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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씨부랄 년”

[내 글] 수담(穗談)

by 지구촌사람 2011. 3. 2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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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이야기

                                - 참 좋은 “씨부랄 년”


                                                                                                       최 종 희


  몇 주 전 주말, 텃밭/꽃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맞은편 집에서 부른다. 커피 한잔하고 쉬면서 하라고. 쉬면서 해야 할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닌 것이, 겨우 풀이나 뽑고, 가지치기와 지주(支柱) 고쳐 매기 정도였는데... 그래도 이웃집에서 부르는 것이니, 건너가 봐야지.


  황후마마를 채근하여 함께 그 쪽으로 발걸음을 했다. 골목길에서 놀고 있던 진이공주는 여전히 우리들의 따개비표. 엄마 꼬리에 달라붙었다. 요즘 그 집에서는 대문과 현관 사이에 헛간처럼 달아매는 ‘괴상한’ 공간 하나도 신축완료 상태여서, 그 안이 궁금하기도 했다.


  여기서 내가 괴상하다고 한 것은 건축자재, 건축방식, 건축 후 모습... 등 전체를 이름이다. 자재만 해도, 여기저기서 폐자재로 뒹군 게 분명한 지붕재 (그것도 투명/반투명이 뒤섞인 플라스틱 제품에다 함석판도 있고, 요즘은 사용금지된 석면 골판도 섞여있는 것)에다, 창문은 창호도 없는 짝짝이를 서너 개 구해서 각재로 어설프게 창호를 만들어 끼우고, 벽체 한 쪽은 함석, 나머지 두 쪽은 플라스틱 판재. 하여간 그런 유엔군 잡동사니도 없었다.


  그것도 기둥다운 기둥을 세운 뒤 거기에 벽체를 만든 게 아니라, 한쪽은 대문과 담장위에 잇대어 올리고, 나머지는 조금 큰 각목을 대충 기둥으로 삼아 뚝딱거려 만든, 그야말로 희한한 가건물. 그걸 부부 둘이서 두어 주일 뚝딱거려서 만들어냈다. 기둥 세우던 날, 그 집 아이들에게 이모라 불리는 의동생 부부가 와서 거든 것을 빼고는...

 

 

                                     <사진 :   앞집의 걸작(!) 증축 가건물>

 

  대문을 들어서니, 그야말로 가관. 투명판재를 쓴 곳은 햇빛이 들어와 밝은 편이었지만, 반투명 플라스틱 판재 부분은 그늘져 있었다. 벽체도 재질이 그대로 노출되어 그야말로 자연풍. 내가 저 위에서 헛간이라고 부른 것이 딱 들어맞고 있었다.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명품 헛간. 하지만, 나는 그 희한한 명품 헛간에 오래 눈길을 둘 수 없었다. 거기에는 40대 중반은 좋이 되었을 두 여인이 대충 뚝딱거려 만든 평상에 걸터앉아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씨부랄년들아. 그냥 주는 대로 대애충 먹어~. 우리 집엔 커피믹스밖에 없응게.”

두 여인들에게 눈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옆집 여인의 입에서 말(言) 그릇이 쏟아져 내렸다. 그릇 바닥에 고인 물을 홱 뿌려 비워내듯이. 한 여인이 자신은 블랙커피를 먹는데, 이렇게 설탕과 크림을 잔뜩 쳐서 갖다주면 어떡하냐고 했을 때, 느린 어투로 싱글거리며 나온 옆집 여인의 대답이 그랬다.


  그러자, 황후마마는 그녀를 향해 황급히 손가락 하나를 입에 갖다댔고, 나머지 한 손은 진이 공주의 뒷머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옆집 여인의 입술이 지평선으로 바뀌면서, 느긋한 웃음자락이 힝힝거리며 거기서 대롱거렸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입에 넣은 커피가 삐져나오려는 것을 막느라 헉헉 낑낑거렸다. 푸푸풋 소리를 안으로 밀어 넣어야 했으므로.


