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트비어와 섹스하기
섹스를 하고 나면
허망+씁쓸+찜찜+그리고 ????하다.
그것도 무쟈게 배고파서, 갈망하다가 하고 나면
그 뒷맛은 더하다.
손장난으로 자위를 하고 났을 때보다는 그래도 덜 하긴 하지만...
나만 그런가.
하기야, 음식 맛은 배가 덜 고플 때
느리게 느리게 놀면서 먹어야 제맛이 나긴 한다.
그렇지만, 우리 인생이란 게 워디 그런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배 고픈 척해야만
먹을거리가 눈에 확 띄게 들어오는 법이고
배 고파해야만
먹을거리를 찾아서 좀더 <쎄게>, 그리고 재게, 움직이게 되지 않던가.
내가 이곳 뒤셀도르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게 될 때부터
알트비어를 향해 모든 촉각을 집중시키게 됐던 것처럼...
울러지(Ulerige)라고, 쉽게 얼른 기억하기 위해서,
내 맘대로 이름짓기를 했던 웨리게(Uerige)를 허겁지겁 다시 찾은 것은
그러므로, 맥주 하나에 불과한 그 누무 알트비어와 섹스를 꼭 하려고
내내 별러온 사내와 똑같은 짓거리였따.
그 집의 위용이다.
흙바닥까지 그대로 둔 방도 있고 해서
제 멋대로 꾸민 포장마차 수준을 간신히 넘어선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던 내게는
저런 큰 집 전체를 돼지족발 맥주집이 차지하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되면서리, 실실 주눅이 들기도 했다.
뿐이랴. 그 집 구석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설랑 열고 있던 점방까지 서둘러 닫고서,
직원들 채근해서 델고 간 덕분에
우리는 다행히도 잽싸게 빈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도,
동작 늦은 사람덜은 저처럼 밖에서 기웃거리는 게 다반사.
그러다 보니... 서서 먹어도 좋다는 팀들도 생겨난다.
저기 서 있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시방
어깨높이까지 오는 높은 탁자 앞에서 맥주잔 하나씩 놓고서
그 누무 알트비어를 홀짝거리고 있다.
(300시시 짜리 긴 컵 한 잔에 2.25유로. 우리 돈으로 3천4-5백원 정도)
그래서 이처럼 가족과 함께 노천 탁자 앞에서라도
알트비어 한 잔을 꼭 기념하려는 열성파 꼬레아니쉬도 생겨난다.
(요건 자료사진이다. 어느 양반이 알트비어 얘기를 꺼내면서 자랑했길래,
말두 안 하구 빌어왔다. 깜냥으로는 초상권 보호를 위해
뽀샤시에다 흑백으로 처리하는 등 나름 노력했다.
양해해 주시리라 믿고 싶당.)
도대체, 알트비어가 뭐길래...
별 거 아니다. 알트alt는 old라는 의미의 독일어다.
오래 된 거... 그러니, 알트비어는 오래 된 맥주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막걸리 만들듯이 이스트를 누룩으로 해서 넣어
고전적으로 만드는 맥주다. 전문용어로는 상면발효 방식이라고 한다.
누룩 넣고 부글부글 발효하면 막대기로 휘휘 저어서 아래 위 섞어주는 그런 방식.
(요새는 아예 그 젓는 걸 모터로 돌려서, 한 번에 쌈박하게
손 하나 안 대고 해대고 있기도 하다. 울 나라 막걸리 양조장 야그다.)
그런데도 왜 알트비어에 환장하는가.
고집스러움에 덧칠해진 명성 때문이다.
거 왜 유명한 여배우가 끝까지 고집 부리고 처녀 행세하면
유명세라는 게 덧붙지 않는가.
그런 거하구 아주 비슷허다. 흠. 내 보기에는.
까다로운 말로 그걸 설명을 조금 더 보태자면 이렇다.
독일에는 맥주순수령(純粹令)이라는 게 있다.
맥주는 물, 보리, 호프를 꼭 넣어 만들어야 하고
물은 죽어도 그 지방 것만 써야 한다...는 건데
성문법규는 아니구, 그냥 업자들끼리 고집하는 말이다.
예컨대, 뒤셀도르프에 있는 알트비어와 쌍벽을 이루는 쾰른 지방의
맥주가 있는데, 그 이름은 쾰쉬맥주다.
이 쾰쉬맥주는 '쾰른 대성당이 보이는 곳의 물을 쓴 맥주'라고
정의될 정도로, 출산지의 순수성을 따진다.
