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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대가리, 닭 모가지' 등을 쓰면 저속해 보일까? ‘돼지 머리’라 해야 하는지? 주전자엔 입이 있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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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촌사람 2022. 12. 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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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대가리, 닭 모가지' 등을 쓰면 저속해 보일까? ‘돼지 머리’라 해야 하는지? 주전자엔 입이 있다? 없다?

 

YS가 1979년 반정부 시위를 하다가 이른바 경찰의 그 ‘닭장차’에 실려 가면서,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큰 박수를 보내면서도, '닭 모가지'라는 표현을 두고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이 말을 좀 가려서 해야지 무식해 보인다고 토를 달기도 했다.

 

사진: (좌) YS가 닭장차에 강제로 태워지고 있다. 그때도 저 말을 외쳤다. (우)YS 서거 후 그를 기리는 이들마다 이 말을 앞세우며 그를 추모했다. 이 말을 맨 처음 쓴 것은 그가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원에서 제명이 되었을 때다.

 

또 새로 뭘 시작할 때 흔히 올리는 고사 때면 상머리에 돼지가 오른다. 그것도 웃는 돼지 모습으로 골라서. 그걸 ‘돼지 머리’라 해야 할까, 아니면 ‘돼지 대가리’라 해야 할까. 아무래도 대가리라 하면 그 돼지분(?)을 낮추는 듯도 하고...

 

YS가 무식하게 비속어를 쓴 것일까. ‘돼지 대가리’보다 ‘돼지 머리’가 나은 말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둘 다 ‘아니다’다. ‘닭 모가지’와 ‘돼지 대가리’를 써야 한다. 사람과 달리 동물에게는 본래 '대가리, 모가지' 등이 '머리, 목'에 해당하는 중립적 용어다. 비속어가 아니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모가지’는 ‘대가리와’는 조금 그 위상이 다르긴 하다.] 

 

즉 인간과 동물의 등급 구분[호적 정리]을 위해서 처음부터 그렇게 차별적인 표현을 썼다. 따라서 '새 머리, 돼지 머리, 닭 목'보다는 ‘새 대가리, 돼지 대가리, 목 모가지’가 되레 정상적인 호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해 낮잡거나 속된 말로 값을 깎기 위해서(즉, 동물과 동급으로 치기 위해서) 동물용 용어인 ‘대가리’를 인간에게도 쓰게 되면서[예: ‘새대가리 인간’, ‘닭대가리 같은 놈’ 등], 이제는 거꾸로 인간들이 헷갈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새 머리, 닭 목’ 등과 같은 변칙적인 말들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인간.동물 평등주의자의 잘못된 어법이다. 호적대로 찾아주어야 바르다. 즉 ‘새 대가리, 닭 모가지’가 바른 표기에 속한다. 다시 말해서, 동물에게는 '대가리/모가지'로, 인간에게는 '머리/목'으로 구분하여 그 쓰임을 달리하고 있다.

 

‘새 대가리’와 ‘새대가리’, ‘돌대가리’와 ‘알대가리’의 미묘한 차이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새의 머리를 뜻할 때는 글자 그대로의 뜻뿐이므로(두 낱말) ‘새 대가리’로 적지만, 우둔한 사람에 대한 놀림조 말로 쓸 때는 글자 그대로의 뜻이 아니므로(즉 한 낱말인 복합어가 되므로) ‘새대가리’로 붙여 적는다. 복합어란 본래의 낱말들이 지닌 뜻을 떠나서 다른 특정한 의미로 변전된 것들로, 한 낱말이 된다.

 

‘대가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뜻들이 있다: 1.동물의 머리. 2.사람의 머리의 속칭. 3.주로 길쭉하게 생긴 물건의 앞이나 윗부분. 

 

‘돌대가리/새대가리/닭대가리’ 등과 같은 말은 2번의 뜻에서 나온 복합어들이고, ‘못대가리’와 같은 말은 3번에서 비롯된 말이다.

 

여기서 잠시 삼천포를 들러서 가자. 가벼운 마음으로 농담 삼아 쓰기도 하는 ‘새대가리’ 따위도 조심해야 할 말이다. 2020년 7월에 하버드생 23명이 앵무새와 기억력 겨루기를 했다. 누가 이겼을까. 그리핀이라는 회색앵무가 이겨서 해외 토픽으로도 떠올랐다. ㅎㅎㅎ.

 

사진: (좌) 23명의 하버드대 학생들이 기억력 시합에서 앵무새에게 졌다 (우)학생들을 이긴 앵무새 '그리핀'

 

또 이 ‘대가리’는 ‘-대가리’의 꼴로 ‘비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도 쓰인다. 즉, 속칭으로 낮잡아 표현할 때 붙여 쓰는데 ‘멋대가리/겁대가리/맛대가리/앞대가리/알대가리/민대가리(≒문어대가리)’ 등에서 보이는 ‘-대가리’가 그리 쓰인 접사들이다.

