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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자들의 새해 첫날 행적 비교론

[내 글] 수담(穗談)

by 지구촌사람 2013. 4. 6.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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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당선자의 새해 첫날 행적들

 

                                                                             최  종  희

 

  1993년1월1일 아침 8시경. 나는 집에서 한 해에 두어 번 걸치는 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부산했다.

  순해서 더욱 <멀대> 같이 보이는 양놈과 눈치 결혼을 하려는 조카가 제 아버지 대신 작은아버지인 내게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우리 집에 온다고 했던 터였다. 바깥물을 먹고 지낸 내 지원 사격이 절실한 판국이라서 그러는 것이긴 했지만.

  하고많은 머스마들 중에 하필 코쟁이 녀석이라니 내 맘에 썩 들진 않았다. 하지만, 기를 쓰고 반대하고 뭐 하고 할 일도 아닌 것이, 내 아이든 조카든, 제 인생은 자기들이 알아서 꾸려갈 일일 뿐.

 

  그때 전화벨이 울었고, 통화를 끝낸 나는 입다 만 한복을 다시 벗어야 했다.

  - 저, 아무갭니다.

  - 안다 알어. 근디 무신 용건이어? 내가 시방 쪼까 속닥하게 바빠볼까 싶은 참인디.

  - 농담하실 일이 아님다. 저... 넘버 원이 09시 30분에 호텔로 뜬답니다.

  - 남보리 원이 뜰 일이라면 당연 사전 법석이 있어야 하는 디. 그런 거 없었잖아.

  - 아. 그 지는 넘버원이 아니라, 새로 뜨는 넘버원 말임다. 당선자 얘깁니다.

  - 알았네.

 

  나는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새해 첫날 이뤄지는 대통령 당선자 행차였다. 전날 퇴근 때까지도 그런 얘기가 없었는데?!

  집에서 맞는 1월1일이라면 이른바 원단 세배라는 묵직한 어구로 그럴 듯하게 수식되는 행사를 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방문객들과 덕담을 나누거나 정국 구상이라도 하고 있어야 할 대통령 당선자가 호텔로 찾아든다니, 참.

 

  호텔 로비로 들어서니 사복 근무자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적다. 몇 시간 전에 도착해 있어야 할 경호대 인원도 시간이 임박해서야 나타났다.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아는 얼굴이라고는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관할서의 이0호 서장뿐.

  (DJ정부에서 경찰청장을 한 이다. 그의 전임자인 이0영, 구0일* 씨 등이 각각 경찰청장과 경찰청 차장을 지냈으니 그곳 서장 자리가 왕년의 특1급 자리라던 종로서장 자리보다 더 빛나는 자리가 되었다. 강남은 이러저래 이 나라 특급 지역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 서장에게 다가가 설날의 징발 근무 얘기를 덕담으로 때운 뒤 그와 나란히 서서 당선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빵삼이 아자씨가 들어섰고, 한달음에 그를 맞아들인 것은 세간에 대학 동창으로 알려져 있던 구0회씨였다. 그는 당시 럭키엘지그룹의 주력기업이라고 할 엘지상사의 회장 겸 호남정유 회장이었고, 그 호텔의 지분 30% 정도로 경영권을 행사하며 그 호텔의 회장으로도 재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내 구 회장의 지정 객실인 32층의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암튼 그렇게 해서 1993년 새해 첫날의 내 아침은 적당히 구겨졌다. 11시 반 쯤인가에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이 오찬을 겸해서 식사를 마치고 호텔을 떠날 때까지 나는 이0호 서장과 커피만 축냈다.

  자리를 지키는 머슴 일이 그렇듯,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점심도 거른 채.

 

  그렇게 동강난 휴일로 기분 찜찜해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다.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새해 첫날이라면 일반 무녀리 서민들조차도 그동안 해오던 나쁜 짓도 그만 하고, 그럴 듯한 걸 해보겠다면서 결심 나부랭이를 잔뜩 늘어놓기 마련 아닌가. 식구나 아내 앞에서 큰소리를 치지 않으면 제 혼자에게라도.

