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신과 15년 만에 헤어지다 : ‘시골마을’ 안녕!
이 나라에 PC통신 시대라는 게 있었다. 내 기억에 88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그해 연말이던가 다음 해이던가, ‘천리안’이 가입자 접수를 시작하자 줄을 서서들 가입을 했다. 그 후 하이텔(한국통신), 유니텔 (삼성)등이 뒤를 이어 천리안(데이콤)과 더불어 삼각편대를 이뤘던 듯하다. 나우누리는 좀 뒤쳐져서 합류했고.
당시의 PC통신은 전화선을 이용한 모뎀 방식이어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똑딱이라고 부를 정도로 입력도 느렸고, 모든 자료는 텍스트 방식으로 주고받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이용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자료 하나를 다운받으려면 10여 분 정도는 기본이고 심지어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인터넷 항해라고 해봤자 검색어를 이용한 제한된 접속/접근이 가입 업체별로 한정적으로 가능했다.
그러다가 인터넷 접속이 기본으로 내장된 윈도우 95가 출시되었다. 가히 인터넷 시대의 혁명이라 할 만큼 Explorer의 위력은 세상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그런 흐름을 감지하고 우리나라에도 인터넷 전용선 업체들(두루넷, 하나로통신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PC통신업체들은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윈도우 95가 나오면서부터 인터넷 이용을 시작했다. 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이 나라에 인터넷 전용선 업체들이 출현하기 전인지라 PC통신 업체의 전화선 모뎀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랜(LAN)과의 병용 방식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 99년 이후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가입했던 유니텔 기준이다.
가입 당시에는 모든 아이디를 영어로만 적어야 했는데, 내겐 그게 훨씬 더 유리했다. 나의 영어식 이름은 Jony Choi였고 내가 상대해 왔거나 나를 잘 아는 외국인들은 제대로 내 이름을 불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의 올바른 발음은 ‘자니’가 아닌 ‘조우니’다. 섣부르게 영어 공부를 한 이들은 짐작으로 ‘자니’라 부르지만 원어민들은 일러주지 않아도 ‘조우니’로 읽는다. 그런 이름을 선택한 것은 까닭이 있다.
30여 년 전, 명함에 영문 이름 표기를 여권상의 표기대로 Jong Hee로 했더니만 독일에서는 내내 내 이름이 ‘용에’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도 곧이곧대로 Jong Hee Choi라고 적으면 제대로 발음해주는 외국인들이 거의 없거나, 내 명함을 들여다보면서 발음으로 고생들을 했다.
그래서, 그들의 발음 편의도 고려할 겸 해서 내 딴엔 ‘좋은 이 ->조우니’의 생각으로 영어에 없는 이름을 창작했다. 그 덕분에 아직도 전 세계에서 Jony Choi라는 이름은 유일하게 나뿐이긴 하다. 하하하. (하기야, 우리 딸도 현재로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이름이다. 본명 그대로의 표기인데도 어느 나라에서 읽어도 제대로 읽어준다. 내가 부모로서 딸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딱 이것 하나뿐이다. 여러 나라의 발음법을 고려하여, 표기에 조금 신경을 쓴 덕분인데, 천기누설(?)에 속하므로 이곳에 그걸 밝힐 수는 없다. 하하하. 다만, 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아이들 이름을 지을 때 영문 표기도 꼭 신경 쓰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 시대에는 영문 표기 이름이야말로 인터넷 아이디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확실한 분신일 터이므로.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개인 이름 시대가 지금도 와 있지 아니한가.)
그 덕분일까, 내 근황이 궁금한 외국인들이 페이스북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영락없이 유일하게 떠오르기 때문에 손쉽게 그리고 반갑게 'Hi Jony! Long time no see' 따위를 해온다. 그 바람에 나 역시 잊고 있었던 이들에게 손이라도 흔들어 줄 수 있고...
아이디에 한글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게 98년 후반이었던가, 99년 전반이었던가. 아무튼 업체가 시도 때도 없이 보내는 공지사항을 충실하게 읽어보는 편이 아닌 터라 나는 그걸 좀 뒤늦게 알았다. 보자마자 얼씨구나 하면서, 얼른 쓰고 싶던 걸 쳐 넣었다. ‘촌놈’이라고.
