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들은 가까이에 있다.
어제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족대를 샀다.
공주님을 위해, 이번 여름 휴가 때에 쓰려고.
작년 휴가는 이사 후 어수선한데다가, 나 역시 바깥에 머물고 있던 터라
근처의 휴양소 비슷한 곳에서
장인 장모님과 더불어 하루 물놀이를 한 게 전부였다.
올해는 교회에서 돌아오는 오는 일욜 오후에 출발해서 4박5일.
근처의 자운서원 옆 계곡부터 훑는 것을 시작으로,
재인폭포와 고석정까지의 한탄강 가를 기웃거리다가,
맘에 드는 곳에서 텐트를 칠 작정이다.
경로에 오토 캠핑장이 두어 곳 있지만, 우리 '스탈'은 아니라서다.
아이들은 추억을 먹고 자란다.
특히 부모와의 따뜻한 추억들은 한 평생 밑거름이 된다.
초딩 시절의 것들이 특히 그렇다.
*
집에 돌아와 , 소원하던 족대를 손에 넣은지라
그걸 만지작거리며 흐뭇해하던 나.
사건치기의 명수이자, 늘 <손발의 수고>를 외쳐대온 旗手 격인 내가
그대로 있을 턱이 있는가.
단짝 친구이자 사촌 동갑나기인 인서가 할머니 집에 온다고 하자
서울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날름 할아버지 차에 올라 탄 딸랑구를 유쾌하게 무시하고
우리 부부는 뛰쳐 나갔다.
족대와 장화, 고기 담을 물통과 건져올릴 바가지 등등을
잽싸게 5분 이내에 꾸린 뒤.
한데...울 마나님. 신통도 하셔라!!
논새우나 잡을까 해서, 내가 논 사이의 고랑들을 언급했을 때
대뜸 미리 보아둔 곳이 있다는 것 아니신가.
공릉천에 비해 아주 작은 고산천.
오우... 족대로 천렵하기는 그런 작은 곳이 제 격이다.
(게다가 공릉천 같은 곳은 천렵 금지 구역!)
긴급한 것들조차도 몽땅 부족하기만 하던 옛날.
소품에 불과한 취미용 족대 같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던 그 시절엔,
족대도 참 부실했다. 모양만 갖춰도 황감했다.
하지만, 어제 산 족대에는 그물 끝에 납봉들까지 매달려 있어서
바닥에서 그물이 떠올라 고기가 빠져 나가는 걸 막아줄 정도로 완벽(!)했다.
흐미... 좋은 세상인지고!!
붕어들을 조금 잡고 나서, 장소를 아래로 옮기려 하는 순간에
마나님께서 거두신 초대박 수확, 말조개.
민물조개가 저리 큰 것은 나도 생전 처음 봤다.
주먹만한 크기의 둥근 건 사진으로 본 적이 있지만,
키조개 못지않게 큰 저런 녀석은 난생 처음.
울 마나님은 전생에 어부였나 보다. ㅎㅎㅎ
잔챙이 붕어들이긴 했지만, 매운탕용으로는 몸짓 큰 녀석들보다도
이런 녀석들이 더 국물 맛이 좋기 마련...
족히, 한 냄비감은 되었다.
집에 돌아와 삶은 뒤 뚜껑을 열어보니,
마나님 손바닥 크기... 와우!
오랜 항암치료를 겪으시면서 비린내에 몹시 약해지신 장모님이신지라,
요리를 우리 집에서 해설랑은, 냄비째 들고서 장모님 댁으로 뛰었다.
(봉일천에서 이 근처로 이사오신 뒤로는 예전의 3킬로 거리가 1킬로로 줄어서
뻑하면 장모님 댁이다. 산책 삼아 걸어가도 될 정도.
이사오신 뒤로 벌써 여러 번 귀찮게 해드렸다.