  예컨대, 담배를 끊어보겠다며 금연 딱지를 이곳저곳에 붙여보기도 하고, 조기 귀가나 일주일 중 3일 이상 금주, 취중에 '내가 계산하지' 하면서 고집부리지 않기, 고향 부모님께 최소한 월1회 이상 전화하기....... 어쩌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작심3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긴 하지만도.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된 그 아자씨는 부자 회사의 회장 친구 호텔로 나들이를 해서 둘이서 한참 뭐라고뭐라고 속닥거리고 돌아갔다. 그것도 새해 첫날 아침에.

  그리고 한참 지나서다. 대통령 취임 후 이런저런 인사들이 이뤄지고 났을 때, 구 회장은 무역협회 회장 감투를 하나 더 얹고 있었다. 나는 경제5단체장 중의 하나인 무역협회 회장 자리가 어떻게 해서 뽑히는 건지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지만, 대통령으로 뽑혀 맞이하는 새해 첫날에, 그것도 항용 있게 마련인 세배까지 거르면서 둘이서 서로 찾고 모시고 할 정도의 사이라면 그 정도 자리쯤이야 당연히 대통령의 친구인 구 회장에게 어울릴 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가슴속에 우겨 넣고 지퍼를 채웠다.

 

                                                     *

  그 뒤로 여러 해가 지났다. 단군 이래 두 번째로 어수선하게 맞은 새해라는 소리가 들리던 1998년1월1일. 나는 새 대통령에 뽑힌 DJ가 어떻게 하나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다행이었다.

  대통령이라면 무조건 목소리를 깐 채 '나는...'이 아니면 '본인은...' 이라는 호칭으로 제일 높은 사람인 것을 시도 때도 없이 강요하듯 들이대던 이 나라에서, 나의 간절한 바람대로 '저는...'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DJ는 그날 30여 권의 책과 서류 보따리를 잔뜩 끌어안고 부인과 함께 서울 근교에서 새해를 맞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걸 보며 나는 안도했다. 다섯 해 전, 새해 첫날 아침 호텔방에서 돈 많은 친구와 독대하던 빵삼이 아자씨가 왠지 미덥지 못했는데 기어이 그 IMF바람을 몰고 오지 않았던가.

  자신도 혼비백산이었겠지만 그는 자리만 물러나면 그만이었다. 넋이 나간 채 덤터기를 뒤집어써야 했던 건 그에게 나라 살림을 맡긴 이 나라의 주인들이었다. 큰 머슴 하나 잘못 고른 죄를 피를 토하며 짊어져야 했다.

 

  그런데, 그 DJ의 근교행 행차를 보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자식들은 놔두고 부인만 함께 한 게 그거다. 아들들이 다 커서 일가를 이룰 정도면 그 곁가지 또한 여간만 한 게 아닌데, 기왕이면 그 아들들까지 데리고 가서 대통령으로서의 아비가 당부해야 할 소리도 있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다시 떠올랐던 것은 DJ의 조카사위이기도 한 내 친구 하나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처가의 <젤 큰 성님>이라는 이로부터 아주 귀한 포도주 한 병을 받아서 잘 먹었고, 더구나 아내가 그로부터 받아온 용돈 중에서 몇백 만원인가를 떼어 자신의 용돈으로 주었는데, 강남의 검사 친구들 단골 술집으로 가서 그 돈을 기분좋게 쓰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은근히 자랑 삼아 내게 했을 때였다.

 

  물정 모르는 나이 어린 사람이 소통령 소리를 듣는 바람에 제 아비와 <따블>로 똥칠을 뒤집어 쓴 역사에서 그때까지도 따뜻한 똥김이 서리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은근한 내 염려는 결국 DJ 아들들이 연출한 <홍삼트리오의 불명예3악장>이라는 제목으로 내키지 않은 연주회를 열어야 했다.

 

                                                *

  말이 많아 탈도 많고, 말하지 말라고 특제 지퍼를 헌상해야겠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우리으 돌쇠, 노무현>. 그는 두 가지 면에서 DJ를 앞지른다.

