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인천시 중구청장님 귀하 : 학구적인(?) 백운산 등산 낙수(落穗)

[촌놈살이 逸誌]

by 지구촌사람 2012. 12. 22. 12:27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인천시 중구청장님 귀하 : 학구적인(?) 백운산 등산 낙수(落穗)

 

  집결 장소인 운서역에 도착한 시각은 11시 5분. 약속 시각보다 5분 지각. 참, 열차에서 내리면서 보니, 이혜경 님과 안동유 박사가 나와 같은 차에서 내리는 거. 흐미. 세상은 넓어. 아니, 전철 차간은 많아서 넓어!

 

  그런데... 집으로 돌아올 때 보니, 내가 '상쪼다‘ 짓을 한 것. 아침에 6시 땡 하자마자 집 앞의 투표소로 가서 1등으로 투표를 하고 나서, 아침밥을 닭볶음으로 거하게 드신 뒤 (그날 식구들 일정이 저마다 달라서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어서 난생 처음 닭볶음을 아침 식사로 먹었당.) 8시 반에 집을 나선 녀석이 2시간 반 넘게 허우적거리며 달려간 것인데도 지각을 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집 뒤가 운정신도시의 간선도로인 덕분에 노선버스들이 아주 많은 편이라서, 김포공항 행은 공항버스와 일반 노선버스 두 개가 있는데 모두 운행 간격이 뜸한 것. 자주 오는 한 녀석은 비~~~잉 돌아가서 소요시간이 길고. 하여, 내 꼴에 잔머리를 굴린 것이 자주 오는 광화문 직행을 타고 가서, 거기서 전철로 움직이자!

  광화문에서 내려서 김포공항 행 전철을 타고 보니, 오매. 이게 또 비~~~~잉 돌아가는 거. 서대문을 거쳐 여의도를 쓰다듬은 뒤 영등포도 잊지 않고 윙크. 그리고 강서구를 거쳐 김포공항. 통과역이 자그마치 거의 스무 개 가까운 것인 줄을 어찌 알았으랴. (나는 그게 여의도를 거쳐 당산 쪽으로 가는 것으로, 즉 5호선과 9호선을 헷갈리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면서 보니, 경의선의 구간 종착역이기도 한 DMC에서 곧장 공항철도와 연결되는 것 아닌가. 아휴... 그걸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리 필요할 때면 이 머리통이 깡통이 되는고!!! 나는 전철 하나도 필요할 때 제대로 타지 못하는 쪼다였당. 흐미.

 

  여하간... 그날의 등산 코스는 최 팀장이 잘 요약한 대로, 운서역-생태통로-국제/과학고교 뒤-정상-봉수대 터-굴다리 옆-용궁사-연자대-안테나 갈림길-정상-하늘고/외국어연수원-생태통로-운서역.

 

  5분 지각도 있고 하여, 얼굴들을 대한 뒤 수인사는 가면서 하는 식으로 출발. 생태통로를 지나 정상 직전인 국제/과학고교 뒤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였다. 산 아래로 천지 사방의 풍광이 펼쳐지는데, 장관이었다.

  영종대교와 인천대교에 용유도, 바로 앞에 무의도, 그 옆으로 장봉도와 신도. 섬들은 흐릿한 물빛을 담요 삼아 그 아래에서 서로 발가락을 걸고 장난질하면서도, 겉으로는 조용/의연. 모두 한두 번 이상 내 발자국이 남겨진 섬들이기도 해서, 반가웠다. (이처럼 해안가 산들은 비록 해발이 200여 미터 정도일지라도 해수면과 거의 동일 수준인지라 알차게 제대로 솟기 때문에, 사방의 광대무변함을 고스란히 선물해준다. 내가 당진의 아미산(200미터 급), 서산의 팔봉산(200미터와 300미터 급이 섞여 있는 곳)과 가야산(이 녀석은 500미터 급) 등에 올라서도 저절로 야호 소리가 드높아지는 연유이기도 하다.)

