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서울에서 '가족 주말농장'이라는 이름이 선을 보일 무렵이다.
신정동 개발 예정지구에다 서울시에서 조성한 그게 있었다.
선착순 분양. 한 해 사용료가 만 원이었던가.
가족당 서너 평짜리나 되었을까.
처음에는 신이 나서 했는데, 하면서 보니
이거야 원... 아이들 소꿉장난 수준.
간에 기별도 안 갔다.
한 두둑짜리여서 마주 보며 구부리고 풀이라도 뽑다가
같이 한꺼번에 일어서면 서로 머리가 닿을 지경.
그러니 뭘 얼마나 심겠는가...
당진으로 옮겨 가서 당분간 살아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집을 고르면서 가장 먼저 본 게 텃밭 유무와 그 규모.
그 덕분에 당진에서 3년을 보내면서 텃밭 농사는 완전히 졸업할 수준이 되었다.
이것은 작년의 텃밭(?)이다. 이곳 파주의 개발지구에 설치되었던 비닐하우스인데
토지 보상은 끝났지만 한 해를 더 써도 된다고 하는 곳 중에서 하나를 빌렸다.
규모는 2백 평. (비닐하우스 표준형은 200평. 좀 큰 것은 300평이고
작은 것은 100평 단위로 짓는다. )
사진 속 경량 철골은 뼈대뿐, 지붕 비닐은 없는 곳.
사진 왼쪽의 지붕은 우리가 그늘집으로 쓰기 위해 자재를 가져다 덮은 것.
올해의 텃밭(?)이다. 규모는 400평.
이곳은 작년과 달리,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서 걸어서 다니기에는 좀 먼 롯데아웃릿 쪽.
다행히도 수용 지구와는 무관한 곳인데다
몸이 불편한 주인 덕에 작년과 비슷한 비용으로 빌렸다.
평수는 두 배지만, 놀려두고 있던 땅이기도 해서.
우선 농사 내용부터 훑어보면....
당근(왼쪽)과 치커리류 (네 가지 정도)
배추(왼쪽)와 옥수수
내가 좋아하는 쑥갓(왼쪽)과 아욱
치커리와 부추 (씨를 뿌려 발아시킨 것)
오이(왼쪽)와 고구마
감자(왼쪽)와 호박
수박/참외(왼쪽)과 완두콩
씨를 받기 위한 치커리(왼쪽)와 토마토 (방울토마토는 노지에서 길러 보니
비가 오면 터지고 껍질이 단단해서 이젠 안뇽~~했다.)
땅콩(왼쪽)과 피망.
땅콩을 집에서 기르면 생콩으로 먹어도 아주 맛있다.
왼쪽 사진 : 작년에 쓰던 그늘집 자재들을 이곳으로 옮겼다.
12인 가족들이 들어가 앉아서 먹고 놀아도 충분할 면적.
사진은 삼겹살 파티가 끝난 후 잠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들을 핥고 있는 모습.
오른쪽 사진 : 그날 수확한 미나리들을 다듬고 있다.
그날 열심히 거두어 다듬은 쑥갓(왼쪽)과 아욱을 세 집 봉투에 나눠 담았다.
이번에 배추를 뽑으면 열무를 심고... (후속 농사 논의중)
*
저 대규모(?) 농사를 누가 짓느냐고?
난 텃밭 농사꾼을 졸업했다. 이른바 감독 수준.
자원 일꾼이 있었으니, 바로 장인.
늘 바지런해서 할 일을 찾아 헤메시는 분인데
장모님이 가시고 난 뒤, 더욱 일에 매달리고 싶어하시는 터.
저 텃밭은 그분을 위해 마련해 드린 것.
하여, 일산에 거주하시는 장인은 일주일에 3일은 빼고
(노인학교 반장 노릇 이틀, 교회 하루)
4일을 매일 이곳 파주로 출근하신다.
그리곤 종일 열심히 하신다.
이따금 문제가 생기면 내게 물어 보시면서.
저 위의 사진엔 빠졌지만, 올해는 토란을 잘못 심으셨다.
토란은 물을 은근히 밝히는 녀석인지라, 물과 가까운 곳에 심으셔야 하는데
유난히 밭두둑이 높은 곳에다 자릴 잡으셨다... ㅎㅎㅎ
역시 사진엔 빠졌지만, 지난번 강화도에 다녀오시면서
구해오신 여주도 심은 장소가 좀... (여주는 내가 당진에서 길러서
맛보게 해드렸던 것인데, 그걸 잊지 못하셨던 듯.)
하여간.... 텃밭 덕분에 작년에 소채류를 하나도 사먹지 않았다.
도리어 처치 곤란이었을 정도.
그 중에는 문제아(?)로 가지도 있었다. 올해도 심었지만.
작년에 가지를 많이 심다 보니, 아직도 난 죽을맛(?)이다.
지지고 무치고 해도 다 소화를 못 시켜서 말려서 먹느라고.
올해는 가지의 가짓수를 대폭 줄였다. ㅎㅎㅎㅎ
농사는 무조건 경험/실습이다. 실제로 해본 사람이 장땡.
장인어른 앞에서도 내가 큰소리치는 부분이 농사 연습 10년 경력이닷. ㅎㅎㅎㅎ
그날 우리는 땀흘려 일하고 그 뒤에 삼겹살 배 터지게 먹고,
실컷 웃고, 바람 쐬고... 했다.
우리는 일하는 것으로 현충(顯忠)을 했다.
그런데, 참 저런 걸 텃밭이라고 해도 될는지....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다 낯 뜨겁게 '주말 농장' 운운하던 시절도 있긴 했지만. ㅎㅎㅎ
[Jun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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