  그 중 하나는 꼬박꼬박 '저는...'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점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들은 어째서 지보다도 나이 많은 이가 적지 않은 국민들 앞에서 노상 '나는...'이라는 말을 앞세웠느냐 했을 때, 그 옆에서 우리나라 법이 그렇다고 김밥을 싸댄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때 인용된 게 헌법이다. 헌법의 대통령 취임선서 어구. '나는 국헌을 보위하고......' 어쩌고 하는 게, 바로 그 근거라는 말이다. 세상에...

  김밥 싸는 데 무슨 소린들 끌어다 대지 못하랴.

 

  두 번째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어 맞은 새해 첫 날 제주도로 가족과 함께 내려갔다. 장성한 아이들도 죄다 데리고. 큼지막한 호텔도 아니고 '쬐끄만' 펜션에 들어, 가족과 해맞이도 했다.

  뭘 생각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식구들과 오랜만에 그저 맛있는 식사나 해야겠다 싶었어요... 어쩌고 했다던가.

 

  아내도 대동하지 않은 채 호텔방에서 돈 많은 친구와의 독대로 새해 아침을 때운 빵삼이 아자씨는 소통령 바람에 국정까지도 <조졌고>, 달갑잖은 IMF 선물까지 안겼다.

  감방에서 독학으로 영어 공부까지 해댈 정도의 학구파 DJ는 아내와 책만 벗 삼아 새해를 맞은 탓인지, 그때 함께 하지 못한 아들들이 아비의 얼굴에 똥칠들을 해댔다. 다른 건 몰라도 지성(知性) 한 가지만으로도 이 나라의 큰 별이었던 그의 퇴임 자리가 그처럼 서글플 수가 있을까. (그가 창안해낸 통일 용어와 분배경제학 용어만으로도 그는 독보적인 지성인에 든다.)

 

  세상이 몹시 어수선한 지금 나는 그저 한 가지만은 안도한다. 노무현 시대에 자식들만은 그의 정치 표어의 정반대 방향에 서 있을 게 확실할 듯해서다. 그의 참여정부에 어떤 꼴로도 결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거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므로, 자식들이 정치판의 앞뒤에서 아비 얼굴에 똥칠을 해대는 일은 없을 듯도 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리고 그게 새해를 맞은 아비가 자식들까지 데리고 가족과 함께 한 그 덕분일지도 모르는 일이라면 얼토당토않은 망발일까.

 

  엊그제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새해 소망을 빈 이 나라의 숱한 아비들을 향해, 올 한 해 자식들이 아비 속 썩이는 일만은 없을 거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을 때, 문득 떠오른 대통령들의 모습이다.

  아니, 당선자가 되어 부푼 꿈을 펼치기 전에 맞이한 새해처럼, 무엇이든 올 한 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부지게 결심했을지도 모르는 이 땅의 선량한 아비어미에게 그저 엉뚱한 곁가지처럼 들이밀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Jan. 2004]

 

[追記1] : 강남경찰서장 역임순서는 이0영, 구0일, 이0호씨. 경찰

          청장으로는 9대 이0영, 10대 이0호의 순서. 얼마 전

          용산 사태와 그 밖의 문제로 물러난 14대 어청수 청장은

          이0호 서장 당시 정보과장으로 재직했다.

 

[追記2] : 이 글은 여섯 해 전에 쓰여졌다. 이걸 긁적일 때만 해도

          노 대통령이 자식들 일로 기구한 일생을 서둘러 마감

          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요즘

          아비 얼굴에 똥칠은 예사이고 부모를 죽음으로 몰기도

          하는 게 자식들인 듯하다. 특히, 권력이든 돈이든, 돈 좀

          되는 걸 크게 거머쥔 사람의 자식들은...

 

          무자식이 상팔자가 아니라, 無錢無權의 아비가 상팔자

          라고 바뀌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상팔자닷! ㅎㅎㅎㅎ. [Dec.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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