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와 연탄재, 그리고 낙엽
올해 모과가 풍년이다.
모진 비바람을 몰고 온 태풍이 적었던 덕분이다.
그래도 모과나무 밑에는 적지 않은 낙과들이 있다.
폭풍우 앞에서 과일들의 낙과는 순응이다.
세상에서 어느 것 하나인들
태어난 그 몫을 다해내고 싶지 않은 것이 있으랴만...
태풍 역시 자연의 거대한 순환 중 하나일진대
낙과는 그 큰 순환에 순응하는 일.
저항을 포기한 게 아니라, 순응으로 합류한 것.
*
땅에 떨어져 썩은 과일은 거름도 된다.
군소리 없이 제 뿌리에, 그 뿌리를 거두고 있는 땅에, 제 몸을 바친다.
모과 하나조차도 순리에 제 몸을 맡긴다.
썩어가는 몸에서도 향기를 흩뿌리며.
문득, 아직까지 제대로 연탄불 노릇을 못한 이내 몸
죽어서라도 제대로 연탄재로 쓰이기를 소망하게 된다.
썩어가는 모과 앞에서.
서명문(誓銘文)을 새긴다. 고맙게도.
죽은 잎들일 뿐인 낙엽도 땅에 떨어져 내리면
서로 어깨를 겯고 쌓이기에,
그 안은 따뜻하다. 죽어서도 대지를 덥힌다.
낙엽은 마지막 모습조차도 인간보다 한 급 위다.
*
소유욕과 명예욕에 매인 이들을 욕심꾸러기들로 멸시하는 사이에
무욕을 고고함으로 착각하게 되지 않았는지
보수 꼴통과 껍데기 진보를 비하하는 사이에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무시하게 되지 않았는지
편리한 유행어에 편승한 이들을 경시하는 사이에
편견을 키우게 되지 않았는지.
그리하여 내 안에서는 관용과 포용의 향기보다는
배척과 오만의 악취가 더 많이 고여 있지나 않은지.
*
과일전 망신을 시킨다는 모과에게서는 맑고 고운 향기가 나지만
나는 모과보다도 못한 존재일 뿐이다.
모과 앞에 서니 확연해진다.
따 온 모과들을 나누어
거실과 딸 방, 그리고 안방에 담아 놓았다.
놓인 곳마다, 향기가 그윽하다.
향내가 깊다. 맑다.
모과 앞에서, 내 몸을 여민다.
마음 문짝을 모과로 씻어주고 싶다.
문짝은 물론이고, 문설주, 문지방, 돌쩌귀까지도.
보이지 않는 곳들을 특히 더 많이 닦아내고 싶다.
죽어서라도 연탄재로 쓰이려면.
죽어서, 낙엽의 절반 몫이라도 해내려면. [Nov. 2015]
- 溫草
쌍시옷 소리로 배 터지는 세상 (0) | 2015.12.17 |
---|---|
2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 (0) | 2015.12.03 |
써먹지 못한 주례사 : 암컷과 수컷 (0) | 2015.10.24 |
이런 교수들도 있어야 한다. 인용(認容)해야 한다 : 고려대 정안기, 서울대 이영훈 (0) | 2015.10.01 |
나도 누군가에게 자유이용권이 되고 싶다 (0) | 2015.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