 

  눈앞의 인천공항. 기존 활주로들 외에 추가분 공사장도 보였고, 널찍한 화물터미널이 손바닥만 한 크기로 들어왔다. 대한항공의 계류장에 9대의 비행기가 있었는데,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747기만 8대. A-380도 한 대. 와... 댠항공 부자다! 내 것과는 전혀 무관한데도 국적기들의 왕성한 모습을 대하면 어디서고 괜히 뿌듯해진다. 특히, 이국땅 공항에서 녀석들을 대하면, 눈시울이 제 먼저 알고 뜨듯해져 온 적도 참 많았다. (울 나라 국적기들은 수도 없이 주인이 바뀌거나 찌그러들고 있는 다른 나라의 항공사 사정과는 달리, 계속 성장해온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전일공(全日空 ANA), JAL, JAS 등 모두가 경영난을 겪었거나 겪고 있고, 미국의 Air America, US Air, Delta 등 이른바 미제 대표 브랜드들도 한두 번씩 허덕거렸다. Air France, British Air, Lufthansa, KLM 등 한 시대를 주름잡던 대표 브랜드들 역시 안으로는 고름통을 껴안고 있거나 껴안은 적이 있는 것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국적기의 씩씩한 운항과 발전은 어디서고 참으로 뿌듯한 일이 된다. 그런데... 대한항공 홍보팀도 아닌데, 나가 시방 무신 소리를 하고 있는 겨. 원위치!

 

  시야를 아래로 끌어내리면, 산자락을 깔고 앉아 있는 학교들이 하늘신도시와 눈 맞춤을 하고 있다. 인천과학고, 인천국제고, 하늘고, 그리고 하늘고와 옆구리를 맞대고 있는 인천시공무원 어학연수원. 사방 무변으로 탁 트인 곳이니 마음 문들도 활짝 열리렷다! 공부들 한번 저절로 잘 되겠구나. 접근성이 좀 떨어지니 기숙사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을 터이고, 통학에 낭비되는 시간들도 절약할 수 있을 터... 그려. 공부 씩씩! 마음 씩씩!!

 

  이렇게 죄다 훑다간, 온종일 걸려도 마치지 못할 터. 얼른 크로키로 훑자.

 

                                                       *

  정상에 오른다. 조그만 정자가 또 있다. 200미터 급의 겸손한 산답게 정자도 귀엽게 조그맣다. 참, 백운산이라는 명칭은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진 산이다. 백운계곡으로 널리 알려진 포천의 백운산(904m)에 오르면, 광덕산(1,046m)과 국망봉(1,168m)·구경은 공짜로 한다. 강원도에는 3개씩이나 있다. 정선에 있는 게 제일 낮고(883m) 원주와 충북 제천의 경계에 있는 건 1,087m. 영월과 정선 사이에 있는 백운산(1,426m)이 높이로는 으뜸이다. 전북의 민주지산(珉周之山, 1,242m)이나 ·덕유산(德裕山, 1,614m)에 오르면 남쪽으로 보이는 녀석도 백운산(1,279m)이고, 전남 광양에도 있고(1,218m)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에 걸쳐 있는 것도(903m) 백운산이다. 이들은 모두 비교적 알려져 있는 것들로 높이가 천 미터 급. 영종도의 백운산은 그에 비하면 아주 귀여운 꼬마 산.

 

  정상을 벗어나 몇 걸음 걷자, 헬기 이착륙장[펠리패드] 표지가 큼지막하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던 모양과 다르다. 둥근 원 안에 영문 H자를 표기하곤 했는데, 이 녀석은 면류관 십자가라고도 불리는 '가슴십자가'를 눕힌 꼴이다. 하기야, 산에 가면 요즘 죄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펙토랄레가 원말인 '가슴십자가'를 눕힌 모습.

 

  내가 이상하다며 헬리패드가 맞는지 갸우뚱거리자 옆에서 혜경 님이 거든다. 모양이 헬기 프로펠러 같지 않느냐고.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헬리패드 표지가 맞는데... [참, 헬기는 상하수직 회전형이라서 프로펠러라고 하지 않고, 로우터 totor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프로펠러는 정면을 향해 좌우로 회전하는 것에만 붙이는 이름.]

  나는 그 사이에 법규가 변했나 싶어서 집에 와서 찾아 봤다. 그랬더니... 헬리패드 표지가 육상(산 위도 육상)과 옥상이 달랐다. 아하.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육상 표지는 로우터 모양이고, 건물 옥상용은 내가 알고 있던 H자형.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당. 백운산행 덕분에 그동안 긴가민가했던 걸 확실하게 확인 사살했다. 당큐, 백운산 헹님요!

