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숙의 여인들과 안문숙/이경애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대한 화면에 내 고향 서천이 보였다. 화면을 고정시키고 보니 <박원숙의 함께 삽시다>다. 서천으로 옮겨 새 시리즈를 시작한 모양인데, 몰랐다. 그 프로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 출연진이 전혀 내 취향이 아니라서다. 나는 나이를 불문하고, 안으로는 깔끔+쌈빡한 번개이되 밖으로는 수더분하고 털털한 여인을 좋아한다. 이른바 ‘아줌마스러운’ 이를 최고로 꼽는다. 특히 제대로 된 아줌마를.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 즉 밖으로만 깔끔을 떨고 동작이 느리고 말만 해대면서 잡생각이 많은 이른바 공주파들을 질색한다.
그걸 내 사쾌주의(四快主義. 快食/快眠/快便/快性)로 단순화시키자면 잘 먹어대고, 쉽게 잠들고, 변비 따위 없고, 제대로 성생활을 해내는 이들, 그래서 얼굴이 맑고 가벼운 이들이 좋다. 그 반면 잠 하나 제때 즉각 들지 못하고 변비를 달고 사는 이들은 외면하는 쪽이다. 그 쉬운 것들 하나도 못해내는 건 죄 그 자신들 탓인 까닭에.
아래 사진부터 보자.
사진: 바닷가 갯벌 체험(조개 캐기)
네 여인이 바닷가로 갯벌 체험(조개 캐기)을 하러 나갔을 때의 차림이다. 갯벌에 들어가려면 운동화 정도로 신어야 한다는 건 기본이다. 갯벌에 들어가도 좋을 신발을 신고 있는 건 맨 앞의 안문숙 하나뿐이다. 옷차림도 그렇다. 긴 흰 옷을 걸치고 흰 모자에 흰 신발까지 갖춰 차린 안소영(중앙)의 신발은 아예 굽이 높은 외출용 신발이다. 그 옆의 치마 차림이 박원숙이고 그 뒤가 혜은이인데 셋 모두 선글래스도 잊지 않고 쓰고 있다.
게다가 갯벌 체험에서 보니 가관이었다. 주부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대하거나(바지락칼국수의 바지락), 국물용으로도 자주 쓰는 동죽조개, 조개탕에 빠지지 않는 대합이나 백합 등에 대해서 마치 처음 보는 것들인 것처럼 완벽하게 무지했다. 안문숙을 빼고는... 그러자 그날 조개 캐기를 시범해 보인 이장도 조개 이름들을 설명하다가 전혀 무관심한 그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대합 백합의 구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흔하디흔한 동죽과 바지락조차 그 이름을 처음 듣는다는 듯이 해서야.
도회지 여인들에게 대단히 잘못된 버릇 하나가 있다. 냉이 앞에서 냉이라 하면 '아 이게 냉이에요?'하는 새삼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그래야 도회지 여인이라는 듯이. 냉이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무식쟁이임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알아보면 시골 출신으로 얕보일까 봐 그러는 경우들이 더 많다.
사진: 국물용으로는 그만이지만 해감을 오래해야 하는 동죽(좌). 칼국수집에서 늘 대하는 바지락(우). 동죽은 바지락의 두어 배 크기지만 껍데기가 얇아서 잘 깨지기도 한다.
사진: 대합(좌)과 백합(우). 이 두 가지는 지방에 따라 뒤섞어 부르기도 한다. 대합을 보고 백합이라고도 하고 백합을 보고 대합이라고도 한다. 둘 다 백합과에 속하지만 정식 이름이 백합인 것(우)은 표기와 달리 흰색이 아니다. 서천에서도 백합을 보고 대합으로 통칭하는데, 수산물 시장에서는 바른 이름을 적어놓고 있다.
사진: 백합의 실제 크기. 이처럼 크기 때문에 서천에서는 큰 조개라 하여 대합으로 부른다
박원숙(‘49년생.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중퇴)을 필두로 안소영(’59년생. 정화여상 졸업), 혜은이(‘56년생. 대전의 호수돈여고 졸업), 안문숙(’62년생. 광주여상 졸)은 저마다의 사연들을 간직한 채 홀로 사는 이들이다. 안문숙만 처음부터 끝까지 미혼이고.
이 중 요리나 일상생활 전반에서 말 대신 행동으로, 그것도 즉각 즉각 시원하게 해대는 건 안문숙 하나뿐이다. 가장 저조한 편은 한때 섹시 글래머로 불리던, 이른바 '애마부인' 출신의 안소영이다. 어떤 상황에서고 걷어붙이고 달려드는 건 거의 보지 못했다. 대표적인 공주파라서 보기에도 답답한지라 그냥 외면하게 된다. 나는 굼뜬 편은 그래도 봐주지만, 점잔과 내숭을 뒤섞고 귀부인 티까지 보태지는 사람에겐 질색한다. 얼굴이 해맑지 않은 사람은 감점을 보탠다(?).
