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당당하고 뻔뻔하게 늙어가기(22)] 웰다잉과 웰비잉, 그리고 Carpe diem과 Memento mori

[내 글]고정관념 분해 조립

by 지구촌사람 2019. 7. 31. 14:31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사진 등이 배꼽으로 나오면, 원문으로 : https://blog.naver.com/jonychoi/221601034177

~~~~~~~~~~~~~~~~~~~~


[당당하고 뻔뻔하게 늙어가기(22)] 웰다잉과 웰비잉, 그리고 Carpe diemMemento mori

 

 

Carpe diemMemento mori

 

Carpe diem(카르페 디엠 : 오늘을 즐겨라)! 역설적이게도 몇 해 전 자살로 세상과 이별한 로빈 윌리엄스(1951-2014)*가 영어 교사 존 키팅 역으로 열연했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1989)를 통해서 아주 널리 퍼진 라틴어구다. 명문대 진학률에만 관심하던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진학을 위한 공부가 다가 아니라 미래에 도전하는 자유정신이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라는 걸 깨우쳐 주기 위해서, 키팅 선생이 꺼내든 말이었다.

 

그것이 이제는 오늘 지금 바로 현재에 충실하고 즐기라!’는 뜻으로 확대(?) 발전되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그런 충실한 현재,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 현재의 총합이 규정한다로 요약되게 되었다.

 

Memento mori(메멘토 모리)! 직역하면 ‘(자신의/너의) 죽음을 기억하라"이고, 의역하자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구다. 옛 로마에서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이 말을 외치게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걸 기억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Carpe diem(오늘을 즐겨라)Memento mori(네 죽음을 기억하라)는 어찌 보면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어째서일까.

 

그 귀뜸용으로 현대의 명연설의 하나로 꼽히는 스티브 잡스(1955~ 2011)의 연설문 일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연설은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2005)에서 한 것인데, 바로 그 직전 해이던 49세에 잡스는 췌장암 수술을 받은 터였다. 진단명만으로 죽음의 선고나 다름없는 췌장암 판정을 받고 나서 그 역시 눈앞에 다가온 죽음을 정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의 이해가 아래의 연설문 내용을 실감 있게 대하게 해준다. [밑줄은 필자가 그은 것.]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저는 죽음이 어떤 경우에는 유용하다는 것을, 막연하게 알고 있을 때보다 좀 더 확실하게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천국에 가길 원하는 사람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최종 목적지입니다.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이 만든 단 하나의,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계기입니다. 그것은 오래된 것들을 치움으로써 새로운 것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지금 새로운 것은 여러분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 날 여러분은 점차 오래된 것이 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너무 드라마틱하게 들렸다면 죄송스럽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래서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낭비하지 마세요. 자신 내면의 소리를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는 연설 중에 이렇게 외친다) 메멘토 모리!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

 

스티브 잡스는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내면은 참으로 복잡했다. 어릴 적에 입양되어 양부모 밑에서 자라나 후에 친부모를 알게 돼서도 적극적으로 외면했고, 20대 시절에 사건을 쳐서 태어난 딸을 친자소송까지 가서야 마지못해 인정했을 정도로 차가운 사람이었다. 이미 거부였음에도, 대학생의 딸에게 찔끔 학비 보조를 해줬다.

 

애플 창업자이면서도 13년간이나 경영진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복귀 기회를 잡았고, 사업에서도 온갖 부침을 겪었으며, 동료 중에서도 배반자/배척자들이 속출하게 만든 비정상적인 인물로, 복도에서 만난 직원에게 그 자리에서 너는 해고야(Youre fired)’ 한마디로 해고 통지를 남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를 직원들 일부는 악마라 불렀다. 그가 늘 즐겨 입었던 옷은 칙칙한 색깔의 청바지에 검은색의 티셔츠일 정도로,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스티브잡스 사망

 <사진 : 스티브 잡스>

 

2004년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아 호전되는가 했는데, 2009년에는 간 이식 치료를 받았다. 20118월 병세 악화로 애플 CEO직을 사임했고, 사임 후 2달이 채 지나지 않은 105일에 56세로 사망했는데, 사인(死因)은 췌장 신경 내분비종양이었다.

 

스티브 잡스도 췌장암 진단을 받자, 일반적인 암 환자의 정황을 그대로 드러냈고 겪었다. ‘왜 하필 내가 암 환자가 되어야 해? 난 죽기 싫어, 할 일이 많단 말야로 요약되는 거부/항거의 시기를 거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상상적 고통을 겪은 뒤에야 순응하고, 죽음을 정시하면서 수용하는 그 단계들을 거쳤다. 저 위에 인용한 연설문이 바로 그러한 깨달음을 담아낸 것들이었다. 자신이 곧 죽을 운명임을 확실히 제대로 깨달았을 때, 젊은이들에게 carpe diem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웰다잉과 웰비잉은 동전의 양면이다

 

요즘 몇 해째 우리나라에서 웰다잉이 유행한다. ‘웰빙은 퍼진 지 훨씬 더 오래되었다. 그런데 이 두 말이 실은 콩글리시다. 외국인들에게 한글 그대로 말하면 알아듣지 못한 채 모두 고개를 갸웃거린다.