마치 앞뒤 사연 따위야 관계없이, 무조건 성골/진골을 구분하려들었던 신라 사람들과 똑같다.
하여,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다른 곳 산물이 섞이면 난리가 난다.
이름 자를 붙일 수도 없는 건 물론이고...
그게 독일의 맥주순수령이다.
알트맥주와 쾰쉬맥주는 아직도 그걸 따르고 있단다.
말 나온 김에 쾰쉬비어를 보이면 이렇다.
벨루 차이는 안 난다.
전문가입네 하는 사람들은 뭐라고 뭐라고 한참 떠들지만
우리 같은 맥주 무식충(無識蟲)들에게는 그게 그거인 거 같다.
다만 맹물 맥주 같은 우리나라 것과 확실히 다르긴 하다.
첫맛, 중간맛 , 뒷맛 모두가 다르고, 특히 잔류미각에서 확연히 다른 것 같다.
하여간... 뒤셀도르프에 와서 이 쾰쉬의 '쾰'소리만 해도 맞아죽는다.
됙일 사람들은 축구에 환장하기도 하는데,
뒤셀도르프에 와서 쾰른 축구팀 얘기를 하면 증말이지 뼈도 못 추리게 된다.
그 연유는 다 이 맥주 때문이다.
그만큼, 이 맥주에다 자부심들을 덕지덕지 매달고, 죽어라 붙들고 산다.
듣자 하니 그렇단다.
하여, 여기서 쾰쉬 맥주 달라고 바텐더한테 얘기했다가는
제 아무리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쫓겨날 확률이 무쟈게 높다.
참, 내 정신 봐라.
저 위에 알트비어 사진 올려놓구서 설명두 건너뛰었뿐네그랴.
(하기야, 아직 마시기 전이니깐,
섹스하기 전의 그 정신없음 상황과 진배없으므로
제 정신이 있을 턱이 있나. ㅎㅎ히.)
위의 두 잔은 노천 카페에서 먹어대는 그런 거구,
또 한 잔은 엊저녁 한국 식당에 처음 찾아들어 저녁을 먹으면서
또 다시 시켜봤던 녀석이다.
맨 아래 사진은 미국땅 오하이오 주에서 선전하는 알트비어 문구.
요새는 미국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저 알트비어를 만들어낸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나온다.
그 만큼 매니어들을 끌고 다닌다고 해야 하나...
요 사진 넉 장이 뭐냐 하믄
그 웨리게Uerige 식당의 건물 바깥, 2층 높이에 걸려 있는
청동판 부조다.
(Uerige는 독일말로 아주 괴퍅하다는 뜻이라는데
그 의미를 아는 이들이 교민들 중에도 아주 적다...)
겉녹이 잘 스는 청동판의 성질을 이용해서
연륜에 씻기고 찌들고 했다는 듯이 폼을 잡고 있는 것.
(그런데 저 청동판이 있다는 걸 아는 이들도 정말 적다. 거참...
개 눈에만 개똥이 보인다는디... 헹.)
게다가 저기에 쓰인 됙일말들은 고어체다.
거기서 7년씩이나 됙일말 공부했다는 참한 체니조차도
해석하는 데에 애를 먹더만.
(하여, 이 겁없는 선무당이 나서서 제대로(?) 해석을 해주기도 했다.)
무신 소리가 적혀 있느냐고?
길게 얘기하믄 잼 없응게로, 짧게 말하면
첫 사진은 땅이 있어 호프를 만들었고
두 번째는 불이 있어 '매액주' 비스무리한 거까지 만들게 되었는데
결정적인 것은 물이 있어 내가 이곳에 임재하얏노라...(세 번째 사진)
그런데, 제일 웃기는 것은 네 번째 사진.
앞서의 사진 석 장에서는 뇨자덜이 죽어라 맥주 만드느라 찍사리 고생하고 있는디
네 번째 사진은 웃통 벗어젖힌 사내 녀석이 주인공...
그려... 그렇게 애써 만든 게 까다로운 맥주 (uerige bier)랑게.... 해대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사진 속 문구가 아주 걸작이다.
(됙일 거주 7년차 학생체니 -32세 노처녀 박사과정-도 해득하지 못했던 부분...ㅎㅎ히)
MIT WASSER MACH ES NIE WIE HIER...