안문숙을 코미디언(개그우먼) 출신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전혀 아니다. 81년(19살)의 미스롯데 출신으로 미모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그때 면접에서 튀는 게 좋다는 진행자 허참의 충고대로 살모사를 좋아하고 깡패 연기를 하는 게 꿈이라고 답해서 선발된 일화가 있는데, 그만치 씩씩하다. 실제로도 그다음 해에 공채 탤런트로(코미디언이 아니라) 뽑히는데, 깡패 연기를 하기도 했다. 안문숙은 한마디로 화통하다. 내숭 따위와는 거리가 멀고, 요리의 고향 광주 출신답게 요리도 참 잘한다. 척척이다.
사진: 안문숙(1981년 고3 시절에 미스롯데로 뽑혔다)
안문숙과 친한 이로 코미디언 이경애(‘64년생)가 있다. 박원숙의 통영 시리즈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걸 우연히 봤다. 보고서 깜짝 놀랐다. 안문숙과 판박이, 아니 그 이상이었다. 입으로만 나물 타령을 해대는 언니들을 젖혀두고, 마당의 풀뽑기를 하면서 따로 모은 것으로 쓱쓱 나물무침을 해내고, 바베큐용 장작도 도끼를 들고 즉시 팼다. 임간 산책에서도 제 혼자 쑥쑥 앞질러 갔다. 그다지 경사지가 아님에도 뒤에 처져서 헉헉거리는 언니들을 앞에서 채근했다. 그런 식의 모습 앞에서 시청자들이 환호했는지 이경애는 한 번 더 모습을 보였는데, 그게 바로 내가 봤던 장면들이었다.
이경애는 딸, 아내, 주부로서 빠지지 않는다. 참으로 열심히 효녀+1등 아내+엄마+주부로 살아냈다. 그럼에도 하늘이 아직 그녀에겐 인심이 박하다. 재혼한 남편이(바람도 좀 폈다) 신부전증으로 십몇 년인가를 고생하다가 먼저 떠났는데, 아직도 그를 생각하면 자신이 웃고 사는 일이 미안해진다고 말하는 여인이다.
사진: 이경애와 가족 사진. 남편은 신부전증으로 13년간 투병하다가 사망.
사진: 이경애도 세는나이로 올해 60살이다.
나는 그런 안문숙과 이경애가 참 좋다.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되고 허그가 허용된다면 그들을 가만히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내 고향 서천 크로키
박원숙의 서천 시리즈가 촬영되고 있는 곳은 서천군 기산면 수출리라고 한다. 찾아보니 서천공주고속도로의 톨게이트가 있는 동서천IC 인근이다. 서천에는 서해안고속도로의 톨게이트(서천IC. 종천면)도 있어서 동서에서의 진입이 가능한 곳이다.
사진: 숙소가 자리한 동네(좌)와 네 여인의 숙소(우). 맨 왼쪽이 대장인 박원숙이 머무는 곳.
지도: 서천군
서천은 동서로 약 30km, 남북으로 약 20km쯤 된다. 춘장대해수욕장, 동백정, 희리산휴양림, 한산과 마서의 갈대밭, 국립생태관, 한산모시 전시관, 전통 명주인 소곡주... 등을 꼽을 수 있는데 ’며늘아. 전어철이 돌아왔다‘라는 말을 공식 슬로건으로 내걸고 전국 최초로 전어축제를 했던 곳이기도 하지만, 주꾸미 축제를 최초로 공식화했던 곳이기도 하다. 전어 축제의 표어는 군청의 공무원 하나가 발휘한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그 뒤 전국으로 번졌다고 한다.
숨겨진 보물들도 있다. 예전에 명성을 떨치던 완도김의 자리를 지금은 광천김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 광천의 앞바다가 무창포해수욕장이고 거기서 조금 더 위쪽이 대천해수욕장이다. 그래서 실제로 김을 양식할 장소들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 김의 건조 가공에 필요한 생김 애벌 처리를 하는 곳이 서천이다. 따라서 굳이 족보를 따지자면 광천김은 서천김이기도 하다. ㅎㅎㅎ.
