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3회(2019.9.30.) [한글날 특집] 우리말 겨루기 문제 심층 해설
-양지윤(큐레이터)/박소영(성악가) 조 우승 : 가가날(x)/가갸날(o)
♣우리말 달인에 오르는 쉬운 방법 : 문자나 ‘카톡’을 할 때, 긴가민가하는 것이 있으면 맞춤법을 꼭 검색해 보세요. 그걸 습관화하면 됩니다! 그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은 글쓰기를 해보는 것. 일기나 수필을 쓰면서, 그때마다 맞춤법/띄어쓰기를 확인하게 되면 확실해집니다. 요체는 평소의 언어생활에서 부딪는 일상적인 것들을 챙겨 보는 일인데, 몸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실은 저도 그리하고 있습니다. 띄어쓰기 공부는 머리로만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단, 맞춤법/띄어쓰기에 관한 기본 원칙/원리들을 1차 공부한 뒤에요. 낱개의 문제적 낱말들만 외우려 들면 중도에 쉬 포기하게 되고, 활용 문제(띄어쓰기와 표준 표기)에서 전혀 힘을 못 씁니다. -溫草 생각
1. 출연자 등등
□ 무대를 빛낸 사람들 :
임태경(음악인)/이혜정(시 낭송가); 오정연(방송인)/배종호(평론가); 양지윤(큐레이터/박소영(성악가); 양소영(변호사)/조세흠(의사)
우승 및 달인 도전 팀 : 양지윤(큐레이터)/박소영(성악가)
□ 출연자 속사화
-잡설(1) : 직업 표기에서 ‘-人’과 ‘-家’, 그리고 수많은 사(-士)/사(-師)/사(-事)/사(-史)/사(-司) /사(-寺)
위의 출연자들 직업 소개란에 ‘음악인/성악가’라는 표기가 보인다. 어째서 방송국에서 통일 되게 둘 다 ‘음악가’로 표기하지 않았을까. 거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단순히 설명하자면 ‘-인(人)’은 어떤 업역에 종사하는 사람 뒤에 쓰이고 ‘-가(家)’는 그중 일가를 이룬 사람을 뜻한다(하지만 사전에서는 이처럼 평등에 어긋나는 차별적인(?) 설명을 직접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손쉬운 비교로 ‘예술인’과 ‘예술가’를 들 수 있다. 화가는 처음부터 화가인 것이, 그림에 어느 정도 미쳐야 그 타이틀을 걸어도 부끄럽지 않게 되어서인 듯하다. (자신들은 ‘-인’의 수준인 ‘그림쟁이/환쟁이’라 하지만)
하지만 이런 표현에는 위의 ‘그림쟁이/환쟁이’에서처럼 겸양의 의미도 들어 있다. 일가를 이룬 음악가들이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할 때 자신들은 음악인이라는 말을 하지, 음악가라고는 하지 않는다. ‘거리의 음악가’ 등으로 비유적 표현을 쓰면 몰라도. 오래 전에 방영된 드라마에서 ‘쿠웨이트 박’(최주봉 扮)이라는 동네 춤꾼이 있었는데, 그는 사교 댄스를 하는 걸 ‘예술을 한다’고 표현하면서 자신은 ‘예술인’이라고 하곤 해서 인기를 얻은 적이 있는데, 그때 그가 쓴 말이 이 ‘-인’의 뜻풀이와 잘 어울린다.
출연진 중에 변호사(양소영)가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똑같이 법을 밥벌이로 삼고 있는 변호사(辯護士)와 판/검사(判檢事)의 뒤 한자 표기가 다르다. 왜 그럴까. 여기서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직업 명칭 표기에서 쓰이는 온갖 ‘사’ 자들의 한자 표기는 제각각이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데, 상세한 설명은 다음 사이트에 매달아두었다 :
https://blog.naver.com/jonychoi/220970579302
-사(事) : 일정한 직임을 맡은 임명직(선출직). (예)판사(判事), 검사(檢事), 이사/감사(理事/監事), 도지사(道知事). 어사(御史)
사(使) : '-事' 중 고위직에 부여한 표기 (예) 관찰사(觀察使), 대사(大使), 공사(公使), 어사(御使. 당상관 이상)
-사(士) :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금지해 놓고) 일정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검정 등을 통과한 이에게만 수여한 자격. 운전 기사(-技士) 면허증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름. (예) 변호사(辯護士), 변리사(辨理士), 감정평가사(鑑定評價士), 회계사(會計士), 기관사(機關士), 장학사(奬學士), 각종 기사(技士), 바둑 기사(棋士/碁士), 석.박사(碩.博士), 항해사(航海士), 세무사(稅務士), 관세사(關稅士), 조종사(操縱士)... 등등
-사(師) : 전문 분야에서 정해진 능력을 갖추고 주로 몸수고로 그 업무를 해내는 사람 (예)의사(醫師), 약사(藥師), 교사(敎師), 간호사(看護師), 사육사(飼育師), 마술사(魔術師), 정원사(庭園師), 요리사(料理師)... 등등.
