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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초 화장품을 맨 나중에 바를까

[내 글] 수담(穗談)

by 지구촌사람 2013. 8. 26.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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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기초화장품을 맨 나중에 바를까

  

                                                                                             최  종  희

 

  화장품 종류 중에는 파운데이션이라는 게 있다. 이 나라 여성들이 기초 화장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얼굴에 색조 화장을 할 때 사용하는 기본 제품이다. 색깔별로 갖가지 이름과 번호들이 붙어 있다.

  그걸 여성들만 사용하는 건 아니다. 남성들도 이따금 쓴다. 이른바 <조명발>이라는 걸 의식해서 무대 화장이라는 걸 할 때는 남성들도 그걸 사용한다. 즉, 파운데이션은 색조화장을 할 때 쓰이는 화장품이다. 콤팩트로 두들기건 붓으로 찍어 바르든.

 

  그런데, 이 파운데이션(foundation)이라는 용어는 알다시피 기초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다. 기초 화장품이라는 뜻이다. 기초 화장을 마감하기 위해 쓰는 화장품의 이름이 기묘하게도 기초 화장품이다. 나는 그게 내내  궁금했다.  

  수입 화장품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번 친구가  있다. 그에게 평소의 그 의문을 던져봤다. 녀석의 대답은 리처드 박이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피부 관리에 관한 저서까지 내놓은 사람다웠다.

 

  화장은 피부 관리 차원에서 행하는 일반적 화장과 분장을 위한 색조 화장, 곧 메이크업이라는 게 있는데, 그 색조 화장을 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쓰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즉,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나면 그때부터는 일반적인 화장이 아니라 본격적인 분장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아하......

 

                                                      *

 

  내가 결혼식장의 주인공일 때가 있었다. 신부 입장이라는 소리에 뒤돌아서서 장인의 손에 이끌려 식장으로 들어서는 신부를 보고 나는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낯선 여인이 있었다. 그날 내가 허둥대면서 크고 작은 실수들을 했던 것은 낯선 신랑 역할 때문만이 아니라 자꾸만 옆에 있던 낯설어 보이는 여인에 대한 뒤숭숭한 생각이 더 많이 작용했던 탓도 있었지 싶다.

 

  그 뒤로 결혼식장에 가면 나는 신부들을, 아니 여인들을 유심히 본다. 대체로 평소보다 조금 더 정성을 들여 찍고 바른 모습들을 하고 있다. 어색할 정도로 진한 화장들도 흔하다. 낯익은 신부들조차도 그날은 영 딴 사람처럼 보인다. 그 신부 화장이라는 것 때문일 게다. 대체로 예뻐 보이지만, 어느  때는 전혀 아니올시다에 가깝게 진한 화장에 묻혀 있는 신부도 있다. 시쳇말로 <빗자루>라고 비하시켜 부르기도 하는 가짜 눈썹이 무거워 눈을 제대로 치켜올리지 못하는 신부도 흔하다. 그럴 때는 신랑이 나처럼 놀라서 허둥거리지 않게  되기를 은근히 빌게 된다.

 

  이 나라 여인들의  화장이 너무 진하거나  요란하다는 말이 들려온 지 꽤 오래 되었다. 해마다 명절이면 약방의 감초처럼 초대되어 안방 티비를 장식하는 주한 외국인 부인들이 있다. 그들은 한국 여인들에 대한 촌평을 부탁 받으면, 정이 많고  착하고 부지런하다는 칭찬 뒤에 이 화장 얘기를 조심스럽게 얹곤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하여 너무 요란스럽다는 얘기다. 거의 예외가 없다. 그럴 때마다 새삼 부끄러워진다.

