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소리(Booksori)’ 행사장에는 소리 나는 북이 없고, ‘어린 T를 벗자’엔 벗을 티셔츠가 없다
[문] 매년 10월에 파주 출판단지에서는 <파주 북소리>라는 행사가 열립니다. 출판단지의 특성을 살린 종합 문화 축제죠. 파주시장이 조직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정성을 쏟은 덕분에 지명도도 제법 높고 경기도 10대 축제로 꼽히는 대형 도서 축제입니다. 2014년이 4회째였는데, 2013년에는 대통령도 방문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곳 축제 명칭에 ‘북소리’가 들어 있고 그 영문 표기가 ‘Booksori’입니다. 축제 기간 중 거기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외국인 안내를 한 적이 있는데요. 미국인 한 사람이 묻는 거예요. ‘Booksori’가 무슨 뜻이냐고요. 영어로 써놓은 것을 원어민이 물어오는 데에 진땀나더군요.
그래서 좀 생각하다가 제 나름대로 번안(?)을 했지요. ...‘sori’란 말은 한국어로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sound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voice다. 본래 한국어 발음대로 ‘booksori’를 읽으면 sound of drum이 되지만, 여기서는 voice of book의 의미를 풍기기 위해서 그런 표기를 한 것 같다... 고 말입니다.
영문 표기를 그런 식으로 해놓으니, 우리에겐 재미있을지 몰라도 막상 영어를 사용하는 원어민들에게는 도리어 그 영어 표기가 큰 걸림돌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마치 ‘유월愛’를 ‘六月愛’라는 한자로 써놓았는데 도리어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경우랄까요? 이런 괴상한 조어법이 이대로 통용되어도 좋을는지요?
심지어, 이곳 파주시에서 독서 문화 확산을 위해 주최하는 행사 이름이 ‘夜한 토론회’인데, 토론회가 ‘夜한’ 게 있는 건지, ‘夜한’ 토론회라는 게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저는 한국 사람이면서도 그 말뜻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野한’ 거라면 또 몰라도요.
[문] 그 번안 참 근사한데요. 아주 멋지게 잘하셨어요. 요즘 말로 10점 만점에 15점 정도는 드려야겠습니다. 하하하.
말씀하신 대로 그런 ‘괴상한 조어법’이 번지고 있어서 실은 적지 않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마치 어린애들이 잘못 쓰는 말을 어른들이 따라서 쓰면서 되레 더 퍼뜨리고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말씀하신 대로 ‘Booksori’에는 영문 표기가 들어가 있으니 외국인들에게 편리할 듯만 싶지만, 질문자가 겪으셨듯이 외국인들은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어서 도리어 고생하는 표기죠. 한마디로 어린애들 장난만 같아서 우리끼리 재미있자고 해놓은, 말도 안 되는 표기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일종의 글자놀이랄까요. 외국인들이 도리어 알아보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게 그 명백한 증거지요. 외국인을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소박하게 ‘Book Festival’이라 적고 그 뒤에 PaJoo Booksori를 고유명사처럼 사용하는 표기, 곧 ‘Book Festival - PaJoo Booksori’라 적는 것이 외국인들에겐 얼른 쉽게 의미 파악이 이뤄지게 하는 방법일 듯싶군요. 한글로는 그냥 ‘북소리’라 적더라도요.
‘유월愛’ 같은 것도 크게 보면, ‘Booksori’의 경우와 똑같은 것이죠. 글자 장난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유월에’라는 표기에 무리하게 ‘유월의 사랑’이라는 뜻을 실은 문자 놀이인 셈인데, 그 속셈이야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튀어서라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보자는 것 아닐까요.