 

웰다잉(well-dying)’은 숫제 영어엔 아예 없는 말로, 순수 국산 콩글리시다. ‘웰빙'웰비잉(well-being)'의 오기다. 영어로 well-being이라 적으면 좀 알아듣지만, ‘웰빙이라고 하면, 영어 원어민들은 모르겠다는 투로 한쪽 어깨부터 들썩인다. wellbing이든 wellving이든 그런 말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꼬부랑말이 섞이면 있어 보인다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웰빙을 애용하는 터라, 표준어를 관리하는 국립국어원에서도 고민했다. ‘웰빙을 인용(認容. 인정하여 용납함)할 수는 없고 해서 할 수 없이 참살이라는 우리말을 만들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을 뜻풀이로 내세웠다. 영어에서 정신적/육체적/심리적 행복이나 복지를 뜻하는 well-being의 본래 뜻보다는 한참이나 층위를 높였다.

 

이 글에서도 웰빙의 잘못된 표기를 따를 수는 없으므로 웰비잉으로 적고 참살이의 뜻풀이를 적용하고자 한다. ‘웰다잉은 편의상 우리 식 뜻풀이를 그대로 빌려 쓰기로 하고.

 

우리 속담에 대문 밖이[문턱 밑이] 저승이라또는 저승길이 대문 밖이다가 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뜻이 주된 의미다. ‘저승길과 변소 길은 대()로 못 간다도 있다. 죽음이나 용변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는 말로, 죽음은 바로 그 자신에게 닥치는 일로, 홀로 치를 수밖에 없는 일이라서다. 그처럼 죽음은 마뜩찮은 일인지라, ‘죽음은 급살이 제일이라라는 말까지 나왔다. 차라리 죽음을 당할 바에는 질질 끄는 것보다 빨리 죽는 것이 고통이 적어 좋다고 자포자기도 한다.

 

웰다잉은 무엇일까. 조립된 글자로만 보자면 잘 죽기.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게 죽음인데 그걸 잘해낸다? 잘 죽기를 공부하고 준비한다? 말이 안 된다. 표기만으로도 대단히 거북하고 크게 잘못된 듯하다.

 

하지만 죽음도 극복되는 두려움이다. 당당하게 대할 수 있는 삶의 일부라고나 할까. 다가오는 늙음과 죽음 앞에 담담히 서서 외면하지 않은 채 그것들을 똑바로 뚫어지듯 쳐다 보는(正視) 거다. 죽음은 예정에 없던 불시 방문객, 생각하기도 싫은 불청객이다. 처음에는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왈칵 솟고, 그가 환자라면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 따르고, 미지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 등도 이어진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대로, 깨달은 만큼 살아간다. 아름답게 제대로 살아낸 사람은 아름답고 멋지게 죽는다. 웰다잉이 웰비잉과 동전의 양면이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죽음은 삶의 반영이며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진정한 웰비잉은 웰다잉이 있어야 완결된다

 

웰다잉의 방식은 제각각이다. 자신이 찾아내고 선택해야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숙제라고나 할까. 하지만 공통점 몇 가지는 있다. 자신을 벗어나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이 그 한 가지다. 가족에서부터 이웃, 사회를 생각하고, 나아가 나라의 경계를 넘어 지구촌까지 챙긴다면 그건 최상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덧대자면 2017년 하반기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이제 죽을 준비가 다 됐다. 언제든 가도 홀가분하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부터 고쳐 써 온 유언장 완결, 시신 기증하기, 자연장 장소 확정, 유가증권 정리하기, 비번 공개... 등등에 이어 나의 영정 사진을 내 손으로 촬영까지 마쳤다. 그 뒤로 나의 삶이 얼마나 간결해지고 단출해졌는지 모른다. 

 

이 책의 도처에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의 웰다잉 준비에 관련된 사항들이 다뤄져 있다. 예를 들면, 앞서 다뤘던 유언장 작성과 감사의 대상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실물로 감사하기, 가족과 추억 만들기, 영화의 끝장면 크레디트처럼 엔딩 노트(ending notes)를 만들거나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사전의료의향서와 사전장례의향서 작성 등을 한 뒤에, 할 수 있는 한 자기 손으로 미리 유품 정리하기... 따위다.

 

또 수많은 책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웰다잉으로 검색만 해봐도 10여 권이 뜰 정도로 자료들이 많다. 예를 들자면, 일반적인 준비 사항으로는 <지혜로운 삶을 위한 웰다잉>(2016)이 대표적인데, 부제로 한국인의 죽음학 강론이라 했듯이 이 나라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웰다잉을 연구하는 건양대 관련 학회의 저술 모음이다. 장기 간병과 같은 특수 상황에서의 기록물도 있다. <웰 다잉 다이어리>(2011)라는 의역 제목을 달고 있는 책자는 임상심리학자인 J. A. 스프링이 그녀의 부친과 함께 썼는데,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는 아버지의 5년간의 간병 일기다. 원제 <아빠와 함께한 인생 : 늙어가는 부모 간병에서 배운 것(Life with pop : lessons on caring for an aging parent)>이 그 내용을 잘 압축하고 있다.

