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중에 먹어댄 것들(上) : 초계탕/철갑상어회/무교동낙지...
휴가 중에 먹어댄 것들은 대략 이렇다.
첫날 점심으로 초계탕, 저녁으로는 장단콩두부 정식.
둘쨋날 점심은 서울역 그릴에서 그렇고 그런 것 (딸랑구는 제 입맛대로, 나는 설렁탕)
저녁은 내 권유로 마나님이 선뜻 선택하신 무교동낙지.
셋째날 점심은 철갑상어회(+캐비어), 저녁은 자작 매운탕.
순서대로 대충 보이자면...
1. 초계탕(醋鷄湯)
초계탕이 요즘은 널리 알려진 편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미리 삶은닭을 살을 발라 따로 준비하고
차게 만든 닭육수에다 미리 찢은 닭고기와 야채류를 넣고, 식초와 겨자를 가미한 뒤
얼음을 띄워 내놓기도 하는 冷肉菜湯.
본래, 냉면처럼 추운 한겨울에 먹는 음식인데, 요즘은 여름 별미로 더 각광을 받고 있다.
궁중에서 탕으로 쓰이기도 했던 이 음식은 그 발원이 이북.
하여, 저 위에 보인 음식명의 한자어 표기로만 보면,
닭고기에 식초를 넣어서 그렇게 적는가보다 하겠지만,
실제로는 저 '계'는 식초와 겨자 중 겨자의 평양식 발음에서 유래하였다...고
백과사전에서 규정하고 있다. ㅎㅎㅎ
이 초계탕 음식점은 도처에 제법 많이 번져 있는 편인데,
내가 갔던 법원리 소재의 '초계탕' 집에서는 저런 닭날개를
차게 굳히다시피 한 것을 식전 애피타이저로 내놓고 있었다.
시원한 물김치가 그런 대로 먹을 만했다.
이 집은 나름 꽤 알려진 곳으로, 음식 맛은 A 제로 수준은 주겠더만
가장 큰 문제는 서빙 직원들의 교육 부족과 서빙 수준.
다녀온 다른 많은 이들의 공통 지적 사항이기도 한, 위생/청결이 가장 큰 문제.
그리고, 직원 조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알겠지만, 그처럼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이고
하루 분 식재료가 다 나가면 장사를 중지할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되는 곳이라면
직원의 서비스 교육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다듬어지지 않아서 무뚝뚝하고 (현지인들과 친인척을 고용한 듯),
손님들이 많은 탓인지 메뉴 설명과 가격 결정에서 일방적.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처리를 음식 그릇에 해댈 정도인 것은 문제.
입구에서 과묵하게 부침개를 담당하고 있는 이가 사장인 김성수(?) 씨인 듯한데
그는 '초계탕'이라는 요리 책자도 간행할 정도이고
당초 저 집을 지을 때, 위가 뚫린 저층 연못을 미리 만들고
(그걸 영어로는 선큰 가든 -sunken garden-이라고 하는데, 우리말엔 적당한 표현이 없다)
그 위에 집을 근사하게 지을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면
직원들의 교육은 필수 중의 필수라는 것도 신경 써야 했다.
어떤 식당이고간에 음식맛은 음식맛 51%에 직원들 서비스 태도 49%로 결정되는 법.
제 아무리 음식이 100점짜리라 해도,
직원들이 빵점이라면 겨우 51점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 집의 음식값. 기본 가격이 있고 추가 1인당 9000원.
쉽게 계산하려면 머릿수 곱하기 9000원 하면 맞는다.
첫날 휴가는 4가족 합동 하루치기여서, 11명이 먹어댔다.
배불리 먹고도 10만 원을 넘기지 않았으니, 경제적인 선택. ㅎㅎㅎ
(다 먹고 나면 냉면 사리를 주는데, 서비스)
가보고 싶은 이들에게 : 1) 파주시 법원리 법원리도서관 앞에서 초릿골 쪽으로. 길은 외길. 찾기 쉽다.
