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회(2013.12.2) KBS 우리말 겨루기 문제 함께 풀어 보기(1)
-김인숙 님의 귀한 1승을 축하드립니다!
1. 개괄
-무대를 빛내신 분들 :
이동훈 (32. 은행원. 상금은 결혼 비용에 충당할 것임. 자연산 미남) ->3단계 진출
이혁무 (69. 어린이 집 한문 지도. 유쾌/상쾌/통쾌의 3쾌 인생) ->3단계 진출
김주희 (35. 주부. 세 자녀의 엄마인 애국자. 나를 위해서도 돈 좀 써보자!)
김인숙 (44. 주부. 방통대 난정장학금 수혜자) -> 소중한 1승 쟁취!
최순미 (29. 교통공사 역무원. 남편의 응원을 받으며 부산에서 첫차 타고 옴)
겨루기 방식/형식 개편 후 두 번째 방송. 늘 그렇듯 출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배와 같은 분들이었다.
어린 시절, 현재 탤런트/영화배우로 활약 중인 김민정과 한때 티브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도 했다는 이동훈 님. 복스러워서 푸근해보이는 얼굴답지 않게 안으로는 매서운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요즘 모두 다 부러워하는 탄탄한 직업에 속한다는 은행원에 이른 잠재력이 저절로 드러나 보일 정도로.
이혁무 님은 어제의 출연자 중 단연 돋보이는 분이셨다. 공부량과 인간미, 출연자 가치로서의 홍보 소구력(訴求力), 그리고 몸에 밴 유머 감각 모두 특급이셨다. 한참을 보다 보니 마치 피카소와 닮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얼굴 생김새며 생각, 그리고 행동들이.
피카소는 혁무 님 연세에(그해가 우리나라에 6․25동란이 터진 해. 그래서 피카소 손에서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도 나오게 되지만) 두 번째 공식 부인이자 마지막 연인인 자클린 로크를 만났다. 첫 부인이 죽자 그 다음 해에 피카소의 나이 80에 그녀와 정식 결혼을 하게 되는데, 둘의 나이 차는 거의 50년을 바라볼 정도. (피카소에게 애인들은 엄청 많았지만 정식 부인은 자클린까지 둘뿐이다.)
세상이 자클린을 그렇고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때 자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피카소는) 젊은데 정작 문제는 내가 늙었다는 점이다... 피카소는 (생각이나 삶이 모두) 청년이다.“ 둘의 결혼생활 11년 뒤에 피카소가 죽었다. 남편이 죽고 나자 자클린은 13년 뒤 그를 따라 가기 위해 권총 자살을 한다. 피카소도 그녀의 초상화를 가장 많이 (400장 넘게) 그릴 정도로 둘의 사랑은 순애보로 기록되기에 충분했다.
그뿐이랴. 혁무 님의 이정섭 씨 성대모사 실력도 놀라웠다. 눈을 감고 들으면 정말이지 당사자로 여기고 남을 정도. 그걸 보고 있자, 내게는 이정섭 씨가 아주 오래 전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구사했던 소중한 우리말, ‘오사바사하다’가 생각났다. 이 말은 ‘①굳은 주견 없이 마음이 부드럽고 사근사근하다. ②잔재미가 있다.’라는 뜻을 지닌 멋진 우리말인데, 그 말을 들은 당시 사회자인 유명 여자 아나운서가 ‘아이, 그런 일본어 투를 방송에서 쓰시면 안 돼죠’하면서 친절하게 되받았다. 그 말을 들으며 내가 기절초풍(?)했는데, 당시 우리말에 관심하던 어떤 분도 그 장면을 지켜 봤는지 훗날 그걸 칼럼으로 쓰는 바람에 더욱 선명하게 기억되는 일화다. 혁무 님은 이정섭 씨의 그런 우리말 실력까지도 빼닮은 분이라고나 할까.
다른 분들 이야기를 다 늘어놓으면 너무 길어질 듯하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돈을 써 본 적이 없어서 상금을 받으면 ‘꼭두사람(마네킹의 우리 순화어)’에게 입힌 그런 제대로 된 옷을 한번 사 입고 싶다던 주희 님. 그 얘기를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오지 않은 분이 있었을까.