 

<웰다잉의 3가지 문턱>(개정판. 2019)과 같이 독특하면서도 값진 저술도 있다. 국문학도가 나이 50을 넘겨 노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삼간[인간/시간/공간]의 참 의미를 통해 인간 존재/삶의 한 가지로 죽음을 바라보는 내용인데,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실무적 정리가 잘 어울려 있다.

 

저자 정순태는 그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잘 압축하고 있다. 웰다잉이 웰비잉으로 이어지는 까닭을 자연의 순리를 빌려 조근조근 펼치고 있다.

 

웰다잉이란 좋은 죽음을 의미한다. 사업에서 출구 전략이 있듯, 웰다잉은 인생의 출구 전략이다. 웰다잉은 삶의 의미를 찾아 현명한 노후를 보내고,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하는 것이다. 가을의 작은 나뭇잎이 나무를 떠나지 않으면 봄의 새싹을 볼 수 없다. 잎은 생겨나고 자라고 늙고 사라지는 생명의 순리를 몸소 보여준다. 가을은 떨어지는 나뭇잎이 있어 위대하듯 삶은 죽음이 있어 더욱 위대하다. 푸름이 영원할 수는 없다. 자연은 당신도 예외가 아니라고 속삭인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웰다잉은 웰비잉의 완성판이다. 멋지게 살아야 아름답게 떠난다. 미리 준비해 둘수록 아름답게 마무리되고, 갈무리도 깔끔해진다. 웰다잉과 웰비잉은 모두 삶의 일부다. 아름다운 출발과 멋진 마무리가 한 몸일 때, 그 선수는 훌륭한 선수로 기억된다. 등수에 상관없이...

 

마지막으로, 류시화 시인의 시 <젊은 시인의 초상>을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다. 류 시인은 내 보기에 이 시대의 선() 시인이라 할 만하다. [밑줄은 필자] 

 

아침에 할 일이 없는 날은/나도 쓸쓸하더라 할 일 없이/마음 속에 이런 저런 마음만 물밀어 모이고/일어서다 앉다 다시 누워 보는 내 머리맡에/푸른 고양이 한 마리 와서 머물더라/그런 날 아침이면 나도/그 고양이 푸르른 몸 안으로/숨고 싶더라//

 

밤에는 또 기다려도 쉬이 잠이 오지 않더라/어두운 지붕과 지붕을 지나/고양이는 가고 오지 않고/누울 자리에 누워 있으면 낮게/누가 내 이름을 부르더라

 

이 시는 제목 그대로 어느 젊은 시인의 하루, 즉 아침에서부터 밤까지의 온갖 사념/상념들과의 분투를 일인칭 화법으로 객관화시킨 작품이다. 하지만 그와 달리 아침과 저녁()의 대비를 통해, 한 편의 인생을 뒤돌아보는 작품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푸르른 고양이'처럼 푸르디푸른 청장년 시절, '일어서다 앉다 다시 누워 보기'를 해댈 정도로 부산한 삶을 엮어 온 한 사람이 그 고양이가 사라진 뒤에(삶이 고요해지면서) 조용히 누워 이윽고 나지막이 호명되는 자신의 존재(이름) 앞으로 끌려나가는 그런 그림일 수도 있기에... 인간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남기고 가는 것은 오직 이름 석 자뿐이다.

 

웰다잉은 마지막으로 나지막이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 석 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기도 하다. 남들이 기억해 주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자신에게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혹은 머리를 끄덕이며 홀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웰다잉이다.

 

[*. 로빈 윌리엄스(1951-2014) :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대표작 <굿 모닝 베트남!>이나 피터 팬으로 활약하는 것과 같이 서정적이거나 환상적인 아동물 출연을 즐겨했던, 씩씩한 남성물과는 거리가 먼 내향적/여성적 취향의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 Robin은 영어권에서 남녀 공용이다. 여성들은 Robyn으로 달리 표기하기도 했다. 스웨덴의 유명 싱어송라이터 로빈(본명 로빈 미리암 칼손. Robin Miriam Carlsson)이나 바베이토스 출신의 유명 여가수 로빈 리아나 펜티(Robyn Rihanna Fenty)처럼.

 

로빈 윌리엄스는 자신이 주연/제작까지 맡을 정도로 욕심을 냈던 <미시즈 다웃파이어>(1993)에서는 여장 주인공으로 출연까지 했을 정도로, 여성적이고 섬세했다.


영화 미세스다웃파이어

<사진 : 다웃파이어 역의 로빈 윌리엄스>

 

그는 파킨스 병에서 유래한 치매로 인하여 자살했는데, 그의 자살 후 미국 내 자살률이 10%나 치솟았고, 사회학자들은 그걸 베르테르 효과라 불렀다. 그만큼 그를 내면적으로 흠모하는 내성적인 이들이 많았다. 귀 관상에서도 그의 그런 자살 가능성이 엿보였는데, 이에 관련된 상세한 내용은 이곳 게시판에 있다 : https://blog.naver.com/jonychoi/221204196222


 

                                                                                        -온초 [Jul. 2019]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