 

건물 옥상의 헬리패드  표지 (H자)                  육상의 헬리패드 표지(로우터 모양) : 독도의 것.

       

  봉수대를 지날 무렵이던가. 박학다식계의 거장답게 계속 학문적인(?) 발언을 끊이지 않고 해 온 안 박사가 퀴즈를 낸다. 소주의 한자 표기가 뭐일 것 같으냐고. 소(燒)자는 이론이 없으니 통과하고, 주자에서 삼수변의 술 주자는 아니라고 미리 못을 박는다. 그리고 동행들이 머리를 쥐어짜는 시간을 주지 않으며 답까지 내놓는다. 닭유변에 마디 촌자라고. 즉, 酒가 아닌 酎라는 것.

 

  그러자, 공인 세르파께서 한마디 한다. 그건 둘 다 같은 자여.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분은 한자 사범 자격증까지 갖추고 계신 분이랑게.

(엄밀히 따지자면 燒酒와 燒酎는 증류주 소주를 뜻하는 말로, 어떻게 표기해도 뜻은 같다. 그러나 酒와 酎만 떼어놓고 보면 좀 다르다. 삼수변의 술 酒에는 일반적인 술의 의미도 있지만, 물의 뜻도 있어서 제사상에서 맹물로 술을 대신하는 무술의 의미도 있다. 그리고, 酎는 맨 처음 발효한 상태에 아무 것도 -특히 물 더 붓기- 넣지 않은 진국술을 뜻한다. 그래서 누룩을 뜻하기도 하는 酉에 못질하듯 寸을 덧붙인 것.)

 

  나는 그런 생각을 덧대는 대신, 소주라고 표기하면서도 실제로는 증류주가 아닌 우리의 비정상적인 소주를 떠올리며, 문제 내기로 전환한다. 우리의 소주 병에 법규상 반드시 표기해야 다섯 글자가 뭐게?

  문제를 내기 무섭게 만물박사 안 박사가 정답을 맞힌다. 稀釋式 燒酎. 맞다. 증류주와는 전연 달리, 순수 알코올인 주정에 물만 섞어서 내놓는 게 우리의 소주의 정체. 그게 부끄러워서 그 표기를 보일 듯 말 듯 흐릿하게 그것도 회색이나 은회색으로 레이블 귀퉁이에 표기해 놓는다.

 

  봉수대 안내 간판을 대한다. 용궁사 스님들까지도 조를 짜서 외국 배들의 침노를 감시했다는 내용이다. 단단한 기와 조각이라는 말 뒤에 경질와전(硬質瓦全)이라는 한자 표기까지 친절하게 덧붙여 있다. 가만히 보니 그 과잉친절이 문제. 와전(瓦全)과 와전(瓦甎)은 뜻이 다르다. 기와를 뜻할 때는 와전(瓦甎)을 써야 한다. 와전(瓦全)은 옥(玉)이 못 되고 기와가 되어 안전하게 남는다는 뜻으로, 아무 하는 것 없이 목숨만 이어 감의 비유어다.

  그때, 혜경 님이 또 학구심을 발휘한다. 혹시 경(硬)도 경과 갱으로 발음되지 않느냐고. 그러자 우리의 한자 사범님이 친절하게 답한다. 그건 돌석변이 없을 때라고.

 

  안 박사의 다음 퀴즈가 나온다. 감시하던 스님들을 뜻하던 ‘요망군’에서 망은 望일 터인데, ‘요’자가 뭐겠느냐고? 그리곤 또 자기가 답한다. 에구. 머리 돌릴 시간도 좀 줄 일이지. 멀 ‘요(遼)’란다. 에이... 뭘 모르는 것도 좀 있어야쥐... 피이.