 

이 대가리를 붙여서 사람에게도 쓰이는 한 낱말의 복합어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이것들을 담은 국립국어원의 사전에는 색깔을 달리하여 이런 말이 덧붙여져 있다: '차별 또는 비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이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돌대가리: 몹시 어리석은 사람의 머리를 낮잡는 말.

새대가리: 우둔한 사람에 대한 놀림조 말.

닭대가리: 기억력이 좋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놀림조 말.

용대가리[龍-]: 명사 은어로, ‘음경’.

 

‘모가지’는 ‘목+아지’에서 온 말로 ‘대가리’완 조금 다르다 

 

우리말에서 ‘-아지’는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하룻강아지’ 등에서 보듯 어린 새끼를 뜻한다. 이로부터 ‘똥강아지’가 ‘어린 자식이나 손주에게 애정을 담아 귀엽게 이르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모가지’는 본래 ‘목+아지’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발모가지, 손모가지’ 등에서처럼 목보다는 작은 것들에 붙여 쓰였지만, 나중에는 각각 ‘발/발목, 손/손목’의 속칭으로 변질되었다. 즉 본래는 어린 새끼를 뜻하던 ‘-아지’가 속된 뜻을 갖는 것으로 확장+변질되었다. 

 

그래서 이 ‘모가지’를 사전에서 보면 ‘대가리’와는 달리 ‘동물의 목’이라는 뜻풀이가 없다. 그럼에도 인간과 동물의 언어 구분 방식에 따라서 지금은 ‘목’은 인간에게, ‘모가지’는 동물에게 돌아가고 있다. [주의: ‘돼지 멱 따는 소리’ 등에서 보이는 ‘멱’은 목의 속칭이 아니라 ‘목의 앞쪽’을 이르는 표준어다.] 

 

‘주둥이’와 ‘부리’ : 은근히 까다로운신 분들

 

그 신분 등급 확정에서 ‘모가지’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까다로운 것으로 ‘주둥이’가 있다. 먼저 사전의 뜻풀이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1. 사람의 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 ¶그 주둥이 좀 못 닥칠까.

2. 일부 짐승/물고기 따위의 머리에서, 뾰족하게 나온 코나 입 주위의 부분. ¶생선 주둥이

3. 병이나 일부 그릇 따위에서, 좁고 길쭉하게 나온, 담긴 물질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부분. ¶주전자 주둥이까지 털고 흔들었지만 술은 한 방울도 안 나왔다.

 

이처럼 ‘주둥이’는 사람, 동물에게도 쓰이고 심지어 병이나 그릇 등에까지 쓰인다. 대역을 가리지 않는 광대역 통신 용어급이다. 

 

이 ‘주둥이’보다도 한 급 더 까다롭고 더 널리 쓰이는 게 있다. ‘부리’다. 용례를 직접 보는 게 빠르다.

 

1. 새나 일부 짐승의 주둥이. 길고 뾰족하며 보통 뿔의 재질과 같은 각질로 되어 있다. ¶병아리가 그 어린 부리로 쪼아댔다.

2. 어떤 물건의 끝이 뾰족한 부분. ¶소매 부리가 낡아 있었다.

3. 병과 같이 속이 비고 한끝이 막혀 있는 물건에서 가느다라며 터진 다른 한끝 부분을 이르는 말. ¶여우에게 부리가 긴 병에 먹을 것을 담아 내놓은 학의 복수전

4. 사람의 입을 낮잡는 말. ¶넌 늘 그놈의 부리 놀림이 문제야. 주의하라 그리 일렀는데도...

 

즉, 이 ‘부리’는 사람, 새나 일부 짐승, 물건/병의 끝부분 등에 두루 쓰일 수 있는 만능 예비군이다. 

 

정리한다. 

 

‘대가리/모가지’는 인간이 아닌 동물용으로 구획된 중립적 용어로서, 비하칭이 아니다. 사람에게 쓰면. 비하칭 내지는 속칭이 된다. 또 불필요하게 ‘겁대가리가 없다’에서처럼 비하용 접미사 ‘-대가리’를 남용하면 되레 그 사람의 격이 떨어질 수도 있다. 

 

‘주둥이’와 ‘부리’도 사람에게 쓰면 속된 표현이 된다. 하지만 동물/집기 등에는 중립적 표현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사용하는 말이므로 바르게 쓰면 사용자의 격이 올라간다. 반대로 ‘주전자 주둥이’ 대신에 ‘주전자 입’으로 주전자를 받들면 그 말을 쓰는 사람이 내려간다. ‘새의 부리’ 대신 ‘새의 입’이라 하면, 새가 졸지에 포유류로 격상된다. 입은 일반적으로 포유류에게만 쓸 수 있는 고급 언어다. 주전자엔 입이 없다!

 

늘 말하지만, 언어가 그 사람이다!

-溫草 최종희(24 Dec.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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