-시인은 성공한 ‘바틀비’?, 음악인/음악가는 날라리에서 철학자까지
어제 꼴등을 목표로 한다고 했던 음악인 +시인 겸 낭송가 팀은 목표를 이뤘다. 시인이 있으니 막강하리라고 여겼던 시청자들의 예상을 배반했다.
허먼 멜빌의 단편소설 중 <필경사 바틀비>*가 있다. 어느 사람의 말대로 형식은 단편인데 내용은 장편 격이다. 좀 더 쉬운 비유로 하자면 ‘개그로 던졌는데 다큐로 받네’이다. 독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된다 할 때의 이야기지만. [*바틀비의 정신을 살려 이걸 출판사 이름으로 삼은 이도 있다]
*주 : 브랜드 명칭의 일반명사화 현상
‘제록스’는 복사기 회사의 대표 격이자 브랜드 명칭인데, 복사기를 이르는 일반명사로도 쓰인다. 이런 것들은 많다. 외제로는 프랑스에서 온 ‘바리캉’이 대표적이며, 독일에서 온 ‘파스(Pasta)’도 있다. 사전 등재 여부와 관계없이 널리 쓰이는 우리나라 것으로도 왕년의 ‘박가분’에서부터 ‘활명수/맨소래담(촌로들에겐 ‘멘수리다마’가 더 익숙하다)’... 등등 제법 된다. 두산의 개조모(開祖母. 박승직의 부인) 작품인 ‘박가분’은 뒤에 후손들이 그걸 잊지 않기 위해 ‘파카(parka. 박가) 글래스’로 개명하여 명칭만 보존했다.
바틀비의 직업은 변호사 밑에서 일하는 필경사다. 제록스*가 나오지 않던 시절에 먹지를 대고 몇 장이고 베껴 쓰거나, 일일이 그대로 모사하여 썼다. (우리나라에도 필경사 공무원이 아직 남아 있다. 손글씨로 보내주는 임명장 필경사). 그런데 이 바틀비는 윗사람이 시키는 일의 일부에 대해서는 고분고분하지 않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는 뜻밖의 말을 자주 뱉는다. 감히 윗전(고용주)이 시키는 일인데도. 특히 변호사와 다른 의견을 가진 부분에 대해 변호사가 변호사의 뜻대로 검토 의견을 적으라고 할 때는 아예 펜을 놓거나 딴전을 부린다.
위의 바틀비와 비유하자면, 제대로 된 시인은 성공한(?) 필경사다. 기존의 언어(시선)를 모두 거부하고 치열하게/진지하게 자신의 언어를 찾아낼 때만 시쟁이를 벗어나 진정한 시작-가(詩作家)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무늬만 시인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외국이들이 내게 한국을 대표할 시인의 작품집을 한 권만 추천해 달라고 할 때 나는 엄청 난감해진다. 우리말 어법과 깊이, 용례, 작품의 품격 등에서 모두 합격점을 줄 수 있는 게 눈에 띄지 않아서다. 간신히 찾아낸 게 뒤늦게 잘 정리된 기형도 작품집이다. 교과서에 게재된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국어 맞춤법에서 100점이면서 고품격의 작품들은 눈을 씻고 봐도 몇 편 안 된다. 미국인들은 언제나 자신 있게 풀잎 시인 휘트먼의 최후 증보판을 추천한다.
