ 등을 넣어보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뜻이 연결되면 뒷말과 동격임을 짐작할 수 있게 되죠. ‘~를 하고 나서 ~를 하다’가 되니까요. 두 가지가 별개의 동격 행위이므로 뒤의 ‘하다’도 앞의 동사와 동격, 곧 본동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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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접미사 ‘-하다’는 사실 온갖 것들 뒤에 붙어서 용언으로 만듭니다. 가장 흔한 것이 행위성 명사 뒤에 붙어서 동사로 만드는 것인데요. ‘증오+하다, 사망+하다, 축하+하다’ 등이 ‘증오하다/사망하다/축하하다’라는 한 낱말로 변하는 것이 대표적인 전성 사례에 듭니다.
그 밖에도 아주 많은 사례가 있는데요. 아래에서 보듯 일부 의성/의태어나 성상 부사, 어근, 의존명사 뒤에도 붙어서 동사나 형용사를 만듭니다.
사랑하다/식사하다/사고하다/형상화하다 : 행위성 명사와 결합
덜컹덜컹하다/반짝반짝하다/소곤소곤하다 : 의성어/의태어와 결합
달리하다/돌연하다/빨리하다/잘하다 : 부사와 결합
흥하다/망하다/착하다/따뜻하다 : 어근[의미소]과 결합 *형용사도 만듦.
체하다/척하다/듯하다/뻔하다 : 의존명사와 결합 *보조동사/보조형용사를 만듦.
정리합니다.
- 형용사 활용형 ‘-아/-어’ 꼴에 접미사 ‘-하다’가 붙으면 동사가 된다. 이때는 한 낱말의 전성동사이므로, 접미사는 앞말에 붙여 적는다는 원칙에 따라[예외 없음], 반드시 붙여 적어야 한다. <예>어처구니없어하다(o)/어처구니없어 하다(x). [비교] 미안해할 줄도 모르는 사람(o); 내(가) 미안해(서) 하는 말이야( o) ⇒내 미안해 하는 말이야( o).
- 접미사 ‘-하다’는 행위성 명사나 형용사 외에도 의성/의태어, 성상 부사, 어근, 의존명사 뒤에도 붙어서 동사나 형용사를 만든다. <예>구체화하다/반짝반짝하다/잘하다/망하다/척하다.
- 접미사가 아니라 동격의 본동사로 쓰인 경우에는 반드시 앞말과 띄어 적어야 한다. <예> 말을 돌려 하는 게 버릇이 된 사람.
[참고] 이 '하다'가 본동사로 쓰일 때, 앞말들이 낱말이 아닌 구의 형태일 때는 '하다'와 띄어 적는다는 원칙이 있는데,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히 헷갈리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평행 주차하지 마시오(x), 평행 주차 하지 마시오(o)'인데요. 이유는 '평행 주차'라는 한 낱말의 명사가 없어 구의 형태이므로 '하다' 앞에서 띄어 적어야 합니다. 한 낱말의 명사라면 접사 '-하다'를 붙여 하나의 동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띄어 적는 이유가 선명해집니다. '평행 주차하다'로 적으려면 '평행'이 부사가 되어야 하죠. 좀 더 상세한 내용은 다른 게시판을 참고하시길.
https://blog.naver.com/jonychoi/221013683736
[재미] 현재 순우리말에서 가장 긴 낱말도 이 '-하다'가 들어간 다음과 같은 말들입니다 : ‘훌근번쩍훌근번쩍하다’[여럿이 다 또는 자꾸 눈을 함부로 흘기며 번쩍이다]; ‘씨근펄떡씨근펄떡하다>쌔근발딱쌔근발딱하다>시근벌떡시근벌떡하다>새근발딱새근발딱하다’; ‘헐레벌떡헐레벌떡하다’
그 밖에, 우리말과 영어에서 가장 긴 말들에 대해 재미있는 뒷얘기들이 궁금하시면 이곳으로 :
https://blog.naver.com/jonychoi/221472709545
-溫草[Feb.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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