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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思花, 너마저도!

[내 글] 연담(燃談)

by 지구촌사람 2012. 6. 25.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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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相思花, 너마저도!

                                                        최  종  희

  오늘 아침 옥상에 올라 활짝 꽃을 피워 올린 널 보고 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엊저녁 말복이라고 맛있게 쑨 닭죽을 쩝쩝거리고
있을 때만 해도 옆에서 말없이 봉싯거리고만 있던 네가, 이 아침엔 

키 작은 동생들이랑 동무들이랑 모두 데리고 화사한 웃음을 띄워
올리고 있더구나.
  출근길이 늦어지는 줄도 모르고 물주기 외에도 풀뽑기로 시간을
더 보낸 것은 모두 너 때문이었다. 네 곁에 머문 시간은 비록 짧
았지만 다른 것들 앞에서 머물 때도 나는 내내 너를 품어 안고 있
었다.
  너의 그 도발적인 자태에서 어른거리는 핏빛 戀書를 만지작거리
면서.

  너는 뭐랄까. 여러 개의 대문을 지나야 안뜰 한 조각이라도 기
웃거릴 수 있는 대갓집의 여인이다. 내게는.
  네가 그 토란 같이 실한 엉덩이 아래를 죄다 담가두고 있는 흙
주변에 잡초 하나 솟아오르지 못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풀 한 포
기조차 감히 너를 범접할 엄두를 못 내고 서성거리고만 있지 않더
냐.


  뿐이랴. 네게는 군더더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꽃대를 겸한 새
끼손가락 만한 줄기 끝으로, 어른 주먹 하나로는 가릴 수 없을 소
담한 꽃뭉치를 은근한 연분홍색으로 쏟아낼 뿐이지 않더냐, 너는.
  이파리 하나 없어 마냥 외로워 보이는 꽃대궁에 얹힌 채로, 그
화사한 꽃가마를 타고 있는 기분이 어떻더냐. 알몸이나 마찬가지
인 대담한 노출이 되레 시원하더냐.


  하지만 말이다...... 미안하지만, 네가 누드 모델이 되는 순간
에도, 내게는 여전히 구중심처의 여인인 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다짐 삼아 꼭 해두고 싶구나.


  네게 발걸음이 잡힌 탓에 늦게 도착한 신도림역에서 빈 차를 기
다리지 못하고 허둥지둥 뛰어오른 전철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서 앉은 이들에게 초점 없는 시선을 던지고 있는 사이에도 너는
내 가슴속에서 여전했다.
  발가벗고도 부끄러움 하나 없이 그 큰 꽃대접을 이고 빠끔하게
웃어대고 있는 네 안이 얼마나 출렁이고 있을지, 아니면 시치미
뚝 따고 있을지, 혼자서 가늠해보는 일로 출근길의 내 분침들도
꽤나 흔들렸을 게다.
  너는 오늘 아침 내내 젖어들고 싶은 내 의식의 피부였고, 그런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양서류의 피부호흡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相思花야. 너는 네가 그토록 한번은 꼭 보고 싶어하던
이파리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 화신(花神)과 뒤늦게 수줍은 악수
를 나누고 나면, 플로라의 精靈들과는 이별주 한잔 나누는 일도
없이 서둘러 사라지곤 했다.
  봄에 솟아오르는 이파리에게는 죽어도 네 모습을 보여주지 않
겠다는 태도가 매몰찬 네 뒷모습에서도 느껴지곤 했다. 한 몸을
나누고 있으면서도 잎들에게만은 생각만 끼얹어둘 뿐 결코 네
벗은 몸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네 오기를 나도 진작부터 눈치를
채고는 있었다.


  그것이 대물림되어 오는 너의 사랑법이긴 하지. 생각만으로 이
어지기를 바라는 사랑. 사랑을 사모하기만 하고 막상 실물의 결실
앞에서는 서둘러 꼬리를 감추고 마는 게 너의 집안 내력이지. 달
리 상사화라는 이름을 얻었더냐.

  상사화야.
  하지만, 난 도무지 널 해득할 방법이 없구나. 그토록 요염한
자태로 사랑을 사모하기만 하는 네 안을 차라리 훌렁 뒤집어 시
원하게 보여주고 말 일이지. 그래, 벗어 젖히고 나면 민둥산일
뿐인 그 알몸을 기어이 식구인 잎 대신 타인들에게만 내보여야
직성이 풀리고, 이윽고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자지러드는 그 불
꽃같은 성미를 어떻게 여전한 규방의 아녀자의 것으로 읽어내란
말이냐.
  내게는 그 안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는 자진을 각오한 도발적인 요염의 끝만 보이니, 답답해서 해보
는 소리이기도 하다마는.

  상사화야, 구중심처에 꼭꼭 숨겨두고 남에게는 내보이고 싶지
않은 내 여인아. 너마저도 이제 내 앞에서 suggestive의 형용사
를 붙여야만 그 되바라진 대물림을 졸이고 졸여, 겨우 반 실린더
를 채울 수 있는 각성제 아닌 각성제로 마감될 것이냐? 그러고
싶으냐?     [11/08/2000]   

 

 * [옮겨오면서] 사진은 올해 우리 집에 핀 상사화 [Sep. 2009]

 

 * [참고] 상사화와 흔히들 헷갈리는 게, 석산(꽃무릇)이다. 상사화

              축제라는 현수막까지 붙여 놓은 곳에 가보면 있는 건

              석산일 때가 많을 정도로... 선운사, 불갑사의 상사화가

              그렇다. 두 곳 모두 꽃무릇이며, 상사화가 아니다.

              상사화와 꽃무릇은 절대로 같은 게 아니다. 별개의 종이다.

 

              요즘에는 하도 깨져서인지(?), 그래도 꽃이름표를 제대로 해서 달아놨다.

              예컨대, 선운사 생태숲에서 만발한 꽃무릇 같은 경우는...

              하지만, 불갑사는 '상사화 축제' 어쩌고 하는 웃기는 현수막을

              여전히 내건다. 9월이 되면.

          

      (좌) : 석산(꽃무릇).   상사화 중에는 노란 색도 있다. (우측)

               상사화는 석산보다 1달 정도 일찍 핀다. 8월쯤.  석산은 9월의 꽃.

(좌) 상사화. 수선화처럼 잎이 아주 굵다.   (우) 석산 잎은 가늘다. 산마늘 비슷하다.
       **잎이 나는 시기도 아주 다르다. 꽃무릇(석산)은 9월에 핀 꽃들이 지고 난 뒤

       10월부터 나서 이듬해 6월경이면 갑자기 진다. 상사화는 봄에 난다. 수선화와

       비슷한 시기인 4월에. 그리곤 꽃무릇과 마찬가지로 6월 말쯤이면 갑자기 진다.

 (좌) 상사화 알뿌리. 통마늘만 하다. 석산의 알뿌리는 엄지손톱만 하고 오종종 뭉쳐있다. 

        무릇과 크기와 모양이 아주 비슷하다. 꽃무릇이라는 이름이 거기서 나온 듯.

 (우) 상사화와 조금 비슷한 백양. 원추리꽃에서 색깔만 다른 듯도 하다.  

 

  

선운사의 꽃무릇이다.  입구에서 절쪽으로 오르다 보면 계곡 쪽으로 쭉 피어 있다.

시즌은 9월 초중순. 말경에 가면 꽤 많이 꽃들이 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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