그랬더니, 그건 이미 누가 선점했다고 나온다. (당시에는 지금의 네이버 등과는 달리 가입자들의 아이디가 중복되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유일해야만 했다.) ‘시골촌놈’, ‘시골놈’... 계속 넣어봤지만, 죄다 동작 빠른 이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내게 주어진 것은 ‘시골마을’이었다. 그렇게 해서 인터넷 상의 닉네임인 ‘시골마을’이 내 분신이 되었다.
*
그런데, 이 ‘시골마을’은 어찌 보면 태생적으로 문제적 아이디였다. 우선 의미가 중복된다. ‘마을’은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대로 적으려면 ‘시골 마을’로 띄어 적어야 한다. 게다가, 사람이 어찌 마을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이 아이디를 그 뒤로 계속 썼다. 둥지를 유니텔에서 네이버로 옮긴 뒤로나 문학 카페 등에 가입해서도 같은 아이디를 썼고, 두어 개의 곁가지 블로그 비슷한 신문사 글 창고에서도 이 아이디를 썼다. 걸핏하면 아이디를 바꿔대는 사람들의 심리나 사연들에도 기웃거리게 되면서는, 더욱 그것만 껴안았다.
사람은 어디서고 무슨 일에서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그 생각을 꿋꿋하게 고집하다시피 했다. 하기야, 내 삶의 내용물들도 그렇긴 하다. 사람 사귀는 일이나, 일에 매달리는 버릇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에서나...
글 쓰는 버릇 또한 거기서 다르지 않다. 아직도 나는 게시판에 직접 대고 낙서처럼 몇 자 끄적거리는 걸 하지 않는다. 글 판이지 낙서판이 아니므로. 그리고 글은 짧은 것이든 긴 글이든 언제고 그 사람이다. 페이스북 따위에는 두어 달에 한 번꼴로만 들어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낙서에만 매달리는 이들 중에 ‘페북폐인(廢人)’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다지곤 한다. 그런 모든 짓이 내게는 일관성이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고집으로 비치리라는 것도 안다.
[‘페북폐인(廢人)’ : ‘페북폐인(廢人)’이란 하루에도 몇 번씩 페이스북에 드나들면서 자신이 올린 사진이나 글에 얼마나 많은 표지가 매달리는지 수시로 체크하고, 그곳에 올리는 것들의 내용에 엄청 신경을 쓴다. 즉, 자신의 어두운 부분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 세상에 자랑해도 좋은 것, 자신이 상당히 제대로 된 멋진 사람이라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는 그럴 듯한 것들만 올린다. 심지어 그런 것들을 올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연출하는 일도 불사하는 페이스북 중독자들을 이르는 말인데, 역설적이게도 페북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
그러다 보니, 인터넷 세상에서 오래 알게 된 이들과의 만남이 길게 이어진 이들도 제법 된다. 그들은 나를 호칭할 때 ‘시골님, 시골마을님’이라고 한다. 마땅히 달리 부를 호칭이 없는 탓이기도 했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호칭이 더 친숙하다.
어느 날의 일이다. 지금도 무척 가깝게 지내는 온라인 지인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랑 술 한잔을 할 때다. 온라인 지인은 나를 ‘시골님’이라고 계속 불렀고, 다른 두 사람은 그게 뭔 말인가 싶어서 의아해했다. 끝내 그 호칭이 궁금했는지 한 사람이 물어왔고, 나를 그렇게 부른 이가 사연(?)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둘은 이내 수긍했다.
또 다른 술자리에서다. 온라인 지인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나를 ‘시골마을님’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합석했던 내 친구 하나가 제동(?)을 걸어왔다. 사연은 알겠는데, 어떻게 사람이 ‘마을’일 수 있느냐고. 내 우려대로였다.
