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 연습 문제(2) : 합성 명사
오늘은 합성명사를 짚어보려 한다. 이것을 다루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공문서나 꽤나 그럴 듯한 유식한(?) 공식 문서들을 보면 하나같이 이와 비슷한 문제점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래 예문은 요즘 서울시의 홈페이지에 공지로 떠 있는 내용 중의 일부다. 서울시에서 매다는 공지 사항들은 비교적 다른 곳에 비하여 신경을 써서 관리하는 편인데도, 띄어쓰기에서만큼은 일상적으로(?) 실수를 하고 있다. 그러니, 다른 곳들은 말할 것도 없다고 해야 한다.
예문 : 서울시 명예부시장 추천 안내
▢ 어르신복지 분야 등에 대한 경험과 학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책제안과 현장의견 수렴 등이 가능한 자 [중략]
▢ 임기 및 활동 - 임기 1년(※1회 1년 연임 가능)
- 주요활동 : 회의 및 온라인 등을 통해 서울시장과 의견 교환
시민의견 수렴 활동(분야별 현장 의견 수렴 등)
서울시정 관련 주요행사, 간담회 및 회의참석 의견 제시 등. [밑줄 처리는 필자]
1) 명예부시장 : 명예 부시장(원칙), 명예부시장(가능)
결론부터 적자면, 이 말의 띄어쓰기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명예 부시장’으로 띄어 적는 게 좋다. ‘명예부시장’은 사전에 없는 말이므로. 사전에 없는 말들은 원칙적으로(무조건) 띄어 쓰는 게 맞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긴다.
현재 ‘명예’가 들어간 합성명사로 사전에 올라 있는 말들은 두 가지 종류다.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사용 빈도) 익숙해진 것들과, 법규상 인정되는 것들이 그것이다. ‘명예교수/명예시민/명예박사/명예퇴직’ 등이 전자이고, ‘명예영사/명예총영사/명예제대’ 등이 후자의 경우다. 이러한 원칙에 따르면, ‘명예부시장’은 ‘명예 부시장’으로 띄어 적어야 옳다. ‘명예 시장’ 역시 같다. (그러나 만약, 명예 부시장 제도가 법제화되었고, 그 명칭을 명예부시장으로 확정한 경우에는 이의 없이/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사전의 표제어에는 한계가 있다. 당연히 인용(認容)되어야 할 말들도 그 모든 경우의 수를 챙길 수 없는 실무 능력상의 문제와 업무량 과중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모두 다 올릴 수가 없는 일이 흔하다.
그리고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 또 한 가지 이유도 있다. 굳이 합성명사로 만들지 않아도 되는 말이나, 어느 한 가지를 합성명사로 인정했을 경우에 따르는 부작용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일 때도 있다. 예컨대 '장단지'나 ‘된장단지’를 한 낱말로 인정하면 ‘간장단지, 고추장단지’와 같은 이 세상의 온갖 단지들도 벌 떼 같이* 들고 일어나서 자기네들도 한 낱말로 인정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사전 두께는 감당할 길이 없어진다. 하여, ‘장 단지, 된장 단지, 간장 단지, 고추장 단지’ 등으로 띄어 적는다. (*벌 떼 같이 : '벌떼같다'는 없는 말. '벌떼'도 없는 말. 모두 띄어 적는다. ->벌 떼 같다.)
다만 ‘꿀단지’라든가 ‘솥단지’, ‘애물단지/보물단지’, ‘세존단지(경상도/전라도에서 농신(農神)에게 바치는 뜻으로 가을에 제일 먼저 거둔 햇곡식을 넣어 모시는 단지)’ 따위는 합성명사로 인정한다. 언중의 관행*, 사용 빈도, 그리고 의미 특정을 고려해서다.
‘꿀단지’와 ‘솥단지’는 관행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고, ‘애물단지/보물단지’는 그 안에 실제로 애물이나 보물이 들어 있지 않더라도 각각 애물을 낮잡는 말로, 소중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기 위해 쓰는 말들(의미 특정)인 까닭이다. (의미 특정이란 그 안에 있는 낱말들의 일반적인 뜻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애물단지/보물단지’에 비유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언중의 관행 :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언중)에 의하여 생성/변화된다. 그 때문에 이 관행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되는데, 그 좋은 예가 속담이다. 옥에 있는 티는 ‘옥의 티’라고 해야 맞는데도 속담 표기는 ‘옥에 티’로 적고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거나 좋은 것에 있는 사소한 흠’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낭’은 ‘낭떠러지’의 옛말(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말로, 공식적으로는 사용될 수 없는 비표준어)이지만, 속담에는 ‘서울이 낭이라니까 과천부터 긴다’라고 표기되어 있고, 공식적인 경우에도 그렇게 써야만 맞는다.]