11세 연상의 남편과 함께 새벽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올라오셨다는 순미 님.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에서 고유어가 지나치게 우대(?)를 받는 걸 보고 고유어 실력이 모자라서 출연을 포기할까 하다가 프로그램 형식 개편 소식을 듣고 용기를 냈다는 그 부분은 다른 이들에게도 분발할 계기가 되고 남지 않을까.
8년 전 방통대에서 한자 능력 검정 1급을 받으면 논문 쓰기가 면제되었기에 그걸 노리고 한자 공부를 했고 그 덕분에 1급을 쟁취한 뒤 장학금까지 받았다는 인숙 님. 한자 공부를 하게 된 연유를 설명하느라 한 말이겠지만 거기서도 꾸준히 폭넓게 공부해온 만학도의 단면이 저절로 드러나고 있었다. 마지막 도전자로 결정되는 데 가장 든든한 뒷심이 되었던 우리말 고유어 실력을 어떻게 갈고 닦았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으므로.
뒷말이 좀 길어졌지만, 한 가지만 더 보태기로 하자. 어제 인숙 님이 달성한 최초의 연승 도전 자격 획득과 관련해서다. 그건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맞춤법/띄어쓰기의 관문을 멋지게 돌파하신 덕분이다. 줄여서 말하자면, 그게 진정한 우리말 달인으로 가는 길, 맞다.
지금까지 30여 명 넘게 우리말 달인이 배출되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해서 실례지만) 그분들 중 일상의 어문생활에서 맞춤법/띄어쓰기를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분들이 몇 분이나 될까. 아마 극소수일 게다. 감히 단언컨대, 서너 사람도 되지 않으리라. 그분들이 남기는 글들이 그 좋은 증거다. 즉, 우리말 달인에 오른 사람들조차도 일상적으로 쓰는 우리글에서 부끄러워하거나 자신 없어 하는 것, 그것이 현재의 ‘우리말 달인’들 모습이다.
줄여서 적자. 지난 주 토요일, 서울‧경기 지역 예심이 여의도에서 치러졌는데 그때 제작진에서 한 말도 그런 취지의 말들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수준이 하도 높아서 뒷방으로 밀려갈 정도의 그런 고유어 대신에 우리의 언어생활을 풍족하게 하면서 일상적인 어문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되는 그런 말과 어법들을 계속해서 출제할 것이라고... 지난 회에 이어 어제 출제된 십자말풀이나 연승 도전 문제 내역들이 그걸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 첫 방송 때도 적었지만, 이번 개편된 내용과 형식이 앞으로 몇 년 이어진다면 우리나라의 어문생활 현장에서 알게 모르게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확신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유통에 따라 이제는 누구나 쉽게 쓰고 적는 SNS의 생활화가 엉터리 맞춤법의 유통이나 맞춤법 경시 풍조를 유포시키기도 했지만, 그와 반대로 이제는 그러한 엉터리 맞춤법에 대한 도리질과 더불어 그에 대한 자정 노력이 소리 없이 번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뿐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스펙’ 시대에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그리고 각종 제안(프리젠테이션) 등에서 맞춤법을 무시한 ‘작품’들은 알게 모르게 감점 대상이 된다. 당락을 결정 지을 정도로, 기본 갖추기에서 모자란 것으로 판정받기 때문이다. 각종 조직 생활에서의 기안/품의서, 제안서 등의 간접 평가에서도 엉터리 맞춤법 표기는 확실한 감점 대상이 되고 있다. 승진 누락 등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기본이 덜 갖춰져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줄이자. ‘우리말 실력이 밥 먹여준다’는 제목의 책자도 있었다. 사실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각종 시험 응시자에서부터 이런 퀴즈 출연자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는 부모나, 하다 못해 온갖 취업 전선에 현역으로 머무는 이들에게까지도 우리말 실력은 가장 확실한 무기가 된다. 가장 쉬운 예로, 어디서고 문서 작성 능력이 빼어난 사람은 덜 고생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조금 더 편하고 승진이 빠르며 소득이 높다. 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뿐만 아니다. 우리말 실력이 나은 사람들의 정신 생활은 그 폭과 깊이가 다르다. 그 내역을 구구절절 적을 필요는 없으리라.