음악가는 (시인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언어의 마술사다. 작곡가든 연주가든. 인간 심리/감정/감성의 그 천변만화(千變萬化)와 같은 변화 등을 음악이라는 웅대한 언어 세계에 죄다 담아낸다. 이 또한 미안한 말이지만, 음악인과 음악가는 그 세계의 웅대함/웅혼함에서 차이가 있다. 웅혼함은 웅대하고 웅장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막힘이 없을 때에만 주어지는 말이다.
첼리스트 장한나(1982~). 그는 고 황병기(1936-2018) 님과 46년이라는 나이 차를 건너뛴 ‘절친’이다. 예술 철학을 논할 때면 둘은 하이파이브를 여러 번 한다. 둘 다 엄청난 독서가들이다. 장한나는 어린 시절 영화 <미녀와 야수>를 볼 때 그 야수가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독서하는 모습과 그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서가들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자기도 크면 꼭 그리하리라고 결심했단다. 한나는 커서 그 꿈을 이뤘다. <상세판은 여기로 :
https://blog.naver.com/jonychoi/221015844473>
그래서일까. 음악가들은 명언을 많이 남겼다. 그들이 뱉는 언어들은 깊은 철학적 사유 끝에 자아내는 특제 언어들이다. 백건우, 장경화 같은 이들서부터 앙드레 프레빈, 요요마, 뒷말도 많은 황제 지휘자 폰 카라얀, 안네 소피 무터, 크리츠 크라이슬러, 아이작 스턴... 등 누구를 거명해도 거장급의 그들에게서는 의외의 말들이지만 우리의 심금을 자극하는 말들이 나온다. ‘제아무리 음악가 하나가 노력해도 (막상 해보니) 음악의 언어는 인생의 백만 분의 1도 담아내지 못하더라’(크라이슬러)라는 식으로.
-국어사전의 난맥상과 극하방(極下方)의 이용도 : ≪표준 국어 대사전≫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 ≪연세대 한국어 사전≫, 기타 대형 출판사의 국어사전들
이따금 우리말 공부를 하고 싶은데, 시중에 나와 있는 일반 출판사 사전들 중 괜찮은 것 하나만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해오시는 분들이 제법 있다. 내 사전은 제목대로 ‘고급 한국어’들을 주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내 사전의 영어 표기가 Korean Dic. for Advanced Learners다). 그럴 때마다 참으로 난감해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서가용 대사전은 크게 세 가지다(한글학회의 것은 빼고. 그 이유는 뒤에 언급). ≪표준 국어 대사전≫,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 ≪연세대 한국어 사전≫ 등이 그것.
대학에서 편간한 것은 연대(2008)/고대(2009)/의 순서로 한 해 차이인데, 경쟁 대학들이 출간 경쟁을 한 건 아니다. 도리어 고대는 17년 동안, 연대는 12년 동안 준비해서 편 것. 선의의 경쟁을 한 셈이다. 이 두 사전은 큰 차이를 보인다.
고대 것은 어휘 수 면에서 국내 최대(1억 어절)다. ≪표준≫의 거의 두 배. 한편 연대 것은 어법(품사론/형태론)/어형/용례 등에서 특장점이 있다. 전형적인 읽기용/학습 참고용 사전이다.
고대 것의 결정적 흠은 이걸 ‘공시생/고시생’들이 의존하면 망한다는 것. 비표준어들의 보고이기 때문. 국립국어원이 요즘 새로 시작한 비공식 국어사전 <우리말샘>과 흡사하게 시중에서 사용되고 있는 비표준어들까지도 죄다 표제어로 올려서, 사전의 내막을 잘 모르는 이들로 하여금 표준어로 착각하게 만드는 죄가 작지 않다.
각 포털의 사전 서비스에서 ‘네이버’는 표준국어대사전을 ‘다음’은 고려대 것을 사용하고 있는데, 다음 포털의 사전을 쓰는 작가들이 표준어라고 빡빡 우기는 통에 매번 그 이유 설명에 헛심을 쓰게도 된다.
≪표준≫의 편간엔 사연이 좀 있다. 한마디로 이어령 선생의 공이다. 산파/산모/육아교사 노릇을 그분이 했다.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를 집대성한 『조선말대사전』이 1992년에 간행됐다. 그걸 보고 남측에서는 찬탄+한탄을 쏟아냈다. 우리에겐 어째서 그런 멋진 국어사전 하나 없는가 싶어서.
