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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글을 고칠 때 교정(矯正)/교열(校閱)/윤문(潤文)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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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촌사람 2023. 3. 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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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고칠 때 교정(矯正)/교열(校閱)/윤문(潤文)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쓰여진 글을 고칠 때 그 범위와 내용 그리고 방식에 따라서 교정(矯正), 교열(校閱), 윤문(潤文) 등으로 나뉜다. 

 

1. 교정(矯正)

 

가장 기본적인 것이 교정이다. 글쓴이나 다른 사람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을 뜻한다. 주로 오탈자(誤脫字)와 띄어쓰기 등 표기 중심이다. 한자 표기의 단순 오기를 바로잡는 것도 교정에 속한다. 예를 들면 교열(校閱)을 교정(矯正)의 한자 표기에 영향을 받아 흔히 교열(矯閱)로 적는 일도 있는데 그것을 바로잡아 校閱로 고치는 것도 교정에 속한다. 

 

이때 글쓴이가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는 것을 퇴고(推敲)라 한다.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가 ‘僧推月下門’이란 시구를 지을 때 ‘推’를 ‘敲’로 바꿀까 말까 망설이다가 한유(韓愈)를 만나 그의 조언으로 ‘敲’로 고친 데서 유래하는 말이다. 이때 推敲에 쓰인 한자 推를 흔히 읽는 대로 ‘추고’로 읽으면 잘못이다. 推는 ‘밀 추’와 ‘밀 퇴’의 두 가지 발음이 있는데 단순히 ‘밀다’의 뜻 외에 ‘밀어젖히다’의 의미일 때는 ‘퇴’로 읽어야 한다. 

 

교정과 퇴고의 차이는 고치는 시점이다. 퇴고는 글을 쓰면서 글쓴이가 고치는 일이고, 교정은 쓰여진 뒤에 작가나 다른 사람이 고치는 것을 이른다.

 

교정의 동의어는 교직(矯直. 곧게 바로잡음)인데 실무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교도소나 출판사 등에서 교정 업무를 담당하는 직군을 교정직(矯正職)이라고 하는데 교직직(矯直職)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2. 교열(校閱)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말인데, 문서나 원고의 내용 가운데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고치며 검열함을 뜻한다. 단순 교정 외에 어법이나 낱말 오용 여부 등을 살펴서 필요하면 고치는 광범위한 바로잡기 작업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교열에 든다.

 

- ‘이 자리를 빌어’ ⇨ ‘이 자리를 빌려’ ☜ ‘빌다’는 간청하다/호소하다/바라다 등의 의미이므로 잘못이고 ‘빌리다’가 바름.

- ‘씨는 00장관을 역임했다’ ⇨‘씨는 00장관을 거쳤다’. ☜ 역임이란 ‘여러 직위’를 두루 거쳐 지냈을 경우에 쓸 수 있고 단 한 번만 했을 때는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표현임

- ‘나름 한다고 했다’ ⇨‘제/그/내 나름 한다고 했다’ ☜ ‘나름’은 의존명사이므로 반드시 앞말이 와야 함.

- ‘주구장창.주야장창/횡경막’ ⇨‘주야장천(晝夜長川)/횡격막(橫膈膜/橫隔膜)’ ☜ '주구장창.주야장창/횡경막' 등은 없는 말.

 

교열은 이처럼 광범위한 교정 작업이므로 우리말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야 가능하다. 예전에는 주요 방송사와 신문사마다 교열부를 따로 두어 자체 검열과 교정 등을 해 왔는데, 요즘은 부서가 폐지되거나 팀으로 축소되기도 해서 교열 기자들의 숫자가 줄고 있다. 

 

그 반면 이를 발전적으로 개편하여 전문성을 강화한 곳도 있는데 중앙일보(어문연구소)와 한겨레신문 등이 그 경우로서 우리말 관련 전문 서적 등을 출간하고 있다.

 

교열 업무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모임으로 한국어문기자협회(구 한국교열기자협회)가 있는데, 현재는 우리말 교열 관련 학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3. 윤문(潤文)

 

오래 전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에 <어둠의 자식들>이 있다. 예전 청계천 뚝방 시절의 판자촌 내 실화를 소설로 구성한 것인데, 유통된 것들의 저자란을 보면 세 가지로 돼 있다: 황석영, 이철용, 그리고 저자 미상.

 

정답은 아래 책자의 표지에서 보이듯 ‘이철용이 쓰고 황석영이 윤문하다’가 맞다. 즉 본래 이 작품은 이철용(소설 발간 때는 ‘이동철’이란 예명을 썼다)이 썼는데, 그는 초등학교 졸업자라서 작품으로 내놓기가 좀 그랬다. 그래서 황석영이 달려들어 얼개 등은 그대로 살리되 전체적으로 표현을 고쳐 작품화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저자를 어떻게 표기해야 하나 싶다 보니 ‘저자 미상’이란 표기까지 나왔다.

 

사진: 좌측 표지 하단에 '이철용이 쓰고 황석영이 윤문해'란 설명이 보인다.

 

윤문(潤文)은 이처럼 글을 윤이 나도록 매만져 곱게 함을 이르는 말이다. 손쉬운 예로 아직도 유행하는 자기소개서 전면 개작 작업이나 연설문 초고 전면 수정 및 보완 등이 이에 속한다. 따라서 기본적인 교정과 교열은 물론이고 문장 전체를 손보는 일이 매우 흔하다. 때로는 단락 변경, 추가, 삭제 등도 한다. 

 

윤문(潤文)은 대작(代作)이나 대필(代筆)과는 다르다. 대작은 남을 대신하여 작품을 만드는 일이고, 대필은 통째로 대신 써 주는 것을 뜻한다. 시간이 없거나 글쓰기 재주가 없는 이들이 자서전은 발간하고 싶을 때 흔히 채용하는 수법들이기도 하다. 

 

참 이철용(1948년생)은 구두닦이에서 건달, 빈민운동까지 하다가 소설이 뜨면서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나와 서울 도봉구 을 선거구에서 당선됐다. 그 뒤로도 두어 번 재선을 노렸지만 낙선했는데, 들리는 말로는 현재 역술인으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인생사 알 수 없다!

 

정리한다.

 

교정(矯正)은 표기 중심이다. 오탈자와 띄어쓰기 등을 주로 다루고, 글이 다 쓰여진 뒤 글쓴이 자신이나 전문 교정자가 한다. 글을 쓰면서 하는 건 퇴고라 한다.

교열(校閱)은 낱말과 어법 등을 바로잡고 교정을 포함한다. 우리말 전문가들이 해내는 일이다. 교열 기자들 중에는 우리말 어법 관련 책자들을 펴낸 이들도 적지 않다. 

 

윤문(潤文)은 기본적으로 문장이 대상이다. 교정 교열을 넘어 문장 또는 단락 전체까지도 손본다. 초고(草稿)에서 뼈대만 남기고 새로 쓰기를 하기도 한다. 초고(草稿)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대작(代作)이나 대필(代筆)과는 다르다. 

 

- 溫草 최종희(1 Ma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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