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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늙어 가기(20)] 죽음은 삶의 가장 좋은 스승 : ‘죽음’ 얘기 먼저, 성찬(盛饌)은 뒤에

[내 글]고정관념 분해 조립

by 지구촌사람 2019. 4. 27.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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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늙어 가기(20)] 죽음은 삶의 가장 좋은 스승 : ‘죽음’ 얘기 먼저, 성찬(盛饌)은 뒤에 


‘죽음’ 얘기 먼저, 성찬(盛饌)은 뒤에 : ‘TDOD 운동’

우리가 알게 되는 죽음은 모두 우회하여 오거나 실물보다 항상 뒤처져 온다. 친지/친구/지인... 등의 죽음은 사건 발발 후 뉴스로 전해질 뿐이며, 부고(訃告)는 항상 그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뒤늦게 온다. 가족 누군가의 죽음을 임종에서 대면했다 하더라도 망자에게 다가간 죽음을 간접적으로 목도했을 뿐 그 자신이 직접 죽음을 대면하고 체험해 본 건 아니다. 죽음의 실물과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은 더 이상 말이 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죽음의 실체를 제대로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미를 담는 언어, 특히 발화(發話)는 생명이 있을 때만, 생명이 있는 것들에만 유의미한 시한부 존재다. 이런 사실이 죽음 앞에서처럼 가장 안타깝게 또렷해질 때도 다시없다. 죽음이 생명을 앗아간 자리에 남기고 가는 것은 ‘더 이상 말할 수 없음’의 실물 현장이다. 인간 존재의 단순한 부재라기보다는, 한 존재의 순간적 증발로 말미암아 더 이상 접속이 불가능한 진공 공간으로, 죽은 자와 산 자가 동시에 빨려 들어가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그것이 바로 죽음을 목도하는 일이다. 그 때문에 살아있는 이들 중에는 죽음 자체의 진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인간에게 죽음은 몹시 달갑잖은(피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들어가 보려 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다. 달갑잖은 미지의 세계는 들어서기도 전에 공포를 불러오거나 부풀린다. 동굴에 들어서기도 전에 벌벌 떨게 하는 공포 체험용 악령 동굴 탐사마냥... 인간의 내면 풍경 묘사에 총기(聰記)를 반짝였던 노예 출신의 로마 작가 P. 사이러스가 지적했듯이, ‘죽음 자체보다 더 무서워하는 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그 막연함을 실재하는 실물로 확인할 때 약해지거나 증발한다. 공포 체험 동굴에서 귀신을 형상화한 것들을 정면에서 몇 번 대하고 나면 별것 아닌 것쯤으로 여겨지듯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또한 그런 것 같다. 죽음을 실물 이미지로 구체화해서 정면으로 대하게 되면, 죽음과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형성돼 온 습관적 기피 태도나 우선적 회피 방식에 변화가 온다. 추상명사인 죽음을 구체명사로 바꿔서 바라보게 된다. 그 좋은 예가 ‘TDOD 운동’이다.

TDOD는 ‘Talk about Death over Dinner’의 줄임말로, ‘만찬장에서 죽음을 이야기하기’다. 죽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식탁에서 가장 기피되어 온 화제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는 초대된 사람들끼리 만찬을 하면서,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진행자가 간단히 미리 그 모임의 의미와 진행 방식을 설명한다. 자신의 주변에서 겪었던 가족/친지/친구의 죽음이나 장례, 추모 내용 등을 차례차례 이야기하도록 이끈다. 그렇게 해서 죽음이란 것이 무조건 기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직간접적으로 맞이하는 이별의 하나로서, 그걸 제대로 준비하거나 아는 것이 도리어 삶의 의미를 추스르는 계기도 된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모임이다. 그런 모임에 참석하고 나면 그 뒤로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전과는 다른 바람직한 태도와 행동으로 변화된 모습들을 보였다. 죽음은 기피 화제 1호지만, 언젠가 죽을 인간 모두에게는 정면 돌파해야 할 화두 1호이기도 하다.  