혹자들은 한글학회에서 펴낸 대사전 ≪우리말큰사전≫이 있는데, 무슨 말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그 사전은 편수 당시 영향력 있는 대학자들의 제자들이 달려 들어 만든 것이어서, 구석으로 밀려서 눈의 띄지 않은 말들이나 소장파 학자들의 의견은 배제된 데다가, 무엇보다도 편찬 기준이 목소리 큰 사람들에 좌지우지되었다. 그러다 보니, 표준어 편찬 기준조차도 통일되지 못하고 자의적/수의적(隨意的)*이 되고 말았다.
[*수의적(隨意的) : ‘자기 뜻대로 하는 것. 자기 뜻대로 하는.’ 이 말이 얼마 전까지도 ≪표준≫에 있었는데,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이 말은 문법 용어 설명에서 흔히 쓰인다. ‘수의적 변화/변개’ 등으로. 이래서야...]
그래서 진짜 우리말 큰사전이 필요했는데, 북한의 그게 큰 동력원이자 좌표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그걸 해내려 보니, 당시 관의 냄새를 풍기고 있던 유일한 건 학술원 관할의 <국어연구소>. 시쳇말로 ‘하꼬방(hako房. '판잣집(板子-)'의 비표준어)’ 수준. 그래서 이 선생이 문화부 장관에 취임하자(1990.1) 급히 씨를 뿌리고 직접 출산한 게 <국립국어원>(1991.1.)이었다.
그것도 부지하세월이기 마련인 국회 입법이 필요하지 않은 대통령령(제13163호)이라는 기막힌 명수를 찾아내어 청와대를 찾아가 노태우 대통령을 졸라서 법을 만들고(이어령 씨가 88올림픽 개막식 총괄 연출/기획이었는데, 그 희대의 명장면 ‘굴렁쇠 소년’을 등장시켜 노태우를 감격시켰는지라, 노태우는 이어령을 장관으로까지 발탁했다), 취임 1년 만인 1991년 1월 23일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으로 출범시켰다. ‘하꼬방’에서 대궐 같은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격이라 연구소 사람들은 물론이고 국어학자들 대부분이 엄청 감격했다. 이 선생님은 현재 암 투병 중이신데, 이 공만으로도 그분에겐 최소한 문화훈장 금관 정도는 가야 한다.
그게 세워지자마자 1호 급선무 업무로 국어 대사전 편찬을 장관이 지정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8년이라는 최단기간에 첫 아이가 나온 것. (실제 편찬 기간은 7년.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가시랭이’도 좀 묻어 나왔지만). 그야말로 우리나라 국가기관이 처음으로 ‘이것이 표준 우리말이다’라고 엄중히 선포한 최초의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수많은 말들이 비표준어로 내몰렸다. 아니, 표준어와 비표준어 사이에서 미아가 되었다. 그걸 해소하려고 고대에서 사전을 출간했는데, 너무 나가 버린 것.
한글학회 사전은 그 뒤 그 사전 편간에 관여한 이들이 제각기 자기의 이름을 내세우고, 대형 출판사들과 계약하여 중형 사전으로 탈바꿈을 했다. 그래서 나온 게 사전 출간의 4대 대형 출판사인 M, D K, S 등에서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나온 것들이다.
어떤 건 한글학회 대사전 내용을 주로 따랐거나, 어떤 건 이곳저곳의 것들을 뒤섞는 등 편찬 기준들이 제각각. 그 결과는 어떤 사전도 ≪표준≫의 그것과 같은 것은 없다는 결과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사전 추천에서 망설이게 되는 것).
