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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외국인들이 되레 한국에서 배우는 영어, ‘파이팅!’

우리말 공부 사랑방

by 지구촌사람 2015. 6. 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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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남용과 외래어 오용에 관한 네 번째 이야기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외국인들이 되레 한국에서 배우는 영어, ‘파이팅!’

 

[] 우리가 시합이나 가벼운 게임 같은 것을 할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로 화이팅이 있잖아요. 그걸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뜻으로는 뜻풀이가 나와 있지 않았어요. 웹스터 대사전까지 들춰 봤는데도요. 게다가 사전에 나와 있는 뜻풀이가 모두 전투라든지 하는 식의 무시무시한(?) 것들이던데, 대체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요? 우리가 제대로 쓰고 있는 건가요?

 

[] 외국어로서의 ‘fighting’이 지닌 뜻과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미만 비교해 보자면 그 말 역시 콩글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답부터 말씀드리자면 파이팅은 현재 외래어로 처리되어 있는 감탄사입니다. , 쓸 수 있는 말입니다. , ‘화이팅이 아니라 파이팅이라고 적어야 하고, 감탄사로만 써야 합니다.

 

, 영어에서는 이 말이 형용사나 명사로 쓰이지만, 우리말 외래어로서의 파이팅은 감탄사로서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라는 뜻만 갖고 있는 말일 뿐이므로, 영어가 갖고 있는 뜻은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우리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파이팅이라는 외래어는 외래어로 인정되기 위한 두 가지 요건, 쓰임의 조건동화의 조건이라는 기준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현재 널리 쓰이고 있어서 쓰임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고, fighting이라는 외국어가 원래 언어에서 지니고 있던 특징(음운, 문법, 의미)을 잃어버리고 우리말에서는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감탄사로서의 특징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죠.

 

꼬부랑말을 은근히 선호하는 사람들 중에 걸핏하면 달고 살다시피 하는 외국말로 이 파이팅’(fighting)이 있습니다. 외국어와 담 쌓고 사는 이들까지도 이 말을 애용할 정도로, 대중화*된 말이지요. 국립국어원에서 아자아자아자혹은 힘내자로 순화해서 쓰자고 한 지 오래지만, 언중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파이팅도 아닌 화이팅소리를 해댑니다. 엄청 애용하는 일상어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위에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영어로서의 ‘fighting’은 형용사와 명사로만 쓰일 뿐이며 감탄사의 기능은 전혀 없습니다. 외래어로서의 우리말 파이팅과 전혀 다른 점이지요. 형용사로는 싸우는; 호전적인/()를 숭상하는/투지 있는; 전투의/전투에 적합한/교전 중인/전쟁의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fighting spirit(투지); fighting cock(싸움닭, 호전적인 사람); a fighting chance(싸워 볼 만한 가능성); fighting men(전투원, 전사들, 투사들); a fighting ship(군함); fighting forces[units](전투 부대) 등으로 쓰이는데 모두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어휘들입니다.

 

명사로는 싸움/전투/교전/회전(會戰); 논쟁; 격투/투쟁등을 뜻하는데요. street fighting(시가전); a fighting field(싸움터); hard fighting(격전)에서처럼 쓰입니다. 역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말들입니다.

 

이처럼 장황하게 영어 뜻풀이와 활용 낱말까지 적은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답니다. 눈을 씻고 봐도 영어로서의 이 ‘fighting’ 속에는 우리가 애용하는 잘 싸우자!혹은 잘 싸워라!의 뜻은 없다는 거죠.

 

그러니, 우리의 속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이 말을 들으면 낯빛이 달라지거나 최소한 어리둥절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락이나 친선 시합에 불과한 것들 앞에서 느닷없이 전투!를 힘차게 외쳐대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한국화(?) 현상을 알게 될 정도로 이 땅에 오래 머문 머리 좋은 외국인들은 덩달아 쓰기도 합니다. 토착화(localization, glocalization. 어떤 제도/풍습/사상 따위가 그 지방의 성질에 맞게 동화되어 뿌리를 내리게 됨. 또는 그렇게 함.)의 지름길은 그 지역 언어에의 순응인 까닭에요.

 

전투를 뜻하는 ‘fighting’ 이야기가 나온 김에 군것질 하나 하고 갈까요? 지구상에 프로야구팀이 썩 많은 편은 아니지만 1~3군까지 치면 2백 개는 넘습니다. 그중에서 팀명을 ‘Fighters’라 하여 전투적 이미지를 살린(?) 데가 한 군데 있는데요. 바로 일본의 니혼햄입니다. '파이터(fighter)'는 전투기 앞에 붙는 F-15, F-35처럼 주로 전투기를 이르는 것으로 익숙하지만, 본뜻은 전사(戰士)’여요. 거기서 발전하여 불과 싸우는 소방수는 firefighter라 하고, 돈벌이를 위해 싸우는 프로 복서는 prizefighter라 하는 식이죠.