또 장항제련소는 1936년에 건설된 남한 유일의 건식(乾式) 제련소로서 구리·금·은·납·아연 등의 비철금속 제련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60~70년대만 하더라도 인근에서 학생들의 소풍.관광지로 빠지지 않았을 정도로. 현재는 LS그룹 소유로 바뀌고 금은 제련은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비철금속의 제련 분야에서는 여전히 엄지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 장항제련소의 최근 모습. 요즘은 전기동 생산이 주력이고, 스테인리스파이프도 만든다.
이 프로가 서천을 점찍은 데는 이런저런 것들이 작용했을 듯하다. 촬영을 위한 왕복에서 서천은 통영과는 비교가 안 되게 편하다. 편도 두어 시간이면 되니까. 게다가 훑어야 할 곳들도 천지다. 어딜 가도 심심치 않은 걸 담아낼 수 있다. 아무래도 서천을 점찍은 데는 서천을 아주 잘 아는 작가나 제작진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서천 출신의 연예인들: 김진규, 뽀빠이 이상룡, 김진아, 김응수, 이원승, 설경구, 류승룡, 나한일
저 맨 위에 보인 사진 속의 남성은 뒤늦게 뜨고 있는 김응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70대는 너끈히 되었겠거니 싶었는데, 오마나 ’61년생. 그가 10여 년 아래의 후배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의 딸이 할아버지로 보이는 아빠의 노안(老顔)을 어려서부터 싫어했다는 말이 수긍된다) 영화 타짜에서 ‘묻고 더블로 가. 너 목숨 걸고 베팅할 수 있겠냐’의 대사로 뜬 이후, 그 밖의 수많은 대사들이 패러디되고 있다.
사진: 김응수. 일본 유학 시절에 아내를 만났는데 동성동본이어서 혼인신고 불가. 그 바람에 오랫동안 맘고생을 했다. 그 당시엔 그런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탓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커플들까지도 있었다. 김응수는 딸만 둘이다. 늦장가(36살)를 든 편이어서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김응수가 서천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방송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그가 살던 서천의 동북면 쪽, 즉 시초면/기산면/한산면 사람들은 서천고로 진학하는 대신에 군산 쪽의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았고, 그도 군산제일고를 다닌 탓도 컸다.
서천-군산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했는데 서천에는 의원밖에 없어서(지금은 서해병원도 있지만) 병원을 가려면 군산의 대정병원으로 갔다. 군산 사람들도 호남선의 혜택을 받지 못해서 장항으로 건너와 장항선을 타고 서울을 드나들었다. 당시에는 다리가 없어서 군산-장항 간을 배로 오갔다. 지금은 금강하굿둑이 만들어져 기차도 장항역에서 군산역으로 이어지고, 동백대교가 있어서 차로도 건넌다.
여하간... 서천 출신의 연예인 이야기를 좀 하기로 한다. 실은 은근히 많다. 월남 이상재 선생과 박정희 시대의 막강한 권력파 신직수 검찰총장(중정부장)으로 대표되는 선비 동네인데도(차관급과 고위직 언론인들을 50여 명 배출).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도 서천 출신으로 서천중까지 나온 뒤 공주사범으로 진학했다.
유명 연예인 1호로는 60년대에 은막을 주름잡았던 김진규(1923~1998)가 있다. 공부를 잘해서 당시의 대전고보(현재의 대전고)로 진학 중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일본 유학까지도 했다. 3번 이혼 후 김보애와 재결합하여 1년을 살고 세상을 떠났는데, 김보애와의 소생이 바로 김진아(1963~2014)다. 배우가 되겠다고 하자 김진규가 화를 냈고, 미국인 남성(케빈)과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리자 격노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무슨 일인지 50대 초반에 하와이에서 숨졌다.
사진: 김진규의 사진 모음. 한국의 대표적 미남으로 꼽혔다
사진: 미국인과 결혼한 김진아는 50대 초입에 하와이에서 숨을 거뒀다.
2호로는 뽀빠이 이상룡(1944~) 이 있는데, 사연을 알고 보면 그 또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키가 작은 편인데 태어날 때부터 기구했다. 가난한 탓에 어머니는 제대로 먹지 못했고, 그 때문에 거품에 싸인 채 미숙아로 태어났다. 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집에서는 그를 생매장했지만, 그날 새벽 12살이었던 그의 이모가 몰래 파헤쳐서 그를 데리고 깊은 산 속으로 도망쳐서 혼자 키웠다. 6살이 되어서야 걸음마를 간신히 시작했고, 12살까지 8가지 성인병을 다 앓았다.
이상용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10대 초반부터 보디빌딩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보디빌더로 활약했고 고려대 농대 재학 시절에는 미스터 고려에 선발되기도 했다. 그는 ROTC 5기 출신인데(‘67년 임관)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다. 1970년 3월 육군 중위로 제대한 후 외판원 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다가 1971년 CBS 기독교방송에서 방송MC로 방송 일을 시작하였다. 그가 고려대 재학 시절 응원단장을 했던 경력을 주목한 변웅전(당시 《유쾌한 청백전》의 사회자) 덕분이었다.
