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의 문제 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 '특권 없는 나라, 반칙 없는 사회'. 이 두 말은 DJ와 노무현 대통령을 압축하는 대표적인 명구들이다. 그만치 두 분은 명연설가였다. 힘이 있는 단문형(短文形)의 대가들이기도 했다. 게다가 둘 다 고졸.
그런 점에서는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지만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고 대통령에까지 올랐던 링컨과도 흡사하다. 나는 그가 남긴 수많은 명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다음의 두 말을 사랑한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일부 사람을 평생 속이고 모든 사람을 잠깐 속일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을 평생 속일 수는 없다.”
20세기 서구에서 가장 빼어난 연설가로 꼽히는 처칠. 그는 비록 수학 등에서는 젬병이라 3수 끝에 샌드허스트 사관학교에 들어가긴 했지만, 독서는 좋아해서 기본적으로 문재(文才)가 있었다. 초임 장교 시절, 1899년 남아프리카 보어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여 졸지에 전쟁 영웅으로 각광을 받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하원의원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직접 써서 신문에 실은 탈출기 덕분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2차 대전 중 라디오 앞에 모이곤 하는 영국인들에게 불굴의 용기와 인내를 확실하게 심어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연설이었다. 그런 그를 두고 훗날 케네디 대통령은 “처칠은 영어를 동원해서 (전 국민을) 전투에 내보냈다(→온 국민을 전투병으로 동원한 것은 그의 영어였다).”라고 요약했다. 처칠은 모든 연설문을 자신이 직접 썼다. 새벽까지...
어제(2022.9.4.) 이준석이 대구의 김광석 거리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거기에 모인 대구 시민 앞에서 연설을 한 모양이다. 오늘 그 연설 전문을 대하면서, 이준석은 연설문 작성 능력 하나는 한국의 처칠이라 해도 될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문과 만연체가 적당히 섞이는 것, 탁월한 비유, 살아 있는 역사적 사례들의 재소환, 방점을 찍게 하는 몇몇 빛나는 표현들...등이 딱 처칠을 닮았다. 놀랍다!
또 한 가지. 믿어지지 않는 게 있다. 이준석은 서울과학고와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이과생이다. 그럼에도 시의적절한 사자성어의 구사는 물론이고, 작가들도 그 의미를 적확히 알기 어려운 매우 어려운 한자어를 정확하게 채용하고 있다. 연설문 중의 ‘협량(狹量)’과 ‘귀부(歸附)’가 그 좋은 예다. 각각 ‘좁은 도량’과 ‘스스로 와서 복종함’을 뜻하는 고급한 한자어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이준석은 한문 공부가 기본이기도 했던 자신의 본향(경북 칠곡)에서 한자어 능력을 일찍부터 기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기야 이준석은 하버드 재학 시절 2년 만에 중국어를 마친 한자어 친숙파이기도 하다.
이준석은 일자리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정 안 되면 연설문 전담 특보로, 어디로든 가도 밥벌이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듯하다.
이준석의 연설문을 읽고 화답하고 싶어졌다. 내 말 대신, 아래의 명구 몇 가지로 대신한다. 각각 이준석이 꼬집은 자유와 국짐의 철부지 초재선들에게 보태고 싶은 말들이다. “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졸도할 뻔했다”는 고백을 하면서 종교 세계의 개혁에 나섰던 M.루터의 성찰을 그들에게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건 알지만 말이다. 언어가 굳으면 머리도 굳는다. 아니, 그 순서가 반대인가. 어쨌거나 돌대가리에서 나오는 건 돌 굴러가는 소음뿐이긴 하다.
- "배움이 없는 자유는 언제나 위험하며 자유가 없는 배움은 언제나 헛된 일이다."(Liberty without learning is always in peril and learning without liberty is always in vain.): 존 F. 케네디
- “새벽은 새벽에 눈뜬 자만이 볼 수 있다.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알아도 눈을 뜨지 않으면 여전히 깊은 밤중일 뿐이다.”: 김수덕, <새벽은 새벽에 눈뜬 자만이 볼 수 있다> 중
- “너의 정직은 종교나 정책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 너의 종교와 정책이 정직에 기초해야 한다”: J.러스킨
-溫草 최종희(5 Sep.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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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거리에 와서 여러분을 뵈니 정말 기분이 새롭습니다. 지금 이 거리에 잔잔하게 틀어져 있는 김광석 씨의 노래들은 세대를 관통해 우리 마음속을 울리고, 이곳은 대구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고 김광석 씨를 추모합니다.