 

어쩌면 니혼햄은 한 발 더 나아가 자신들의 혼까지도 뜻하는 사무라이(さむらい[])’라 하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그 말이 영어에 없다 보니 할 수 없이 ‘Fighters’라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칼잡이 시위(侍衛) 무사들이라는 의미가 ‘Fighters’ 뒤에 숨겨져 있는 거죠. 이처럼 파이팅과 관련된 말은 어떻게 해도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파이팅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요.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파이팅이 영어에서 온 말이기는 해도 우리말 파이팅에 딱 들어맞는 영어가 없답니다. 그러니 외국인들 앞에서 우리말 파이팅의 의미를 영어로 표현해야 할 경우에는 어찌해야 할까요. 가장 흡사한 말로는 Go for it!가 있습니다. ‘, 해봐!, 어서!, 힘내!라고 할 때 영어로는 You can do it! Go for it!이라고 합니다. 선수들끼리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서 짧게 외칠 때는 힘을 주어 Go, go, (go)!라 하기도 합니다.

 

그 밖에 몇 가지 영어 표현을 찾아보면요. 우리말로 청군 이겨라!Sweep to victory, Blue Team!쯤 되고, ‘잘한다, 우리 팀!Way to go! Our Team!입니다. ‘Way to go’Good work, guys! Way to go!’에서처럼 잘 했어, 자네들! 아주 잘 했어!’ 식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힘 좀 내! 잘 좀 해봐!등으로는 Come on, stir yourself!가 어울리는데, 몸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힘을 내라는 그런 말이죠. ‘이영차/영차등의 구호로는 yo-(ho-)ho (혹은 Yo-ho)’가 있습니다. 줄다리기 같은 데서 응원할 때 영어로는 ‘Yo-ho! Yo-ho! Hustle!이라 하면 어울립니다. ‘hustle up(서둘러라. 힘내라)’도 쓸 수 있고요. , 우리말 책에서 웬 영어 얘기냐고요? 눈치들 채셨겠지만요. 외국어를 정말로 잘하는 사람들은 우리말 실력이 빼어나답니다. 그걸 덤으로 기억들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거듭 말하지만, 현재 이 파이팅(fighting)’은 외래어로 등재된 우리말 감탄사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서 써야 합니다.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를 뜻하는 감탄사로만 한정되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그는 파이팅이 좋은 선수라든가, ‘좀 더 파이팅을 해야 합니다라는 식으로는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콩글리시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명사로서의 파이팅은 기본적으로 전투/싸움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국립국어원에서는 이 말을 따로 힘내자로 순화하자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는데, 공식적으로 순화된 표현*아자’(2004)입니다.

 

[참고] 공식 순화어 : 순화어는 국립국어원이 개설운영하고 있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사이트를 통하여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 확정된다(최근에는 이러한 의견 수집 절차를 없애고 위원회 회의만으로 확정하고 있다). 이처럼 확정된 순화어는 법에 의하여 각급 기관(중앙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의 문건 작성 시에 반영하도록 되어 있는데(‘국어기본법’ 14), 그 시행 책무를 맡고 있는 각급 기관의 국어책임관이 현재 겸직 체제여서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크다. 국어책임관제도와 관련해서는 기회가 되면 뒤에 다시 다루기로 한다.

 

[] 대통령도 홍보에 나섰던 화이팅

 

혹시 아시나요? 이팅이라는 말의 홍보에 대통령까지도 나선 적이 있다는 것을요. IMF 사태로 어렵던 시절의 얘기인데요. 김대중 대통령이 모델로까지 나서서 국민들에게 힘을 내자고 홍보한 공익 광고가 있었지요. 거기서 김 대통령도 화이팅!’하면서 대사를 마칩니다. 오랜 감방 생활 도중 독학으로 영어 연설까지 해낼 정도의 실력을 독하게 기른 그가 화이팅이 그런 의미로 쓰일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꿰고 있었을 터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통령도 사용한 말을 죽일(?) 수는 없었는지, 국립국어원에서는 그걸 파이팅이란 표기로 다듬은 뒤 외래어에 편입시켰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대로 이 말의 대중화에 앞장선 셈입니다.

 

* 이 글은 오는 7월 발간 예정인 졸저 <국어 실력이 능력이다 - 업무 능력(NCS) 시대에서의 우리말의 힘>에 수록될 내용의 일부다. 출판사와의 협약에 따라, 이 글의 부분 또는 전부의 복사/전재 및 일체의 상업적 활용을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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