글자 새기던 명장(銘匠)의 실수인지 몬지는 몰라도
어구가 해석을 거부할 정도인데,
하여간 내가 그 처녀박사에게 우기기를
...아 물이 들어가서야 비로소 그거이 꼴 갖추게 되얏다는 야그 아니겄어.
저 여자의 흐뭇한 표정 좀 봐아....
하얐더니만, 순진한 처녀박사는 고개를 아주 크게크게 끄덕이면서
감탄감탄을 거듭하는 게 아닌가. ㅎㅎ히.
지보다도 백 배는 낫다고 공치사도 하믄서.
(이유야 간단허지 모. 산전수전공중전을 겪은 사람과의 차이가 아니겄어. ㅎ흠)
그나저나 시방 내가 워디서 헤매고 있는 겨.
쫌 있음 나두 점방 열러 출근 준비두 해야 하는디...
(서울 시각 오후 3시를 향해가는 시방 이곳 시각은 7시40분이다. 물론 아침)
얼렁, 빨리 끝내야쥐. 요약판으로 판형 변경...
(그러고 보이, 사내덜이 딴 생각하면서 섹스하다가,
정신 돌아오믄 얼렁 후딱 끝내게 되는 거하구두 비슷하네. 에혀)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알트비어 제조과정.
웨리게 집의 집구석안내판에서 빌어왔다.
그 중 분쇄혼합기 (돔 모양의 큰 통. 사진속에 mash...라고 표기된 것)는
식당 중간에 놓여 있어서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해놨다.
이 알트비어를 먹을 때의 필수안주 격인 빵 모습.
짭짜름하다.
사진은 지난 해에 들렀던 또 하나의 원조집, 슈마허 식당에서 찍은 것.
Uerige의 메뉴판.
그 유명한 돼지족발은 메뉴판 맨 아래에 그 집 '특식"이라고 적혀 있다.
(specialty of the house). 영어 표기대로,
돼지 다리 무릎근처의 뼈가 포함된 족발훈제 구이이다.
그 집구석의 괜찮은 웨이터들.
99%는 저처럼 기분 좋게 해주는데,
어쩌다 재수 없게 걸리게 되는 재미있는(?) 웨이터도 있다.
몇 달 간 마눌 근처에도 못 갔거나, 몇 년째 홀아비로 지내온 듯한 친구도 있는데,
그 친구한테 걸리면 신용카드 결제도 안 된다.
무조건 현찰만 내라고, 구석으로 델고 가설랑은 윽박지르기도 한다.
설마 지가 주인 모르게 그 돈 떼먹는 건 아닐겨...
그 식당건물을 사들여 오늘날의 명물로 만든 괴짜 부부.
성도 좀 괴상하긴 하다. Wilhelm Cuerten 부부.
그 집 구석 중앙 홀에 보면 그 부부가 석고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진 왼쪽 맨 위의 모습.
저 여인 이름이 Gemahlin인데, 1870년도의 모습.
내가 저 여인 석고상의 뺨에 대고 뽀뽀를 해대니까
주변의 할마씨들이 을매나 좋아하는지...
박수를 쳐대고 배꼽을 잡더만.
할마씨들일수록 사랑의 현장중개 장면에서
아주 녹아나고 잦아드는 법이쥐.
애타게, 그리고 여전히, 징하게도 그리운 실물이어서 그럴 겨... 흠.
(그 사진을 찍은 직원녀석이 잠보라서, 아직도 안 보내준다...)
나중에 그 현장을 공개하고자 한다.
이제 나설 준비 서둘러야 한다. 증말로.
일요일인 오늘도 나넌 착실하게 '네꼬다이' 매고 나가서 저녁때까정 일해야 헌다.
수다판은 요기서 끝.
참, 그래두 한 마디는 해야쥐.
알트비어와의 섹스 결과...
올만에 먹게 되니, 네 사람 (세 머스마 + 한 뇨자)이 먹은 게 22잔.
거의 비슷하게들 마신 거 같은데
아침에 일나니깐 머리가 실실 무겁더만
어제 점방에 나가서 앉으니 경미한 두통 증세까지...
그려... 뭐든 환장하게 밝히면 뒤탈이 나는 법이어.
그래두, 엊저녁 한국식당에 가서 또 한 잔 그걸 했다. 딱 한 잔.
핑계는 맥주 먹구 버린 속 해장한다면서.
허망한 섹스 뒤끝을 까맣게 잊은 듯하면서
또 다시 밝히며 대드는 것이나 똑 같은 짓이지 모... [27 April 2008]
- 최종희, 뒤셀도르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