이 모임은 미국의 마이클 헵(M. Hebb)이 시작했는데,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 등에 국제적 협력 형식으로 번지고 있다. 그에 필요한 구체적인 행동 요령이나 순서, 참고적인 사항들을 담은 그의 저서 ‘Let’s Talk about Death over Dinner’가 빠르면 2019년에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이 모임(책자)에서는 요양/간병, 유언, 안락사와 존엄사, 화장, 자연장, 추모 방식, 유족 위로... 등과 같은 죽음 관련 사항 등을 실무적으로 다룬다. 그리하여 그들이 맞이할 그 누군가의 죽음에서 치를 막연한 두려움이나 고통/비용 등을 줄이고, 고인과 유족의 의미를 바르게 세우는 일들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뒷전에서 반쯤 가려진 채 개별적으로 겪었거나 치러냈던 죽음 관련 실무를 구체적인 항목별로 쪼개고 공개석상으로 끌어내어, 여러 사람이 제대로 알고 공유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한 일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했다. 죽은 이는 물론이고 살아 있는 자들에게 더욱더... 언젠가는 죽음이 현재  살아 있는 그들 모두에게도 예외 없이 개별 방문을 할 것이므로. 그리고 실제로 그런  성과를 거두고 있기에, 이 운동이 더욱 번지고 있다.

죽음 준비 실무 학습 : 모든 인간의 공통 필수 과목


죽음은 당사자는 물론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들에게 큰일 중의 큰일이다. 냉철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일거리들이 적지 않으며, 하나같이 처음 치르거나 겪는 일일 때가 대부분이다. 갑자기 닥칠수록 더욱 황망하여 허둥지둥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알아두고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은 미리 준비해두는 게 아주 크게 도움이 된다.

예전에 우리나라 노인 중 어떤 분들은 자신의 수의를 직접 지으시기도 했다. 그런 분들은 모두 마지막 가는 길을 평온하게 떠나시곤 했다. 자신이 맞이할 죽음을 하늘의 섭리로 여기고 순응하려는 마음을 오래 전부터 다져온 덕분인데, 그런 마음가짐이 자신의 수의까지 정성들여 지을 수 있게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그분들의 바느질 한 땀 한 땀은 세상과의 하직을 미리 수의에 심는, 이별의 예행연습이기도 했다. 그걸 조용히 홀로 해내는 순간 그분은 이미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것인데, 후손들은 흔히 그걸 가실 분이 ‘마음의 준비’를 해두신 것이라고도 표현했다.   


그처럼 죽음은 다른 누구에게가 아니라, 죽음의 주인공에게 가장 직접적인 일거리가 된다. 죽음의 원인이 질병이라면 그 치료에서부터(요양/간병 등을 포함하여), 장례, 상속을 포함한 수많은 뒤처리들까지도 실은 당사자가 주인공이 되어 해낼 수 있으면 그게 가장 바람직하다. 미리 준비해 두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미리 담아둘 수 있는 게 바로 유언장이다. 후손들에게 남기는 가장 깔끔한 선물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이 글 말미쯤에서는 모두 챙겨 가시기 바란다.

유언(장) 작성과 쓸모

유언(장)은 흔히 재산 상속 등과 관련해서 작성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죽음 맞이나 장례 일체에 관해서 더 쓸모가 많다. 게다가 재산 상속 등과 같은 법적 효력을 지니려면 유언장 작성 내용(필수 기재사항 : 주소지/작성일/작성자/유언 내용/날인이나 서명)과 형식(자필/공증/녹음) 등에 관하여 민법상에 규정된 대로 따라야 하고, 그중 한 가지 요건만 결여돼도 효력이 부인될 정도로 까다롭다. [이러한 법적 요건을 갖춰야 하는 유언(장)과, 이와 관련하여 반드시 알아둬야 할 유류분(遺留分) 규정 등에 대해서는 뒤에 따로 다룬다. 이 유류분 규정을 모르면, 모든 재산은 유언자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잘못 안 채로 엉터리 드라마를 써 가는 문제적 작가들을 답습하게 된다.] 


여기서는 그런 법적 요건을 떠나 가족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을 사전에 글로 정리한 것 정도로만 유언(장)의 용도를 좁혀 보기로 한다. 이 유언(장)과 비슷한 것으로 유서(遺書)가 있는데, 실은 ‘유언을 적은 글’이 유서다. 흔히 자살 등과 같은 불미스러운 경우와 연결되어 쓰여서 어감이 손상돼 있지만, 유언장과 유서는 같은 말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드린다.