그래서 일반인 기준으로는 어떤 게 더 위험한 건지를 알 길이 없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이 아는 비표준어 몇 개를 추려 갖고 가서 그것들의 얼마 등재돼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인데, 그 또한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내 사전을 먼저 보신 분들은 내 사전에 ‘일부 사전에~...’로 시작되는 것들이 그런 문제어들이니, 그걸 몇 개 추려 갖고 가셔서 대조해 보시면 된다. ‘빨래말미, 가리마, 거스렁이...’ 등이 표제어로 올라 있으면 다른 사전을 검토하셔야 한다. 그래도 위에 적은 것처럼 100% 합격하는 사전은 드물고 99%에 근접한 것들은 있다. 머리말에 ≪표준≫에 주로 의지하여 편간했다는 내용이 있는 사전들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대형 국어사전을 살 때는 꼭 머리말부터 읽어봐야 한다. 한글학회의 대사전에 주로 의존하여 편간했다고 적힌 것들은 얼른 내려놓으시는 게 안전하다! 더구나... 요즘은 대형 출판사들의 사전 편찬팀들마저도 죄다 해체됐다(그래서 표지에는 최신간이니 뭐니 하는 딱지가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중쇄(다시 찍기)일 뿐 내용은 예전 것 그대로다). 인터넷 발달/검색의 직격탄을 맞아서. 하지만, 뒤에 적겠지만 종이사전은 단순 검색용이 아니라 읽기용이다. 급한, 일회용, 단순 검색이라면 인터넷도 괜찮다.
- 사전 없는 집? No. 국어사전 읽어보는 집? 글쎄
“국어사전 한 권이 없는 집이 어딨어?” 맞는 얘기다. 거의 집집마다 있다.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곳에 가면, 가끔 버리는 책들 중에 그게 끼어 있을 때도 있지만.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보자. “어쩌다라도 사전 찾아 보기를 하는 사람은?” “그걸 가끔이라도 재미 삼아 읽어 보는 사람은?” 대답은 극하방(極下方) 낙하 추세다.
여러 해 전의 국립국어원 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 중 종이사전을 이용하여 찾아보기를 하는 사람은 3% 미만이다. 그것도 이용자들이 50대 이후로 몰린다. 그 이유는 인터넷 발달 때문이다.
그런데 종이사전 이용과 인터넷 이용 시의 진짜 쓸모 차이를 잘들 모른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궁금한 말 하나만 찾아보면 대부분 거기서 끝난다. 유의어, 반대어는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관련어 검색은 대부분 생략한다. 속담/관용구 검색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종이사전은 다르다. 일단 해당어 페이지를 펼치게 되므로 그 페이지에 있는 것들에는 자연히 눈길이 간다. 그래서 읽게 되고, 읽다 보면 어 이것 봐라 싶어지면서 관련어 페이지들로도 간다.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바로 검색 단계를 넘어선 사전 읽어 보기의 단계다. 재미있게, 자기도 모르게 공부가 된다. 종이사전에는 그런 묘미가 있다.
대표적인 독서 국민족인 일본엔 일어 중사전인 고지엔(廣辭苑)이 있다. 그들은 판매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2013년). “전자사전 형태로도 많이 나가지만 종이사전도 여전히 많이 팔린다. 10년마다 새로 인쇄하는데, 2008년에 나온 6판도 5년 만에 100만부나 팔렸다.” 감각적인 뜻풀이를 담아 ‘읽는 재미가 있는 사전’으로 유명한 산세이도의 신메이카이(新明解) 사전은 2014년까지 7판이 나왔는데 무려 2080만부가 팔렸고, 워낙 인기가 좋아 그걸 모으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판별로 모든 것을 모은 것은 중고시장에서 정가의 10배 이상으로 팔린다.)
중국도 표준어를 국가기관에서 관리한다. 덩샤오핑은 ‘76년 개혁개방을 시행하면서 그와 동시에 인민들이 편히 쓸 수 있는 중대형의 표준 중국어 사전을 시급히 정비하라고 특급지시를 내렸다. 덩은 젊은 시절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공부한 유학파로서 언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에 따라 2년 뒤에 나온 게 现代汉语词典(표준 중국어 중사전)이다. 그리고 개정판들이 5차례 잇따라 나왔고 최근 6차 개정판이 5년 만에 2012년에 나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두 가지. 이 사전 발간 소식이 최대 국영지인 인민일보 문화면의 톱기사로 실렸다(2012.7.16.). 그리고 첫 해 판매량이 40만 부(해외 판매분 포함). 하기야,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어 공부를 깊이 하는 사람치고 이 사전을 지니지 않은 이가 드물다. 7년이 경과한 지금은 500만 부를 넘겼다. 중국은 전 세계에 자신들의 동포를 1억 명이나 가지고 있고, 그들 대부분은 중국어로 소통하고 거주 도시마다 화교학교를 운영한다. 더구나 중국은 국민의 80%가 독서를 하고, 한 해 평균 150억 권의 도서를 출간하여 250억 권 정도를 판매하는 출판 대국이다. 중국의 중국 굴기(中國 屈起)는 그런 독서력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도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은 창업에서부터 삼국지의 근간 정신인 협(俠)을 실용화했다. 기업 정신으로 삼았다. 신용카드조차 제대로 보급이 안 돼 있던 시절에 물건부터 주고 돈을 나중에 받는 그런 일대 모험으로 대히트를 쳤던 장사 수법도 그는 모든 중국인들에게 협(俠)의 정신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본사 사무실에는 큰 방마다 삼국지와 관련된 이름이 붙어 있다. 가장 큰 회의실의 이름이 도원결의(桃園結義)인 것처럼.
