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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447] ​‘외모 콤플렉스는 나의 힘!’

유치원으로 간 꼰대의 돌직구

by 지구촌사람 2022. 12. 5.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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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447] 

‘외모 콤플렉스는 나의 힘!’

 

외모 콤플렉스가 때로는 야무지게 한길로 직진하게도 한다. 자신이 잘 생기지 못했다는 걸 아예 시원하게 인정하고 나면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눈치를 보는 일 따위 없이 그냥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게도 하니까.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무정부주의자로 우뚝 섰던 에마 골드만, 패션계의 여왕이었던 코코 샤넬, 미국 페미니즘의 현대 기수 격으로 미스(Miss)/미시즈(Mrs.) 대신 미즈(Ms.)를 퍼뜨린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은 모두 자신의 외모가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그걸 잊고 일어서서 한길로만 걸었다.

 

이런 말을 하기는 좀 뭐하지만, 어느 나라에서고 NGO 등에서 열렬히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들치고 미녀들은 드물다. 특히 강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들일수록... 각진 얼굴이나 남성에 가까운 외모를 가진 이들이 매우 흔하다. 

 

그들은 어쩌면 ‘외모 콤플렉스가 나의 힘이었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사랑 앞에서는 늘 여성으로 돌아갔지만... 

 

자유연애주의자이기도 했던 에마 골드만(1869~1940)은 성의 자유에 관해 이런 말도 했다. 애인과의 합류를 위해 추방 형식을 빌려서 기꺼이 그 추운 모스크바까지 뛰어갔음에도 그런 헌신적인 사랑에 보답을 받진 못했지만. 에마는 외모에서부터 찬바람이 불 정도이긴 했다. 

 

"성적 관계에 대한 진정한 개념은 정복자가 있는 것도 정복당하는 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끝없는 헌신이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는 자신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고, 확신 있게 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이런 태도만이 공허감을 메워주고 여성운동의 비극을 무한한 기쁨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사진: 에마 골드만. 가장 여성스러웠을 때(40대 초)의 모습

 

코코 샤넬(1883~1971)은 2차 대전 당시 적국의 독일 장교를 사랑한 죄로 추방까지 당했다. 오랜 타국 생활 끝에 파리로 돌아왔지만, 몇 해 못 가 쓸쓸히 호텔 방에서 홀로 갔다. 그녀의 외모 콤플렉스는 주먹코였다. 젊은 시절 남긴 사진들의 대부분이 옆 얼굴 모습을 담고 있는 이유다.

 

사진: (좌) 코코 샤넬은 정면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주먹코 때문에. (우) 추방 후 귀국했을 때. 샤넬은 초혼을 망치고 파리로 올라와 재봉사로 생계를 꾸렸다. 치렁치렁한 치마를 과감히 자른 것이 대히트. 사진 속의 영문 문구는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for yourself) 늘 혼잣말을 해대는 게(think aloud)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다'란 뜻. 그녀의 인생관이기도 했다.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 격으로 받들리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개인적으로 내 삶을 바꾼 두 권의 책 중 하나인 <안으로부터의 혁명>을 썼는데 그녀의 콤플렉스는 멀뚱하게 큰 키였다. '여성스럽다'는 말 자체를 혐오했음에도 그녀는 사내처럼 큰 키가 싫었다. 물론 가정적으로도 떠돌이 장사꾼 아버지와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라는 불우한 환경이 그녀를 오랫동안 휘감고 있었던 어둠의 커튼이긴 했지만... [이 스타이넘에 관한 글은 내 블로그 도처에 있다. 그중 하나: https://blog.naver.com/jonychoi/221473340227

 

 

사진: (좌) 스타이넘은 큰 키가 콤플렉스였는데, 도쿄 거리를 걷다가 자신의 눈 아래로 보이는 여성들을 보면서 크게 깨닫고는 그 뒤로는 거기에서 벗어났다. (우) 스타이넘은 한국을 세 번 다녀갔다. 4~5년 전의 모습

 

이들 모두는 자신의 일에 몰두할 때면 모두 외모를 잊었다. 오직 갈 길에만 매달리기 위해서 도리어 못생긴 외모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퀴리 부인은 연구실에 거울이 없었다. 눈이 퀭하게 들어가서, 당시까지도 남아서 떠돌던 ‘마녀’ 상(相) 운운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그 따위 잡소리들을 잊기 위해서였다. 일반 여성들보다는 좀 컸던 유방이야 남들 눈엔 잘 띄지 않았고. 

 

사진: 퀴리 부인은 남들보다 더 쑥 들어간 눈이 콤플렉스였다(우리도 그런 눈을 보고 '귀신같다'고도 한다). 마녀처럼 보인다는 남들의 수군거림을 무시하면서 거기서 벗어났다. 평생의 연구 동반자였던 남편 필립 퀴리도 요행히(?) 눈이 무척 깊이 들어간 사람이었다. 유방도 처녀적부터 남들보다는 좀 커서,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늘 어두운 색의 옷만 입었다.

 

외모에 관심하는 일은 여성으로서 자연스러운 욕구에 가깝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주 챙기고(어디서고 거울을 꺼내 살피는 식), 타인들과의 비교로 일희일비하고, 삶의 필수과목 우선순위에서 외모가 1위로 꼽혀서는 곤란하다. 자기만족이란 말을 자기위안으로 직행시켜 합리화하다 보면 수다 판 수준의 인생으로 끝나고 만다. ‘외모 콤플렉스는 나의 힘!’이라 외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홀가분하게, 가볍게, 힘차게 살아낼 수 있다. 간결해서 가벼운 삶이 직진하기엔 최적이다. 

 

외모 콤플렉스가 힘이 되는 일은 여성뿐만이 아니다. 미남과는 거리가 먼 데다 수수깡처럼 키만 커서 외모만으로도 계속 촌뜨기로 불렸던 링컨은 독서가 그의 스승이라 했다. 그가 외모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11세 소녀가 수염을 길러보라고 보낸 편지 덕분이기도 했다. 수염이 없는 링컨의 모습은 광대뼈가 유난히 발달한 추남의 전형이자 독기 서린 사람으로도 보인다.

사진: 수염이 없는 링컨과 있는 링컨. 있을 때가 훨씬 덜 엄격하고 덜 독하게(?) 보인다. 훨씬 더 인간적인 내면과 상통한다

 

영국 유학 시절 그의 왜소한 체구가 영국 학생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던 간디는 자신의 외모를 유머감으로 승화시켰다. 체구가 작으니 덜 먹어서 음식비 적게 들고, 옷감 값도 적게 든다면서. 장관의 애꾸눈을 놀리기까지 하면서 법안 심사를 비틀던 일본 국회의원에게 ‘저는 애꾸눈 덕분에 더욱 일목요연[一目瞭然.いちもくりょうぜん]하게 볼 수 있습니다’로 답변했던 모 장관 못지않았다고나 할까.

그런 간디는 나중에 검소한 생활의 실물 모범이기도 한 위대한 지도자로 우뚝 섰다. 마하트마 간디로 불릴 때의 마하트마란 ‘위대한 영혼’을 뜻하는 인도의 칭송어다. 

영혼은 외모에 깃들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안에 둥지를 틀고 커 나간다.

 

- 溫草 최종희 (5 Dec.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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