  (그런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한자어 사전에는 요망(遙望)[먼 데를 바라봄]으로 나오는데, 우리말 사전에는 요망(瞭望)도 있다. 높은 곳에서 적(敵)의 형세를 살피어 바라봄.이라는 뜻이란다. 아무래도 요망군으로서는 침략자가 있을지 몰라서 살펴보는 것이니 요망(遙望)이 맞는 말인 듯.)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설명문에 쓰인 황당선(荒唐船)이란 말이 뭐일 것 같으셔? 문제를 내면서 우리말 사전에도 나오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하기야, 언젠가 1대 백이었는지 퀴즈 대한민국에서였는지, 문제로 출제된 말이기도 하다. 정답들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함구했다. 그 자리에서 답을 하면, 순간 기억은 되지만, 오래 기억되진 않는다. 공부란 모름지기 몸수고가 동반되어야, 어떤 사연이 보태질 때 오래 기억된다. 집에 와서 찾아보고 하는 수고가 따를 때에 그 사연 때문에 기억도 더 잘 된다.

  황당선은 쉽게 말해서 외국 배, 곧 우리 눈에 낯선 이국선을 뜻하는 말이다. 처음 보기 때문에 황당한 그런 배라는 뜻. ‘황당(荒唐)’은 지금도 흔히 쓰는 ‘황당하다’의 어근이다. 황당무계(荒唐無稽)나 황당객(荒唐客)[말/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는 사람]이 지금도 쓰이고 있고, 역사책에 보이는 황당인(荒唐人)은 조선 중기 이후에, 국적 불명의 외국인을 이르던 말.

 

  기왕 출제위원이 된 김에 문제 하나를 더 던졌다. 흔히 쓰는 안산(案山)은 집 뒤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앞쪽에 있는 건가? 그러자, 안 박사가 잽싸게 낚는다. 뒷산 아니겠느냐고? 앞산은 흔히들 남산이라고 한다면서. 나는 역시 답을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일러주면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또 까먹기 마련.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나간다. 공부는 모름지기 조금 애 먹으며 해야 한다. ㅎㅎㅎ.

  안산은 앞쪽에 있는 산을 뜻한다. 안(案)은 책상의 뜻으로 흔히 쓰이지만, 집터 등의 경계를 뜻하기도 하는 말인데, 정확하게는 집터나 묏자리의 경계선 바깥으로 이어지는 산이라는 뜻인데, 그러다 보니 맞은편 산을 뜻하게 되었다. 남산 역시 흔히 쓰는 말이지만, 그건 방향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서울의 남쪽에 있어서 서울 남산이요, 경주의 남쪽에 있으니 경주 남산이 되는 식이다.

 

  우리의 학구적(?)인 등산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하산 길에서 측량 표지판을 보고서였던가. 내게 문뜩 떠오른 궁금증 하나를 문제로 던졌다. 우리나라 산들의 해발 표지가 되는 원점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그러자 또 한 분의 만물박사인 세르파께서 답한다. 인하대 안에 있는 거 아니냐고?

  내가 머뭇거렸다. 왜냐, 내 기억엔 그 원점 표지판이 녹슨 채, 예전의 정수장 뒤편 수조 속에 잠겨 있던 사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기억에 의존하여 문제를 낸 것인데. 거기가 인하대였나. 아님 폐쇄된 일제 시절의 정수장이었던가.

 

  답은 집으로 돌아와서 풀렸다. 예전의 정수장 자리는 맞는데, 그것을 깨끗이 단장해서는 문화재로 모신 것. 장소도 예전의 인하전문대 자리(남구 용현동)가 맞았다. 즉, 우리나라의 표준 해수면 높이를 정해서 그걸 보관한 곳이 바로 거기였던 것. 정확하게는 <대한민국 수준(水準)원점>이라고 표기한단다.

              인하대 구내에 있는 수준 원점. 실제 원점 높이는 해발 26미터쯤 된다. 문화재로 지정.

 

  그 얘기가 나온 김에, 도로 원표 얘기도 나왔다. 즉 우리나라 도시간 거리 측정의 원점이 되는 그것 말이다. 즉시 안 박사가 정답 쟁취. 광화문 네거리 비각 안에 서 있는 돌 말뚝, 그게 바로 우리나라의 도로 원표다. 그리고, 각 도시에 가면 그 도시의 도로 원표 표지들이 있다. 어디에는 길거리에서 봐도 크게 우뚝 선 대형 비석으로 서 있는가 하면 대구 같은 곳은 공원 안에 조그맣게 얌전히 모셔져 있다. 그 원표를 기준으로 도시 간 거리를 도로 표지판에 표기한다. 그러니까 어느 도시까지 몇 킬로라고 표기된 표지판 속의 거리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곳에서 가고자 하는 도시의 도로 원표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뜻한다. 그래서, 이미 어느 도시(외곽)에 들어왔는데도 그 도시까지의 거리가 꽤나 남아있는 것으로 표지판이 되어 있을 때가 있는데, 이유는 그 때문이다.

