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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古家)에서 만난 여자 친구

[내 글] 연담(燃談)

by 지구촌사람 2012. 12. 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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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크로스 오버 현악4중주단 Bond의 Viva)

 

                   고가(古家)에서 만난 여자 친구

 

                                                                                      최   종  희

    

  안산에서 시흥쪽으로 돌아올 일이 있던 날, 문득 시흥으로 내려와 살고 있는 두 친구가 떠올랐다. 저녁 식사로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전화를 했더니 금방 나오마  한다. 목소리에 반가움이 잔뜩 실려 있다. 하기야 그들을 마지막으로 본 시간 띠도 조금씩 탈색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한 해 가까운 세월이 그 위에 더께처럼 쌓여가고 있는 사이에.

  그들이 서울의 동쪽에 살고 있을 때도 우리는 두세 달을 넘기지 않고 서로 찾아보며 지냈다. 그러던 것이 시흥으로 옮겨온 뒤로는 되레 뜸해졌다. 거리로 보아서는 훨씬 더 가까워진 셈인데도.


  누구의 탓이라 할 것 없는 서로의 불찰(不察). 서로 챙겨주지 못함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 쪽이 켕기면서 의식의 미립자 전하(電荷)들은 부유(浮游)하기 시작한다. 마음의 기상도가 서서히 흐림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물리적인 상거(相距)의 탓으로 귀착되는 일은 드물다. 몸과 마음에 그저 주렁주렁 매달기에 더 바빠진 '바쁘다'는 말이 세상을 휩쓸게 되어서는 더더욱 그리 되어간다. 그 친구들과의 사이에도 애꿎은 시절 탓이 자꾸만 늘어가고 있었다.

    

  약속장소는 <고가(古家)>. 월곶포구에서 해변 도로의 노변 주차장을 끼고 일 킬로 남짓 내려오면 보이는 2층집. 그곳은 몇  해 전 인근에서 살고 있는 어느 분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된 집이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소래포구에 왔다가 그 집이 생각나서 찾아 봤더니 이내 눈에 띄던, 찾기 쉬운 길가 집이다.

  이층에 자리잡은 고가의 창가에 앉으면, 소래포구와 월곶포구가 서로 이마를 맞댄 채 한 줄기로 보듬고 있는 바닷물 길이 눈 아래에 펼쳐진다. 지척이다.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리면 해안 도로변에서 사철 가림 없이 망둥이 낚시에 맛들어 있는 초보 낚시꾼들이 들어온다. 그들도 그곳의 고정 출연진이다.

  

  명패로 매단 고가답지 않게, 그 집은 헌 집이 아니다. 지은 지 대여섯 해쯤이나 되었을까. 한옥 안채처럼 꾸며진 가게 안은 수더분하다. 화려한 꾸밈이나 색깔이 없다. 깔끔하면서도 대체로 언제나 고즈넉하다. 칼국수나 산채비빔밥 등을 입맛대로 시켜먹을 수도 있고, 차 한 잔을 나누거나 동행과 조용 조용 동동주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

    

  내가 그 집을 찾는 이유. 그건 노을 때문이다. 고가의 빼어난 붙박이 흥행 상표는 단연 저녁노을이다. 해질 무렵, 나만을 위해 오붓하게 도려낸 듯한 고가의 창문이 통째로 선사하는 바닷물 길과 그 끝으로 이어지는 수평선.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지는 노을의 장관. 그건 혼자 보기 아까운 황홀경이다. 깊이를 모르는 감흥의 우물이자, 소리 없는 떨림판의 집결지가 된다.

  석양에 물든 노을을 대하면 없는 동행이라도 찾아서 옆에 앉히고 싶어진다. 함께 맛보노라면 감동이 몇 배로 더 부풀어 오를  듯하다. 두 친구에게 약속 장소를 고가라고 말했을 때, 그들의 목소리에 물방울처럼 생기가 맺혔던 건 그 때문이었을 게다. 그들도 내 선전(?)에 넘어가 고가 출입을 하는 처지다.

    

  나는 저녁놀이 좋다. 특히 바닷가에서 막힘없이 통째로 대하는 노을 앞에서는 내 가슴이 자꾸 좁게만 느껴진다. 갈비뼈를 들어내서라도, 답답하게 칸막이 쳐진 내 가슴을 활짝 열어 넓히고 싶지만, 내가 겨우 하는 짓이라고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숨을  참는 게 전부다.

  그리고는 낙조를 기다린다. 노을이 검붉은 피울음을 토할 때 쯤, 수평선이 그걸 받아 안을 채비를 갖추는 모습을 기다린다. 그 느린 소멸의 장관 앞에서 숨을 멈춘다. 이윽고 잦아든 울음을 말없이 다독이며 한풀 꺾인 뜨거움까지 죄다 조용히 품어 안는 바다. 나는 비로소 그 너른 바다 가슴 앞에 넋을 놓으며 날숨을 쉰다.