그런 마윈은 교사 시절 삼국지를 백 번 넘게 읽었고, 월급을 털어 삼국지 이본(異本)들을 수집했으며, 첫 해 돈벌이가 되었을 때 돈 없어서 사지 못했던 이본부터 구입했다. (삼국지 애호가인 소장자도 언젠가는 돈을 벌어 꼭 사러 올 테니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라던 마윈을 믿고 그와의 약속을 지켰다.)
마윈은 작년에 전 세계에 설립된 미래 세계 대비 거대 연구소들을 순방하면서 인공지능이 기반이 되어 모든 것을 좌우할 미래의 핵심 가치도 협이라고, 그것이 근간이 되면 절대로 망하는 일은 없다고 강조를 거듭했다.
그는 올해 9월 11일 가장 아름다운, 멋진 퇴진을 했다. ‘박수 받을 때, 최고일 때 떠나라’는 그 쉽고도 어려운 말을 나이 55세의 생일날, 창립 20주년 기념일에 실행에 옮겼다. 그의 퇴임사는 “알리바바의 목표는 그저 돈을 잘 버는 회사가 아니라, 세계를 더욱 좋게 만드는 것”이었다.
책은 사람을 그렇게 변화시킨다.
<사진 : 손을 흔들며 즐겁고 힘차게 떠나는 마윈의 배경으로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높은 꿈을 가지되 별처럼 빛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런 꿈을 가지라는, 평소 마윈의 말을 표상한 것.>
일본에서는 중대형 사전 1권을 편찬하면 박사 학위 5개급의 학술 실적으로 아주 높이 쳐준다. 명예가 아니고, 교수/공무원 임용 등의 가점 처리에서 실제로 그렇게 적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전 편찬이 학술 실적으로 인정되지 못하다가 연세대 인문학부에서 전공과 관계되는 사전 편찬이 최초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전 대학으로 번져야 한다. 왜냐, 어떤 교수(남길임 경북대 교수)는 이런 말도 했다. 국어사전 하나를 혼자서 편찬하려면 2~3년 동안 휴직하거나, 5년형 정도를 받고 감옥에 들어가야만 한다.
내 경우엔 하루 16시간씩 주휴일 하루를 빼고는 꼬박 5년이 걸려서야 초고의 잘못/추가/보완작업을 마칠 수 있었고, 초판 출간 후 2년 뒤에야 개정판을 낼 수 있었다. 원고지 17000매 분량의 글을 아마 50회 이상 살피고 다듬은 듯하다.
잡소리/군소리가 너무 길었다. 특집 해설은 분량이 적어서인 덕택도 있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말들도 했다. 특히 일반 중대형 사전을 구입하셔야 하는 분들께는 자세한 정황 설명이 꼭 필요했다. 참고로 내가 M사 것은 잘 알기에(중고교 시절 사용), 사전 편찬 시에는 K사 것을 중심으로 D사와 S사 것을 비교하여 세부 검토했기에,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시면 대략적인 검토 결과는 나눠드릴 수 있다.
-옥에 티
어제 직업란에 시 낭송자로 적힌 이혜정 님은 그 시연(示演)에서 장석주의 <대추>를 낭송했고, 시구들이 자막으로 나왔다. 눈치 빠른 분들은 자막의 시구와 낭송자 시구가 다른 것을 알았으리라. 밑줄 그은 부분들이 자막대로인 정확한 시구다. 낭송자는 그걸 모두 한 개로 발음하는 실수를 되풀이했다.