그런 점에서, ‘명예부시장’을 합성명사로 인정하면 온갖 명예직들도 같은 대우를 해줘야 하게 된다. ‘명예시장, 명예도지사, 명예의원, 명예...’. 이러면 사전 두께가 불필요하게 한참 더 늘어나야 하고, 거기서 빠진 명예직들은 항의 시위를 할지도 모른다. 하하하.
그래서 위에 결론부터 적었다. 사전에 없는 합성명사는 띄어 적는 게 가장 무난한 해결책이다. 시간 절약도 되고, 자칫하면 무지를 드러낼 수도 있는 모험을 피하는 길도 된다.
2) 어르신복지 : 신조어로서 쓸 수 있다.
현재 합성어로 인정된 ‘노인복지(고령자의 복지를 위한 사회 보장 제도의 총칭)’라는 말을 대체하는 말인데, 멋스러우면서도 진정으로 위하는 듯한 어감을 주는 좋은 말이다. 요즘 ‘노인’이라는 말 대신 ‘어르신’이라는 말을 쓰자는 사회 운동을 즉시 반영한 최신 용어다.
이런 신조어를 사용할 때는 조어법에 맞는지를 살펴야 한다. ‘어르신복지’는 세 가지 면에서 합성명사 조어법에 맞는다. ‘노인복지’라는 말이 이미 합성어로 인정되고 있다는 점, 거기서 ‘노인’을 ‘어르신’으로 바꾼 것일 뿐이라는 점, 그리고 전문용어는 붙여 적을 수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합성 명사'를 이 글에서 '합성 명사'와 '합성명사'의 두 가지로 적고 있다. 전문용어이기 때문에 붙여 쓸 수 있는 예다.]
참, ‘어른’과 ‘어르신’은 비슷한 말이 아니다. 뜻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결혼을 한 사람’을 뜻한다. 한편 ‘어르신’은 ‘어르신네’와 같은 말인데,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를 때나, 아버지와 벗이 되는 어른이나 그 이상 되는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구별하기 쉽게 말하자면 어르신은 어른 중에서도 아버지뻘 또는 그 이상 되는 분들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다. 법적으로 말하면 성인은 어른에 속하지만 어르신이 되려면 제법 기다려야(?) 한다.
어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잡말 하나를 보태고 가자. 공부만 하면 머리가 아파지니까. 위에서 어른의 뜻풀이에 ‘결혼을 한 사람’이라는 게 있었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라는 말이 아니다. 예전에는 실제로 그랬다.
이 어른의 어원은 ‘얼우다’에서 왔는데, 그 뜻은 좀 진해서 ‘성교하다’였다. 그것이 표현상 문제도 있고 해서 뜻풀이에서 ‘배필을 얻다’로 순화되었고 표기도 ‘어루다’로 점잖아졌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표준어 심사에서 ‘어르다’에 밀렸다(표준어 규정 17항). 그 바람에 사어(死語)로 전락하게 된 말이다. 이제, 어째서 어른의 뜻풀이에 ‘결혼을 한 사람’이라고 점잖게 못 박아놨는지 아실 수 있으리라. 잡소리 끝. 원위치로!
3) 정책제안, 현장의견 수렴, 주요활동, 시민의견, 서울시정, 회의참석 : 모두 낱말 사이를 띄어 적어야 함.
위에 보이는 임의 합성어들은 모두 낱말 사이를 띄어 적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제 명확하게 아실 수 있으리라 믿는다. 모두 사전에 없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띄어 적는다고 해서 의미가 달라지거나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배려를 하면 된다. 특히, ‘현장의견’ 같은 말은 공지문 아래의 괄호 안 표기를 보면 ‘(분야별 현장 의견 수렴 등)’으로 정확하게 띄어 쓰고 있는데, 위에서는 그만 붙여 쓰는 실수를 하고 있다.
‘서울시정(-市政)’이란 말은 전문용어일 듯도 하여 붙여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시정(市政)’이란 ‘지방 자치 단체로서의 시의 행정’을 뜻하는 말인데, 제대로 적자면 ‘서울시 시정’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이 바쁜 세상에 일일이 그처럼 죄다 (친절하게) 밝혀 적을 시간이 없는 건 이해해 줘야 할 일.
