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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나 이쁘니?: 거울에 관한 착각과 고정관념

[내 글]고정관념 분해 조립

by 지구촌사람 2023. 9. 1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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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나 이쁘니?: 거울에 관한 착각과 고정관념

 

거울은 왜곡 없이 사실 그대로를 보여준다?

 

우리는 거울(정확히는 평면거울)을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긴다. 즉 어떤 왜곡도 없이 진실과 사실을 고스란히 제대로 비춰주는 가장 믿음직한 사물로 여긴다.

 

키가 180cm인 사람이 있다. 그가 자신의 전신을 거울에서 보려면 거울의 세로 길이는 얼마여야 할까? 사실/진실 그대로 180cm를 담아내려면 거울 길이는(틀 따위를 빼고도) 최소한 180cm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답은 틀렸다. 신장의 절반, 곧 세로가 90cm인 거울이면 족하다. 그래서 집 안 벽에 걸려 있는 긴 거울도 거의 모두가 1.5m 안쪽이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시험들을 해보시길.

 

이것을 물리학적으로 요약하자면 아래 그림에서 보듯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아서다. 그걸 반사의 법칙이라고 한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발을 쳐다보면 거울의 절반 지점에서 꺾여서 눈으로 들어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우리가 보는 것은 그 반사각으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다). 그래서 신장의 절반 길이인 거울은 전신을 담아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키가 180cm인 사람도 거울 속에서는 90cm가 될 수 있다. 거울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더욱 작아진다.

거울이 왜곡 없이 사실(진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 우리 눈이 그렇게 여길 뿐이다.

 

사진: 반사의 법칙(좌). 입사각(AB)과 반사각(BC). 우리 눈에 들어오는(보이는) 것은 반사각.

 

 

거울은 실제의 상을 보여주는 실상(實像. real image)이다? 아니다, 허상(虛像)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거울에 반사된 후 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반사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울 뒤로부터 직진한 것으로 여긴다. 즉 가짜 상(허상. virtual image)을 본다. 그래서 거울 밖 나의 오른손은 거울 속에서는 왼손이 된다.

 

실상은 상이 맺힌 곳에 실제로 빛이 있는 것을 이르고 허상은 상이 맺힌 곳에 실제로 빛이 존재 하지 않는 상태를 이르는 말인데, 쉽게 말하자면 실제로 거기에 물체가 있으면 실상이고 거울 안에서처럼 거기에 물체가 없으면 허상이다. 따라서 거울을 통해서 보는 것은 모두 허상이고, 물체의 모양이 뒤집혀 있지 않고 똑바로 돼 있으므로 정립(직립) 허상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실상이 아니라, 거울을 통해 나온 빛이 만들어내는 허상이다. 쉽게 말해서 거울 속에 있는 나는 나의 진짜가 아니라, 그냥 빛(반사광)이 만들어낸 상일 뿐이다.

 

이상(李箱, 1910~1937))의 시에 <거울>이 있다. 이상한 실험을 되풀이한 이상답게 띄어쓰기를 무시한 작품 중 하나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또꽤닮았소/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 작품은 흔히 자의식 과잉 상태이던 이상의 자아분열을 드러내는 시로들 해석한다. 그렇게들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시론(詩論)을 논할 자리가 아니므로 거울과 관련해서만 참고하기로 한다.

 

붉은색으로 표기된 부분이 거울의 진실과 관련되는 것들이다. 이상은 분명 오른손잡이인데도 거울이 만들어낸 이상은 왼손잡이다. 그러니 거울 밖의 오른손잡이와 거울 속의 왼손잡이는 서로 악수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서로 외양은 닮았으면서도 반대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고, 그 안 모습은 아예 소통 불능인 까닭에 ‘퍽 섭섭’(실은 무척 안타까웠을 듯)한 것으로 물러서고 있다. 실상과 허상은 동일시공간에서 동거(존재)할 수 없다.