  그런 현상은 이 나라 외교관 부인들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현지 파티에서 국내에서 하던 대로 꾸미고 나갔다가 그 요란한 화장 때문에 외교에 도움은커녕 나라 망신을 시킬 때조차 있다. <놀자 판> 여인으로 곡해를 받고 나서야 놀라서 화장을 고칠 정도로, 이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널리 유포된 화장은 기본의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다. 이러한 현상은 이 나라의 여인들이 미국을 포함한 구미의 여러 나라라든가 가까운 일본 같은 곳에 나가서 몇 년만 살고 돌아와도 하나 같이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짙고 두꺼운 화장 버릇 때문에 포복절도, 기절초풍할 일도 흔하다. 주변에서 흔히 대한다. 이를테면, 부부동반으로 등산 모임이라도 할 때 보면 여인들의 화장은 파티장에서 성장(盛裝)을 하고 있을 때와 똑같다. 심지어는 운동하기 위해서 스포츠 클럽이나 헬스클럽에 올 때도 여전하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투피스 정장 차림이거나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일 때도 화장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얼굴 구석구석 빠진 곳 하나 없이 항상 진하고, 두껍고, 요란하다. 어디를 강조하고자 했는지, 어디에 무엇을 살리고자 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죄다 자연스런 화장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그 때문일 게다. 한국 여인들의 붕어빵 화장법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마치 그녀가 다음 스케줄로 어떤 공식모임이나 파티 같은 게 있는데 따로 화장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서 다음 스케줄과 복장에 맞추어 미리 화장을 하고 나온 것인 줄로, 친절하게(?) 짐작하기도 한다.

  뿐이랴. 느슨하고 자유롭기 위해서 되는 대로 걸치다시피 하는 청바지 차림에도 이 나라 여인네들은 그 짙은 화장을 빼놓지 않고 한다.       

                                        *   

 

   이러한 문제의 시작은 기초 화장 이후의 일들 때문인 듯하다. 하나 같이 표준화(?)되어 있다시피 하다. 스킨과 로션으로 줄여 부르는 이런 저런 로션과 크림 종류로 기초 화장을 마치면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마스카라와 아이섀도우를 거쳐 볼터치와 립스틱을 빼놓지 않는다. 어느 새 기본으로 굳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라인도 거의 빼놓지 않는다. 아예 문신으로 새겨놓은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나서, 이른바 특수 화장이라는 걸 하는 사람들도 있다. 눈자위가 쳐져 보이는 것을 가린다든지, 잡티가 보이지 않도록 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그걸 일반인들까지도 한다. 대다수의 일반인들도 한 가지 이상의 특수 화장을 한다. 그게 특수 화장인지도 모른 채 그냥 해댄다. 남들이 하고 있는 것 같고, 또 그렇게 한다니까, 그냥 한다. 그러니, 화장을 안 한 듯이 자신의 개성을 살려 화장을 하는 것을 잘하는 화장으로 여기며 그렇게 가르쳐 온 외국의 화장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이 지구촌에서 참으로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로 이 나라가 꼽힌다.

 

  며칠 전 티비를 보았더니 포인트 화장이라는 게 있었다. 그날은 눈자위가 쳐진 것을 가리려면 콘실러를 바르라면서 어느 강사가 젊은 여인에게 그걸 발라 보이는 화면을 내보내고 있었다. 문지르지 말고 두드리라면서.

  강사가 이야기하고 있던 콘실러. 그것은 유액 성분이 조금 더 들어간 파우더인데, 파운데이션보다 조금 더 밝은 색조를 쓰기 때문에 눈자위가 쳐져서 약간 어둡게  보이는 부분을 가려주는 역할을 하긴 한다.

 (그런데 화장과 관련하여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유통시키고 있는 용어의 상당수가 콩글리쉬라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그녀가 사용한 콘실러 또한 마찬가지다. conciliar라는 단어인데 양쪽을 다독여 화의한다는 의미의 형용사지 명사가 아니다. 제대로 쓰려면 conciliator라고 하거나 conciliar agent 또는 conciliar powder라고 해야 한다.)

 

   사실 이 포인트 화장은 전문 화장에 속한다. 그런데도 이 같은 전문적인 화장 기법에 관련된 사실들까지도 일반인들의 화장 상식으로 접수되기를 희망하거나 유통시키는 사람들이 아주 흔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여성 잡지 몇 권만 들춰봐도 빠지지 않고 눈에 띈다. 심지어는 중고생용 여학생 잡지에까지도 침투해 있는 지 이미 오래다.

