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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아 '화이팅'의 문제: 언어는 그 사람을 지배한다. 언어가 조종하는 대로 살아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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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촌사람 2023. 3. 20.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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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아 '화이팅'의 문제: 언어는 그 사람을 지배한다. 언어가 조종하는 대로 살아가기도 한다.

 

걸핏하면 그냥 남들 따라서 흔히 쓰는 말 중의 하나가 ‘화이팅’이다. 우선 꼬부랑말 같아서 남들과는 달리 좀 있어 보인다. 결론은 그 정반대지만. 

 

이 말은 뿌리서부터 잎, 열매, 외양은 물론이고 그 안까지 문제투성이의 말이다. 한마디로 언어로서는 선천적 기형아다. 심하게 말하면 ‘0신’에 속한다. 그런데도 이 말을 그냥 애용하는 이들이 많다. 넘쳐난다.

 

우선 뿌리가 문제다. 그 뿌리를 아는 이들이 적다. 관심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 말은 영어의 fighting이 그 뿌리다. 그런데 fighting의 의미 검색을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 말을 즐겨 쓰는 이들일수록... 짧게 말하자면 ‘전투’를 뜻한다. 시가전을 ‘street fighting’이라 한다. ‘지난 밤 세 군데서 소규모의 전투가 있었다’를 ‘Fighting broke out in three districts of the city last night.’로 표현한다. 국경에서 접전이 벌어졌다 하면 영어로는 ‘Fighting has broken out along the border.’로 적으면 된다. 다시 말해서 영어 본래의 ‘화이팅’은 살벌한 의미, 곧 전투를 뜻한다. 씩씩하게 싸우자라든가 하는 식의 다른 의미는 아예 없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99% ‘화이팅’으로 발음한다. 그걸 영어로 표기하면 ‘whiting’이 된다. 억지로 번역하자면 ‘흰색으로 칠하기, 백화(白化)하기’쯤 된다. fighting을 영어 식으로 올바로 발음하자면 ‘ㅍ+ㅎ+ㅗ+ㅏ이팅’이다. f 발음이 그처럼 까다로운데, 우리 식으로 ‘화이팅’ 소리부터 앞세우는 이들 중에 외국인이 다가왔을 때 피하고 보거나 손짓발짓으로 때우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인 중에 f 발음을 정확히 해내는 이들은 그야말로 진짜로 속으로 있어보이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또 있다. 하도 한국인들이 이 말을 애용하다 보니 국립국어원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외래어로 인정했다. 다만 감탄사로만 다음과 같이: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다시 말해서 이 말을 ‘저 선수는 파이팅(화이팅)이 필요해 보이는데요’처럼 명사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즉 이때처럼 '힘을 내어 용감하게 싸우기' 등의 명사적 용법은 국립국어원에서도 인정치 않고 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을 유쾌하게 무시하고 명사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엄청 많다.

 

여기서도 하나 더 꼭 짚고 가야 할 게 있다. 흔히 ‘화이팅’으로 적기도 하는데 국립국어원이 인정하는 표준어 표기는 ‘파이팅’뿐이다. 이건 국립국어원의 완강한 외래어 표기법 규정 때문이다. 거기서는 f와 같이 실제 발음이 p와 f의 합성 내지는 중간일 때는 모두 ‘ㅍ’로 적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래서 ‘화이팅’은 엉터리가 되고 ‘파이팅’만 바른 표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있다. 왜 이처럼 기형 외래어를 사용하려 들까. 멋진 우리말들도 있는데... 이 말의 대용어로 국립국어원에서는 ‘아자’ 또는 ‘아자아자’를 내세운 지 오래다(거기에 나는 '알라차<얼러차'나 '어영차'를 보태고도 싶다). 

그런데도 ‘화이팅’을 고집하는 이들투성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되나 못 되나 꼬부랑말을 쓰면 있어 보인다는 그 착각이 첫째이고, 두 번째로는 (좀 미안하지만) 무식하거나 게을러서다. 세 번째로는 말이야 그냥 쓰면 되는 거지 하는 식의 가벼운, 뿌리 얕은, 의식 탓이다.

 

무조건 탓할 일은 아니다. 저마다 사정이 있으므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언어는 그 사람을 지배한다. 언어가 조종하는 대로 살아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상대가 너무 맞춤법이나 언어 등에 무지하면 절교한다는 건 참으로 ‘돈 되는’ 영양가 있는 선제적 착점이다. 언어 수준이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획정하고, 사람은 그 사람의 언어 수준대로 간다. 중간에 크게 깨닫고 자신을 닦달이지 않는 한은. 

사람은 자신의 언어에서 탈출이 불가능한 존재다. 자신의 언어가 바뀌기 전에는.

-고맙습니다. 온초 최종희(19 Ma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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