대추 한 알/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 출연 대기 상황
지난 9월 예심에서는 13명의 새 얼굴이 탄생했다. 이제 총 대기자는 170여 분이 되지만 실제 출연 가능자는 여전히 100명 안팎이다.
2017년 이후의 합격자/출연자들을 따로 담고 있다. 상세한 내용은 다음의 게시판 주소에 있다 : https://blog.naver.com/jonychoi/221315971364.
2. 문제 풀이 및 관련어 정리 : 생략
특별히 주목하여 추가적으로 공부해야 할 것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법률/전문용어 순화어 문제에서 '갑상선(x)/갑상샘(o)'은 신선했다. ‘갑상선’은 ‘갑상샘’의 전 용어로 지금은 모두 관련어들까지 갑상샘으로 바뀌었다.
순화해야 할 법률 용어의 예로 양 변호사가 든 ‘누수(漏水)’는 ‘새는 것’이 아니라 ‘물이 새는 것’을 말한다. 양 변호사는 그걸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건 시중의 매스컴들 용어이고 (‘정보 누수현상’ 등), 법률적으로는 지금도 물이 샐 때만 ‘누수’라 하고 전기가 새면 ‘누전’ 등으로 구분하여 표기하고 있다.
되레 법률 용어가 일반인들과 생소한 것으로는 아래에서처럼 평소에 쓰임이 적은 한자들이거나, 반대로 한자로 번역해야 법률적 의미가 확실해지는 것도 있다.
-‘공연(公演)한, 공연히’ : 공개적인. 여러 사람이 다 알 수 있을 만큼(의)
<예> 공연음란죄(공개적인 장소에서 음란죄를 저지르는 것)
명예훼손죄 : ‘공연히 구체적인 사실이나 허위 사실을 적시(摘示)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죄.
-‘상당(相當)하다’ : 규정하는 바에 이르거나, 그에 맞는다. 또는 마땅하다.
<예> 피고인의 죄는 법규에 정하는 최고형에 상당하므로, 다음과 같이 선고한다.
-‘보이다/보다’ : 간주(看做)되다/간주하다. 이 말들은 모두 중대한 법정(法定) 용어로서 ‘~와 같다고 보여지다/보다. 또는 그렇다고 여겨지거나 여기다’를 뜻함. 이러한 판단은 확실한 반대 증거/방증이 없는 한 뒤집히지 않음.
3. 달인 도전 문제
□ 1단계 맞춤법 문제
특집답게(?) 지극히 기본적인 문제들이었다. 그럼에도 어휘력에서는 놀라운 내공 실력을 보였던 성악가 박소영 님도 맞춤법 공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여 두 문제에서나 실족했다. 세 문제 모두 기출문제이기도 했다.
내 책자 <달인의 띄어쓰기.맞춤법> 해당 부분 전재로, 간단히 설명한다.
특히 ‘부스럭/부시럭거리다’처럼 ‘ㅡ’모음이 쓰여야 할 곳에 잘못 쓰이는 ‘ㅣ’모음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아주 여러 번 다룬 바 있다.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 분량 관계로 해당 낱말 부분만 다룬다. 시간 날 때마다 자주 그 두 부분을 훑어들 두시기 바란다.
-얼굴의 부기(o)/붓기를 빼다
◈종기 주변의 붓기가 많이 빠졌다 : 부기의 잘못.
[설명] 부은 상태는 ‘부기(浮氣)’이며, 한자어에서는 사이시옷을 받치지 못함. 단, ‘붇다(①물에 젖어서 부피가 커지다. ②분량/수효가 많아지다)’의 명사형으로는 ‘붇기’지만 그때는 이 부기와는 의미가 다르며, 불어나기(증대/증가)의 뜻임.
부기[浮氣]? 부종(浮腫)으로 인하여 부은 상태.
-종이가 부스럭(o)/부시럭거리다
◈부시시한 차림으로, 서랍 속을 뒤지며 부시럭거렸다 : 부스스한, 부스럭거렸다의 잘못.
[주의] 그렇게 푸시시한 머리로 어딜 나가니? : 맞음.