 

거울은 거울이 깨끗할 때만 시대의 거울이 된다

 

일본의 감옥에서 27살로 마친 짧은 생애 내내 반일과 애족애민의 삶을 견지했던 윤동주의 작품에 아래의 <참회록>이 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그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이 작품은 일제가 강압적으로 시행하던 창씨개명을 앞두고, 일본 유학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걸 해야만 하던 윤동주가 창씨개명 신청서 제출을 하루 앞두고 그 고민을 담아낸 시다. 한민족의 역사 앞에 죄를 지어야만 하는 시대 상황을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로 표현하고 있는데, 주목해야 할 구절은 거울을 자신의 손과 발바닥으로 닦는다는 부분이다. 자신이 맞이하고 있는 시대의 거울이 이미 잔뜩 더렵혀져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자신은 열심히 닦아서 깨끗한 거울로 만들어서 비춰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 앞에 던져진 시대의 거울이라 할지라도 그 거울이 더러운 것이라면 무턱대고 이른바 귀감(龜鑑. 거울로 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으로 삼지는 않겠는데,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더렵히는 일을 하게 되어 참회한다는 내용이다.

 

거울이라 해서 어느 것이든 올바름이나 본받을 만한 대상의 비유가 될 수는 없다. 거울 자체가 더러운 것이라면 더더욱 그리되어서도 안 된다.

 

곡면(볼록/오목) 거울은 쓸모 있는 왜곡의 표본이지만, 희화화(戲畫化)에 앞장서기도 한다

 

제주의 여미지식물원에 가면 볼거리 중 하나에 ‘마술거울’이 있다. 그 앞에 서면 모두 난장이가 되기도 하고 거꾸로 매달린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딸내미와 함께 그 앞에 섰을 때 나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사진: 여미지의 마술거울. 아래는 키가 잔뜩 줄어져 있고, 위의 상은 거꾸로다.

 

이것은 거울이 평면이 아니라 곡면이라서다. 아래 거울은 볼록거울(수저의 뒷면 같은)이고 위의 것은 오목거울(수저의 앞면 같이 들어간)인데, 볼록거울은 물체보다 훨씬 작게 담아낸다(그래서 멀리 있는 것을 봐야 하는 자동차의 사이드미러 등에 쓰인다). 그 반면 오목거울은 조금 떨어지면 상이 거꾸로 맺힌다. 이 두 거울을 동일 각도로 배치하면 위와 같은 재미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처럼 반사광을 분산하는 볼록거울은 반대로 멀리 있는 물체를 당겨서 담고, 평행으로 나아가는 오목거울은 도립 허상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그 거울들의 본성이지만, 우리 눈에는 본성과 달리 보인다. 즉 거울과 우리 눈이 합작하여 사물을 왜곡한다. 그 조립에 따라서는 위에서 보듯 사물을 회화화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회화화의 본질은 우리의 시선이다. 거울엔 죄가 없다.

 

우리는 거울 앞에서 어째야 할까, 그리고 지금 나의 거울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모든 것은 우리 눈이 해낸다. 우선은 거울의 본질을 알아야 하고, 눈에 들어오는 것들의 실상을 제대로 깨달으려면 그에 합당한 실물 노력을 해내야 한다. 정신에 제대로 된 정제물을 담아내려면 몸수고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은 거울 앞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놋그릇 중에서 방짜 유기를 최고로 꼽는 것은 그 숱한 메질(망치로 두들기기)과 용광로와 찬물 담금질의 반복의 덕분이듯, 정신의 진국도 몸수고 메질에서 나온다.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이상과 윤동주는 모두 서른도 못 되어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 짧은 20대는 지금도 남아 빛난다. 오늘날의 후대들 위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것은 그들의 안이 가열하고 치열했기 때문이 아닐까. 겉모습만 비춰주는 거울 앞에서 거울 속까지를 들여다보려는 그 진지함이 남긴 그들의 언어가 우리를 숙연케 해서일 듯하다.

 

그러므로 나는 거듭 말한다. 사람의 뒷모습까지도 보여주는 거울은 언어라고. https://blog.naver.com/jonychoi/221989410157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溫草 최종희(18 Sep.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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