  그제 아침이다. 출근 준비 전, 방글이와 싱글이에게 개밥을 주고 있는데, 옆집 여인이 대문 밖으로 모습을 나타내더니, 묻는다.

- 진이 엄마, 아직도 안 왔유? 사흘도 넘은 듯한데... 할머니가 많이 안 좋으신게비네유.

- 네, 하루 더 있으라고 했어요. 좀 안 좋으셔서.

- 진이엄마가 없으니께, 당최 심심해서. 히힛

- 내일은 올 거에요. 모레가 진이 개학이라서... 심심하더라도, 하루만 더 참으세요. 하하하.


  대문쪽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허리에 끌려가듯 매달린 엉덩이가 까불이처럼 들까분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하기 딱 좋게, 좌우로 심하게 흔들린다. 나는 그녀를 돌려세웠다.

- 참, 아까 진이엄마한테 왜 “씨부랄년, 진이엄마”라고 안 하셨어요?

- 둘이만 있으면 하는디, 그래두 진이 아빠한테는 좀 글찮유. ㅎ헤헤.


  옆집 여인. 그녀는 올봄부터 우리 이웃이 되었다. 작년 늦여름부터 주말마다 부부가 와서, 그 동안 죽 비어있던 옆집에서 뚝딱거렸다. 듣자하니, 그들이 살던 읍내쪽 집이 아파트 건축 지역으로 되면서, 옮겨와야 해서, 아들 앞으로 사두었던 그 집으로 들어오기로 했단다. 주말이면 부부 둘이서 뚝딱거리면서 지붕도 고치고, 뭣도 매달고, 거실도 손보고 하더니만, 올봄에 완전히 이사를 왔다.


  그 동안, 부부는 주말에 우리에게 눈인사를 해올 때마다,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어느 날은 바나나 무더기인가 하면, 어느 날은 흔히 보기 어려운 파파야와 망고 등도 들고 와서, 진이 먹으라면서 놓고 가곤 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아저씨가 푸드뱅크에 자원봉사를 하는데, 거기서 아주 싸게, 혹은 거저 구할 수 있는 것들이란다.


  이사온 뒤, 여인은 울집 황후마마와 단짝이 되다시피 했다. 하기야, 주변을 둘러봐야 죄다 70대 '할마시'들이 대부분이고, 60대 여인 하나가 있는데 그녀는 노상 오토바이 붕붕거리며 먼 곳의 축사 건사하기에 바쁜 선머슴애. 선택의 여지도 없긴 했다. 게다가, 우리 아랫집의 괴상한 영감과는 먼 사돈간이긴 한데, 그 집 역시 오래 전부터 그 영감한테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면서, 이사를 온 뒤로도 가까이 하려 들지 않았다. 그랬으니, 저절로 황후마마가 유일한 말벗일 수밖에. 그렇게 해서 열린 그녀의 입.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듣는 이로서는...


  아주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단다. 그 뒤 어머니는 재가했다. 그것도 산등성이 하나 넘어 이웃 동네로. 여섯 살 때인가, 하도 엄니가 보고 싶어서 그 재를 넘어 엄니 집이라는 데로 갔는데, 그날 엄니는 그러더란다. 늬 엄니 죽은 셈치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그래도, 다시 한 번 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인가 해서. 뒤꼍으로 끌고간 엄니한테 죽도록 맞았다. 그리고, 그 뒤로는 정말이지 한 번도 엄니를 찾지 않았다.


  그녀가 의탁해서 자란 곳은 우리들의 손쉬운 짐작대로 친척집. 할머니가 키우다 돌아가시는 바람에, 초등학교 2학년 무렵쯤부터 작은아버지네 집의 군식구로 살았다. 시작은 군식구였지만 나중엔 어린 식모. 그나마 초등학교를 마친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할 정도로, 숙모는 그녀를 상일꾼으로 부려먹었다. 그러다가, 그녀 나이 19살에 참한 총각을 알게 되었고, 나이 20에 그 남자의 손을 으스러지게 붙들었다. 그 손을 절대 놓지 않겠노라고 했던 게, 사내의 청혼에 대한 그녀의 답이었다.   