사진: 뽀빠이 이상룡. 20대 시절(좌) 현재(우)
참 이처럼 대학 시절 응원단장의 경력으로 발탁된 또 다른 연예인이 있는데 바로 연세대 출신의 임성훈[’50년생]이다. 그 또한 여전히 현역 연예인인데, 당랑권, 오형권 등의 고수로 지금도 체육관엘 반드시 들른다.
사진: 2년 전의 임성훈 모습(좌). 오형권 책자의 표지 모델로도 나왔던 임성훈(왼쪽의 흰색 도복 차림)
그래서 이상룡은 신체적인 약자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항상 천 원짜리를 한 묶음 준비해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보면 점심값에 보태라고 몇 장씩을 꼭 주곤 했다. 그러던 그가 심장병 어린이 관련 일에서 횡령 혐의를 받는 바람에 엄청 맘고생을 했다. 3달 만에 그 누명을 벗었지만, 평생 동안 수백 억 원을 기부해 온 그로서는 한동안 잊을 수 없는 크나큰 고통이었다. 그는 지금도 전국의 노인회관 순례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다음으로는 이원승(‘60년생)이 있다. 외모로부터 비롯된 ’원숭이‘라는 별명을 가진 코미디언. 하지만 알고 보면 웃기기는커녕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는 현재 동숭동에서 잘나가는 피자집 디마떼오를 경영 중인데 서민부자라는 프로에도 출연할 정도로 진짜 부자 쪽이다. 그런 그지만 IMF 때는 자살 일보 직전까지도 갔다.
사진: 이원승의 피잣집(좌)과 이원승
그가 놀라운 것은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다. 피자집을 하려면 제대로 레시피를 익히고 배워야 한다면서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이태리로 갔다. 고생 고생을 하면서 피자의 ABC를 익히고 개업했다. 재료 구입에서부터 조리까지 처음에는 그가 다 했다. 이 정도 이야기는 드물지 않은 편으로 그저 B학점 정도다.
그다음이 범상치 않다. 줄여서 적자면 그는 현재 그의 휴대폰이 없다. 그리고 중앙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휴대폰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실물로 보여준 모델인데 그 덕분에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 내 친구 중 두 사람도 그런 이가 있는데, 한 사람은 국어학 박사이고 하나는 전직 기원 원장으로 둘 다 지금은 은퇴자들. 그러니 더더욱 집 전화만으로도 전혀 불편이 없다.
그 밖에도 서천 출신은 더 있다. 해동검법의 창시자 나한일, 천만 관객 보증수표 설경구, <최종 병기 활>로 뜬 류승룡 등도 서천산이다. 하지만 나한일을 빼고는 출생 후 잠시 서천에 머물렀을 뿐 초교부터 외지에서 생활(설경구는 서울 마포. 류승룡은 성남 수정구)하는 바람에 정작 서천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각인되지 못한 연예인들도 있다. 예전 말로 하자면 원적지가 서천인 사람들이다.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내 고향 서천과 어울리는 사람 둘을 꼽으라면 단연 안문숙과 이원승이다. 수더분하지만 속차고 손이 빠르며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안문숙은 서천의 내 예전 어머니들을 빼닮았다. 지금은 ’서천수산물특화시장‘이라는 긴 이름으로 한 급 더 올라가 있는 서천장에서 구한 신선한 재료들로 꾸려지는 서천 음식들을 대해 보라. 깔끔.담백하면서도 뭔가 감칠맛이 오래 머무는 것에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뭣 때문에 그런 맛이 나는지 궁금해서... 그게 서천 엄니들의 지혜로운 손맛이다. 내가 50여 년 넘게 서천을 떠나와 있는데도, 맛없는 것들 앞에서는 대번에 고개를 내젓고 돌아서게 하는, 까다로운 입맛을 지니게 한 원흉이기도 하다.
사진: 서천수산물특화시장. 자세히 훑어야 어째서 특화시장의 이름이 붙었는지를 알게 된다. 암튼... 저곳에 관한 방문기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가격이 참 착하다'이다.
이원승은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선비의 고향 냄새를 지우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압축판이다. 배우였던 김진규도 일본 유학파였고, 이상룡은 고려대 출신이다. 원승의 고향은 선비의 술인 한산 소곡주가 빚어지는 곳이다. 나이 50을 넘기고서도 박사 학위 공부를 해낸 데에는 그 고향의 글 냄새에 젖어 지낸 덕도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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