2) '법원리 초계탕 집'을 인터넷에서 검색.
2. 장단콩 두부 음식
돌아오는 길에 월롱면 소재의 길가 식당에 들렀다. 나름 알려진 집이라고는 하는데
(상호는 "장단콩두부") 순두부 품질이 기대 이하.
파주에는 그 알아주는 장단콩을 이용해서 만든 '장단콩 두부 음식'을 하는 집들이 아주 많은데,
순두부, 비지, 두부 음식 등으로 그 우열을 다툰다.
그 중에서도 비지와 두부 음식은 거기서 거기인지라, 차이가 나는 것은 순두부.
우리가 들른 집의 순두부는 장단콩의 특징을 살린 그 부드러움이 없이 뻑뻑했고,
심하게 표현하자면 단단했다.
부드럽게 엉기기 시작한 처음 것이 아니라
두부가 되기 직전의 것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하지만, 반찬은 그런 대로 괜찮아서, 나는 두부로 조리한 음식보다는
밥 한 공기를 거머쥐고서, 그 반찬들로 배를 채웠다.
또 한 가지 흠. 막걸리를 찾았더니만, 자가 제조 동동주만 있다고 가져오는데
나처럼 쌀막걸리가 아닌 잡곡 제조품은 제 아무리 명주라 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섭섭한 일... 순두부 맛도 그렇고, 막걸리까지도 그러니, 다음에 오긴 글러버린 것. ㅎㅎㅎ
대신 이 장단콩 음식을 아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 있다.
파주시에서 지정한 수많은 장단콩 음식점 리스트에도 오르지 않았지만
아는 이들에게는 아주 널리 알려진 멋진 집. 이름하여 <장단가든>.
임진강 가에 있는데, 소재지도 문산읍 임진리. 통일각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높이 솟은 간판이 길가에서도 보인다.
이 집은 장단콩 음식 외에도 계절 요리로 황복 요리가 유명하고
(그때 곁들여 나오는 순두부 맛에 끌려서, 나도 다니기 시작한 집이다.)
서비스 또한 곰상스러울 정도여서, 가게가 몇 년전보다 엄청 커졌다.
민물고기를 싫어하는 이들을 위해, 육고기류 메뉴도 있고
황복(계절 요리)과 장단콩 메뉴도 있다. 암튼, 서비스 정신이 아름다운 식당.
(내가 선뜻 추천하는 집들이란 게, 대부분 그 서비스 부분에서 칭찬받는 곳들이긴 하지만... ㅎㅎㅎ)
그런 아름다운 서비스는 널리 알려야 하는 일인지라
이 <장단가든>을 무료 홍보하자면... ㅎㅎㅎ.
(찾아가기 :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나오고, 파주시 임진리를 쳐도 뜰 정도)
처음 다니기 시작했던 10여 전에 비하여 엄청 커졌다.
그만큼 손님들이 알아보고 늘어났다는 증좌.
민물고기파와 돼지고기파를 모두 제대로 모시려는 저 노력... ㅎㅎㅎ
그리고, 몸 불편한 사람들과 좌식 탁자를 선호하는 이들을 위한 저 배려.
그 집에 가면, 겨울철에는 저 난로에다 공짜로 군고구마를 구워 먹을 수도 있다.
3. 무교동낙지
나는 낙지 요리 중에서 전골이니 하는 것들은 잘 안 먹는 편이다.
냉동 수입품일 때가 거의 대부분이어서다.
게다가, 다른 데서 흔히 보는 낙지볶음은 낙지가 질겨져서 낙지 맛을 모르게 되고.
하여, 낙지 요리를 골라야 하게 되면, 질기게 되지 않는 낙지연포탕이나
충청도에서 개발되어 널리 퍼진 박속낙지탕을 짚기도 하고,
이 무교동낙지가 있으면 그걸 선택한다. 얼른 대뜸.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녹초가 되었는데...