  그녀의 사내. 농사를 짓는 집에서 나고 자랐지만, 나이 차이가 나는 형님과 욕심쟁이 형수의 발림과 윽박지름으로, 물려받은 밭뙈기와 논마지기를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맨몸으로 뛰쳐나와 남의 집 헛간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러구러, 세월이 흐르고 아들 딸 하나씩을 두었고, 그들이 웬만큼 자랐을 무렵에는 그럴 듯한 살림을 갖추고 허리 펴고 살 만하게 되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는 그들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날품팔이 ‘노가다’로 시작한 건축현장에서 단종 건축시공업으로까지 키우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사내에게 늦은 밤 들이닥친 뺑소니 교통사고. 그로부터 사내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몇 달을 병원에서 지냈고, 의식이 돌아온 뒤로는 하체를 맘대로 쓸 수가 없었다.  그녀의 고된 생활이 새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아침부터 오후 서너 시까지 병원으로 출근했고, 남편의 물리치료를 전담했다. 주무르고, 당기고, 세우고, 걸리고... 그 뒤로는 식당에서 밤늦게까지 일했다. 아이들 학교도 마쳐야 했고, 통장에 제법 있던 돈들은 거의 전부가 병원비로 훨훨 날아간 참이었다. 그녀는 손목과 팔목이 시리고, 허리가 늘 무지근했지만, 일이 고된데다 피로가 쌓여서 그렇겠거니 했다.


  몇 해 뒤, 남편은 휠체어에 의지해서 병원을 나왔지만, 여인의 식당 일은 계속됐다. 그 사이, 큰 녀석은 대학을 마치자마자 요행히도 취직이 되었고, 딸 아이 하나도 서둘러 시집을 갔다. 그때 그녀는 나이 스물에 사내를 쫓아왔던 자신이 생각나서, 시집 일찍 가는 건, 제 어미 닮았나? 하면서 웃고 말았다.


  세월은 착실하게 살이 쪄갔다. 남편이 버린 휠체어를 먹고, 그녀가 눈만 뜨면 해대던 온몸 주무르기의 땀방울도 먹고, 못 하겠다고 포기하던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반복하면서, 끝내 홀로 걷기를 성공시킨 그 야무진 아내 사랑을 세월이 걷어다 먹었다. 그것이 몇 년 전의 일이라고 했다.


  그 뒤로 남편이 살살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차 운전도 다시 할 수 있게 되자, 부부는 자신들과 세상을 돌아보며 살아갈 내역을 확정했다. 그 중 하나가 남편의 푸드뱅크 자원봉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집 한 채가 아파트 부지로 수용되면서 나온 보상금, 2억 얼마인가는 아예 없던 셈 치기로 하였다. 아들 이름으로 마련해둔 낡은 농가로 옮겨와, 생보자(生保者. '생활보호대상자'의 준말)로 살더라도 베풀면서 살아가자고 다시금 작심했다. 모든 욕심을 텃밭에 내다버리고, 발로 꽝꽝 다져 묻었다. 하다 못해, 그 나이에 그럴 듯하게 먹고 사는 일까지도... (그들은 그 흔한 '핸펀' 하나도 없다.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닌 건 불문가지.)


  그녀의 집에 자식들보다도 더 자주 찾아오는 여인들과 그녀의 남편들. 그들은 그녀가 그처럼 힘겹게 헤쳐온 간병 생활 도중에, 식당 일 도중에, 만나서 알게 된 이들이란다. 그녀보다 어려서 더 힘들어 보이는 그들을 그녀는 말로, 손으로, 식당에서 남은 먹을거리로 감싸 안았다. 그런 그녀들의 입에서 저절로 언니! 소리가 나왔고, 그녀는 ‘씨부랄년들 지랄하네!’로 맞받았다. 웃음으로 도배된 얼굴에 끼어드는 서글픔 한 자락을 모질게 그 말속에 꾸겨 던지면서... 그렇게 해서, 이제 그녀는 동생들 부자다. 혈혈단신으로 남편을 만나고 자식 낳아기르면서, 친척붙이 하나 없이 살아오던 그녀에게 피붙이 이상의 동생들이 한 두름이다.   