토욜 아침에도 근처에서 딴 멍덕딸기 (산딸기의 두어 배 크고, 익으면 까만색이 되는 것)를
전해 드리러, 세 식구가 모두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갔었다. ㅎ)
먹다가 아차 싶어서 뒤늦게 찍은 사진이라서 좀 지저분하다.
하지만, 어제의 수확물을 요약하기엔 그런 대로....
참게 4마리, 붕어 반 됫박 정도, 키조개만 한 민물조개 1, 우렁이 큰 놈으로 두 마리...
죄다 저 냄비 안에서 영면하고 계시다.
참, 나는 민물고기 요리를 여간해서 잘 안 먹는다.
비린내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흙내... (민물 해감 냄새)
하지만, 어제 요리는 정말 끝내줬다. 최초의 작품이었음에도...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났다.
참고로 투입물을 보이면,
된장 한 큰술, 생강 반 큰술, 다진 마늘 두 큰술, 식초 반 큰술(내 아이디어),
청양고추 아주 매운 놈으로 하나, 고춧가루, 소금 (간장은 불가!), 양파,
통마늘 대여섯 개, 그리고 부추.
(참, 어제 급히 하느라 빼먹은 게 있다. 매실 진액... 당진에서 지천인 매실을 따서
만든 진액이 두 병이나 있는데... 비린내 제거에도 아주 효과 있다.)
참게와 조개/우렁이를 빼고, 붕어들로 자작자작 끓여 제 맛을 만든 후
미리 삶아서 깨끗하게 다듬은 조개와 우렁이, 그리고 참게를 투입하고
소금물 추가... 그리고 부추로 마무리.
*
어제의 저런 수확물이 한 시간도 안 되는 손발의 수고로 얻은 물질적인 것들이라면
어제 하루의 몸수고로 얻은 것들은 그 두 배도 더 된다.
하나는 오랜만의 교회 나들이에서 거둔 것.
내가 가슴으로 꼭 끌어안은 聖句의 일부는 이렇다.
Do nothing out of selfish ambition or vain conceit, but in humility
consider others better than yourselves. Each of you should work
not only to your own interests, but also to the interests of others.
<Philippians 2:3/4>
이 중 핵심 구절이기도 한 Selfish ambition, vain conceit의 우리말 번역이
약간 이상하게 되어 있어 제 맛과는 좀 거리가 있다.
이를 내 방식으로 건방을 떨어 번역해보자면,
" 이기적인 야욕과 헛된 자만심(교만)으로 다른 이들을 낮추 보지 말고,
겸손하게, 다른 이들을 그대 자신보다도 훨씬 높고도 나은 이들로 여겨라.
너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지 말고, 다른 이들의 이해도 생각하라!"
그리고, 더 크게 얻은 것.
그것은 가슴 안이나 머릿속의 것들에 꿰여 지내느라,
"세상은 넓고 하늘은 높으며 자연은 푸르러서
우리를 늘 해방으로 이끌고 가르친다"는 걸 잊고 살아가고,
그 바람에 그 우물안 인생 빛깔을 탁하고 더럽게 만들다못해,
속물의 표본 격으로, 돈과 현물에 몸과 정신을 팔아댈 정도로
뒷전에서 추악한 짓거리들을 일삼게 만드는 것.
그게 다름아닌 바로 그 자신이라는 것...
이기적이어서 더러운 욕심일 뿐인 것들을 목표로 삼아서
제 스스로 교만을 더 키워가는 그런 인생들.
그런 웃기는 족속들에게 결단코 물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속다짐으로 한 번 더 끌어안은 날이기도 했다.
그 동안 그런 것들 주변에서, 그런 웃기는 존재들인 줄도 모른 채
겉모습들을 그 속살과 같은 줄로 쉽게 믿는 어리석음 탓에
미련하게도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면서 서성거린 적도 있었다는 걸
아프게 돌아보기도 하면서...
모든 소중한 것들은, 진실로 값 나가는 것들은, 가까이에 있다.
자연은 물론이고, 사람까지도. [25 Jul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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