   그런 준비 과정을 충분히 거친 탓일까. 대학에 입학하기 무섭게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마스카라와 아이섀도우 화장까지 해대는 여대생들도 적지 않다. 이십대 접객부들의 화장 같은 진한 화장을 심심치 않게 캠퍼스에서 대하는 일도 그래서 생긴다.  

   (우리나라의 이런 현상을 접하고, 크리크라는 미제 화장품 회사의 본사 사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 여성들의 화장기술은 다른 나라의 여성들에 비해 그 수준이 아주아주 높다. 일반화장을 뛰어넘어 수준 높은 부분 강조 화장술에까지도 일반적으로 능통해 있다. 놀라운 일이다”라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물건 팔아먹으려니 비꼬는 말도 돌려서 말할 수밖에 없는 장사꾼의 화술(話術)이 이해되긴 했지만, 엄청 씁쓸했다.)    

 

                                     *    

 

  주말에 이따금 우리 부부는 장을 보러 광명으로 건너갈 때가 있다. 서울과 경기도를 가르는 개봉다리를 건너서 일 킬로쯤 걸어가면 나오는 광명시장은 값도 싸고 시장 구경 자체가 여간 아니다. 신이 난 내가 휘파람을 불며 오간다.

  광명시장으로 가려면 우리는 다리를 건넌 뒤 곧장  좌측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 골목 또한 여간만 한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게 아니어서다. 다른 게 아니라, 그곳에는 요즘 한 통속으로 통일해서 술집들이 들어서 있다.

 

  몸을 파는 동네마다 뻘건 불빛으로 통일되는 것은 일찍부터 홍등가로 표기된 탓이려니 하지만, 요즘에는 절반쯤 그 안이 보이도록 유리창을 해달고 있어서, 우리처럼 지나는 사람들이 괜히 기웃거려보기에는 딱 안성맞춤이다. (하기야, 그렇게 되어 있어야 성공적인 술꾼 꼬드기기가 이뤄지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옆에서 함께 걷는 아내에게도 기웃거리기를 사주한다. 궁금하기는 아내도 마찬가지라서 좌우에 늘어선 술집 풍경에 열심히 눈길을 준다.

 

  어떠냐고 묻자, 아내는 뚱딴지같은 답을 해온다. 몹시 야한 차림이라거나 상품화된 여인들에 대한 안쓰러움 따위를 기대하고 있던 내게는 엉뚱하게만 들리는 대답을.

  - 쟤들도 별로 요란하게 화장을 하지 않았네 머. 일반인들이나 똑같네?!   

 

  그렇다. 얼굴과 몸짓으로 장사해야 하는 술집 여인들은 직업적인 화장을 한다.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화장만으로 이내 표가 나는 게 그런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화장이다. 하나같이 진하고 두껍다. 그리고 온 얼굴에 화장품을 찍어 바르다시피 한다. 그래서, 누가 누군지 구분이 잘 안 될 정도다.

  그런데, 이 나라의 경우는 헷갈린다. 아내의 말처럼, 일반 가정주부 수준의 화장이나 신경 써서 화장을 하는 여대생의 화장 수준만으로도, 술집 여인들의 화장에 뒤지지 않는다. 여염집 여인네와 술집여자가 그 화장만으로는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 나라의 화장 수준이 전문적인 화장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기뻐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진한 화장의 표본으로는 무대 화장이 있다. 일본의 가부끼나 중국의 경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을 보면 출연자의 본래 모습을 전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화장들을 한다. 그만큼 분장을 통해 자연인의 본래 모습을 철저히 감추고 연극 속의 등장인물로 완전히 변신하기 위해서다. 즉, 진한 화장은 본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한다. 변신을 요구하는 직업에 더욱 몰입하기 위한 화장이어서, 꾸미기보다는 감추기가 그 주된 목적이다.