사실 이 표기의 원조(?)랄 수 있는 영화 제목 ‘시월애(2000년. 이현승 감독)’의 한자 표기는 ‘時越愛’였습니다. ‘시간을 건너뛰어 넘는(초월하는) 사랑’이라는 엄청 어려운(?) 뜻이었지요. 주인공 두 사람이 현재에 설정한 과거의 시간들을 넘나드는 좀 복잡한 구도의 작품에 걸맞은 그런 고차원적인 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이걸 ‘시월愛’로 유통시킨 이들은 그런 복잡한 의미를 담은 말인 줄도 모른 채 그냥 글자 유희에만 빠진 것이죠. 그 바람에 요즘 우리들은 그런 괴상한 말들에 익사할 지경이 되었고요. ‘夜한 토론회’와 같은 것이 그 좋은 예죠. 말장난에 불과한 글자 놀이에 우리말이 압사당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걸 이대로 방치하면 정말 큰일 납니다. 반 도막 한자를 뒤섞는 괴상한 사생아 어법을 퍼뜨리게 될 뿐만 아니라, 아래에 설명하겠지만 그걸 국어사 측면에서 살펴보면 천 년 이상을 후퇴시키는 일, 곧 신라시대 이후로 이어져 내려온 이두식 표기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그처럼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조차 못하고 있기에 더욱 문제적이랍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를 아래에서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시월애’는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 한자 표기가 ‘時越愛’로서 ‘시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뜻을 축약해서 담아낸 영화 제목이었습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이준익 감독)’의 경우는 원작이 박흥용의 동명 제목 만화였는데, 인지도/인기를 고려하여 만화 제목을 그대로 잇기 위해서 어법에 벗어난 표기를 그대로 채택한 경우고요. 독립 영화로 드물게 크게 성공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워낭소리’는 각각 ‘임아~’와 ‘워낭 소리’의 잘못이지만, 그 또한 창의성을 발휘한 제목(저작권의 일부)이라고 인용(認容)하여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벗어남’에 포함됩니다.
이처럼 영화나 만화의 제목은 작가의 필요에 따라 임의적으로 어느 정도 비틀기를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시월애’의 알맹이는 ‘時越愛’임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무시한 채(혹은 뜻도 모른 채) 그걸 단순히 ‘유월愛/시월愛’로 표기만 바꿔서 껍데기만 베끼는 일은 참으로 유치하고도 위험스러운 모방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런 점에서도 질문에서 언급된 ‘夜한 토론회’에 쓰인 ‘夜’의 경우는 그야말로 웃음거리라 할 것입니다. ‘유월愛/시월愛’ 등에 들어 있는 ‘愛’에는 그나마 ‘사랑’이라는 뜻이라도 있지만, ‘夜하다’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어쩌면 마광수 씨가 채용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 나오는 그 ‘야하다’란 말이 왠지 멋져보여서, 그 말에 그냥 ‘끌려서’ (요즘의 청소년 은어로 하자면 ‘꽂혀서’가 되겠군요) ‘夜하다’를 부여잡은 것이나 아닐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그야말로 또다시 껍데기만 부여잡은 우스꽝스러운 꼴이지요. 이 ‘夜한 토론회’라는 표현에는 네 가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냥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말도 됩니다.
우선 ‘야하다’라는 말은 어떻게 해도 마 교수가 자의적으로 주관적으로 해석한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격이 떨어지는 뜻이 담겨 있는 말이라는 걸 언어 선택자들이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는 게 첫 번째 문제점입니다. ‘야하다’에는 현재 다음과 같은 뜻들이 있습니다.
야하다[冶-] : ①천하게 아리땁다. ②깊숙하지 못하고 되바라지다.
야하다[野-] : ①천박하고 요염하다. ②이끗에만 밝아 진실하고 수수한 맛이 없다. ③겉치레를 하지 아니하여 촌스럽고 예의범절에 익지 아니하다.
본뜻이 이러한데도 그런 걸 모른 채(혹은 무시한 채) 짐작으로만 ‘야하다’가 좋은 말로만 비쳐진다면 그야 할 수 없는 노릇이죠. 정작 문제는 이처럼 문제적 의미를 지닌 말인데도 그걸 공공의 목적으로, 그것도 독서 토론회의 제목으로 쓰고 있으니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참으로 소가 웃을 일인 거죠. 그렇지 않나요?
둘째로, 그 책 속에서 쓰이고 있는 뜻으로 돌아봐도 참으로 문제적 표현이어요. 마 교수가 책 속에서 언급한 ‘야한 여자’를 보면 긴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른 여자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손톱이 상할 정도의 험한 일 따위는 안 해도 먹고 살만 한 계층에 속하는 의식이 자유로운 여성입니다. 지적 수준이나 배경이 마 교수와 비슷하거나 낫지만 내숭 떨지 않고 자존심 내세우지 않는, 그래서 대하기에 아주 만만한 그런 여자를 ‘야한 여자’라고 하고 있거든요. 보통 까다로운 요건을 갖춘 게 아니지요. 게다가 그런 여자가 만만한 여자여야만 하니, ‘보통 남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꿈만 같은 얘기지만요.