(그곳은 하루를 잡아서 돌아봐도 제대로 보기 어려울 정도인데다
'반환 의궤 특별전시'까지 이뤄지고 있어서, 인산인해였다.)
돌아오는 길에 마나님께, 저 무교동낙지를 천거했더니만 그 자리에서 환호작약.
나야 밖에서 이런저런 기회에 저걸 먹어대기도 하지만,
마나님한테는 그야말로 아주 아주 여러 해만의 음식.
강남으로 이사한 유정낙지 후손 식당에 4-5년 전에 들른 것이 가장 최근이랄 정도.
나는 물론 마나님도 아주 좋아하시는 낙지볶음.
나는 저처럼 낙지만을 (대파 아주 조금과) 살짝 볶아서 낙지 맛을 살린 걸 아주 좋아한다.
매운 맛도 입에 들어갈 때, 그때만 살짝 쏘는데다, 그다지 맵지도 않고.
저 콩나물과 콩나물국이 무교동낙지의 필수품.
콩나물 속의 숙취해소 기능이 제대로 살아나 있는 것들일수록 콩나물 냄새가 제대로 난다.
공주님까지 달려 들어서 싹싹 비운 그릇들.
마침 봉숭아 물이 곱게 든 공주님 손가락이 눈에 띄길래
낙지볶음 국물 색과 그 고움을 다퉈보라고 하자,
얼른 손을 내미시기에 한 장 찰칵.
이 '무교동낙지'는 본래 유정낙지라는 상호를 가진 곳에서
널리 유포시킨 음식이다. 지금의 영풍문고 자리에 있었던 단층 건물.
65년부터 70년대 후반까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는데
처음에는 돈 없는 이들을 위한 술안주로 개발되었다.
(하기야, 지금도 저 메뉴판에 적힌 대로, 둘이서 실컷 밥까지 비벼먹을 정도인데도
16,000원 선일 정도로, 낙지 요리치고는 값싼 편이다)
그 근처에서 서민음식으로 유명하던 곳으로는 '한밭식당'도 있었는데
대전역 근처의 조그만 식당에서 만들어파는 깍두기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서울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했던 설렁탕 집. 인공조미료 안 넣고 잘 만드는 깍두기 집의 원조 격.
그런데, 이 모든 유명 식당들의 주인이나 제 핏줄들이 지금은 이 나라에 없다.
LA에 가야 대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 유명한 소공동 순두부집, 이 유정낙지,피맛길에 있던 녹두 빈대떡의 원조인 <열차집>... 등등이 그렇다. 에효...
참, 저 집은 교보 근처에 있는 것. 재개발 때문에 장소를 옮겨 개업한 청진동해장국 집에서
상호가 보인다. 무교동 낙지 원조집이라는 큰 간판. (원조집은 아니지만도 ㅎㅎㅎ)
* 이 유정낙지는 강남4거리 외환은행 쪽 뒷골목에 아직도 그 상호를 유지하고 있다.
맛도 예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삼성동 현대백화점 건너의 먹을거리 골목에도 있다.
음식이란 추억을 담아내거나 보관하는 용기인 법인지라,
무교동 낙지로 청춘 시절에 도장을 찍어댄 이들이 여전히 찾아대고 있다.
그 대를 이으려는 젊은이들은 적고 중장년은 아직도 제법 되는 듯하다. (계속)
** 이런 것들을 올리면, 많은 분들이 비싸고 좋은 것들을 먹고 다닌다는 생각부터
하시는 듯하다. 아니다. 비싼 거라고 해서 맛있는 거라는 생각을 난 절대로 안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래서 위에다 음식 값을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게 해놨다.
다음 편에 소개할 철갑상어회 또한 마찬가지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요즘 어딜 가도 바닷가 횟집의 통일된 가격처럼 보이는 7-8만 원대의 절반 수준이다.
안으로 새겨지는 음식 맛이란 자본주의의 지표이기도 한 가격과는 전혀 무관하다.
사람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 그 속을 깊숙이 제대로 헤쳐보면... [Aug.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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