내가 맨 처음 유언장이라는 걸 쓰게 된 것은 20여 년 전 한때 유언장 쓰기가 유행했을 때다. 40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을 때였는데, 처음에는 깊은 생각 없이 남들 따라서, 아니 다른 이들과는 뭔가 좀 다른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일종의 정신적 허영에 이끌려 대충 썼다. 더구나 자식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남기고 갈 재산도 별로였지만, 그걸 두고 자식들 간에 다툼이 생기거나 할 일도 아니었다. (당시에도 그리 생각했고, 지금도 그리 믿고 있다.)

그러다 두서너 해 뒤, 그걸 일부 손질했다. 부분적인 손질이었음에도 그 손질은 적지 않게 내 삶에도 영향을 끼쳤다. 유언장을 고쳐 쓰면서 각종 서류들을 서류철 파일을 만들어 한곳에 모았다. 통장이나 도장들도 조그만 상자 안에 별도로 정리했고, 그것들을 문갑의 1~2층에 보관했다. 유언장에다 서류나 인감 보관처를 그렇게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는 보험, 세금 관련, 저작권 계약서, 심지어 병원의 진단서 따위도 저절로 한곳에 제대로 분류/보관되었다(여러 장의 비닐 파일이 링 바인더 형식으로 묶인 서류철 하나면 다 된다). 인감을 찾기 위해 이 서랍 저 서랍을 열어보는 일도 없어졌다. 사망신고서 양식까지도 그 서류철에 넣어뒀고, 시신 기증 신청을 한 뒤로는 그 서류와 연락처, 담당자 전화번호도 메모지에 적어서 끼워 놨다. 그 덕분에 나의 인감은 물론이고 아끼는 사인(私印) 두어 개와 두 개의 장서인(藏書印), 낙관 등도 한 곳에 모여졌다. 인주통과 더불어. 유언장 쓰기가 내게 시킨 일종의 보관 정리 훈련이랄까.

사실 이런 분류/정리 보관은 살아 있을 때 일찍 해두면 여러 가지로 좋다. 부모의 어느 하나가 중병에 들었거나 사고를 당해 위급해졌을 때 자식이 부모에게 재산 관계 서류나 통장, 인감 위치 등을 묻는 일은 불효로도 여겨져 망설이게 되니까. 부모가 알려주고 싶어도 이미 의식이 깜박깜박하거나 혼수상태일 때는 얘기를 할 수도 없다. 사망 후 챙겨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이 적지 않은데, 그럴 때마다 유족들은 필요 서류를 찾아 적지 않게 헤맨다. 찾으면 다행이지만 찾아내지 못할 때도 있고, 늦게 찾아 시한을 놓칠 때도 있다.

사망 후 처리해야 할 일들은 알게 모르게 꽤 된다. 예를 들자면 신용카드 및 휴대전화 해지, 통장 정리, 상속 포기 또는 한정 승인 필요 여부 확인 및 그에 따른 뒤처리, 사업자등록 정정 또는 폐업 신고, 자동차 이전 등록 또는 폐차 말소, 소유권 이전 등기, 기타 명의 이전(승계) 등이 있다. 특히 상속과 관련하여 부모의 채무가 있을 때 그에 대한 확인과 뒤처리를 기한 내에 해두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채무 승계가 이뤄지므로 잊지 말고 필요 절차를 해둬야만 한다. 저작권 관련 사항도 법정상속인 등록(명의 변경)을 실무 부서에 해둬야만 인세 등이 제대로 들어온다. 지급처에서 알아서 법정상속인을 찾아서 챙겨주지는 않는다. 사망 여부를 알 턱도 없지만, 알아도 법정상속인이 누구인지를 모르니까.