다시 말해서, 어떤 야를 쓰든 ‘야한 여자’에 쓰인 ‘야한’이라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도 천박한 여자에 가깝고, 마광수의 글 속에 드러나는 여자 또한 어찌 보면 정숙한 여인에 비해서는 좀 덜 단단한 듯해서 문제적인 그런 여자를 뜻하는 말일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말 ‘야한’이란 말을 앞뒤로 뒤집어 놓고 보았을 때 드러나는 민망스러운 민낯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과 발음이 똑같고 한자만 살짝 바꾼 ‘夜한 토론회’란 말을 마치 무슨 걸작 작명이라도 되는 듯이 반겨하면서 해가 바뀌도록 계속 사용하고, 이와 같은 작법의 명칭이 서울 이곳저곳의 지자체 기획 행사에서까지 눈에 띌 정도로 자꾸만 번지고 늘어가는 건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기가 찰 노릇이지요.
만약 단순히 ‘저녁에 열리는 토론회’ 정도를 뜻하는 거라면 그냥 ‘저녁(야간) 토론회’라거나 ‘달빛 토론회’(야외 행사라면) 따위로 명확하게 표현하면 될 일입니다. 그걸 ‘夜한 토론회’로 한다고 해서 격식이나 품위가 더 올라가는 건 아니죠. 되레 애매모호함을 더해서 지저분해진 말이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이 번지다 보니, “성년을 맞은 청소년들이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고자 ‘어린T를 벗자’는 기부행사를 마련해...”와 같은 괴상망측한 표현까지도 버젓이 중앙부처의 문서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2013. 5. 16.자 여성가족부의 보도 자료에 담긴 내용입니다. 이 글 속의 ‘어린T’는 ‘경험이 적거나 다 자라지 못한 어린 티’를 뜻하는 ‘풋내’와 ‘티셔츠’의 준말인 ‘티’의 중의적 의미로 재미있게 쓴다고 한 것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티’는 띄어 써야만 ‘풋내’를 뜻하게 되고, ‘어린T’를 보고서 어렸을 때 입었던 티셔츠를 뜻하는 것으로 알아챌 천재는 일반인 중에는 드물다는 게 문제입니다. ‘티셔츠’의 줄임말인 ‘티’는 한글로 적어야 (예 : 땀에 전 티를 벗었다) 뜻이 통하는 우리말이 되는 것이지, 달랑 T로만 적어서는 그저 영문 글자 표기일 뿐이거든요. 그러니, 막상 어릴 때 입었던 ‘티’를 벗고 싶어도 제대로 말귀가 전달되지 않아서 ‘티(티셔츠)’를 못 벗게 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이처럼 행정기관에서조차도 말도 안 되는 반 도막 한자나 영문자를 섞어 쓰는 일은 명백한 국어기본법 위반이란 겁니다.
국어기본법에는 ‘국어책임관’이라는 자리가 있는데요. 각급 기관에서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한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국어기본법에서는 "지정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시행령에서는 "지정해야 한다"고 더 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앙행정기관의 43명과 기타 정부 부처 및 지자체 인원을 포함해서 모두 508명이 국어책임관으로 지정되어 있지요. 시행령에 나와 있는 국어책임관의 임무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해당 기관이 수행하는 정책을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알기 쉬운 용어의 개발과 보급 및 정확한 문장의 사용 장려
2. 해당 기관의 정책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국어 사용 환경 개선 시책의 수립과 추진
3. 해당 기관 직원의 국어능력 향상을 위한 시책의 수립과 추진
4. 기관 간 국어와 관련된 업무의 협조
이 508명은 현재 홍보 담당 부서장이나 그에 준하는 직위의 공무원들인데, 불행히도 이들은 겸직입니다. 그래서, 국어책임관의 임무에만 전념할 수도 없고 이른바 끗발 있는 부서도 아니어서 말발(듣는 이로 하여금 그 말을 따르게 할 수 있는 말의 힘)도 별로입니다. 그런 터라서, 위에서 살펴본 ‘夜한 독서회’나 ‘어린T’와 같은 문제적 표현들이 그대로 보도 자료로 배포되고 있는 것이죠. 국어책임관이 끼어들지도 못하는 판국이다 보니, 정부 기관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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