그런데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김광석씨의 '다시 부르기' 앨범을 통해 재해석되어 모든 국민에게 알려진 '이등병의 편지' 같은 노래도 김광석 씨가 부르기 전에는 방송금지곡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노래와 창법이 우울해서 군인들의 사기를 저하한다는 이유로. 지금의 젊은 세대가 들으면 실소를 금치 못할 금지곡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아침이슬'은 시대의 현실을 담았다는 이유로 권력자가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심할 때에는 “창법 미숙”이라는 잣대도 있었습니다. 이문세 씨는 창법이 산만하고 미숙하며 전인권 씨는 창법이 수준 미달이고 가사 전달이 미숙하다고 그들의 예술을 부정당한 적이 있습니다. 산울림은 심지어 “창법혐오”라는 이유로 금지되었습니다.
이 모든 노래가 과연 예술성이 부족했겠습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낼 가사가 없었겠습니까? 이 노래들은 어둠의 시기를 거쳐 결국 노래방에서 누군가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노래방에서 세대를 초월해 불리며 뒤늦게라도 빛을 보게 됩니다. 그저 사회의 검열에 대한 과잉 잣대와 누군가의 불편함 때문에 등장이 늦어질 뿐이지 꼭 그날은 옵니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다” 라는 이 이야기, 모두에게 뼈저리게 와닿는 이야기입니다. 이대로 가면 10000원을 벌면 3000원 가량을 세금으로 내야된다는 것을 미리 알리고자 했던 대구 출신 정치인을 배신자에 간신으로 몰았던 그 광기에는 이성과 논리보다는 절대자에 대한 맹종만 있었습니다.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은 위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린 휘슬블로워였습니다. 진실을 알린 대구 출신 조응천 비서관은 보수 진영에서 파문을 당했고 민주당에서 본인이 꿈꾸지 않았을 정치 행보를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휘슬블로워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보수 진영은 탄핵에 이르는 사태를 겪지 않았을 것이고 절대자는 불행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그 당시보다 더 위험합니다. 말을 막으려고 합니다. 양두구육이라는 사자성어 하나 참지 못해서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은 공부할 만큼 했는데도 지성이 빈곤한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각하가 방귀를 뀌는 때에 맞춰서 시원하시겠다고 심기 경호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대법원에서도 양두구육은 문제없는 표현이라고 적시한 마당에 이것을 문제 삼은 사람들은 지시를 받았다면 사리분별이 안되는 것이고, 지시도 없었는데 호들갑이면 영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정치할 자격이 없고 뱃지를 떼어야 합니다.
지금의 이 모든 정치적 추태는 이등병의 편지가 방송금지곡이었고, 이문세 씨와 전인권 씨가 창법이 미숙하다고 지적받던 시절을 지금 회고하면 실소를 금키 어려운 것처럼, 그저 어두운 시절에 대한 회상 정도로 남을 그런 촌극입니다.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수에게 노래 부르는 창법을 지적하던 그 세태, 바로 대한민국 정치가 지금 겪고 있는 아픔입니다. 비유를 하면 조롱하고 비꼰다고 지적하고 사자성어를 쓰면 동물에 사람을 비유한다고 흥분하는 저 협량(狹量)*한 사람들에게 굴복할 이유가 없습니다. [*온초 주: '협량(狹量)'은 도량이 좁은 것. 그에 비하여 편협(偏狹/褊狹)은 한쪽으로 치우쳐 도량이 좁고 너그럽지 못함].