그래도 ‘서울시정’은 곤란하다. 만약 ‘서울시 시정 ->서울 시정->서울시정’을 허용한다면, ‘대한민국(의) 국정’을 ‘시울시정’ 방식대로 줄인 ‘대한민국정’까지도 허용해야 하고, ‘제주특별시정’도 허용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정’이라는 말을 보고 ‘대한민국의 국정’이라는 뜻으로 제대로 이해할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서울 시정’으로 띄어 쓰거나 아니면 의미 확정을 위해 다소 불편하더라도 ‘서울시 시정’이라고 서비스를 해줘야 한다.
‘주요활동’에 쓰인 ‘주요’는 ‘주되고 중요함’을 뜻하는 명사다. 관형사로 착각하기 쉬운데, 띄어쓰기에서는 도움이 되는 착각이다. 관형사는 띄어 적어야 하니까. ‘주요활동’이라는 합성명사 역시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주요경비(主要經費)≒직접비(直接費)’와 ‘주요계약(主要契約 : 대강의 기초 조건만을 결정하는 계약)’ 등이 합성어인데, 이 말들은 모두 경제용어로서 전문용어이기 때문에 한 낱말이 된 것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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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처럼 각급 기관(중앙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만드는 홍보문에는 열이면 열 모두 띄어쓰기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국어 사용상의 문제점을 걸러내고 바로잡기 위해, ‘국어기본법’에는 각급 기관에 그런 일을 하는 ‘국어책임관’이라는 걸 반드시 두도록 하고 있다. (법에는 ‘~지정할 수 있다’로 되어 있지만 시행령에는 ‘~지정해야 한다’로 강도를 높이고 있다.)
법이 제정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시행이 부진하자 최근 들어 강도 높게 시행을 촉구하여, 그 덕분에 명목상의 국어책임관을 두고는 있지만, 어떤 데는 심지어 자신이 그 담당관인 줄도 모르고 있어서 우리를 서글피 웃게 만든다.
게다가, 그 국어책임관이란 게 전업직도 아니다. 겸직이다. 대개 홍보관이나 그런 일들을 하는 이들이 겸하고 있는데, 그 직급이 낮은 것도 문제다. 1~2급의 실장, 2~3급의 단장/본부장 아래로 잘해야 3급이고 대부분 4급이다. ‘~관’ 내지는 과장으로 불리는.
서울시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금. 현재 김선순 시민소통담당관이 국어책임관을 겸하고 있는데, 작년인가엔 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함께 ‘서울특별시 국어 사용’ 조례 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공문서 작성과 시 주요 정책 사업 명칭을 정할 때 알기 쉬운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사용하고, 국어‧한글 사용 실태 조사와 평가를 매년 실시하며, ‘국어 바르게 쓰기 위원회’ 회의를 매분기 개최하여 행정 용어 순화 등을 심의‧의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 얘기하면 잡말이 너무 길어지므로, 나중에 기관 얘기가 나올 때 이어가기로 하자. 걸핏하면 ‘헌법기관’ 어쩌고 하면서 떠들어대는 국회의원들을 ‘한 방 먹이는’ 그런 걸 포함해서...
헌법기관 어쩌고 하면 자기네들 위상이 엄청 높아지는 걸로 착각하는데, 한마디로 헌법기관이란 헌법에 그 조직(혹은 임면 등)이 언급된 경우는 죄다 헌법기관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국민들은 까마득히 모르고 지내는 ‘국민경제자문회의’도 헌법기관이다. (3달에 한 번씩 마지막 달 목요일에 열리는데 의장이 대통령. 민간위원 30명을 포함해서 경제부총리 등의 당연직 정부위원 5명과 그 밖의 관련 부처 장관, 안건과 관련하여 사전에 통보된 국책기관장 들이 죄 참석하므로, 격식과 위상이 꽤나 높은 회의이다. ‘~ 회의’라는 명칭 자체가 헌법기관이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11월부터 꼬박꼬박 세 번 열렸는데, 대통령이 한 번도 결석을 안 했다. 하하하. )
이처럼 그 조직이나 임면/선출 등에 대하여 헌법에 언급되는 기관은 죄다 헌법기관이다. 심지어 신출내기 검사나 판사들까지도 그렇다. 더 늘어놓으면 한참 길어지므로, 나중에 해당되는 사안이 나왔을 때 본격적으로 거론하기로 하자. 오늘은 여기서 끝.
지루한 글, 여기까지 읽으시느라 애들 쓰셨다. 그래도, 이참에 초보적인 합성명사 조어법 이해와 더불어, 합성명사가 아닌 것들은 띄어 써야 한다(그래야 안전하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들 새겨 두셨으면 좋겠다. [2014. 1. 16.]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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