  지난 번, “주는 대로 대애충 먹어, 씨부랄년들아” 소리로 웃으며 응대하던 여인들. 바로 그녀들이 그런 동생들이었다. 옆집 여인 못지않게, 이 세상에 번듯한 피붙이 하나 없이, 혹은 있어도 내쳐진 채 살아온 여인들. 개중에는 택시기사도 있고, 미용사도 두엇 있고, 피부미용사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렇게 덧붙이더란다.

- 배운 게 없는 년들이 그나마 그렇게라도 해서 벌어먹을 수 있는 게, 을매나 다행이여. 씨부랄년들!  

 

  아직도 가끔 사내는 원인 모를 통증으로 밤새 끙끙거리고, 그럴 때마다 여인은 몇 시간이고 몸을 주물러댄다. 그러고 나서도 사내는 다음 날이면 낡은 1톤 픽업 트럭을 몰고 어김없이 푸드뱅크에 자원봉사를 하러 나간다. 그 사이, ‘씨부랄년’은 시큰거리는 팔목을 혼자 주무르고, 잘 펴지지 않는 허리를 조막손을 만들어 콩콩 찧는다. 그래야 엉덩이가 그나마 덜 요란하게 흔들릴 것 같아서... 그러면서도, 불편한 허리에 매달린 엉덩이가 그래도 그만하게 푸짐한 게 어디냐고, 어쩌면 그녀는 혼자서 히죽거릴지도 모르겠다. 주방과 홀 가릴 것 없이 하루 죙일 단 한 번 앉지 못한 채 10년 넘게 일했는데도, 이만한 게 천만 다행 아니냐고. 그게 어디냐고,를 후렴구 삼아서...   


  나는 그녀가 참 좋다. 참 좋은 씨부랄년!  그녀가 요새도 계속해서 먹을거리를 가져와서만은 아니다. 생보자로 살아내면서도 (그리 살지 않아도 되는데 안 쓰는 이유는, 혹시라도 남자가 먼저 세상을 뜨면 남아있는 여인을 다시는 힘들게 살게 하지 않으려고, 남자가 ‘꼬불쳐둔’ 비상금 격이란다...) 그녀는 그처럼 밝게 살고, 나눠먹기가 몸에 배어 있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향해, 수도 없이 해댔을 원망을 그녀는 자신을 향해 던지는 욕으로 때우며 허허 웃는다.

 

  그녀에게 있어, '씨부랄년'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과 흡사한 처지의 불쌍한 여인들을 끌어안는, 심지 깊은 포충망에 붙여진 이름표인 듯만 하다. 뭣 같은 세상이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안으로 담아넣고 참아냈을 그녀. 그 무뎌진 화살을 세상이 아닌 자신에게 돌려대면서 너털웃음을 얼굴 전면에서 다림질해대는 그녀. 그녀는 살아있는 명품이다. 나는 그 여인이 참 좋다. 차암 좋은 "씨부랄년"!    [Aug. 2009]

 

 

 


 

<올해 울집 자두 따던 날, 옆집 여인이 도와 준다고 나와서, 자두만 까먹기에 (사진 위)

 내가 먹기만 할 거냐고 한 마디 했더니만, 왈 ; "자두 떨어질 때 들어가믄 박 터져유...  ㅎㅎ." 

그러더니 아닌 게 아니라, 그 뒤로는 나무 위에 오르신 황후마마의 착실한 조수노릇을

해주는 바람에 (사진 아래), 나는 그날도 공짜루 때웠당.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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