[설명] ①‘부시시하다’는 ‘부스스하다’의 잘못. ☜‘ㅡ’ 모음이 쓰여야 할 곳에 ‘ㅣ’ 모음이 잘못 쓰인 경우들 항목 참조. ②‘부스스하다’와 ‘푸시시하다’는 동의어. 단, ‘푸스스하다’ 역시 ‘털 따위가 어지럽게 흩어지거나 거칠게 나다[거칠게 나서 더부룩하다]; 물건이 부스러져 허물어지거나 헤어지다.’를 뜻하는 표준어이므로 주의!
[참고] 으시시(x)/으스스(o). 북실북실(x)/북슬북슬(o)
부스스하다? ≒푸시시하다1. 머리카락/털 따위가 몹시 어지럽게 일어나거나 흐트러져 있다. ☞[주의]‘뿌시시하다’는 없는 말.
푸시시하다2? 불기가 있는 물건이 물 따위에 닿는 소리가 나다.
-물건 값을 치렀다(o)/치뤘다.
◈비싼 대가를 치룬 뒤에야 잘못을 깨닫다 : 치른의 잘못. ←치르다[원]
돈을 다 치뤄야 네 물건이랄 수 있지 : 치러야의 잘못. ←치르다[원]
사람은 치뤄 봐야 안다 : 치러 봐야의 잘못. ←치르다[원]
내일 시험을 치를 녀석이 이처럼 태평해서야 : 칠이 더 적절. ←치다[원]
[설명] ①‘치루다’는 ‘치르다’의 잘못. 표준어 사정에서 제외된 말로 사전에 없는 말. ②‘치르다’에는 ‘무슨 일을 겪어 내다’의 뜻이 있고 (예 : 시험을 치르다/잔치를 치르다/장례식을 치르다), ‘치다’에는 ‘시험을 보다’라는 뜻이 있음. (예 : 대학 입학시험을 치다; 오늘 시험 잘 쳤니?) 위의 예문의 경우에는 내일 시험을 볼 사람이므로 ‘치르다’에 비해서는 ‘치다’가 더 적절함.
***
오늘이 찬이슬이 내리는 寒露란다. 본격적인 가을 익기가 시작되었다. 긴 팔옷이 필수. 감기에들 조심하시기 바란다. 설마 날 춥다는 핑계로 ‘참이슬’를 찾는 분들이 늘지는 않으렷다. ㅎㅎㅎ.
오늘도 여전히 성실하고 겸손하게 방방곡곡에서 우리말 공부에 매진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그리고 그 대열에 합류하실 모든 분들에게, 건강과 더불어 행운이 함께하게 되시길 빈다. 그리하여 영광의 달인 월계관을 꼭 얹게 되시길 축원한다. 속이 꽉 찬 성실한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끝]
<달인의 띄어쓰기.맞춤법> 2018년 개정판. 새로 나왔습니다!
-2009년 이후 2018년 초까지 바뀐
뜻풀이/용례/복수표준어/문장부호 등을 반영하여 수정/보완했습니다.
세 번째의 개정판(736쪽).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맞춤법 책자 중
이러한 변경사항들이 모두 반영된 것은 현재로선 유일합니다.
표준어 표기(맞춤법) 외에 띄어쓰기를 함께 다룬 책자로도 유일하고요.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 2015 개정판
-우리나라의 중대형 종이 국어사전 중 유일하게 2000년대 이후의
<표준국어대사전> 수정 내용을 반영한 사전. 2015년 3/4분기까지의
변경 내용이 담겨 있다. 300여 어휘가 이에 해당된다.
여타 사전들은 개정판이 아니라 단순히 증쇄(늘려 찍어내기)만 한 것들.
안타깝게도, 대형 출판사들의 국어사전 편찬 팀들이 해체된 지도 15 년이 넘는다.
게다가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되는 사전은 하나도 없다.
일일이 국립국어원 자료와 맞춰 봐야 한다.
<열공 우리말> 2017
재미있게 슬슬 읽으면서, 12000여 개의 낱말을 쉽게 익힐 수 있다.
생활 주변에서 대할 수 있는 우리말 관련 사항을
딱딱하지 않게, 재미를 곁들여 광범위하게 다뤘다.
어느 페이지를 들춰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하였기 때문에,
저절로 '오오 그으래?' 소리가 자주 나올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130가지 질문과 답을 통해 1천여 표제어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다시 그 표제어와 분류별, 유형별, 실생활 사용례별로 연관된
1만2천여 단어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말 관련어들의 심층 공부에 뜻을 둔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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