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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燃談]나, 당신의 팬티가 되고 싶어!

[내 글] 연담(燃談)

by 지구촌사람 2011. 10. 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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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당신의 팬티가 되고 싶어!

 

   나. 당신과 제일 가깝게 지내는 소품이 되어서라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

  

   당신 안경으로 변해버릴까?

   잠들 때 노래하는 기계가 되어

   자장자장 자장가 불러드릴까~

 

   당신의 팬티가 되고 싶어

   당신의 온기를 송두리째 느껴보고 싶어.

   혹은 당신이 타고 다니는 차의

   운전석 의자가 되어서라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

 

   당신 보고픈 맘에 별별 생각 다하지?

   이런 생각은 지금뿐이 아니지만

   오늘 저녁은 더더욱 그렇네.

   아쉬워서, 때론 속이 아파와서,

   저절로 서러워지기도 하는 이 밤.

 

   그런데... 그런 생각하는 거.

   그것두 욕심이지? 욕심일 것 같아...

   당신을 사랑하기. 그것두 욕심이지?

   그래두 어째.

   난 자꾸만 당신을 사랑하고 싶은데~~~

 

  어느 게시판에서 대한 독백형 편지글이다. 읽으며 내내, 그리고 읽은 후에도 한참이나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랑 고백치고 이런 명문(?)을 대한 적이 내 기억엔 없다. 천 명의 시인이 달려들어도 이런 진짜배기 독백 편지 엮어내기 어렵다.

  왜냐. 그들은 연애나 사랑을 떠올리면 우선 그 분야의 유력한 정서부터 떠올리거나 끌어대어, 우선 아름답게, 그럴 듯하게, 꾸미려는 버릇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듯한 표현부터 앞세우는 통에, 멋있어 보이긴 해도 깊은 맛이 없어 맹탕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언뜻 표현만 훑어보자면 이 편지는 조잡하다. 유치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편지는 누드다. 홀딱 벗고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감동상(感動賞) 특등감이다.

  간절함과 진정성에 더하여 치열함까지 배어 있다. <당신과 제일 가까운 소품>이라는 표현 한 가지에서만도, 그녀가 온몸으로 껴안은 사랑에 대한 그런 내용들이 함축되어 있다. 욕심을 거론하는 대목에서는 진득함까지도 엿보인다. 반어법적인 자기 통제 방식... 이 모든 것들은 진짜배기 사랑만이 저절로 보여줄 수 있는,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발효되어 드러나는, 성분들이다.

 

  이런 이의 사랑은 오래 갈 듯하다. 남들 입에 떠돌기만 하는 천년사랑 따위를 빌어다 비견할 엄두도 못 낸다. 온몸으로 기도하는 진짜배기 사랑. 그 사랑의 알짜가 몸에 배어 있다. 온몸에서 저절로 사랑향이 폴폴 풍길 정도로...

  꾸미개 정서들은 오래 못 간다. 칠 벗겨지듯 하거나, 쉬 퇴색하는 싸구려 색칠처럼 이내 본 모습이 드러난다. 빌려온 정서들에는 진득함이 없다. 남들을 베끼다 보니 어느 틈에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어 발화(發話)되는, 세상에 떠도는 온갖 그럴 듯한 사랑타령 정서들도 마찬가지다.

 

  위의 독백에서는 사랑하는 이가 온몸을 던져 손발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하다못해 사랑하는 이의 운전석 의자가 되어, 그 무게와 답답함에 깔리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이와의 접촉을 희원한다. 함께 하기에 필요하다면 온몸을 던지는 따위는 아무 일도 아니다. 그처럼 열망하는 사랑이다. 자신에게도 몰려올 잠을 쫓으며, 자장가까지 불러주려는 성심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런 이라면 이런저런 까탈 부리기 따위는 전혀 <해당 무(該當 無)>가 된다. 칫솔 하나로 둘이 함께 쓰는 정도는 이야기 거리조차 되지 않을 듯싶고, 미주알 주변의 고름조차도 주저 없이 달려들어 얼른 입 대고 빨아낼 사람만 같다. 사랑은 심정적 잣대로 앞뒤부터 재는 일이 아니다. 온몸을 던져야만 쟁취할 수 있는 나만의 대박 복권이다. 기명식 미확정형 특판 채권. 원리금은 청약자 맘대로 정해진다.

 

  그러니, 은근히 감정 치장에 더 바쁘게 마련인 공주병과도 거리가 멀다. 타인들이 유통시키는 감정에 더 신경 쓰기 마련인 이 시대에서, 그녀는 유력한 정서에 중독된 인공향이 없다. 기본정서에 <쌩얼>의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

  한 마디로, 천연산 사랑이다. 바탕 무늬만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정말 이쁜 사랑. 순도 100%인 그녀의 천연산 사랑을 어떻게 상찬(賞讚)해야 좋을지 순간 앞이 아득해져 왔다.

  한참 뒤에야, 나는 댓글 난에 이렇게 적었다.

 

  님의 사랑 진국에서

  저절로 피어오르는 향내 앞에서,

  마음의 촉수와 눈, 잠시 멀다 갑니다.

  가슴이 공명판이 되어 내내 떨려왔습니다.

 

  그리고... 정신 차리고 보니,

  님의 사랑을 받는 그 분.

  무쟈게 부럽다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그 사랑 오래오래 지켜내소서.

  이 댓글에 대한 대꾸는

  십 년, 아니, 이십 년 후쯤에 대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축복 선물 삼아

  구효서의 소설 「내 목련 한그루」중에 나오는

  아래 구절들을 두고 갑니다.

 

   - 너와 있어서 행복해. 넌 모를 거야.

      왜 지금이 내 인생에 그토록 중요한지.

      멋진 아침이야. 이런 아침이 또 올까?

      우리의 이성은 모두 어디로 갔지?                                      [Nov. 2006]

 

* 요즘 짬짬이 하고 있는 전자책 출판용 원고 정리를 하다가

   눈에 띈 것 중 하나. 여러 해 전에 긁적인 것이라서인지,

   이런 웃기는(?) 글편이 있는 줄도 몰랐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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