어떤 부모는 통장을 찾기 어려운 곳에 두기도 한다. 안 쓰고 쌓아두기만 한 이불 속에 넣어두고 가는 바람에, 한참 시간이 흘러 그걸 찾아낸 자식들이 은행에서 그 돈을 출금하는 데에 꽤나 고생을 한 적도 있다(사망 후의 예금 인출은 은행에서 요구하는 서류들이 꽤 많다). 어느 집에서는 모친이 장판 밑에 현금을 묻어 두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걸 모르는 자식들이 그 집을 팔고 떠난 뒤, 이사 온 사람이 장판을 새로 하면서 횡재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소송을 해도 거의 승산이 없는 것이 그 돈이 적법하게 상속된 유산이라는 사실이 먼저 증명돼야 하는데, 그걸 객관적 증빙(증인이나 문서 등)으로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경우들은 액수를 떠나서 자식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우는 일로 이어진다. 그게 더 안타깝다.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그런 일들 앞에서 ‘우린 저러지 말아야 하는데...’ 해 보지만, 당사자에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처럼, 유언장을 작성해 두면 뒷일이 편해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족들은 물론이지만 당사자에게도. 일례로 요즘 주목을 받는 존엄사를 위한 연명치료 사전 거부만 해도 그렇다(정식 명칭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갑자기 상황을 맞았을 때, 환자가 의식이 없으면 자식/친척들 간에 의견 충돌도 흔하다. 대체로 연로하거나 완고한 친척/형제자매 쪽에서는 연명 치료를 고집하고 자식들은 마지못해 그 뜻을 좇는다. 속으로는 거부하고도 싶지만, 대놓고 불효자식으로 몰리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심지어 형제자매간에도 종종 이견을 보인다.

그럴 때 미리 유언으로 정리해 두면, 그런 불필요한 충돌은 말끔히 해소된다. 난치병 장기 치료나 고가의 연명 치료 때문에, 집안 경제가 거덜 날 수도 있다. 그런 부담을 주고 싶어할 이는 거의 없다. 나 역시 연명 치료는 거부한다고 유언장에 적었다. [참고 : 실제로 이것이 유효하려면 반드시 보건복지부의 지정을 받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하여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해야 한다. 등록기관을 통해 작성·등록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 되어야 비로소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상세 사항은 이곳(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참조 : https://www.lst.go.kr/medi/medicalintent.do]


당시의 내 유언장 일부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것들도 있었다 :
 
1) 장례식에서 남들 따르느라, 혹은 눈치 보느라고 헛돈 쓰는 일 없기를. 염도 하지 말고 수의도 입히지 마라. 평소 입던 옷을 그냥 입히고 넥타이는 매지 마라. 평소에도 매기 싫어하던 걸 죽어서 매고 답답해지는 건 싫다. 입관 후 몇 시간도 안 되어 화장장에서 유골로 변할 터이므로, 관도 아무 거나 제일 싼 것으로 써라. 상보(喪褓)로 관이 싸이면 비싼 건지 싼 건지 드러나지도 않는다.

2) 장의차를 이용해서 화장장을 오갈 때도, 침울해하거나 의례용으로 슬퍼하지 말고, 편하게 가볍게 오가라. 내가 녹음해 놓은 자작 연주/노래 테이프들이 있으니 그걸 틀어 놓고서, 가능하면 웃으면서 오가라.

그런데 이제는 이 두 가지도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 당시는 화장을 생각해서 그랬는데, 지금은 시신 기증 쪽으로 굳혔기 때문에, 그나마도 불필요하게 되었다. 시신 기증의 경우에는 입관/발인 등이 없기 때문에, 화장장을 오가는 일도, 장의차를 이용할 일도 없다. 영안실에서의 방문객 맞이가 장례의 전부다. [시신 기증과 장기 기증의 경우,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장례다. 장기 기증의 경우에는 유족들에게 시신이 인도되므로, 장례는 유족들이 치러야 한다. 이 두 가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곳의 다른 게시판에 있다 : https://blog.naver.com/jonychoi/221517458299]


참고용으로 나의 유언장 내용을 소개하고 싶지만, 분량이 적지 않아 여기에 전재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이곳에 가면 있다 : https://blog.naver.com/jonychoi/20051449725. 그 뒤에 시신 기증 등과 관련하여 두어 번 더 수정했지만, 유언장 작성을 하면 왜 무엇이 좋은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유언장의 진짜 효용 : 사람이 변한다. 남은 생이 달라진다


