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앤'은 책을 읽는다
내 방의 책상 덧대기로 잇댄 파일 박스 전면.
거기에 붙여있는 르노와르의 '책 읽는 여인'이다.
나는 저 여인을 사랑한다.
책 읽는 여인들을 사랑한다.
*
나라 밖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공항의 탑승구 앞에서 기다리게 될 때가 많은데
어딜 가든 책을 든 이들을 대하게 된다.
많게든 적게든.
그런데, 울 나라는 아니다.
버스 터미널 같은 데서는 눈을 씻고 봐도 없고
공항 대합실 같은 데서도 거의.... 드물다.
그래서일까.
어쩌다 한 사람이라도 눈에 띄면
은근히 반갑다.
근처로 가서 그 앞에서 괜히 얼쩡거려볼 정도로.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처럼 공공장소에서
책을 꺼내드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여인들이다.
사내들은 그야말로 멸종동물 수준.
아. 울 나라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나.
한때는 죄다 모범생이니 뭐니 해서
학업우수 상장이라도 거머쥐었던 사람들도 꽤 많을 거고
지금도 제 자식들 다그쳐서 그런 거 받아오라고 해대는 이들
수월찮게 바글거리는데...
*
이런저런 기회에
우연히 옆자리나 앞자리에 함께 하게 된 이들과
꼬부랑 말로 대화를 하다 보면, 하나같이 놀라게 되는 게 있다.
그들이 은근히 유식(?)하다는 점이다.
최근에 읽었던 것이나
오래 전 읽었던 어떤 것들이 생각나서
슬쩍 이야기를 던져보면, 맞장구를 쳐온다.
대체로들 알맹이가 있는 내용으로...
짧은 시간에 나누는 대화지만
그것으로도 상통상응(相通相應, correspondence)의 재미를 나누고
이심전심으로 교류하게 된다.
상담(商談)의 경우는 그런 상대방과 오랜 거래로 이어지기도 하고...
까닭은 하나다.
책 읽는 이들답게, 안이 차 있어서다.
은근히 서로를 알아보고 확실하게 미뻐하는 계기가 된다.
*
책 읽는 여인들.
특히 중년 이후 들어,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안팎으로 멋지다.
'쓰잘데없는' 것들을 껴안고 뒹굴거리거나
자신을 볶는 일도 적다.
그 시간에 책을 대하므로...
그리고 뭔가 얻어내어 안을 채우므로.
안이 빈 사람들이 쓸데없이 구시렁거린다.
주변에 대해, 세상을 향해.
(어쩌다 다른 소리다 싶어서 들어보면,
어디선가 들어본 것들이거나 겉만 그럴 듯한 소리.
자신의 생각들은 없다. 비어 있다.)
책 읽는 여인들.
내 애인들이다.
나 혼자 짝사랑해도 좋은... [7 June 2008]
- 최 종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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