최근에 방탄소년단은 방송국에서 방송금지 처분을 당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가수이고 예술인입니다. 예술인이 가사에 누구나 쓰는 “새끼”라는 표현을 썼다고 방송이 금지되는 과잉 검열의 문제에는 입을 닫고 있으면서 병역을 성실하게 이행하겠다는 그들의 병역 면제를 논의하기 위해 나랏돈을 들여서 여론조사를 할지 말지 간보는 것이 개탄스럽습니다.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누군가를 비판할 자유,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는 자유입니다. 북한 방송을 보면 젊은 세대가 북한에 동조할까 하는 우려, 노랫말에 “새끼”가 들어가면 폭력화 될까 하는 뒷짐 진 우려는 모두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검열의 헛기침일 뿐입니다.
국민 모두, 특히 국민의힘의 모든 구성원에게는 문재인 정부의 잘못에 대해 지적할 자유만큼의 윤석열 정부에 대해 지적할 자유가 있습니다. 당연히 대통령인 당원도 당 대표의 행동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내부총질이라고 지적하고 그 모욕적인 내용을 회람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본질에서 동일한 자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유를,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향유하기 위해서 그들이 뭐라 하든지 금지곡을 계속 부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 젊은 세대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불편한 이유는 정말 그 이야기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 자체가 잘못되어서 일 수도 있습니다. TV를 볼 때 누워서 보면 처음에는 편하지만, 어느 순간 목이 꺾인 자세가 계속되면 되려 불편해지는 것 처럼, 언젠가는 목꺾임이 고착화 되기 전에 바로 앉아서,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앉는 노력도 기울여야 합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북한이라는 위협이 이 모든 것을 합리화 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대구의 시민여러분, 지금 그 어떤 위협이 이런 비문명을 정당화하고 있습니까? 7년째 저들이 적으로 삼아 린치해 온 유승민입니까? 아마 오늘도 유튜브 세계에서는 흉계를 꾸미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을 유승민은 연로하신 노모의 건강을 걱정하고, 책 읽고, TV 보고 있을겁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추진한다는 내각제입니까? 김종인 위원장은 올해 83세이고, 총선이 치뤄지는 해에는 85세입니다. 내각제하에서 그분이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이 의원이 되어야 하는데 그가 내각제를 만들어 총리가 되려한다는 음모론이 진실로 그럴듯해 보여 두려우십니까?
선관위와 우정사업본부가 결탁해서 전국적인 부정선거를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강하게 배척하고도 우리는 대선과 지선에서 이겼습니다. 지금까지 위협이 아닌 것을 위협으로 과장하고, 비상 상황이 아닌데 비상 상황으로 선포하면서 실제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동에는 갈채를 보내왔던 그들과 유튜버들이 활개를 치는 이유는 그들이 저런 위협과 선동, 의도된 비상 상황으로 대중을 지배할 수 있고, 그를 통해 그 서비스를 권력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저에게 만약 이준석이 하는 정치가 어떤 정치인지 물어보신다면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정치가 그 하나의 지향점의 하나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에게는 굽힘이 없을 것을 다짐합니다. 하지만 젊고 유망한 신진 정치인들에게는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주려고 했습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외침에는 항상 누구보다 적극 나서서 이야기를 듣고 같이 해법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출퇴근 길을 장시간 막아 세우는 방식으로 그것을 관철해서 그들보다 약해질 수 있는 어떤 시민의 권리 박탈하고자 했다면 그 왜곡된 강한 힘에 저항하지 못하는 시민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했습니다.
오늘 저는 대구의 정치 문화를 비판하고 변화와 각성을 요구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 대구의 정치가 과연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합니까? 세금에 허덕이고 고생할 국민을 위해 자기 이야기를 하던 정치인은 배신자로 몰고, 대구시민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정치인들은 오늘도 초선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전위대가 되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자성어만 보면 흥분하는 우리 당의 의원들 중에서 작금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지록위마입니다. 윤핵관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을 때, 왜 초선의원들이 그것을 말이 맞다고 앞다퉈 추인하며 사슴이라고 이야기한 일부 양심있는 사람들을 집단 린치합니까?