앞서도 적었지만, 유언장의 용도를 흔히 재산 분배(상속)용으로만 알기 쉽다. 그리된 데는 영화나 드라마 작가들 중 유언장의 진짜 쓸모를 직접 체험해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퍼뜨린 탓도 크다. 주워들은 풍월에 의존하여 극중에 유언장을 채용하곤 하는데, 그런 것들은 거의 엉터리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드라마 따위에 흔히 나오는 ‘모든 재산을 00에게 상속한다’는 식으로 유언장을 써서는 절대로 그대로 집행되지 않는다. 유산 상속자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민법상의 강행규정인 유류분(遺留分) 규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법대로 집행해 보면 대략 유언장 내용의 절반 정도만 인정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따로 상세히 다룬다. 이곳의 다른 게시판에서 다룬 것들을 보려면 여기로 :  https://blog.naver.com/jonychoi/221445749398

 

나의 경우는 물려줄 재산도 빈약하지만,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도 없다. 물려줄 재산이 있으면 장학금으로 쓰겠다는 말을 자식들이 머리가 커질 무렵부터 줄곧 해 왔다. 그런데 막상 유언장에 그런 내용을 적고 나자, 그 뒤로 내게 실체적인 변화가 왔다. 무소유/무욕(無慾)의 삶이 일상이 되었다. 그것이 가장 큰 변화의 하나다.

내가 무소유의 삶(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탐욕하지 않는 삶)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40대 초반에 우연히 책표지조차 떨어져 나간 법정 스님의 책자를 대하고 나서부터다(그것도 해외 출장길에 머문 한국인 숙소 화장실에 놓여 있던... 그 또한 인연이겠지만). 하지만 마음에만 담아둔 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까를 두고는 막연했다. 가끔 생각만 했을 뿐 출발점이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그냥 시작해 보자고, 일부터 저지른 것은 법정 스님을 마음속에 모신 지 서너 해가 지나서였다. 

그 첫걸음이 차를 없애는 일이었다. 1995년, 잦은 해외출장과 전철 이용 등으로 세워두는 날이 더 많았던 차를 처분했다. 대중교통 이용이 몸에 익으면서는 집으로 대표되는 부동산에 대한 욕심도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몇 해 지나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집이란 것을 내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그저 불편하지 않게 가족들과 몸을 눕히는 공간 정도로만 여기게 돼서는, 아파트 따위를 팔고 사거나 분양 어쩌고 하는 것 따위도 내 눈과 귀를 그냥 스쳐만 갔다. (차 없이 5년을 지낸 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곳으로 출근지가 바뀌었는데 마침 조직에서 차를 지급해주는 직급에 올랐다. 2010년 정년 퇴임 후로 나는 다시 대중교통파가 되었고, 집의 차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집사람 전용이다.)  

사무실이 잠시 충남의 모처로 옮겨졌을 때, 나는 아파트 대신 농가주택을 고르고 골랐다. 곡괭이까지 동원하여 아침저녁과 주말 시간을 들여 텃밭을 개간하다시피 했다. 거기에 소채류와 온갖 화훼류, 그리고 나무들을 심었다. 그리 맞추려 한 것은 아닌데, 나중에 이름표를 붙이면서 헤아려보니 딱 100종이었다. 그리 여러 가지를 욕심낸 것은 훗날 내가 귀촌 후 수종을 선택해야 할 때를 대비한 깜냥에서였다. 일종의 검토 대상이 될 후보군들. 소채류/화훼류/수목류는 실제로 길러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사람도 그렇지만.

유언장을 두 번째인가 세 번째 고쳐 쓴 것도 거기서 생활하면서였다. 그리고 그 텃밭 농사 생활은 그 뒤 파주로 이사 온 뒤로도 이어졌다. 텃밭이라 하기엔 좀 너른 편인 400여 평 규모여서 매일 몸으로 고생하신 건 장인어른이지만 나도 1주일에 한 번꼴로는 작물들에게 내 얼굴을 비쳤다. 집에서 1.5킬로 정도 떨어진 곳으로, 걸어서 오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가벼운 몸 풀기 운동은 저절로 되었다. 생각이 바뀌면 하는 짓도 달라지는데, 10년을 넘긴 대규모(?) 텃밭 농사 역시 무소유 지향과 몸수고의 효험, 자연 숭배 등의 생각이 나를 변화시킨 것 중의 하나다.