  참, 서울의 도로 원표도 본래는 비각의 돌 말뚝이 서 있는 광화문 네거리 중앙 점인데, 서울시가 1997년 원점으로부터 151m 떨어진 위치에 (감리회관 앞 쪽의 각종 방위석이 있는 곳) 도로원표를 새로 세우고 2002년 월드컵을 기려 광장을 새로 조성했다.

 

  그 뒤를 이어 지적 측량 시의 원점 얘기도 나왔다. 혹시나 인하대 것이 그 목적의 측량용 원점이 아니겠느냐는 질문도 덧대가면서. 그 답 역시 집에 와서 확인사살을 하면서 풀렸다. 이 측량용 원점은 세 가지였다. 즉, 지도 제작용으로 더 많이 쓰이는 <대한민국 경위도 원점>이라는 게 국립지리연구원 안에 있었고, 측량 시의 편의를 위해서는 원점이 네 개 있었다. 서부/중부/동부/동해 원점이 그것이었는데, 전문적으로는 <대한민국 평면직각좌표 원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국토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지리적 중앙부는 중부 원점지역인 경기도 연천군 마포리라는 것도 덤으로 알았다. 역쉬... 사람은 죽을 때까정 배워야 혀.

 

                        국립지리원에 있는 대한민국 경위도 원점 표지판(우)과 설명문

 

[뽀나수] 본초자오선, 즉, 경도 0은 알다시피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 있다. 그런데 이 천문대가 요즘은 박물관이다. 먼지 많고, 땅도 흔들리고 해서 천문대 역할을 할 수 없어서다. 실제 본부는 케임브리지에 있는데, 그래도 역사적인 기능을 살리기 위해, 이름만은 그대로 붙여 두고 있다.

사진에서 보듯, 본초자오선을 표시하는 표지판은 둥근 금속 반원이 두 개 교차한 모습으로 세워진 말뚝이다. 그 말뚝 아래 돌 판 좌우로 거기서부터 연결되는 주요 도시간 거리를 표기해놨는데, 관광객들의 고정 방문처 중 하나다.

 

그리니치 천문대에 있는 본초자오선 표지판을 옆과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

  그날 등산을 하면서 감격한 게 하나 있다. 아주 작은 것이지만, 거기에 배인 정성이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것들을 대하게 되어서다. 바로 등산로 표지판과 야산에 배치된 분말소화기가 그것이었다.

 

  사진으로 보는 표지판은 요즘 이곳저곳에서 많이 대하게 된다. 특히, 요즘 늘어나는 이런저런 ‘올렛길’에서. [참, 이 ‘올렛길’은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 신어 사정이 안 끝난 것인지, 아니면 채택을 거부하고 있는 건지...] 특히, 북한산 올렛길에 설치된 것들과도 흡사하다.

  그런데, 감동한 것은 이러한 아름다운 디자인을 선택한 눈들도 그렇지만 비석형이 아니라서 그걸 매달아야 할 때, 그저 못질 등으로 간단히 처리한 게 아니라 용수철이 들어간 것으로 고정하여 움직임을 허용하면서 버티도록 한 그 섬세한 아이디어가 참으로 돋보였다. 못질해서 고정시키면 바람이 불거나 나무가 흔들릴 때 떨어져 나가기 십상이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예전 같으면 턱도 없었을 소화기를 산에다 갖춘 것도 참으로 기쁜 일이었는데, 거기에 곁들인 정성이 참으로 감동스러웠다. 규정에 의해 비치하라고 하면 그저 형식적으로 갖다 놓기 쉬운 분말소화기를 위해 보호 덮개를 설치한 것이 바로 그것. 즉, 그대로 눈비에 소화기가 노출되면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레버 부분이 녹이 슬기 마련이라서, 사용 불능 상태도 될 수 있는데, 그걸 방비하는 게 보호 덮개.