초선이라서 힘이 없어서 그렇다는 비겁한 변명을 대구에서는 앞으로 절대 받아주지 마십시오. 제가 아는 정치인 김영삼은 초선 때부터 용감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3선개헌은 안 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사사오입에 저항했습니다, 김대중은 의정 사상 첫 필리버스터에서 대본도 없이 동료 의원의 구속에 대해 저항했습니다. 제가 아는 초선의원 노무현은 5공 청문회에서 소리를 높여 싸웠고 그 서슬퍼런 곳에서 명패를 집어 던졌습니다. 대구의 의원들은 누구를 위해 싸웠고 무엇을 위해 희생해 왔으며 지금 어떤 탄압을 감내하고 있습니까?
대구 시민은 항상 보수 정당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당이 바르게 가고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지 이 버팀목을 믿고 무리수를 두고 그것에 동조하고 호가호위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당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사법부의 판단마저 무시하려 드는 이런 행태에 만약에 대구 의원이 앞줄에 서 있다면 준엄하게 꾸짖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꾸짖음을 주어도 그들이 고쳐지지 않을 거라 생각들고, 그들을 더 이상 고쳐쓸 수 없다는 확신이 있다면 바꿔쓸 수 있다는 위기감의 확신을 그들에게 심어주십시오.
공교롭게도 김광석 씨가 우리 곁을 떠나던 1996년, 대구는 이미 정치권에 죽비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15대 총선에서 집권 민자당이 김종필 총재를 민자당에서 거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김종필 총재는 갈라섰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신한국당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만들어내는 것에 실패했고, 대구에서는 13개의 의석 중 2개만 신한국당이 가져갔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그 뒤에 김영삼 대통령은 당에 대한 장악력이 서서히 줄고, 대선을 앞두고는 3김 청산을 내세운 이회창 후보가 득세하게 되었습니다.
조갑제 기자가 2001년에 증언한 것이 있습니다. 생전의 김영삼 대통령이 1995년 김종필 총재와의 결별을 후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갑제 기자는 오기가 세고 자존심이 강한 김영삼 대통령이 그처럼 솔직하게 당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정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승부사였던 김영삼 대통령이 털어놓는 후회는 진실할 것입니다. 그 정치 파동의 끝에서 보수진영은 그 뒤로 10년간 집권하지 못하며 좌충우돌했기 때문입니다.
2022년 지금, 대구는 다시 한번 죽비를 들어야 합니다. 어렵게 되찾아온 정권, 그리고 처음으로 젊은 세대가 정치에 관심을 두고 적극 참여한 대선의 결과, 이것이 결코 무너지게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복지부동하는 대구의 정치인들에게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더 약하라는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공천 한번 받아보기 위해 불의에 귀부(歸附)*한다면, 그 권력자가 아니라 대구시민들이 그들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침묵에 대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암묵적 동조를 대구는 암묵적으로 추인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꼭 보여주십시오. [*온초 주: 귀부(歸附)는 스스로 와서 복종함].
이제 대구에서는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근정훈장 하나 달고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리고 정치를 위해서 용기 있게 말하고 때로는 탄압받을 의지를 갖추고 강자에게는 강하게 맞설 수 있는 사람들이 대구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권력자의 눈치만 보고 타성에 젖은 정치인들이 더 이상 대구를 대표해서는 안됩니다.
과거 김을동 의원의 아버지 되시는 김두한 의원은 본인의 표현으로는 배움도 부족했고 해방 전후의 과정에서 잘못한 점도 많았으나 3선 개헌에 맞서 자당 내에서 투쟁하였고, 나중에 국민의 공분을 사는 사카린 밀수 사건을 맞아서는 국회 회의장에서 인분을 투척하고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건강했던 그는 잦은 고문과 옥고를 치른 뒤 유신헌법 국민투표를 통해 자유가 사라지던 날 55세로 일찍 사망했습니다. 적어도 거리의 주먹패였던 그가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시간만큼은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야기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아무리 배운 것이 많아도, 근정훈장을 달고 나와도, 부당함을 마주쳤을 때 김두한의원만큼이라도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코 우리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야만의 습성은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의 목숨을 거두고 그 살점을 뜯어가는 생태입니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이라는 것은 무리 지어 서로에 의지하며 살고, 그 야만을 억제하고 유전적으로 강한 자의 완력이 아닌, 투표로 선출된 권력이 사회 질서를 잡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명의 완성은 그 투표로 선출된 권력마저도 과도하게 남용될 때, 그것을 견제하고 억제하는 제도까지가 바로 완성입니다.
