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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요? 그 말 참 오랜만이네요

[1事1思] 단상(短想)

by 지구촌사람 2013. 9. 7.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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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字 수필]       꿈이요? 그 말 참 오랜만이네요


                                                                             최  종  희


   제법 오래 전 일이다. 사무실 직원들에게 물었다. 꿈이 뭐냐고?

  주식이니 뭐니 하는 것들 때문에 점심 식사 후에 제법 시끌벅적했을 때였다. 별 생각 없이 던져본 질문이었다.

  서로들 얼굴만 바라보더니, 내 시선과 마주치자 채근처럼 보였는지 한 사람이 말했다.

  "꿈이 뭐냐구요? 어렸을 때 빼고는 그 소리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데요...... 글쎄, 우리 같은 나이에도 꿈이랄 수 있는 게 있겠어요?"

  그러자, 한 직원이 거들었다.

  "왜. 있기야 있지.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 데리고 오손도손 제 명대로 살다가 죽는 거. 하기야 그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뒤로도 여러 가지 말들이 나왔지만, 그런 것들은 내가 듣고 싶어 하던 꿈 얘기가 아니었다. 넋두리와 경계선이 모호한, 그렇고 그런 낡은 소리들... 나는 혼잣말처럼 남자 나이 삼사십 대가 되면 가장 먼저 챙겨둬야 할 일의 하나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자신이 꼭 해보고 싶고 해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는 말로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내가 막연히 궁금하게 여겼던 일, 바로 나이 든 사람들이 어떤 꿈들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만 했는데, 엉뚱한 기회에 그 한 귀퉁이를 들여다 본 것만 같았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 나는 여러 사람에게 묻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같은 사무실내에 있는 공학박사에게 물었다. 그는 이른바 명문 S대 출신이자 전문대 시간강사를 겸하고 있어서 내가 보기에는 살아있는 지성에 속할 듯싶어서다. 그러나, 그에게서도 비슷한 말이 나왔다. 지금 이 나이에 꿈이라니요. 선배님 지금 농담하고 계신 겁니까?

  그의 대답을 듣고 나자, 언젠가 그가 요새 학교의 전임강사 자리 따기가 국회의원 되기보다도 더 힘들다며 고개를 흔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후로 나는 더 신이 나서(?), 틈나는 대로 여러 사람들을 귀찮게 했다. 후배들은 그만 하면 되었다 싶어서 또래들을 괴롭혔다. 국회의원, 신문사 논설위원, 장관들조차도 저녁 한 끼니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잘 나가는 사회1부장 (그는 현직 대통령의 조카사위다), 세칭 일류대의 부교수, 출판사 사장, 국회 전문위원, 피부박사라는 저서까지 내고 수입 자동차 중에서도 아주 비싼 걸 타고 다니는 화장품 수입업체 사장,  그리고는 옆집 목사에게도 빼놓지 않고 물어봤다.


  그런데, 그 결과는 예상대로(?) 의외였다. 그 정도 되면 당연히 확실한 꿈이란 걸 가지고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딱 한 친구, 논설위원 친구만 꿈 비슷한 걸 가지고 있었고, 교수 친구의 것이 그 다음 정도일 뿐, 나머지는 꿈이라고는 할 수조차 없는, 사무실 직원들에게서 들었던 것과 비슷한 것들이었다.

 

  그러던 내가 꿈다운 꿈 얘기를 들은 건 어느 남매에게서다. 여고 시절에 시력을 잃은 여인인데, 내가 직장 일로 우연한 기회에 도와 준 일이 계기가 되어 십여 년째 그녀의 남동생과 의형제로 지내오는 사이다.  

  앞으로 십 년 안에 무의탁 맹인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 건립과 운영이 그녀의 꿈이라고 했다.  

 

  그것을 위해 그녀는 지금 열심히 일하며 저축하고 있고, 틈틈이 같은 처지의 나이든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단다. 그녀의 삶은 생기에 차 있고, 일하느라 퉁퉁 부은 손을 내가 만져보기라도 하면, 얼른 빼내어 뒤로 감추려든다.

  남동생은 그녀의 꿈이 이뤄지도록 옆에서 돕는 게 꿈이다. 남동생 내외 모두가 그런 누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꿈이란 게 막연한 것이어서는, 꿈이라고 할 수도 없다. 꿈은 삶의 이정표에 뚜렷이 새겨져있는 눈금처럼 선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생활을 이끄는 활력소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흔히 하는 얘기들처럼,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지으면서라거나,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먹고사는 부담 없이 유유자적하고 싶다는 말들이 거의 죄다 넋두리로 끝나고 마는 것은, 그 꿈이 구체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시골살이든 유유자적이든 그 꿈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자주 돌아보아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해야 한다. 차근차근 그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그런 준비를 해나가다 보면 쓸데없이 주변의 삶에 기웃거리는 일도 적어지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여유가 생기며, 하나도 쓸모 없는 (관 안에 넣어가지도 못하므로) 소유나 명예라는 이름으로 멍에를 짊어지고 가는 일, 곧 집착과 탐욕이 준다.

  어른들이 새삼스럽게 서둘러 꼭 해야 할 일. 그것은 구체적인 꿈을  설계하고 그걸 마음속에 단단히 심어두는 일이다.

 

 

  내가 이 도시에서 이런 말을 떠들며 지내는 것도 그다지 오래 남지 않았다는 걸 늘 잊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건, 그리하여 남들보다 적게 가지고도 더 여유롭게 헤헤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건, 다행히도 내가 내 삶의 시간표를 뒤늦게나마 확정해 둔 덕분이다.

  꿈아, 고맙다!! 쪽쪽쪽... [05/04/2000] 

 

 


[추기] 희한하게도 이 글을 쓴 뒤로, 이 나라에 꿈 바람이 불었다.

          <아침 편지>의 창시자 격인 고도원의 강연과 책자 <꿈 너머 꿈>이

          국민 애독서가 되었고, '꿈의 목록'이라는 말이 

          의식 있는 이들의 기본 언어가 되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꿈의 목록'은 자칫 희망사항으로만 끝날 염려도 있다.

          '꿈'은 구체적이고 시간표가 매달려야 하고, 그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가치와 결합되고, 계속 행동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그래야 남은 삶의 나침반 역할을 확실하게 해준다. 

 

 

          요즘, 시대의 입담꾼이자 날렵한 사고 변환의 귀재인 김미경 씨가

          여성 전용(?)의 꿈 설계에 대해서, 아주 좋은 바람잡이가 되고 있다.

          그 역시 좋은 일.

 

 

          이 나라에 어른 꿈쟁이들이 넘쳐나길 소망해 본다.  [Sep.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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