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사랑받는 여인들

[내 글] 연담(燃談)

by 지구촌사람 2013. 5. 16. 21:42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글머리] 가짜 처제가 여럿 있다. 집사람을 보고 언니라고 부르는 바람에
내가 졸지에 형부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경우들이다.
  그 중의 한 여인. 객관적으로 보면 되게 똑똑하고, 이쁘고, 관공서에서
한 자리까지 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야말로 안팎 어딜 봐도 참으로
빵빵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랑은 노상 실패작이다. 아예 달고 산다.
얼마 전 그녀의 술푸념을 들으며, 한 소리 나오던 걸 참고 있다가, 글로
적어 보내마 했다. 그 중 일부가 아래 글인데, 표현을 조금 바꿨다.
-------------------------------------------------------------------------

                              사랑받는 여인들

 

                                                                     최  종  희 

  사랑받는 여인들은 몸으로 사랑한다. 사랑을 몸으로 말한다. 몸으로
웃고, 몸으로 말하고, 몸으로 행동한다.
  생각속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사랑을 -- 사실 그 내용물을 엄격히
살펴보면 세상의 기준으로 조립하거나 얽어맨 타인들의 사랑 베끼기일

때가 더 많지만--- 상대방에 견주어 자로 재고, 미리 재단하고 임의로

빗질하고 하지 않는다. 사랑의 알몸을 그저 껴안고 즐거워한다. 그래서

인가, 표정이 밝다. 자주 웃는다.

  고맙다는 말이 잦다. 안에 담아두고 상대방이 그걸 느끼도록 기다리
거나 알아채는지 시험하려 들지도 않는다.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몸으로 보인다. 말로 드러낸다.
  맛있게 먹고 맛있다고 말하며, 그렇게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할 수 있
음을 고맙다고 말한다. 건강한 행복이 몸과 마음속에서 확연하게 드
러난다. 상대방에게 감염될 정도로.

  사랑받음을 행복해 하고, 사랑할 수 있음을 기꺼워하며, 사랑하고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내숭으로 진지함을 표방하지 않는다. 경망스
러움과 거리를 두느라 주저하게 되는 일도 없다. 하지만 결코 가벼워
보이지도 않거니와, 실제로 그녀는 가볍지 않다.
  그런 사람은 지금 눈앞의 사랑에 충실하려 든다. 함께 하는 시간이
고맙고 귀할 뿐이다. 소중하기 짝이 없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시간을
실물로 손안에 잡고 있음을 복 받는 일로 여긴다. 머릿속에 깃들기
시작하는 뒷날의 사랑 모습에 수채화 물감을 칠해보기도 하지만, 과
거의 미망으로 현재의 사랑을 해석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사람들도 있다. 사랑 앞에서 버릇처럼 내내
낑낑거리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역시'다. 어둡거나
무거운 인상으로 진지함을 과장하거나 포장하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반대의 모습. 그건 자주 웃지 않는다는 점이다. 웃음을 깔
고 있는 표정은 경박함으로 여겨지고, 뒤이어 가벼운 여인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다는 머리 좋은 기우에 목줄들이 꿰어 있는 경우가 다
반사다. 잘 웃는 사람이라고 해서, 웃음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경박한 여인은 결코 아닌데도.

  그들은 되레 윗길에 놓이는 사람들이다. 해맑아서 무겁지 않은 표정
은 나이의 고하를 떠나 여인을 귀한 사람으로까지 드높인다. 확실하게
품격을 높여주는 건 맑은 웃음, 밝은 표정이다.
  웃는 표정은 그녀가 머문 자리에서 오래도록 감돌거나 머무는 향기
로 남는다. 향기로 기억되는 여인들의 공통 브랜드는 경건한 중량감이
아니라 진지한 보드라움이다. 따뜻함이다.

  잘못 심어지거나 해석된 상투적인 진지함으로 무장한 여인들에게서
는 고맙다는 그 짧은 말 한 마디를 듣기가 참 어렵다. 시간 내줘서
고맙고, 맛있어서 고맙고, 사랑받아서 고맙고, 관심 베풀어줘서 고맙고,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그런 표현이 참 드물다.
  그러다가 그런 것들이 지적되기라도 하면, 나오는 대꾸는 대체로 이렇다.
- 그런 걸 꼭 굳이 말해야만 하나요? 말해야 알아들을 정도의 사람
이라면 차라리...

  그러나, 그런 이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항상 찬바람이었다. 삶의
정답이라면 이따금 토 달지 말고 무조건 따라해보고 나서, 그 결과를
기다려보는 바보 같은 실험 정신도 필요하다. 현명한 바보들은 그런
걸 체득한 사람들이다.
  바보들은 대체로 부드럽다. 억세지 않다. 스스로 바보가 될 줄 아는
사람들이 부드러운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사랑 앞에서 자청해서 바보가 되어보기도 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사랑을 받게 되는 가장 만만한 시발점도 되지 않을까.
  버릇처럼 사랑 앞에서 뱅뱅 돌기만 해대는 똑똑한 사람들이 정작
간과하고 있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사랑하는 일조차도 남들의 기준
으로 베끼는 데 더 익숙해진 사람들이 정말 베껴야 하는 건 바보놀이
다. 그럴 것만 같다. [Oct. 2004]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