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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한식 조리사와 코미디언의 공통점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6. 2. 1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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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한식 조리사와 코미디언의 공통점

 

남자 한식 조리사와 코미디언. 이 두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무엇일까. 그것은 집에 가면 단 한 번도 자신의 직업과 관련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자 조리사는 집에 가서 일절 요리를 하지 않으며, 코미디언들은 집에 가서 한 번도 웃기는 말/짓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초일류 호텔의 한식당 주방장에게 물었다. 집에 가서 혹시 요리를 하느냐고? 그는 대뜸 눈을 크게 뜨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아주 오래 저었다. 집에 가서는 아내가 해주는 밥과 음식을 먹을 뿐이라면서.

 

같은 초일류 호텔의 일식당 주방장이었던 이가 독립해서 가게를 연 곳에 갔다. 일반 축하객들이 떠나고, 지인들만 남게 되자 자연스레 개업 축하 회식이 되었다. 일식집이어서 일식 안주들이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방문객들은 한식 메뉴가 주축인 안주들 앞에서 처음엔 의아해 했다. 하지만, 맛깔 나는 음식들 앞에서 국적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 안주가 쉽게 동날 때마다 그는 아내의 이름을 불러댔다. 한 번도 자신이 회칼을 들고 주방에 들어가는 걸 보지 못했다. 때마침 아주 끝내주는 참치 부위가 들어왔다고 자랑하면서 그걸 더 내오라고 할 때조차도.

 

코미디언들은 집에 가면, 무섭다. 웃는 표정은 고사하고 웃기는 얘기 한마디 하는 법이 없다. 술 담배조차도 가까이 하지 않는 독일 병정에다 짠돌이인 김구라의 아들은 그처럼 재미없는 아빠와 결혼한 엄마가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경제관념이 없는 아내라는 이혼 사유 중의 하나에 남편의 그런 엄숙주의가 작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놓고 말은 안 해도.)

 

코미디언 중, 김형곤이 있다. 세는나이 47살이던 2006년에 죽었다. 헬스클럽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사람들은 지나친 살빼기 운동의 후유증이라고 단정하기도 하지만, 운동량과 시간이 잘 조정된 체력운동을 하고 난 뒤의 급사 사례는 드물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이미 위험선일 때 운동을 했다고 보아야 대체로 맞는다.

 

김형곤은 웃기는 게 직업이지만, 생각 있는 코미디언들이 그렇듯, 자신의 직업에서 벗어나면 늘 진중했다. 대학에서는 국어교육학을 전공했고, 시청률이 20%를 넘나들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작가 이상으로 대본 작업에 참여했다. 이 나라 최초의 코미디 전용 클럽을 창립/운영했고, 30대 시절에 백상예술대상을 4번이나 수상했다. 나이 지긋한 이들이나 받게 마련인 예총예술문화상 연예 부문 공로상을 38살에 수상한 것은 아직까지도 깨어지지 않는 최연소 수상 기록. 정치권에도 뛰어 들어 국회의원에도 출마했다. 비례대표가 아닌 서울 광진의 지역구 위원장으로서.

 

그런 그의 취미는 독서였다. 칸을 채우기 위한 장식용이 아닌 진짜 취미. 그의 시신은 그의 평소 소망대로, 그리고 마지막까지 사려 깊게 미리 조치해 둔 대로, 가톨릭의대에 해부용으로 기증되었다.

 

남자 조리사는 집에 가서 일절 요리를 하지 않고, 코미디언들이 집에 가서 한 번도 웃기는 말/짓을 하지 않는 이유. 그것은 조리사와 코미디언이 그들의 바깥 직업이어서다. 벌어먹고 살아가야 하는 치열한 삶의 전장에 매달고 다니던 명패에서, 집에서만은 물러나 있고 싶어서 그리한다. 집에서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긴장의 끈을 풀어놓고, 그저 편안히 쉬고 싶어서.

 

집은 속옷 차림으로도 행복해지는 유일한 구역이다. 직업인들의 외피를 말끔하게 벗겨내어 바깥세상의 압력을 한꺼번에 날려 보내는 심신의 해방구. 속옷 차림은 세상의 족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상의 권리이자 행복이다. 우리는 집 안 어디에선가는 하루 한 번 속옷 차림이 되어도 된다. 구속복(straitjacket. 정신 이상자와 같이 폭력적인 사람의 행동을 제압하기 위해 입히는 재킷)만 같은 외피를 훌훌 벗어 던지며, 그때만큼은 모두들 무직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일까. 집에 들어서야만 볼일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사람들, 의외로 많다. 자신의 안에 든 짐 한 가지를 집에 와서야 비로소 편안히 내려놓을 수 있는 이들이다.

 

, 나도 이참에 내 방문 앞에 팻말 하나를 만들어 걸고, 필요할 때마다 뒤집기를 해야겠다. 가게 문 앞의 “Open/Closed”의 팻말처럼... ‘쉬고 싶으니 건드리지 마시오라 할 때는 “Unemployed”(실업 중), 일하고 있을 때는 “Employed”(취업 중)를 거는 거다. 설마 “Unemployed”를 보고 울 집 마마님께서 취업 면접을 집요하게 제안해 오지는 않겠지. 하하하. [Feb. 2016]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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