매장(埋葬)은 죄악이다! 자연장(수목장)을 하자

우리는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 문화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다. 다른 사람들이 그래 왔으므로, 그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불효가 된다는) 그런 의식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방방곡곡 어디에고 들어선 게 묘지인데, 이 묘지들이 차지하고 있는 실상을 알게 되면 놀라게 된다.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묘지 면적은 1,087㎢로 자그마치 수원시 면적의 9배쯤 된다. 우리나라 전체에 깔린 도로 면적(3,251㎢)의 1/3, 밭 면적(7,611㎢)의 14%쯤이나 되는 넓은 면적을 이 묘지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국민의 1인당 주거 공간은 4.3평이지만 묘지는 1기당 평균 15평으로, 죽은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산 사람보다 3~4배나 많은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예전에는 매년 여의도 면적(8.4㎢)에 해당하는 땅이 묘지로 잠식되어 왔지만, 현재는 그 절반 수준으로 줄어가고 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화장과 소규모 묘지 덕분이지만, 그래도 갈 길은 멀다. 묘지 조성은 토지의 효용을 정지시켜 최소한 30년에서 60년 동안 잠재우는 일이다. 전국에 산재한 묘지가 2,100만 기를 넘어섰는데, 그중 40% 이상이 무연고 분묘다. 묘지만 써 놓고 후손들의 발길이 끊어진 묘들이 10기 중 4기나 된다.


위의 소제목으로 ‘매장이 죄악’이라는 심한 말을 적은 것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무의식적인 전통 고수나 형식적인 효도 과시에서 한 발 물러나 이제는 멀리, 널리 봐야 한다. 좁은 국토를 묘지가 잠식하게 해서는 안 되고, 후손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얹는 일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 요즘 화장을 할 때의 평균 장례 비용이 1400만 원쯤 된다(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인 납골묘 등은 제외). 결혼식 평균 비용 1200만 원보다도 더 든다. 그뿐만 아니다. 매장을 하면 묘지용 토지 구입 비용과 석물(石物.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배치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최소한으로도 2천만 원을 훌쩍 넘긴다.

이런저런 석물까지 갖춘 큼지막한 묘지에 모셨다고 자식들의 효도가 커지는 것 절대 아니다. 그런 큰 묘지 조성을 두고 유족들 사이에, 혹은 형제자매간에 얼굴을 붉히거나 뒷말까지 나오는 일도 드물지 않다. 호화 분묘 조성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보는 일부 ‘부티 나는’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도 가끔 신문기사감이 되기도 했다. 그런 이들의 뒷전에서 어떤 이들은 이런 말로 주장(朱杖)질을 하기도 했다 : “죽은 다음에 효도는 무슨 얼어 죽을 효도. 살아 있을 때 못한 놈들이 돈지랄하는 거지.”

깔끔하게 가꿔진 공원 묘원에 모시고 싶어도 그것이 부담되는 후손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아예 후손이 없거나 후손이 조상 챙기기를 포기한 경우도 없으란 법 없기에, 무연고 묘지는 지금도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그 증가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데, 요즘 놀러가기 위해서 차례(茶禮)도 대행업체에 맡기는 일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후손들의 의식도 변해가고 있다. 벌초 대행, 성묘 생략, 차례 대행의 신 풍속은 늘면 늘지, 줄진 않는다.

무연고 묘지가 아니라도 사설묘지는 그 허가 기간이 30년이다. 사설묘지 중 법인묘지 내에 있는 것만 30년 한도로 연장이 가능하지만, 지방 조례로 그 기한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별 토지 사용 목적에 따라 묘지 면적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연고자들이 묘지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도 60년 후에는 불가능해진다. 지금과 달리 묘지 이력 추적이 제대로 가동되면 그렇게도 된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사회와 후손들에게 끼치고 가는 이러한 폐해들은 조금만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피해갈 수 있다. 바로 자연장(수목장)이다. 가는 사람이 미리 확호하게 유언장 등에 명시해 놓으면 뒷말도 없다. 고인의 희망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지엄한 선택이므로.