  그래서일까. 혹시나 싶어서 소화기 사용 가능 여부를 표기하는 내부 압력 게이지를 보니 (사진 참조) 바늘이 초록색에 와 있었다. 와아!!! [참고 : 노란색은 충진 압력이 너무 낮아진 것을 뜻하고 (사용 불가. 분말이 굳어지면 생기는 현상), 붉은색은 과잉 압력 상태를 표시한다. ) 가정이나 사무실에 비치된 것들도 대부분 게이지 바늘이 노란색으로 처진 것투성이인데 산에 놓인 소화기들이 제 성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중구청장 앞으로 편지를 써야겠다고 작심했다. 담당 공무원 하나의 섬세한 손길과 정성 하나가 이처럼 우리나라를 밝게 만드니까. 그런 공무원에게 표창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한단 말인가? (이 글 제목으로 내세운 까닭이 바로 그 때문이다.)

 

              보호 덮개를 쓴 소화기(좌). 게이지 눈금을 보라, 녹색을 지키고 있다!(우)

 

 

  용궁사에 들러, 대웅전보다도 더 큰 삼신각 앞에서 안 박사와 혜경 님이 또 공부를 하는 사이에 나는 대원군 이하응을 알현했다. 사진에 보이는 현판 글씨를 통해서.

  여기서 퀴즈. 저 현판 글씨를 대원군은 장년기에 썼을까, 아니면 노년기에 썼을까. 답은 저 글씨에 있다. 잠깐 유심히 들여다보면 보인다.

 

 

 

  용궁사를 지키고 있는 두 그루의 노거수 느티나무. 수령 표기도 안 되어 있지만 능히 400여 년 이상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특히 왼쪽의 느티나무). 오른쪽 것은 나중에 심은 것인지, 크기도 크게 차이가 났고, 수형도 오종종한 편. 사진 속에서 뚜렷이 그 모양을 읽어내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저런 느티나무가 마을로 내려오면 당나무(혹은 당산나무) 대우를 받는다. 마을 사람들의 제사상을 받으며 위용을 뽐내는데, 절이나 사당 같은 데로 오면 거꾸로 수문장 노릇을 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나무도 줄을 잘 서야 혀.

용궁사 좌우에 한 그루씩인데, 오른쪽 것은 또렷하지가 않다.  

 

  이처럼 절이나 사당의 호위목으로 심어진 느티나무들은 비교적 흔한 편이다. 내 사는 곳 파주의 자운서원에도 좌우에 각각 한 그루씩 있는데, 관리를 잘 받아서인지 수령 350년이 넘었는데도 팔팔한 청춘이다. 어디서고 처음에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는 말, 그 말도 맞는다.

자운서원 (이율곡 사당)에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우)

 

  참, 어딜 가든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는 나. 그날도 운지버섯을 땄다. 운지는 버섯 중에서 항암기능이 있는 폴리사카라이드 성분을 가장 먼저 발견해낸 버섯인데,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어디서든 흔히 접할 수 있다. 독성이 전혀 없다는 특징도 있고. 문제는 버섯이 뭉쳐나는데, 먹을 때는 낱개로 분리해서 이물질(특히, 흙)이 뿌리에 붙어 있으면 일일이 털어줘야 한다. 그 일이 만만치 않다.

  장모님 투병 기간 중 나는 상황, 차가, 운지 등의 버섯 공급책(?)이었다 고분자 수용성 키토산도 계속 공급했는데, 고가라서 세 집이 돌아가면서 석 달씩 맡아서 했다. (흡수력이 높으려면 고분자 키토산이어야 하는데, 고분자는 수용성이 되기 어려워서 주로 저분자 형태로 만든다. 중저가인 시중 제품은 대부분 이 저분자. 고분자 제품은 10배가량 비싸다.) 그 덕분이었는지 몰라도 말기암으로 4년 8개월 투병하시면서 마지막 한 달을 빼고는 폐 이외의 곳으로 전이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운지버섯> 색깔은 오른쪽 것이 제 색이다.

 

  내 집에는 장모님이 1/3도 드시지 못한 운지버섯이 있기에, 혜경 님에게 드렸다. 8순을 넘기신 자당님에 대한 효심이 깊은 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날 채취한 운지버섯은 이물질 하나 없는 특상품이었다. [Dec. 2012]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