당 대표가 내부총질 한다며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것도 당연히 그 자유의 범위에 들어갑니다. 그를 내친 뒤에 뒷담화 하는 것도 당연히 자유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자유의 범주를 넘어서 당헌 당규를 마음대로 개정하고 당무를 뒤흔들어 놓는 것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월권입니다.
무엇보다 법원의 판결도 무시하고 당헌 당규를 졸속으로 소급해서 개정해서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덮으려고하는 행동은 반헌법적입니다. 내일 전국위원회에서 이것을 가지고 투표한다고 합니다. 절반을 훌쩍 넘는 국민이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와중에서도 전국위에서 이것에 대해 투표하겠다고 하는 것은 저들의 헌법 무시를 정당 차원에서 막아내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사법부의 개입을 이끌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끄러움과 함께 개탄스럽습니다. 헌법과 당헌 당규를 헌신짝처럼 여기는 집단이 앞으로 누구를 비판하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458일 전입니다. 저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구에서 연설했습니다. 대구가 탄핵의 강을 넘고, 탄핵은 정당하다는 제 생각이 공존할 수 있도록 받아들여 준다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했으나 문재인 정부의 부패와 당당히 맞섰던 검사는 위축되지 않을 것이고 더 큰 덩어리에 합류하여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를 통해 저는 당대표가 되어서 대선 승리를 만들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수사했던 그 검사는 이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구 시민 여러분이 탄핵의 강을 넘고 압도적인 투표로 그 약속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이제 얄궂게도 대구시민께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대구가 한번 더 기적에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목소리를 내주십시오. 그리고 대구의 정치인들이 비겁하지 않게 독려해 주십시오.
저는 어느정치인보다도 대구의 여러 현안들, 먹는 물 문제부터 공항 문제, 광역철도 문제까지 저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세세한 정책에 대한 공감보다 여러분의 용기와 참여가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대구의 세세한 문제는 여러분이 언로를 틔워주시는 순간 대구의 젊은 세대에 의해 더 나은 방식으로, 더 좋은 해법과 함께 표출될 겁니다. 젊은 세대가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숨 막혀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을 때, 젊은 세대는 그들이 교육받고 살아온 대구를 떠나기보다 대구에서 정치적인 꿈을, 사업의 계획을, 학문의 기회를 찾을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이준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자녀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손자 손녀의 이야기입니다. 아니 어쩌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미래 대구의 젊은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영남 사림의 정신은 왕에게도 직언할 수 있는 용기를 한 축으로, 그리고 퇴계 이황이 26살 어린 고봉과 서찰로 7년간 논쟁하면서 꼰대스럽지 않았던 자유분방함을 또 다른 축으로 합니다. 이 두 개의 축을 다시 구축해서 다시는 지지 않을, 앞장서서 개혁하는 민주적인 정당을 만들어서 대구시민들께 보답하겠습니다. 더 많은 대구의 시민들이 당원으로 가입해서 책임당원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대구의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주십시오. 더 많은 자유를 열어주십시오.
곧 추석이 다가옵니다. 올해 추석에는 가족들끼리 모여서 그간 못다 한 대화를 하시고 잠시는 노소가 둘러앉아 젊은 세대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눠주십시오. 아니 먼저 물어봐주십시오. 그들은 배울만큼 배웠고, 기성세대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사랑하는 만큼 공동체를 사랑합니다. 그들에게 말할 공간을 열어줄 때, 그들은 마음을 엽니다. 명절에 정치 이야기하면 다툼 일어난다는 이야기, 들을 용기가 없어서, 들을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럽니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귀를 닫는 젊은 세대는 없습니다. 그들의 맘을 꼭 열어주시고 같이 소통해주시고 다시 한 번 여의도의 그들이 두려워할 수 있는 세대 포위론을 완성시켜주십시오.
보수정당을 바꾸기 위한 노력, 피하지 않고 대구에서 더 가열차게 해나가겠습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이 길을 가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도와주신다면 그날은 더 일찍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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