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시옷 소리로 배 터지는 세상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다시 하면 그땐 경찰에 고발할 겁니다.
이 개자식아...’
전철 안, 맞은편의 사내에게서 들리는 소리.
놀라서 얼굴을 들어보니, 30대 후반 ~ 40대 초반.
술 한잔 걸치지 않은 맑은 얼굴에
짐짓 엄숙+고상한 표정까지 매달고 있다.
둘이서 우산을 받고 가는 여인들.
그 옆으로 차 한 대가 바짝 다가서며 날카로운 경적을 울린다.
빠앙~
그 순간 두 여인에게서 제각기 터져 나오는 소리.
‘어마 깜짝이야!’
‘야 이 ㅆㅂ새끼야’
운전자는 30대 후반쯤의 여인.
쌍시옷 발음의 여인은 그보다 어려 보이지만 최소한 삼십은 돼 보인다.
돌아오는 전철 안.
노약자석 쪽에서 연이어 들리는 고성.
까끌까끌한 목소리에 술기운이 잔뜩 묻어난다.
‘야 이 개새끼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널 얼마나 아껴 왔는데, 이 개자식아.’
사랑 두 번하면 얻어먹은 욕으로 배가 터질 것만 같다.
소리의 주인공은 70대를 넉넉하게 넘어섰다.
어휴~~
집이 보이는 정류장 근처. 보도.
앞서 가는 두 여학생 쪽으로 빠르게 사내아이 자전거가 지나간다.
여학생들 곁을 스치며 손으로 한 아이의 머리칼을 흩뜨리고 간다.
그 학생 입에서 즉각 터져 나오는 소리.
‘야. 00이 너. 이 ㅆㅂ쌔끼. 너 죽어!’
그러고는 이내 곁의 동무에게 말을 잇는다. 기쁜 표정으로.
‘저 새끼는 항상 저런다.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니까.
그래도 맘씨는 괜찮은 거 같아.’
왜들 이럴까.
누가 저리 만들었을까.
아니, 누가 만든 게 아니다. 만들어졌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 만들고 있다.
그날 만난 이들 중 한 사람은 최고의 욕이 ‘놈’이나 ‘자식’ 정도.
혼자 있을 때도.
‘저놈, 그놈, 그 자식’ 소리가 나오면 그건 엄청 화가 났다는 뜻이다.
바로 저 위의 우산 속 두 여인 중
‘어마 깜짝이야’의 주인공이다.
그분 곁에 잠시 함께하고 있어도
이내 마음이 온화해진다.
생각이 얌전해진다. 어느 새.
요즘 쌍시옷 소리가 넘쳐난다. 과장하자면
24시간 함께하고 지낸다는 감기 바이러스 못지않다.
초등생들 입에서조차도 줄줄이 사탕이고
아이들의 단축번호 1번 표기가(대체로는 그게 엄마다)
‘쌍년’이거나 쌍시옷으로 시작되는 표기들이 드물지 않단다. 세상에...
욕을 전혀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횟수와 내용은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
버릇을 그렇게 들이면.
쌍시옷에 아무 생각 없이 합류하기 시작하면
그 자신도 쌍시옷의 탁류에 휩쓸려간다.
아. 그러고 보니 욕쟁이인 나도
‘그놈, 그 자식’의 수준에서 멈춰야겠다.
술안주로 끌려나오는 정치판에 날리곤 하던
‘그 쌔애끼들’ 소리도 이젠 하지 말아야겠다.
욕이란 게 참 무섭다. 참말로 무서운 게 욕이다.
남들에게 해대는 욕이
결국 자신을 망치니까. [Dec. 2015]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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