    

  바닷가의 노을은 소리 없는 웅혼함이자 황홀한 서러움. 그래서인지 황혼의 노을 바라기는 웅장한 교향곡을 묵음(默音)으로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널브러지는 하늘이 땅에서 숨죽여 흐느끼는가 하면, 그걸 껴안은 바다는 어깻짓 하나 없이 도닥여주는 정겨움이 있다. 한없는 속깊음.

  내가 요즘 들어 인천의 연안부두 근처의 음식점들을 뜬금없이 짚어내어 찾아드는 일도, 지난 해 며칠을 머물며 서성거렸던 코타 키나발루의 해변가 쉼터를 잊지 못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모두 그 노을 탓이다.

    

  올해 새해 첫날, 사랑을 다짐하며 긁적였던 잡문에서조차도 빠지지 않고 고개를 내밀었던 노을은 그러므로 내 의식 속에서 잠들지 못하는 또 다른 형태의 사랑병이다. 관심을 넘어서서 이제는 애정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고질병. 내 스스로 내치기에 힘겨운 지병으로 끌어안고 지내고 싶다.

  자연 속에서 내 모습을  읽어내면서 맥을 놓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하는 놀음. 웃긴다고나 해야 옳은, 때늦은 혼자 놀음이다.

    

                                                               *

  노을의 상념에서 벗어날 무렵, 두 친구가 들어서며 손을 흔들어댄다. 여전히 여인의 목소리가 더 크고 높다. 보이지 않는 울대조차 걸걸한 듯싶어서 이따금 중성이 아니냐는 힐난 아닌 질문을 자주 받기도 하는 여류화가. 동행인 사내는 몇 해 전 희망  퇴직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대기업 중역 생활을 접었다.

  내 친구 둘. 그들은 부부다. 그럼에도 두 친구라고 구분한 것은 여인이 그렇게 해달라고 해서다. 오래 전부터 그런 대우를 그녀가 원했다. 그녀는 내 오랜 친구인 그녀의 남편을 만날 때마다 거의 동석하다시피 했다. 내가 그들의 집을 방문할 때도 그녀는 안주인으로서보다 동석자로 참례할 때가 더 많았다. 그게 오랜 동안  이어지다 보니, 그녀는 친구의 아내로 머물기보다는 내 친구의 하나로 당당하게 대우받기를 자청했고, 우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남편의 동의를 힐끔거리는 내 눈치보기에 그가 호쾌하게 재청 삼청으로 화답한 뒤의 일이다. 십여 년도 더 되었다.

   

  즐겨 앉는 창가 쪽에서 술 한 잔을 했다. 저녁식사 시간으로 이른 탓도 있었지만, 예의 그 황홀한 노을 앞에서 이죽이죽 밥을 떠넣는 일은 우리들 모두에게 내키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동동주가 두 병째로 들어설 즈음이었던가. 우리들은 술잔 비우는 속도를 늦추고 딴전들을 부리기 시작했다. 주위에 보이는 낙서들에게 관심하기로 한 것이다. 슬금슬금 음주 운전이 걱정되기도 했던 덕분(?)이었을 게다. 틈을 놓치지 않는 노회(老獪).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들은 조금 전에 사라진 노을이 우리에게 끼얹고 간 온갖 상념들의 무게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했다고 해야 한다. 그 장엄한 추락과 침몰, 광대무변의 순간적인 변화가 끌어안는 그 서러운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는 뼈속까지 주눅 들고 있었다.

   제 혼자 불쑥 솟아올라 갑작스런 도약으로 출현하는 해돋이에 비해, 하늘을 꽉 채운 노을을 거느린 채 아주 큰 걸음으로 느리게 사라지는 해너미의 의연함에 우리는 이미 숙연해진 다음이었다.

    

  우리들은 테이블과 창턱 근처에 조그맣게 적혀져 있던 낙서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술 한 잔 걸치는 데면 어디서고 가끔씩 대하는 그 익숙한 구절들...... 어째서 술 한 잔들을 하면 거의 비슷한 사념들에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 거기엔 시대의 구획도 나이의 구별도 요긴하지 않다.

  - ooo과 ooo 십년 뒤 오늘 이곳에 들러 오늘처럼 마주 하리라. 199o년 o월 o일

  - 저 황혼이 싫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oo

  - 우리두 그렇다. xx와 oo

  - 내 맞은 편의 저 아름다운 눈동자를 영원히 내 안에 담고 다니리라.

    oo년o월o일. oo

    

  가장 흔한(?) 재방문의 약속에서부터 영원한 청춘 기원까지 갖가지다. 우리들은 몇 해 전에 이곳에 들러 맞은 편 여인을 상찬하던 친구가 지금쯤은 그녀를 무사히 담아 안고 다니고 있기를 기원했다. 그러자, 묘하게도 낙서 대열에 끼어들고 싶어졌다. 술김이 거든 일이기도 했지만, 우리들 세 사람은 여전히 악동이기를 즐겨하는 점에서 늘 손뼉소리가 하나로 되는 팀이기도 했다.

