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옛동네를 찾았다.
동네 분들을 찾아보기 위함이 첫 번째 목적이긴 하지만
실은 내 살던 옛집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는 것 또한
내게는 엄청 중대한(?) 일이었다.
내가 두고 온 100종의 나무와 풀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
외양이 크게 바뀌어 있었다.
치장 벽돌을 덧붙여서 농가 주택 냄새(?)를 최대한 지워냈고
테라스도 덧붙인 뒤, 텃밭은 잔디밭으로.
하기야, 새 주인들은 우리들이 꾸며놓은 것을 보고는
예쁘긴 하지만, 우린 잔디밭을 만들 거에요... 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처럼 내가 몇 해를 두고 아끼며 키웠던 것들이 뿌리째 뽑혀 나가고
외양 꾸미개용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들 몇 가지만 살아남은 것을 보니
가슴 안쪽이 몹시 아파왔다.
오른쪽 사진은 이사 직전 우리가 원두막(?)이라 부르던 것과,
동네 분들이 개 별장(?)이라고 부르던 것.
왼쪽 사진은 새 주인이 개집 자리에 설치한 야외 탁자들.
야외 탁자의 위쪽에 설치한 퍼골라를 타고서
무성하게 오르는 것들은 내가 심었던 키위.
이 키위들은 암수가 함께 있어야 열매를 맺는 법이어서
처음 삽목을 할 때부터 암수 쌍을 맞춰서 뿌리를 냈었다.
위의 사진들이 4년 전의 키위 모습.
진 공주가 이사하면서 머리에 이고 가겠다고까지 하던 자두나무(왼쪽 사진).
자두가 참 달고 맛있어서,
그걸 따면 떨어져 지내던 이들에게 상자에 담아 보냈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맛있게 먹었다는 답례를 보내오곤 하던 자두.
그 자두나무도 싹둑 잘려져 있었다. (사진 오른쪽)
벌레가 생기고 해서라고 이웃집들에게 말하더란다.
하기야, 진 모친은 살충제를 탄 농약산포용 분무기를 빌어다 2회 정도 약을 뿌려주곤 했다.
그토록 아끼던 붉은인동(왼쪽 사진)은 1/10 정도만 울타리 꾸미개용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두어 그루만 심었던 실유카는 왼쪽 담쪽으로 옮겨져 (오른쪽 사진)
왕성하게 번식하여 대문 꾸미개용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씨들을 뿌려대서 어린 것들이 잡초 대접을 받던 중국단풍을 대신해서
언젠가는 수문장 노릇을 하라고 심었던 튤립나무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어려서, 성장을 기다릴 수 없었음인가...
칠엽수 다섯 그루를 심었었는데, 녀석들은 주인 눈에 들었나 보았다.
세 그루가 몰라보게 크게 자라나, 십여 미터의 성목으로 우뚝 서 있었다.
또 한 그루는 동백나무를 심었던 자리로 옮겨져 있었고.
동백나무는 외양이 초라한 녀석인데, 어디로 뽑혀 나갔을까.
촌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텃밭을 가꾸고 싶어서
일부러 농가주택을 찾아다니며 구입했던 곳.
하여, 우리들은 그곳에 머물 때 촌사람으로서 참 행복했다.
그 때문일까. 당진을 떠나와서도 당진 집 얘기를 무척 많이 했다.
이구동성으로...
그래서 이번 휴가의 계곡행 대신에 당진행을 택했던 것이었는데...
옛집을 보면서, 외양 우선 문화가 그 수많은 나무와 귀한 풀꽃들의
운명을 좌우했구나 싶어서 속으로는 무척 우울했다.
정성 들여 길렀던 루핀 대신 싸구려 루드베키아가
그 꽃색만으로 선택된 듯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는데,
그런 식의 느낌들이 내가 심고 가꿨던 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연달았다.
특히 내가 아끼고 정성들였던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게다가 그것들의 이름 중에는 낯선 것들이 적지 않아서
새 주인이 알아보기 어려울 듯싶어
떠나 오기 직전 하나하나에 이름표까지 매달아 주었던 터였다.)
그리고... 집 뒤로 돌아가 창고 별채 위를 바라보았을 때
그 지붕 위에서 잡초들이 잔뜩 자라고 있음이 보이고,
뒷벽들의 페인트가 까지고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들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고
잇따라 집 주변 도처에, 대문 옆과 심지어 현관 앞쪽에조차
생활 쓰레기들이 널려 있는 게 눈에 띄었을 때
그 집은 더 이상 내 옛집이 아니었다.
*
그러나, 그곳 방문이 그런 흐림으로만 끝날 수는 없었다.
정다운 이웃들 덕분에.
우리가 간다고 하자,
옆집들끼리 "진이네 도착 시간이 몇 시랴?" 소리를 주고 받을 정도로
우리를 기다려주신 분들이 계셨다.
바로 뒷집 권사님과 맞은편 최 권사님네, 그리고 건넛집 '욕쟁이 아짐씨'가 그들...
가는 집마다 뭘 하나라도 먹여 보내지 못해서 안달하시는 그분들 탓(?)에
새벽부터 마셨던 커피를 또 마셔야 했고
갓 딴 벌레 먹은 복숭아의 진미(정말 맛있었다)를 맛보기도 했고
뒷집 권사님은 미리 준비했노라면서, 굳이 점심을 먹고 가라고 붙드시는 바람에
우린 11시 반에 점심식사를 마쳤다.
그뿐이랴. 올라가는 손이 빈손일 수야 없다면서
큰 것으로만 골라 딴 가지서부터(울 집에도 있는데...) 밭에 심은 신종 노각,
그리고 뒷집 권사님이 개발하셨다는 신종 맛장(고추장과 된장을 쓰지 아니한 쌈장)과
그 밖의 이것저것을 채워 여러 개의 봉지를 주시는 게 아닌가.
꽃 가꾸기에서도 그 착한 마음씨와 바지런함, 정갈함이 배어나는
뒷집 권사님 댁의 꽃밭...
그런 분이라서 우리 집의 것들을 보고 예쁘다고 하실 때마다
무조건 나눠드리곤 했다.
뒷집 권사님을 떠나오면서, 기쁜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돌아와서 살펴보니, 정작 뵙고 싶었던 권사님 사진이 없다.
내후년을 기약하길 잘한 듯하다.
그때는 아무래도 팔순 잔치쯤도 될 듯하니
제대로 된 사진도 건져올 수 있지 않을까. [Aug. 2014]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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