  화장을 진하게 하는 우리네 보통 여성들, 특히 주부들의 경우, 무엇을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일까. 설마, 주부라는 직업을?

 

                                                            *

 

  그렇다면, 주부가 직업일까. 필요에 따라 지금보다 더 당당한 직업으로 인정받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직업란에 주부라고 표기해도 시비하는 사람이 없는데다, 통계청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걸 보면 버젓한 직업이긴 하다. 아니, 객관적으로는 확실한 직업이다.

  그런데, 주부들은 집에 있을 때보다 외출할 일이 있으면 새롭게 화장에 신경을 쓴다. 중요한 모임일수록 바짝 신경을 써서 화장에 매달리는 시간을 길게 늘인다. 그렇게 해서 꾸미고 나선 주부들의 경우 심하면 앞서 얘기한 한 것처럼 술집에서 대하게 되는 사람들과 잘 구분되지 않을 때도 있다. 만약 그 모임이 꽤나 신경 써야 하는 부부동반 모임 같은 것이었다면 집에 돌아와 부부싸움으로 연결될 때도 있다. 마치 신출내기 외교관 부인이 생각 없이 국내에서 하던 대로 하고 나간 진한 화장이 파티에 참석한 현지 부인들의 입에 내내 오르내리게 되는 것만치나 사람들의 입가심거리로 떠오르게 되어서다.    

 

  주부가 직업이라면, 그리고 화장이 직업에 알맞게 해야 하는 것이라면, 주부는 오히려 그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집안에 머물 때 그에 합당한 화장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집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은 요즘 연예인들이 앞장서서 유행시키고 있는 희푸른 아이섀도우에 반짝이 마스카라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면, 그건 지나친 보수주의자의 발상일까.

  티브이 연속극을 보니 거기 출연하는 간호사들까지도 그렇게 하고 나오던데, 그런 눈화장 하나에까지도 말많은 사내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겠느냐고 목청을 높여오는 이가 있다면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긴 하다. 

           

  진한 화장. 전문적인 수준에 가까운 파운데이션 이후의 화장에 대해서 그것의 필요성과 계기를 한번쯤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도 꼭 필요한 것인지, 어째서 그걸 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어떤 연유로 그걸 자신도 하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혹시 그것도 남들이 모두 하니까 생각 없이 따라 하게 된 것은 아닌지, 연예인이 유행시키는 올해의 화장법에 연예인이 아닌 자신도 얼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숨고르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 티브이에서 보여준다고 해서 너나 할 것 없이 덩달아 베끼는 데 나설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와 반대로, 티브이에서 보여주는 것 중에서 되레 쉽사리 버려지는 것들이 있다. 살결물만 발라도 고와 보이는 이북 여성들이나 그와 정반대쪽에 위치하는 한국 여성들의 화장을 보면 남성 지배 사회에 모두 다 공개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무척 용감한 사람들인 것 같다는 말이 그것이다.

  뒤의 말은 일본 여성계 대표들이 방한 후 후일담으로 재담 삼아 던진 말인데 상당한 비꼬기가 그 안에 숨겨져 있다. 그런데 그걸 빌미 삼아 반성으로 연결하자고 외치는 우리나라 여성계 대표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 여인들도 이 진한 화장에서 예외가 아니어서일까)

 

  파운데이션. 기초를 뜻하는 화장품 하나. 하지만, 그 뜻과는 달리 기본 화장이 끝나고 나서야 바르게 되는 본격적인 분장용 화장품이다. 즉, 색조 화장품. 하지만, 그게 어느 사이엔가 이 나라에서 화장을 하고 지내는 성인 여성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화장품이 되어버렸다. 왜냐.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잠시 눈길을 돌려보자. 파운데이션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내는 주부들이 나라 밖을 벗어나면 어디든 흔하다. 이 나라에서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피부 상태가 진한 화장을 하고 지내는 사람들보다 훨씬 못하지도 않다. 나은 경우도 많다. 이와 관련, 미국의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하나는 가장 화장을 잘 하는 여배우로 꼽힌 여인의 특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네, 그녀는 어떤 색을 바를까 고민하는 대신, 뭘 발라야 얼굴 전체의 피부가 항상 촉촉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인가를 더 관심하더군요... 예를 들면 그녀는 립스틱의 칼라보다는 립글로스에 더 신경을 쓰는 식이지요.