  창가여서, 마땅한 낙서 공간을 찾아내기가 제일 쉬운 내가 첫 번째 주자로 꼽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떠오르는 대로, 잔글씨로 적어나갔다. 제법 너른 공간의 삼분지 일쯤 차지할 정도로.

 

   - 여인들은 사랑을 사랑한다. 성애에 목말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인이라

     할지라도 정작 간절히 바라는 것은 사랑의 분위기에 끌려 들어가는 일이다.

     사랑의 정서에 휩싸여 오금 저리고 싶어한다. 여인의 사랑은 감흥이 육신을

     앞선다. 언제나, 누구나...... 그러므로 여인들의 사랑은 원초적으로 사내들

     보다 순박하고 정결하다.             - 뒤늦게 그걸 깨달은 모자란 머스마가.

    

  뒤이어 여자친구가 낙서하기 좋은 내 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리고는 내 낙서를 읽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 에이. 뭐 이런 늙다리 소리를 써놓고 있노?..... 시작이 이리 되었으니 할

    수 읎지 머. 나도 대구(對句)나 하나 달고 말아야지. 내 낙서에 시비하지

    말거래이, oo야.

    

  난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순간적으로 떠오른 어절들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친구인 그녀가 여인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로...... 하지만, 써놓고 나서는 아차  싶었다. 혹시나 했다. 그리고 그때 술기 깔린 그녀의 목소리에서 순간적으로 습기를 느꼈던 것은 나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낙서 밑에 더 작은 글씨들이 이어졌다. 글귀는 단출했다.

  - 언 놈인지 복두 디게 많다. 세상 다른 켠에는 홍시고 땡감이고간에 감 맛 본

    지 까마득한 빈촌의 촌부들이 아직도 즐비한 세상인데...... - 무작정 시비를

    걸고 싶은 날에, 어느 <매친>년이

    

  그녀에게 옆자리를 내주었던 내가 먼저 그걸 훑었다. 그리고 여인의 얼굴도 잽싸게 훑었다. 시치미를 뚝 떼고 무연을 가장한  그녀의 얼굴에서 장난꾸러기의 모습이 빠른 훑기로 지나갔다. <매친> 년이라면서, <맺힌>과 <미친>을 일부러 뒤섞어 놓은 걸 내가 짐작했을 때였다.

  맞은편의 사내가 느리게 물어왔다.

  - 우리 마나님은 뭐라고 흥얼댔는고? 우리 여사님은 술 한  잔 낙서가 진담일 때가 더 많은 디 말여...... 내 몫까지 다 적으셔.

    

  나는 그가 돋보기 없이는 잔글씨를 읽을 수 없음을 떠올렸다. 즉흥적으로 개작을 했다.

  - 우리도 십 년 뒤 이 자리에서 다시 노을을 껴안으며 마주 할 수 있을까 몰러...... 특히, 우리 낭군님이 걱정이랑게.

  사내는 너털웃음으로 응수해왔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스름이 짙게 깔리기 시작한  바다는 이미 흑회색으로 단색 도배되고 있었다. 어둠과 밝음을 맞대고 있는 창문에 그들 부부의 모습이 뿌옇게 어렸다.

  나는 살살 도리질을 쳤다. 희망 퇴직자들에게 번지고 있을 희망 없는 여유가 사내에게서도 어렴풋하게 어리고 있는 듯했지만 그건 아닐 거라고 도리질을 쳤다. 그리고, 까닭 모르게 갑자기 심보가 가난해진 화가 친구의 성급한 독백도 유리창에까지 뒤엉켜 들 정도는 아닐 거라고, 나는 내쳐 마음속으로 도리질을 쳤다.

    

   그리고, 그날 내가 그 고가로 그들에게 저녁노을을 보러 오라고 꼬드긴 것은 왠지 크게 잘못한 일인 것만 같았다. 뭔가 내가 두 친구에게 수순착오를 저지른 것만 같았다. 서러운 황혼을 남들보다 앞당겨 맞이하고 있는 듯한 그들에게.

  운전대를 잡고 혼자서 돌아오는 길에 그런 느낌이 꽤 오랜 동안 나를 사로잡았을 때, 내가 뭔가를 빠뜨렸다는 걸  뒤늦게 생각해냈다.

   

  그 고가(古家)는 말만 고가지 실제로 낡은 집은 아니었다. 돌아보면 새 집이나 마찬가지로 멀쩡했다. 그리고, 그 노을은 하루의 조용한 마무리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다음 날의 힘찬 일출을 위한 장엄한 예비 동작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고가에서 맛보던 노을은 새로운 시작을 잉태한 말없는 약속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걸 우리 셋이서 나눠가졌어야 했다. 나는 두 친구들을 전송하면서 인사말에 그런 말을 담아내지 못한 것이 자꾸만 아쉬움으로 맴돌았다.  [Nov.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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