자연장(수목장), 간단하고 깔끔하다

수목장(樹木葬)으로 더 많이 알려진 ‘자연장(自然葬)’은 법률 용어로서, 장사에 관한 법률(약칭 장사법) 제2조(정의)에 따르면 ‘화장한 유골의 골분(骨粉)을 수목ㆍ화초ㆍ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 묻는 장소에 따라 수목장, 화초장, 잔디장, 정원장(庭園葬) 등으로 나뉜다. 자연/환경 보호는 물론이고, 묘지의 국토 잠식을 막을 수 있고, 매장 전후의 장례 비용 절감에도 기여하는 일석삼조의 장례 방식이다. 더구나 이 방식은 개인/가족, 종중/문중은 물론이고, 불특정 다수인을 위한 자연장림까지도 그 조성이 복잡하지 않고 용이하다. 개인/가족용 자연장지는 면적이 100제곱미터(약 30평) 미만이기만 하면 된다. 

즉, 화장 후 화장장에서 골분 형태로 빻아준 유골을 모셔와 미리 점찍어 둔 수목ㆍ화초ㆍ잔디 등의 아래에 그걸 모시면 된다. 그 장소 역시 고인이 미리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유족들과의 끈도 이어진다. 매장이나 납골당에 모시는 것들과 전혀 차이가 없다. 그런 장소를 미리 특정하여 그 자리에 남은 가족들도 훗날 함께하면 그게 곧 가족장지(家族葬地)가 된다.

이와 관련된 전문 지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실무적으로도 무척 도움이 되는 전문기관이 있다. 한국장례진흥문화원(http://www.kfcpi.or.kr)이 그곳인데,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다. 특히 도움이 되는 것은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http://www.ehaneul.go.kr)이다. 유튜브 형식으로 짧게 잘 요약된 홍보 자료도 있다 :
https://www.youtube.com/channel/UCofFYOU5S1nUUK8ofr9M2FQ


요즘 화장 문화가 일반화되다 보니, 막상 화장장을 이용해야 할 때 인근의 화장장을 접촉해 보면 신청자들이 밀려서 앞이 캄캄할 때가 있다. 실제로 필자도 여러 해 전 형님을 모실 때 겪었던 일인데, 수도권 인근의 어느 지역도 발인 당일의 화장이 어려워 김천까지 모시고 가야 했다.

이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 접속하여 화장 예약 신청을 하면 전국의 화장장을 통합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편리하게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그 밖에 장례 관련 사항들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자연장에 관한 한은 자료나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이다. 필요할 경우에는 출장 강의까지 해 주고, 그럴 때면 참석자들에게 식사까지도 제공한다. 화장장 이용과 관련된 좀 더 상세한 정보는 이곳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 https://blog.naver.com/jonychoi/221521559266


자연장(自然葬)을 하자. 필자는 현재 실천 중이다. 고쳐 쓴 유언장에도 그리 적었지만, 고조부 이래의 집안 묘소 역시 현재 차례차례 자연장 처리를 하고 있다. 소나무 몇 그루가 멋진 쉼터를 만들어내는 막냇동생의 땅에다 이장(移葬) 형식으로 옮겨 모시고 있다. 그 소나무들 아래 한곳에 모두 모시고, 그 옆에는 60x45cm, 두께 12cm 크기의 평판 묘석 하나를 콘크리트 안에 심었다. 돌아가신 분들의 존함과 생몰년만 작은 글씨로 새긴 종합판 묘석인데, 현재 상태라면 서른 분 이상을 새겨 넣을 수 있다. 차고 넘치면 그런 묘석 하나를 더 심으면 된다. 나의 대(代)에서는 충분한지라, 뒷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우리가 손대서는 안 될 후손들의 고유 권한(?)이니까. 

죽음은 최고의 스승 : 죽음엔 열외가 없고 제대로 잘살아야 행복하게 죽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언젠가는 찾아온다. 로마의 호라티우스는 시인답게 이렇게 말했다. ‘죽음의 공평한 발걸음은 가난한 자의 오두막집과 임금의 궁궐을 모두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앞서도 등장했던 P. 사이러스는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고 압축했다. 그렇다. 죽음이란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바치고 가는 세금이기도 하다. 공평하고 예외 없는 지구 체류 주민세(globe resident tax)라고나 할까.