 

  이런 관점과 관련지어 헤어모델 얘기를 하나 하고 가자. 아름다운 머릿결 한 가지로 모델 생활을 하는 사람들 말이다. 쉽게 말해서 샴푸 선전에 그 찰랑찰랑한 머릿결을 흔들어대는 사람들 얘기다.

  그런 아름다운 머릿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머리를 감고 관리하느냐는 물음에 그들이 들려주는 답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 샴푸 같은 건 전혀 안 쓰고 비누로만 감습니다. 말릴 때도 가급적 헤어 드라이 같은 걸 쓰지 않지요. 특히 린스 같은 것은 두피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절대로 쓰지  않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네 여인들의 목욕 그릇에 빠지지 않고 담겨가는 샴푸와 린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해진다. 그리고, 막상 자신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샴푸를 되레 많이 사서 쓰라고 선전하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도... 

 

                                                       *   

 

  화장품을 뜻하는 cosmetics는 그리스어 kosmetikos가 불어를 거쳐 영어로 유입된 말로, well-arranged, 곧, 잘 꾸민다는 뜻을 갖고 있다. 영영대사전을 보면 결점을 감춘다는 의미로도 해설하고 있다. 그처럼 화장품은 기본적으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피부에 영양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적극적인 기능으로까지 발전되었다.

  하지만, 그 본래의 기능은 보완적이고 긍정적이다. 그것을 눈살 찌푸릴 정도로 사용하는 일은 본래의 기능에서도 크게 벗어나는 일이다. 더구나 화장에 찌든 맨 얼굴을 대하게 되는 것처럼 안쓰러운 일도 없다. 감출 것이 얼마나 많아서 저리 되었을까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러므로 이제 파운데이션을 바르기 전에, 그것을 화장의 시작으로 여기며 새로운 분장으로 들어설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아니, 파운데이션으로 화장을 끝내더라도 그것의 의미를 한 번 되돌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우리의 삶에서 덜어내야 할 꾸미기와 드러내야 할 감추기를 그렇게 해서라도 돌아보게 되는 일은 아무리 보태져도 좋은 일일 듯하므로.

  덜 감춰도 좋은 삶,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일 때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그런 순박한 자연미를 체화하려는 자세, 그리고 그러한 가치가 거부감 없이 만장일치로 채택되는 사회, 그것이 우리의 지향이 되도록 한 번쯤은 곰곰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3/2001] 

 

[덧대기] 이 글을 쓴 지 13년이 지났다. 그 뒤로의 변화?

             가장 바람직한 것 중의 하나로는, 이 나라의 직업 외교관 부인 중에는

             나라 밖에 나가서 '한국식(?)'으로 화장하는 이는 이제 거의 없다는 것.

             일부 초임 낙하산 대사 부인이 잘 몰라서 실수하는 경우는 있지만...

 

             두 번째로 반가운 것은 우리나라의 여성들 중에서도

             파운데이션 단계(?)까지 나가지 않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

 

             반대로 심해진 것도 있다.

             전 세계 화장품 시장 규모와 대비하여 우리나라는 10위 밖이긴 하지만

             아직도 캐나다나 인도보다 크다. 한 해 약 6조 원 규모의 대형 시장.

 

             게다가 우리나라 광고비 시장 규모가 10조 원 정도인데

             화장품의 그것은 제작비를 빼고도 1.5조 원 정도.

             전자/통신 부문을 제외하고 단연 2위.

             물론 그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울 나라 화장품 값 비싸다는 소리가 이젠 비명 수준에 이르고 있다.

                                                       [Aug.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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