2. 1단계 문제 : 최대 300점
-출제 문제와 답 (득점):
1) 머리 -> 빗(o), 낚시 -> 미끼(o), 음표 -> 오선지(실패) (150점)
2) 강 -> 배(o), 글씨 -> 연필(o), 장작 -> 모닥불(o) (300점)
3) 호박 -> 엿(o), 유리 -> 거울(o), 뭉치 ->실타래(실패) (150점)
4) 바람 -> 연(o), 웃음 -> 미소(o), 풍경 ->수채화(o) (300점)
5) 아기 -> 돌(o), 불꽃 -> 번개(o), 처마 ->고드름(o) (300점)
지난 번과 달리 이번 회부터는 답으로 고를 수 있는 말들의 어순이 뒤엉키기도 했다. 즉, ‘연필’을 골라야 할 경우에 그 어순이 ‘필연’으로, ‘거울’의 경우 ‘울거’ 등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당연히 예측할 수 있는 변화였고, 출연자들도 쉽게 적응했다.
3. 2단계 넉자바기 문제 : 5문제 x 최대 200점, 최대 1000점
-세간 : 구김0/놀0/0덩이/다듬0 ->‘살/림/살/이’ -> ‘살림살이’
두 번째 도움말인 ‘놀림’에서 세 분이, 세 번째 도움말인 ‘0덩이’에서 두 분이 멈췄고, 다섯 분 모두 정답. 산뜻한 출발이었다. (정작 문제는 내가 이 새로운 문제 형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세 번째 도움말이 나올 때까지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하하하.)
-어린아이 : 인0/0님/보0차/옷0름 ->‘사/손/리/고’ ->‘고사리손’
네 분이 정답을 적었는데, 첫 번째 도움말을 보고 멈춘 순미 님의 답이 ‘여보 미안해’여서 무대 위에서 한때 웃음바다가 펼쳐졌다. 순미 님이 착각하셨던 탓.
두 문제를 풀었을 때 출연자들의 점수는 400/500/400/500/450점. 1단계 관련 낱말 찾기에서 벌어진 점수 차가 어느새 바짝 좁혀져 있었다.
-수수께끼 : 0집/0더위/보조0/어0름 ->‘고/무/개/스’ -> ‘스무고개’
첫 번째 도움말에서 네 분이 멈췄고 정답자도 네 분. (나는 이때까지도 출연자들의 그 놀랍게 재빠른 연상력/집약력에 계속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첫 번째 도움말에서 떠오른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부모 : 0다리/오0/벼0/모0기 ->‘사/리/랑/내’ -> ‘내리사랑’
다섯 분 모두 정답 행진. 희한하게 지난번에도 이 네 번째 문제에서는 다섯 분이 정답을 적었다. (나는 이때까지도 출연자들의 그 놀라운 순발 연상력에 계속 어리둥절만 하고 있었음.)
네 문제를 풀었을 때 점수는 700/800/600/900/750점. 혁무 님과 인숙 님의 점수가 계속 으뜸 버금을 맴돌았다.
-불안 : 그0/방구0/0망이/샅0 ->‘늘/석/방/바’ -> ‘바늘방석’
여기서도 다섯 분 모두 정답을 적는 놀라운 실력들을 발휘하셨다. 그리하여 최종 점수는 850/950/700/1000/850점.
이동훈 님과 최순미 님이 동점. 두 분이 오붓하게(?) 겨뤘고, 간발의 차이로 이동훈 님이 먼저 정답을 맞히는 바람에, 순미 님은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점자 문제) 끝 : 고추0/오0발/보0기/0자미 ->‘장/리/자/가’ -> ‘가장자리’
나는 이동훈 님의 답을 듣고서야,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로 완전히 지진아(遲進兒). 그런 녀석이 이런 관전기를 적어 나가도 될는지 모르겠다. 하하하. 어제 출제된 낱말들이 어려운 건 거의 없었지만, 정답 유추 방식에 익숙하지 않거나 나처럼 순발력이 떨어지는 분들은 당분간 고생 좀 할 듯하다. 나 빼고도 그런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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