 

우리는 장례식장에 다녀올 때마다 자신이나 주변을 돌아보곤 한다. 느낌과 생각이 많아지는 건 타인의 죽음이 남의 일만은 아닌 것 같고, 그것을 조금 더 절실하게 실감하게 되어서다우리 인생은 죽음이 잠시 유예된 삶이다. 40대와 60대가 같은 날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것이 언제일지를 모를 뿐. 그렇다는 걸 절감하는 순간이 다른 죽음을 대면할 때다. 특히 죽음이 삶을 이끄는 가장 좋은 스승이 될 때는 자신이 맞이할 죽음을 정시(正視)하면서. 시한부 삶에서처럼 전력으로 삶에 몰두하게 하는 건 없기 때문이다. 3~4년의 시한부 암 선고를 받아보라. 흘러간 세월들보다 열 배 스무 배 이상으로 삶의 일정표와 내역이 촘촘하게 알맹이만으로 짜인다. 그 좋은 표본이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라는 말을 유행시킨 영화 <버킷 리스트>. 암 선고를 받은 백만장자와 정비공이 그때부터 이전과는 180도 다른 삶, 평생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면서 살아갔듯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잘 보낸 하루 끝에 행복한 잠을 청할 수 있듯이 한 생을 잘 산 후에는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살아 있는 동안 제대로 잘살아야 잘 죽는 일도 해낼 수 있다. 살아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일찍, 남은 생을 설계하는 일. 그것은 자신의 손으로 죽음을 멀찍이 밀어 놓은 채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중 한 가지 방식이 일찍 자신의 유언장을 써 보는 것이다. 그 안에 자신의 장례 플랜까지도 완벽하게 짜 두면 남은 일은 다빈치의 말대로 한 생을 잘 살아내는일뿐이다.


내가 유언장을 몇 번 고쳐 쓰면서, 저절로 몸에 배게 된 변화 중에는 4쾌주의자로의 확실한 변신도 있다. 쾌식(快食)/쾌면(快眠)/쾌변(快便)/쾌성(快性)을 내 삶의 기본이자 최우선 항목으로 삼고, 실천하게 되었다. 40여 년 전부터 공식(?) 가훈으로 삼아 온 잘 먹고 잘살자[善食+善思+善行]’는 내 책상 정면에 걸려 있고, 머리만 눕히면 어디서고 몇 초 내에 잠이 드는 식인데, 한마디로 지극히 원시적인 삶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하는 걸 이르는 원초적 행위들이므로. 여기서 설명하면 장황하게 되므로 기회가 되면 따로 다루기로 한다. (이곳 블로그의 다른 게시판에는 여러 곳에서 등장하지만)


 

세속의 명품 따위가 전혀 쓸모가 없고 도리어 웃음거리가 되는 건 죽음의 길에서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어떤 생을 살아내야 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2018년 말부터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자의 제목 중 하나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죽음을 떠올리면 삶은 진지해지고 진중해지며, 남들의 삶을 기웃거리거나, 타인들의 쓸데없는 말들에 흔들리는 일도 줄어들거나 없어진다. 그런 식으로 허투루 삶을 낭비하지 않게 한다. 오늘은 어제의 그 누군가가 간절히 '하루만 더' 하고 바랐던 내일이다.

 

내 초등학교 동기생 여학생 하나가 아들딸 혼사에서 축의금을 받지 않았다. 자신의 장례 또한 그리할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 자식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부탁할 작정이다. 장례식 비용까지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 그나마 내가 자식들과 세상에 부담을 남기고 가지 않는 길인 듯하고, 세상 떠나는 일까지는 온전히 내 책임으로 하고 싶어서다. 작년엔 내 영정 사진을 내 손으로 찍어 두었다. 그것도 내가 미리 해 놓으면 자식들 일거리가 되지 않으므로...  https://blog.naver.com/jonychoi/221324079812


남은 생을 그렇게 살아가려는 생각을 확실하게 실천하게 해준 건 미리 몇 번 고쳐 쓴 유언장 덕이 크다.  

-溫草[Apr. 2019]



<이 글은 금년 중 간행될 책자 내용의 일부다. 필자의 승인 없는 부분/전체의 복사/전재, 또는 표절 및 상업용 이용을 일절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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