그 뒤 또 다른 술자리에서 가장 중대한 치부(?)가 지적되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의미 중복의 문제가 씹혔다(?). 그것도 우리말에 관심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써도 되는 거냐면서, 공박해 왔다. 나는 전후사연을 간단히 설명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얼마 전 일이다. 종로 2가 예전 화신백화점 옆 골목에 늘어서 있는 음식점 거리를 지나치게 되었다. 그곳에는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식당 하나가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그 상호가 <시골마을>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치면서 뒤늦게 생각이 나서 뒤돌아보니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보았나 싶어서 몇 걸음을 뒤돌아가 보았는데도 없었다. 시골스럽게(?) 제법 큼지막한 간판이어서 쉽게 눈에 띄던 것이었는데, 그 자리에 낯선 이름이 최신식의 조그만 간판에 날렵하게 매달려 있었던 탓에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그 생각이 났다. 아하... ‘시골마을’의 퇴장 시기를 암시하는 듯만 했다. 이젠 그 문제적(?) 낱말과 안녕! 해도 될 것 같았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충분히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여전히 사랑이 또렷해지는 체화(體化)된 사랑 같은 것. 나와 내 분신 ‘시골마을’의 관계를 떠올리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내가 ‘시골마을’과 함께한 15년간은 틈이 나는 대로 버섯 공부, 야생화 공부, 농부 연습, 귀촌 도상훈련(圖上訓練) 등으로 바쁘게 살아낸 이중생활의 띠가 새겨진 기간이기도 하다.
며칠 전, 아이디를 바꾸면서 맨 처음 키보드에 실었던 것은 ‘지구촌놈’이었다. ‘지구촌’을 택한 것은 손바닥만 한 좁은 곳에서 살다보니 저절로 맨날 우물 안 개구리들 같은 짓들이나 하게 되는 ‘머리 큰 영악한 바보’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서다. 어느 분 말마따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나아가 역사의 수레바퀴는 길게 올곧은 이들에 의해서 항상 정(正)과 양(陽)의 방향으로 바로잡히곤 했다.
한때 잠시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싣기 위해서, 올바른 길을 외면하는 이들은 역사가 척척 알아서 쓰레기장에 매몰시킨다. 긴 역사에서 보면 그들의 탐욕과 진흙탕 싸움, 지저분한 행태들은 나노초급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짧디짧다. 그렇다는 걸 그들만 모른다. 그래서 한때는 똑똑했음에도 지금은 영악한 바보로 전락하는 길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암튼... ‘지구촌’에 ‘촌놈’을 보탠 건 그 ‘촌놈’ 소리를 놓고 싶지 않아서였다. 난 생래적으로 촌사람이고, 앞으로도 내내 그렇게 촌스럽게 살고 싶으니까. 어쩔 수 없이 도회지에서 머물면서 내게 덮씌워진 도회의 냄새를 나는 평생 털어내며 살고 싶다.
‘지구촌놈’을 써넣고 나니 호칭을 문제 삼던 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막상 실제로 불러야 하는 이들 생각도 났다. ‘촌놈님’ 소리를 해대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야, 촌놈아!’ 소리를 해대는 내 친구 몇몇을 빼고는 어려운 호칭. 하여, 조금 순화시켜서 써 넣은 게 ‘지구촌사람’이다. 나야 여전히 ‘지구촌놈’이 딱 맘에 드는 말이지만...
한글판 블로그인데도 가끔 기웃거리는 중국인 친구와 이태리 친구, 그리고 남아프리카 친구가 있다. 그 친구들 때문에 예전에는 어떤 글이고 간에 음악이나 사진을 매달곤 했는데, 요즘은 둘 다 하지 못한다. 핑계를 대자면 내 시간 배정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해서다. 어쩌다가 짧은 글을 올리게 되면 영문 표기를 덧대곤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 친구들을 위해서.
머지않아, 뜻은 몰라도 내가 가르쳐 준 한글 글자들을 떠듬거리며 짚어대곤 하는 그들이 ‘지구촌놈/지구촌사람’이 뭔 소리냐고 물어올지 모르겠다. 미리 답을 적어놔야겠다. ‘global village folk’를 뜻하는 말이라고.
[Nov. 2014]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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